황혼의 살인자. 9. 정체.
9. 정체.
“입이 무거운 놈들이다.”
책상 위 물건들을 정리하는 형님 오동철을 오동진은 표정 없이 바라봤다. 원목이 뭐가 그리 좋다는 건지 사장실을 온통 원목으로 꾸며 놓았다. 저렇게 커다란 책상도 들여놓았다. 수입목이라는데 아무튼 유별나다.
“나무에 쏟을 애정으로 가정을 꾸리지 그래?”
툭 나간 오동진의 반응에 오동철은 책상을 정리하던 손을 멈췄다. 동생 오동진이 앉은 응접소파를 응시한다. 정말로 원목소파를 보는 거다.
“그 가구 만드는 일본 장인도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더라.”
오동진은 피식 웃었다. 자신도 아는 이름의 유명한 일제브랜드가구다. 이걸 들여놓던 날 형님 오동철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던 게 기억난다.
“쪽발이 물건 어지간히 좋아하네. 비유가 적절한 거야?”
“다를 건 뭐야? 병원에 실려 간 놈들 전부 믿을만하단 건데.”
오동진은 새삼 한숨을 흘려냈다. 형님 오동철이 대표로 있는 이 회사, 현진써큐리티의 직원 넷이 박살나 병원에 실려 갔다. 경찰은 윤완규를 빼돌리려한 그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수사하고 압박해 들어올 것이다.
“퇴사한 걸로 해 놨다.”
병원에 있는, 사실상 경찰 손에 잡힌 직원들을 그렇게 처리해 놓았단 거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조치한 것이다.
표면상 그들은 현진과 관계가 없다.
윤종대회장도 모르쇠로 나갈 거다. 그들이 입을 열 일도 없다.
“윤회장이 귀찮게 됐지만 일이 이렇게 돌아간 걸 어쩌겠냐? 최악의 경우 사법처리 받고 집행유예정도로 마무리해야지. 윤회장 그렇게 한다지?”
동생 오동진에게 물으며 오동철은 책상에서 돌아 나왔다. 185의 키에 백키로에 육박하는 근육질 몸이 불끈거린다. 와이셔츠가 터질 것만 같다.
“회사에 들어앉아서 운동만 하는 거야?”
불만스럽게 오동진이 대꾸하자 오동철은 콧등을 찡그렸다.
“운동이야 내 생활의 일부고, 그렇다고 내가 해야 될 일 안하냐?”
“잘 하고 있네, 그래서 이 모양이고.”
카모마일 차를 잔에 따른 오동철은 후룩 거리고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누군지 제대로 했더라.”
“장철이라는 자야.”
“알아. 쉰다섯 먹은 노땅이지. 만으론 쉰셋인가? 뭐 그래봐야 꼰대지.”
“그 꼰대가 형 회사 직원 넷을 개 박살냈어.”
“그러니까 제대로 했다는 거잖아. 그놈들 제대로 된 놈들인데 제대로 당했거든. 말하기야 쉽지만 이게 이렇게 될 일이 아니란 말이지. 절대로.”
마지막 말을 낸 오동철의 눈동자는 서늘하게 빛났다.
“그러니까 이게 보통일이 아니란 걸 형이 누구보다 잘 알겠네. 윤회장의 아들 윤완규를 빼돌리던 형 회사 직원들 넷이, 형이 실력을 인정하는 친구들이 당했단 말이야. 윤완규는 죽었어. 개구리처럼 배를 갈라놨지.”
찻잔을 들다 멈춘 오동철은 스산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린 건데, 손녀가 차에 받혀 즉사했고 딸은 자살했다니까 이해해. 나 같아도 다 죽여 버리고 싶을 거야. 배따고 토막치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품는 거하고 정말 해버리는 거하곤 완전히 다른 거고.”
“그러니까? 도대체 그 꼰대 정체가 뭐길래 이런 일이 가능하지?”
“그거 알자고 내가 여기 있는 거 같은데?”
“음 그러냐? 지금 시간이, 에, 새벽 3시 되가는 구나?”
“엉뚱한 소리 말고, 형 친구한테서 아직 뭐 안 나왔어?”
“형철이? 야 나랏밥 먹는 공무원이 한가하겠냐? 검사라는 직업이 보통 힘든 직업이 아니라 이거야. 이런 새벽까지 밤새는 건 일도 아닌 거지.”
“그래서 우리가 두둑하게 후원해 주고 있잖아? 설마 밤 샌다는 장소가 룸살롱은 아니지? 형철이형 요즘 잘 나간다면서? 물 들 때 노 저어?”
“에헤, 그런 거 아니고.”
동생 오동진의 마뜩찮은 눈빛에 오동철은 피식 웃으며 다시 입을 연다.
“기다려 봐라, 곧 소식이 올 거다.”
