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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연장전 후반 14분에 나온 한국의 결승 골.
그 골을 넣은 주인공인 신재욱은 옆구리에 공을 낀 채로 경기장 중앙으로 달렸다.
다만 그 속도는 매우 느렸다.
이상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달렸고, 그의 시선은 네덜란드의 스트라이커 훈텔라르에게로 향했다.
자신을 도발했던 선수.
그 선수를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네덜란드 선수들과 훈텔라르에겐 너무나도 얄미운 행동이었다.
― 하하하하! 신재욱 선수가 훈텔라르 선수에게 받았던 걸 그대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 아니죠! 훨씬 더 크게 돌려주는 거죠! 결승 골로 돌려주는 거니까요! 게다가 지금 신재욱 선수의 달리기 스피드를 보세요! 일부러 느리게 달리고 있는 겁니다!
― 확실히 느리게 달리고 있긴 하네요. 경기 종료를 앞두고 있기에 일부러 시간을 조금 끌어주는 거겠죠?
― 그렇죠. 상대의 도발을 되돌려주면서도 팀의 승리를 굳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재욱은 피식 웃어버렸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눈을 부라리고 있는 훈텔라르의 모습이 웃겼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왜 먼저 도발을 하고 그래?”
하지만 웃음기는 금세 사라졌다.
빠르게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집중하자. 아직 안 끝났어.”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골이 나올 수 있는 시간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신재욱은 뒤따라오는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집중하자고.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 신재욱 선수가 대표팀 선수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관중들의 함성 때문에 들리지는 않지만, 아마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라고 얘기한 것 같죠?
― 일리가 있는 말씀이십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유한 신재욱 선수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동료들을 다독였을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승부차기를 바로 앞에 둔 상황에서 실점했다는 사실에 멘탈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우리가 진다고……? 겨우 저런 팀한테…?”
“우리의 축구가…… 신재욱 원맨팀한테 무너진다고…?”
“이럴 수가…….”
“이제 시간이…… 없잖아…….”
“……망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지만 네덜란드 선수들은 경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패배가 가까워졌다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골을 만들기 위해서 1분간 최선을 다해서 뛰었다.
워낙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모인 팀이다 보니 다급하게 이뤄진 공격이었음에도 강한 화력이 뿜어졌다.
그러나 이런 네덜란드의 공격은 한국에게 통하지 않았다.
― 신재욱 선수가 아르연 로번을 막아냅니다! 신재욱 선수의 수비가 굉장히 좋았죠?
― 방금은 우리 선수 한 명이 뚫리면서 위험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는데, 어느새 달려온 신재욱 선수가 커버를 해주네요! 정말 놀라운 수비였습니다! 신재욱 선수는 슬라이딩 태클이 매우 좋은 선수인데, 방금은 그냥 스탠딩 태클로 아르연 로번의 드리블을 막아냈네요!
수비 관련 특성이 성장하며, 한층 더 좋아진 수비를 보여주는 신재욱 때문이었다.
한 번의 공격이 막히자, 1분이라는 시간은 끝나버렸다.
이제 네덜란드에게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삐이이익!
경기가 종료됐다.
모든 걸 쏟아부은 신재욱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매 경기가 살얼음판이네.”
진한 피로가 몰려왔다.
온몸의 근육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뼈는 욱신거렸다.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그래서 더 재밌는 것 같기도 하고.”
신재욱은 호흡에 집중하며 잔디 위에 완전히 드러누웠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힘들었던 만큼 뿌듯함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우어어어어! 재욱아! 우리가 이겼어!”
“결승이야! 우리가 결승에 올라갔다고!”
“우어어어어어! 월드컵 결승이라니! 이게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냐구!”
한국대표팀 감독과 코치, 관계자들 모두 흥분했다.
이들은 체면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경기장을 방방 뛰어다니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본 신재욱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되게 좋아하시네.”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더 좋아졌다.
신재욱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
이어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심한 근육통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걸었다.
그가 목적지는 슬퍼하고 있는 네덜란드 선수들이었다.
가장 먼저 바이에른 뮌헨의 동료인 아르연 로번에게 다가갔다.
“아르연, 좋은 경기였어요.”
“재욱, 너무 잘하더라. 독일에 있을 때보다 더 잘하는 것 같던데?”
“열심히 뛰었죠.”
“그런 말이 아니야. 진심으로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아. 특히 수비적인 부분에서 엄청 늘었어. 널 많이 상대해봤던 내 말이니까 믿어도 좋아. 아니지, 너 스스로가 제일 잘 알겠구나?”
“……하하.”
신재욱은 멋쩍게 웃어버렸다.
실제로 수비 능력이 많이 좋아졌다.
성장한 특성의 효과 덕이었다.
“재욱, 그런데 설마 내 동료들한테 인사하러 가려는 거야?”
“그러려고요. 오늘은 적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동업자들이잖아요.”
“놀리려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흐흐! 장난이야. 아오! 방금까지만 해도 패배한 게 짜증 났는데, 네 얼굴 보니까 좀 풀린다. 그나저나 택현은 괜찮은 건가? 연장전엔 거의 뛰질 못하던데.”
“안 괜찮을 거예요. 햄스트링이 안 올라온 게 다행일 정도로 많이 뛰어댔으니까요. 어쩌면 당장 내일 햄스트링이 올라올 수도 있는 거고요.”
