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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연 로번이 잘 사용하는 패턴은 크게 몇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왼발 감아 차기다.
보통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며 간결하게 슈팅을 때려버리는데, 그 슈팅이 엄청난 궤적으로 휘어진다.
골키퍼가 막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슈팅의 동작이 워낙 간결해서 수비수들도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한 가지 패턴만 쓰면 모를까, 몇 개를 섞어 쓰니까 더 막기 힘들지.’
신재욱의 표정이 굳었다.
같은 팀인 아르연 로번의 실력을 잘 알고 있기에, 위기감을 느꼈다.
― 오른쪽 측면에 있던 아르연 로번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지금 아르연 로번이 펼치는 플레이는 가장 자주 보여주는 패턴이었다.
또한, 수비수들에게 가장 잘 통하는 플레이이기도 했다.
‘막는 법을 알려주긴 했는데, 막을 수 있을진 모르겠어.’
신재욱은 경기 전부터 한국대표팀 선수들을 모아놓고 아르연 로번을 막는 방법을 알려줬었다.
순간적인 스피드가 너무 빠르니까, 함부로 덤벼들지 말 것.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막아야 하고, 페인팅에 속지 않고 슈팅을 하려 할 때만 붙어줄 것.
특히 왼발 슈팅만큼은 절대로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실제로 아르연 로번을 앞에 둔 윤성영은 적당히 거리를 둔 채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윤성영의 근처엔 중앙수비수인 홍정오까지 지원을 하고 있었다.
윤성영은 아르연 로번을 정면에서 막고 있었고, 홍정오는 아르연 로번이 슈팅하지 못하도록 각을 없애는 수비를 했다.
― 우리 수비수들이 아르연 로번을 잘 막아서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공략법이죠!
― 아무래도 아르연 로번 선수와 같은 팀 동료인 신재욱 선수가 막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우리 수비수들이 대응을 굉장히 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수비수들도 아르연 로번 선수를 막을 때, 이런 식으로 막거든요?
아르연 로번은 2명에게 가로막힌 상황에서도 특유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왼발로 중앙을 향해 공을 툭툭 치며 슈팅각을 만들었다.
이미 유명해진 패턴이었지만, 그 움직임이 매우 빠르다는 게 문제였다.
순식간에 각을 만든 아르연 로번이 다리를 휘둘렀다.
그의 주특기인 왼발 슈팅이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 위험합니다! 막아야 합니다!
그때, 한국의 측면수비수 윤성영이 다급하게 거리를 좁혔다.
바로 뒤에 홍정오가 있기에 시도할 수 있는 과감한 수비였다.
그런데.
투욱! 휘익!
다리를 휘두르던 아르연 로번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이어서 공을 오른쪽으로 치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르연 로번이 왼발로 슈팅할 것을 예상했던 윤성영과 홍정오는 반응하지 못했다.
만약 아르연 로번의 스피드가 평범한 수준이었다면 반응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스피드는 유럽에서도 가장 빠른 축에 속했다.
― 어엇?! 돌파를 허용했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2명을 뚫어낸 아르연 로번은 오른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안정적으로 드리블해낸 그는 왼발 아웃프런트로 크로스를 뿌려냈다.
퍼엉!
깎아내듯 차낸 공이 날카롭게 휘어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때.
흔들린 한국의 수비수들 사이를 파고든 선수가 있었다.
로빈 판페르시.
월드클래스 공격수인 그는 어느새 침투하며 몸을 날렸다.
터엉!
188cm의 큰 키를 이용한 헤더.
로빈 판페르시는 아르연 로번이 보낸 공을 이마로 강하게 찍어 내렸다.
― 아…… 네덜란드의 선제골이 터집니다…! 아르연 로번의 크로스를 로빈 판페르시 선수가 머리에 맞추며 스코어를 1 대 0으로 만들었습니다!
― 역시 아르연 로번 선수는 무섭네요…! 알고도 막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로빈 판페르시 선수는 수준 높은 공격수답게 굉장한 결정력을 보여줬습니다…!