오동진은 시선을 거두고 식어가는 찻물을 찻잔에 따랐다. 카모마일 향을 음미하며 차를 넘겼다. 창밖의 어둠을 보노라니 새삼 옛 생각이 난다.
“형, 군대에서 쫓겨나고 빌빌거리던 때 기억나?”
원목응접테이블을 물티슈로 닦던 오동철은 힐긋 동생 오동진을 봤다.
“잊었다. 그런 기억은 묻어 두는 거야.”
다시 티슈로 테이블 닦기에 전념하는 형 오동철, 그 얼굴을 응시하며 오동진은 기억을 더듬었다. 승부조작으로 억울한 패배를 해야 했던 자신이 관장을 때려눕히고 체육관을 뛰쳐나온 날이다. 형 오동철도 그랬다.
‘무슨 장난도 아니고.’
형제가 나란히 지랄 같은 일에 휘말린 거다.
특전사 중사로 잘 지내던 형 오동철은 보급품비리를 저지르던 상사를 때려눕히고 불명예제대했다.
군사재판은 철저하게 형 오동철에게만 죄를 물었다. 칼같이 잘라냈다.
그런 둘이 같이 클럽에 간 것은 운명이었다. 조폭들과 싸운 것도 그랬다.
그렇게 이 길로 들어섰다.
또 하나의 운명으로 윤종대회장을 만났다.
생각해 보면 참 단순명료하다.
그래서 특별히 고민한 기억이 없다.
“우리 나중에 나이 들면……”
오동진의 목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기다리던 것이 와서다. 형 오동철의 친구 문형철이 보낸 퀵이다. 차분한 얼굴의 직원이 건네고 바로 나간다.
“우리 또철이가 노력 좀 했구나.”
또철이, 문형철을 이르는 말이다. 형 오동철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리 친구다. 사고뭉치였던 형 오동철,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오동철 다음에 문형철이라면서, 또철이라고 불렀다는 거다. 그가 검사가 됐다.
“또철이형 사시 마지막 문 닫고 들어간 기수지?”
“뭐 그렇다는 건데, 자, 뭐가 있나 보자.”
퀵으로 온 서류는 단단히 밀봉 돼 있었다.
문구용 칼로 봉투를 자르고 내용물을 꺼냈다.
A4용지다.
원하던 것, 장철이란 남자의 신상정보다.
“이거……”
서류를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오동철은 동생 오동진에게 물었다.
“원산도 간첩선사건이라고 너 들어봤냐?”
오동진은 대답하지 않고 나머지 서류에 눈을 박았다.
* * *
태블릿 화면에 뜬 장철의 신상자료를 들여다보며 최재우는 눈에 힘을 줬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고 놀라워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지경이다.
‘원산도 간첩선사건.’
장철은 그 사건의 관련자다.
정확하게는 피해자다.
국가가 간첩으로 몰아 버린 장일근 선장의 아들이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1980년.’
사건이 발생한 년도다. 장철의 부친 장일근씨가 북으로 배를 몰고 간 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전형적인 사건. 간첩이 되고 만……’
장일근씨는 원산도에서 고깃배를 몰며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이었다. 아내와 외아들 장철, 칠순 노모의 네 식구였다. 그에게 보령초등학교 원산도 분교의 선생님 최준혁이 부탁했다. 하늘같은 선생님의 부탁인 거다.
‘1월 5일 한밤중에 대천항으로……’
급한 볼일이 있다면서 대천항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최준혁을 기다리던 세 사람을 태웠다. 그런데 배는 원산도로 돌아가지 않고 북으로 갔다.
‘암약하던 고정간첩들이 탈출하는데 휘말린 사건.’
한마디로 요약정의하면 그런 일이다.
그런데 장철의 부친 장일근씨는 이후 그들과 한통속의 간첩으로 확정됐다.
북에서 귀순자로 TV에 나왔기 때문이다.
대남라디오 방송에도 계속 나왔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첨부된 내용에는 장일근씨가 2001년 탈출을 시도하다 압록강변에서 체포돼 처형당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 사건이 확인되면서 간첩이라는 죄명을 벗었다. 유사한 사건들의 재심을 청구한 한 인권변호사에 의해서다.
그러나 만시지탄, 장일근씨는 이미 20년 이상을 간첩이었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려던 북에서 결국은 죽었다.
그가 탈출하려던 이유, 그리워하는 가족에게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장일근씨 가족들은 없었다.
‘아내는 자살했고 노모는 병사했고 아들은……’
그 가족이 당했을 일들이 눈에 선하다. 무수한 고초를 겪었을 것이고 보안사와 경찰의 감시를 받았을 것이다. 일가친척들도 마찬가지다.
“하아.”
한숨을 내쉰 최재우는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임도를 타고 차가 올라올 수 있는 예봉산 정상까지 올라와 있는 지금, 수색대들의 불빛이 선명하다. 장철의 흔적을 찾아 경찰견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늦은 것 같다.