“부상 조심해야 해. 특히 택현처럼 스피드를 무기로 하는 선수는 더더욱 조심해야지. 안 되겠다. 내가 가서 말 좀 해줘야겠다.”
그렇게 말하며 아르연 로번은 이택현에게 다가갔다.
두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을 본 뒤, 신재욱은 다른 네덜란드 선수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대한민국,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결승 진출! 모두가 의심했던 일을 당당히 해낸 태극전사들!」
「기적은 진행 중이었다! 대한민국, 월드컵 4강에서 강팀 네덜란드 꺾고 결승 진출!」
「네덜란드도 축구천재를 막지 못했다! 신재욱, 3골 2도움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결승행 이끌어!」
한국이 월드컵 결승전에 올랐다.
기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매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 팬들도 좋아하기보다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ㅎㄷㄷㄷㄷ;;;;; 말도 안 돼;;;;;; 한국이 월드컵 결승에 올라갔다고? 살아생전 이런 걸 보네;;;;;
└ 와…… 진짜 이건 전혀 예상 못 했다… 결승전이라니…….
└ 신재욱이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선수였어. 얘 그냥 쌉월클이야…….
└ 신계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 맞더라. 솔직히 이번 월드컵에서 포스는 리오넬 메시랑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넘었지.
└ 그냥 이번 월드컵에서 신재욱은 축구의 신 그 자체였어. 그 누구도 부정 못 함.
└ ㅋㅋㅋㅋ그냥 멱살 잡고 캐리했지.
└ 네덜란드전은 경기력 차이가 엄청났는데, 이걸 꾸역꾸역 골을 넣어서 역전시키네…….
└ 게임에서도 한국팀으로는 결승전에 못 올라갔는데, 현실에서 올라가 버리네ㄷㄷ
└ 이게 되는 거구나……? 분명 좋아해야 하는데…… 되게 좋아할 일인데…… 너무 놀라워서 기뻐할 수가 없어…….
반면 한국대표팀은 축제 분위기였다.
직접 땀을 흘리며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일궈낸 선수들이었기에 월드컵 결승에 올랐다는 걸 진하게 체감하는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선수들의 자신감도 높아졌다.
“우리가 결승리거다! 이대로 우승까지 가보자!”
“결승에도 왔는데, 우승이라고 못할 거 있나? 한 번만 더 이기면 되는 거잖아?”
“간단하네! 한 번 더 이기고 월드컵 우승 트로피 들어보자!”
“하하하! 이젠 정말 월드컵 우승이 꿈이 아니게 됐어!”
“어떤 팀을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거 나만 그런 거 아니지?”
하지만 자신감이 높아진 것에 비해서 결승전에 대비하는 훈련은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다.
체력이 어느 정도는 회복되어야만 훈련에 들어갈 수 있는데, 결승전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4일이었으니까.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신재욱도 예외는 아니었다.
팀 내에서 줄곧 그나마 나은 컨디션을 보여줬던 신재욱이었지만, 이제는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버렸다.
겨우 며칠 만에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쉬운데.’
신재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장 자신조차 훈련보단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으니까.
결국, 한국대표팀은 월드컵 결승전이 펼쳐질 때까지 추가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감과 믿음만을 가진 채로 월드컵 결승전이 펼쳐질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 양 팀의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습니다! 독일 선수들과 대한민국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의 월드컵 결승전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마 경기를 지켜보시는 한국축구팬분들 모두 팔에 소름이 돋으실 것 같습니다! 4강에서 네덜란드와 명승부를 만들어내며 결승에 올라온 한국이 이제는 월드컵 우승을 하기 위해서 경기장 위에 서 있습니다!
해설들이 흥분했다.
관중석에 있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일을 응원하는 팬들과 한국을 응원하는 팬들 모두 잔뜩 흥분한 채 함성을 질렀다.
그사이 신재욱은 동료들을 모아놓고 크게 소리쳤다.
팀의 주장은 구자천이었지만, 그를 포함한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전부 신재욱의 말에 집중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늘 해왔던 것처럼 자신감 있게, 더 많이 뛰고, 더 집중하세요! 이길 수 있어요. 결승까지 올라온 우리가 못 이길 팀은 없다는 거, 명심하세요!”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훈련량은 부족했지만, 자신감만큼은 여느 때보다도 높았다.
어떤 팀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한국 선수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됐다.
한국 축구팬들, 그리고 전 세계 축구팬들은 기대감이 담긴 눈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특히 한국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못 이길 것 같던 강팀들을 계속해서 이겨내며 기적을 만들어낸 팀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 ……오늘 독일 선수들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아 보이는데요?
상대가 현시점에서 가장 강한 전력을 지닌 ‘독일’이라는 것.
게다가.
― 반면에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은…… 조금은 무거워 보이는데요……?
한국은 로테이션을 제대로 돌리지 못하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라는 것.
이 두 가지를 간과한 전 세계 축구팬들은 갑작스레 터진 독일의 골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위험합니다! 너무 공간을 쉽게 내주고 있어요! 어엇?! 막아야죠! 막아야 합니다!
― 앗! 아……! 골입니다……! 너무 이른 시간에 골이 나와버렸습니다……!
전반 3분.
한국이 첫 실점을 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