네덜란드의 선제골이었다.
아르연 로번의 활약이 빛났던 골이기도 했다.
스윽!
신재욱은 시선을 돌려 이택현을 바라봤다.
굉장히 분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르연 로번한테 라이벌 의식이 강하긴 한가 보네.’
이택현의 마음을 이해했다.
더 잘하고 싶을 것이다.
아르연 로번이라는 월드클래스 윙어를 뛰어넘고 싶을 것이다.
“재욱아! 내가 수비 가담 더 할까? 내가 같이 안 막아주면 방금처럼 위험한 상황이 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체력은? 괜찮겠어?”
“지금보다 수비 가담 더 해도 풀타임 완전 가능!”
“그럼 그렇게 하자. 고생 좀 해줘.”
“오케이! 잘 봐둬! 이제 이 이택현 님이 아르연 로번 막는다!”
이택현이 웃으며 말했지만, 장난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막아내고 싶다는 마음만이 느껴졌다.
‘막는 것도 막는 건데, 그보다 먼저 골을 넣어야 하는데.’
신재욱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중원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다.
스트라이커인 자신이 최전방에서 공을 지켜주고, 연계를 잘해주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드필더진의 실력 차이였다.
‘예상대로 네덜란드의 중원은 단단해. 우리보다 두 수는 위야.’
신재욱뿐만 아니라 한국대표팀 선수들 모두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실력이 한국의 실력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그런데 이상했다.
한국대표팀 선수들 모두 질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어려운 경기에서 여러 번 이겨내며 생긴 단단함이었다.
또한, 팀의 에이스를 향한 강력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 비록 스코어에서 밀리고 경기력에서도 밀리고 있지만, 우리 선수들이라면 무언가 보여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번 월드컵 내내 기적을 만들어왔던 팀답게 이제부터는 더 나아진 경기력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많습니다! 신재욱 선수와 이택현 선수가 기회를 얻는다면 우리도 골을 만들 수 있습니다!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의 축구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한국대표팀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리라 믿고 있었다.
특히 신재욱이 팀을 구해줄 거라는 믿음이 강했다.
└ 아직 모른다!!!! 아르헨티나도 이겼잖아!
└ 경기 초반이라서 더 봐야 할 듯. 어차피 우린 월드컵에서 경기력으로 압도했던 적은 없었잖아. 이번에도 신재욱이 멱살 잡고 이겨줄걸?
└ 신재욱이 뭔가 해줄 거야.
└ 중원에서부터 개털리긴 하네. 근데 그래도 우리의 화력은 쎄니까 아직 어케될지 몰라ㅋㅋㅋ
└ 나만 이길 것 같은 거 아니지? 벨기에랑 아르헨티나 잡은 거 보니까 네덜란드도 꾸역꾸역 이겨버릴 것 같음ㅋㅋㅋㅋ
└ 아르연 로번이 개잘하긴 한다. 근데 다들 알지? 아르연 로번이 소속된 바이에른 뮌헨의 에이스는 신재욱이라는 거^^
└ 다들 진정하고 기다려. 바이에른 뮌헨 듀오가 보여줄 거야.
네덜란드의 선제골 이후.
경기의 흐름은 계속해서 네덜란드가 주도했다.
― 바이날둠 선수! 나이젤 더용 선수에게 공을 연결합니다.
네덜란드는 짧은 패스와 긴 패스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며 움직였다. 계속해서 볼 점유율을 높여나갔고, 끊임없이 한국의 빈틈을 공략하려고 했다.
― 더 용 선수가 반대편에 있는 디르크 카윗 선수에게 정확한 롱패스를 뿌려주네요! 디르크 카윗, 터치가 조금 길었지만 공을 받아냈습니다. 우리 선수들, 압박해줘야죠!
디르크 카윗은 기술이 매우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체력이 매우 좋고 축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다.
지금도 그 능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툭! 타닷!
측면을 막고 있던 윤성영을 스네이더르와의 2 대 1 패스로 가볍게 제쳐낸 그는 힘이 강하게 실린 크로스까지 뿌려냈다.