‘이 사람은……’
생각대로 보통사람이 아니다.
아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험하고 무서운 인물이다.
부친 장일근씨가 간첩으로 몰려 일가족이 풍비박산난 가정사를 가졌다.
본인은 고아원에 갔다.
그 어린 가슴을 짐작도 못하겠다.
‘형제보육원.’
그 유명한 형제복지원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1980년 그해 겨울이다.
68년생 장철은 겨우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 밖에 안됐을 때였다.
‘1984년 화재.’
형제보육원은 서산의 한 귀퉁이에 있던 곳이다, 지금은 없다. 불타 사라졌다.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된 그곳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장철은 무사했다……’
보육원 건물은 10세를 기준으로 구분돼 있었다. 장철은 10세 이하의 어린아이들만 자던 나동에서 아이들을 지켰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무사했다.
그런데 그날 장철이 왜 나동에 있었던 건지에 대해선 내용이 없다.
‘이 화재가 우연일까?’
화재로 불탄 곳은 10세 이상 아이들이 기거하던 가동, 용도를 알 수 없던 별관건물과 원장사택이다. 생존자 한명 없이 모두 화재 속에서 사망했다.
84년 당시 17세이던 장철은 어린 애들을 화재로부터 지키고 본인도 살았다.
본인의 숙소가 아닌 나동에서 그 밤을 보낸 이유는 뭐였을까?
간략한 내용처럼 화재를 보고 나동으로 뛰어가 어린애들을 보호했단 건가?
‘장철이?’
그 부분에 대해선 명확한 결론이 나와 있다. 보육원 별관 건물에서 시작된 화재가 원인이란 건데, 그곳에 켜둔 전기난로가 과열돼서란 거다.
가동의 큰 아이들이 대응하지 못한 것은 술에 취해서란 것이 내용이다.
‘원장의 용인 하에 큰 아이들이 그날 술을 마셨다? 원장도 술에 취했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묘한 내용을 최재우는 곱씹었다.
‘사건이후 서울로……’
장철은 독립할 나이였기에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서울로 상경해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한 것으로 나온다. 중국집부터 고물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렇지만 87년부터는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확실치 않다.
‘이 때부터인가?’
과장이 말한 장철의 신원에 대한 단서, 장철이라는 인물이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무서운 존재라는, 그게 진실이라면 시작은 이때부터다.
‘87년, 그때부터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을 시작했어.’
그리고 절정은 그 사건이다.
‘97년 서영나이트클럽 살인사건.’
범서천파가 장악한 그곳을 경쟁조직인 용두동파가 공격했다.
사상자가 수십 명이 나온 혈투였다.
그곳 사장실에서 범서천파 보스와 간부들이 죽었다. 한자리에서 모조리 목이 갈라졌다.
그 일을 한 범인을 못 잡았다.
‘범행 도구에 남은 DNA.’
사건 현장에 남은 것은 그것 하나였다.
‘범인이 피해자들의 목을 가를 때 쓴 나이프에서 묻어 있던 혈흔.’
그것이 장철의 DNA와 일치했다.
그의 집에서 급하게 수거한 칫솔 의 DNA와 같다.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던 사건의 범인을 찾은 거다.
우연한 행운, 이 기막힌 결과는 과장의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만들었다.
‘미제사건들 자료와 대조한 게 들어맞을 줄은.’
벼락 맞을 확률,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이런 걸 거다.
과장은 절대로 의도해서 한 게 아니다.
장철이란 남자가 만든 결과에 놀라다가 혹시 하며 한 거다.
과거 미제사건들로부터 단서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하면서.
‘장철, 당신이 97년의 그 범인이라면 그때 유일하게 실수한 거지.’
귀신.
그 세계에선 그 존재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귀신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살인자, 아무도 본적 없고 알지 못하는 킬러, 죽음의 신.
‘용두동파가 고용한 걸로 돼 있지만……’
귀신은 어느 한 곳에 소속된 자가 아니었다. 조건만 맞으면 누구하고도 일했다. 97년 서영나이트사건은 용두동파와 조건이 맞았을 뿐인 거다.
‘97년, IMF한파가 대한민국을 덮친 해.’
그 후로 귀신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종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세계에선 그가 해외로 나갔다는 설이 있었다.
확인할 수 없는 내용, 최재우 자신은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때다. 군 제대 후 복학한 학생이었다.
‘장철, 당신이 귀신이라면 지금 이결과는 황당한 게 아니지.’
뺨에 주름이 지도록 이를 물었던 최재우는 차문을 열고 나갔다.
어둠이 깔린 예봉산 너머 산줄기를 바라 봤다.
장철이 도주한 곳은 분명 저곳이다.
기동대병력과 경찰견들이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못 잡을 거다.
“귀신이니까.”
한숨처럼 흘러나온 목소리에 흔들리듯 최재우는 차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