퍼엉!
낮고 빠른 크로스였다.
수비수들이 예상하지 않으면 막는 게 쉽지 않은 공격이었다.
더군다나 네덜란드의 공격수는 로빈 판페르시였다.
세계적인 수준의 공격수인 그는 홍정오와의 몸싸움에서 이겨내며 공을 향해 발을 가져다 댔다.
투웅!
발로 공의 방향만 가볍게 바꿔 놓는 슈팅.
로빈 판페르시는 골을 확신한 듯 손을 들어 올렸다.
“……!”
정석룡 골키퍼가 굳어버렸다.
그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전혀 반응하지 못했던 스스로에 실망해버린 것이다.
― 아…… 네덜란드가 두 번째 골을 터트립니다…! 스코어는 이제 2 대 0이 됩니다.
― 우리의 수비 집중력이 조금 아쉬운데요? 선수들이 더 집중해서 네덜란드의 패스 플레이를 막아주길 바랍니다!
― 공격진에서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2개의 실점이나 허용해버리고 말았는데, 이러면 공격진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 대한민국의 수비수들은 조금 더 잘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해설들의 목소리에서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1 대 0과 2 대 0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시간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축구팬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수비에 대한 아쉬움 드러냈다.
└ 아…… 진짜 응원하려다가도 수비 형편없는 것만 보면 응원하기 싫어진다니까?
└ 에휴…! 내가 신재욱이랑 이택현이었으면 힘이 쭉 빠졌을 듯…….
└ 한국 축구는 매번 수비가 헬이야ㅠㅠㅠ 이거 어떻게 못 고치나?
└ 신재욱이 개고생해서 4강까지 올려줬는데, 수비수들이 다 말아먹네ㅋㅋㅋㅋㅋㅋ
└ 너무 허무하게 먹혀서 어이가 없다ㅋㅋㅋㅋ 이게 월드컵 4강에 올라간 팀의 수준이냐?ㅋㅋㅋㅋㅋ
└ 황당하다 황당해ㅎㅎㅎㅎ 이건 그냥 지는 게 맞다. 수비수들이 공을 잡으면 우왕좌왕하다가 뺏기고, 수비할 땐 상대 윙어랑 공격수 다 놓치고ㅎㅎㅎㅎㅎ
└ 재욱이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이건 좀 아니지!!!!!
반면 신재욱은 침착했다.
냉정한 눈으로 상대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승리할 방법에 대해서.
‘우리만 수비가 약한 게 아니야. 네덜란드도 빌드업 과정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중원에서 한 번만 압박을 벗어나면 바로 골로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대 팀인 네덜란드에 대한 약점 파악은 끝났다.
사전에 분석했던 정보와 실제로 맞붙으며 얻은 정보를 합쳐서 나온 결과였다.
네덜란드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었고, 몸싸움을 거칠게 걸거나 강하게 압박했을 때마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재욱은 그 부분을 노릴 생각이었다.
물론 혼자 공략할 수 있는 약점은 아니었다.
동료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변의 동료들에게 강하게 주문했다.
“다들 잘 들어요! 얘네들 압박에 약해요. 근데 되게 강하게 압박해야 흔들릴 거예요! 그러니 지금보다 더 거칠게 압박하세요! 그리고 공격할 땐 더 빠르게 패스해요! 연습 때 원터치 패스로 연계훈련 했었잖아요? 왜 실전에선 안 써요? 자신감 있게 해요! 자신감 있게!”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들도 이기고 싶었기에 팀의 에이스인 신재욱의 말을 새겨들었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 오오! 한국! 좋은 압박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투지 있게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 네덜란드 선수들이 다급하게 패스를 돌리지만, 조금 전보다 패스 정확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 오오! 기석용과 구자천이 좋은 협동 수비로 스네이더르의 공을 뺏어냈습니다! 이러면 바로 역습을 가야죠!
― 기석용이 전방으로 패스합니다!
경기의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