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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 내에서.
신재욱의 입지는 매우 강력했다.
주전선수인 것은 물론이고, 팀의 에이스로 인정받는 위치였다.
반면에 이택현의 입지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잘하는 선수였고,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이기는 했지만.
주전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만약 그의 팀이 분데스리가의 중위권 정도의 팀이었더라면, 충분히 주전으로 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팀은 분데스리가 최강의 팀이자, 세계 최강의 팀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이다.
‘어려울 수밖에. 택현이는 아르연 로번, 프랑크 리베리 같은 선수들이랑 경쟁해야 하니까.’
사실 이택현이 아니라 그 어떤 윙어가 와도 바이에른 뮌헨에선 주전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르연 로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월드클래스 윙어였지만, 바이에른 뮌헨 내에선 토마스 뮐러, 이택현과 같은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르연 로번과 이택현은 분명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이들에게서 흐르는 기류는 전혀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둘 사이에선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뭔가 살벌한데……?”
“쟤네 웃으면서 대화하는데, 이상하게 싸울 것 같단 말이지? 택현이랑 로번이랑 사이가 안 좋은가?”
“둘이 뭔가 경쟁심이 있나 봐. 재욱이랑 대화할 때랑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어.”
“나만 느낀 게 아니었구나?”
근처에 있던 한국대표팀 선수들도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 순간 신재욱은 두 남자를 떨어뜨려 놨다.
둘이 대화를 더 해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라면 모를까, 적어도 이 자리에선 아니야.’
마침 시간도 없었다.
관계자들이 다가와 경기장에 들어갈 시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경기장에 입장할 때였다.
“좋은 경기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신재욱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은 궁금한 게 많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인사 좀 하고, 좋은 경기 하자는 얘기했어요.”
그걸로 답변은 끝이었다.
신재욱도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상대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신재욱조차도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때 그랬던 것처럼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이길 거야.’
신재욱은 이길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결승 맛은 봐야지.’
물론 네덜란드는 어려운 상대였다.
모든 걸 쏟아부어도 질 수도 있는 강팀이다.
게다가 동료들의 절반은 잔뜩 긴장한 상태이지 않은가.
하지만 신재욱에겐 한 가지 확신이 있었다.
‘내가 해야 할 건 골이야. 그것만 잘하자.’
네덜란드를 상대로 골을 넣을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 선수들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4강에 오른 대한민국 선수들과 네덜란드 선수들이 당당하게 걸어들어오고 있습니다!
― 오늘 두 팀 중 한 팀은 결승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브라질을 이긴 독일과 우승컵을 놓고 싸울 수 있습니다!
― 이미 기적과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대한민국대표팀이지만, 가능하면 더 높게 날아올랐으면 좋겠네요! 대한민국이 4강을 넘어 결승전까지! 더 나아가 우승까지도 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월드컵 4강전.
모두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던 무대.
그곳에 선 신재욱은 주심의 경기 시작 신호를 듣자마자 천천히 공을 돌렸다.
곧바로 많이 뛰기 시작했다.
최전방에서 공을 주고받고, 밑으로 내려와서 동료들의 패스를 받아줬다.
‘우선 안정적으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어.’
신재욱은 동료들의 절반 이상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중원으로 내려와서 플레이하는 것이다.
― 대한민국이 천천히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아직 몸이 무거워 보이는데요?
― 선수들이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경기를 보시면 신재욱 선수가 밑으로 많이 내려와서 플레이하고 있는데, 아마도 동료들이 긴장한 걸 알고 도와주고 있는 것 같죠?
―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신재욱 선수는 눈치가 굉장히 빠른 선수거든요? 축구 지능도 굉장히 높고요. 분명히 동료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을 겁니다.
아직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진 않고 있었지만.
신재욱의 움직임은 인상적이었다.
너무나도 안정적인 볼 터치를 보여주며 패스를 받았고,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패스를 뿌려줬다.
더군다나 이 모든 플레이를 강한 압박을 받는 상황 속에서 해내고 있었다.
― 네덜란드 선수들이 대놓고 신재욱 선수를 견제하네요! 압박이 상당히 강합니다!
― 그런데 놀라운 건 네덜란드의 압박이 굉장히 강력한데도, 신재욱 선수가 전혀 흔들림 없이 탈압박을 해내고 있다는 겁니다!
― 지난 아르헨티나전에서도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기어코 탈압박을 해냈던 신재욱 선수죠. 최근엔 한국 팬들 사이에서 ‘탈압박 도사’라고도 불린다네요.
― 하하! 탈압박이 되는 신재욱 선수가 중원에서 볼 키핑을 해주니까 남다른 안정감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퍼억!
등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
그러나 신재욱은 흔들리지 않고 버텨냈다.
다리로는 쉬지 않고 공을 컨트롤했다. 그러면서 동료들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좋은 침투야.’
신재욱은 다리를 빠르게 휘둘렀다.
압박을 이겨내면서 측면으로 달리는 이택현을 보며 롱패스를 뿌려낸 것이다.
퍼엉!
패스를 시도하는 신재욱에게선 자신감이 드러났다.
훈련 때도 거의 100%에 가까운 롱패스 성공률을 보였던 그였다.
실전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신재욱은 실전에서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는 선수였다.
― 신재욱 선수, 롱패스를 선택합니다! 이택현 선수! 받아낼 수 있을까요? 패스가 조금 강해 보이긴 하는데요?
해설들의 말처럼 패스의 강도는 다소 강해 보였다.
하지만 이건 신재욱이 의도한 것이었다.
남다른 스피드를 지닌 이택현에게 맞춘 롱패스였으니까.
이 정도로 강하게 보내야만 네덜란드의 수비수가 쫓아가지 못할 테니까.
‘이택현이면 충분히 받을 거야.’
신재욱은 믿었다.
이택현이 공을 받을 것이라고.
만약 실수로 받지 못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못 받으면 다음에 또 주면 되고.’
지금과 같은 기회를 또다시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휘익!
이택현이 발을 뻗었다.
그는 긴 다리로 날아가는 공을 낚아채듯 잡아냈다.
대단히 수준 높은 트래핑이었다.
‘그래, 받을 줄 알았어.’
신재욱은 이택현의 플레이를 가만히 선 채로 지켜보지 않았다.
패스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전방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 신재욱 선수가 전방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수비수들의 신경을 분산시켜주는 움직임이죠! 이러면 이택현 선수는 조금 더 치고 들어가도 괜찮겠는데요?! 여차하면 크로스를 올려도 됩니다! 신재욱 선수는 공중볼에도 굉장히 강한 선수니까요!
이택현은 평소보다 더 집중하고 있었다.
더 잘하기 위해서 주변의 시야를 확실하게 확인했다.
동료들의 움직임.
그리고 상대 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재욱이가 수비수들을 끌고 들어가 주고 있어. 이러면 수비수 한 명이 나한테 붙어도 내가 유리해.’
이택현은 일대일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 상대가 네덜란드의 중앙수비수라고 할지라도.
툭! 투욱!
측면으로 파고든 이택현은 방향을 바꾸며 안쪽으로 드리블했다.
네덜란드 수비진의 반응은 빨랐다.
중앙수비수인 마르틴스 인디가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튀어나왔다.
“내가 막을게!”
그때였다.
이택현이 다리를 휘둘렀다.
퍼엉!
강하게 휘어지는 크로스였다.
그 순간 페널티박스 중앙으로 달려드는 신재욱에게 네덜란드의 수비수 2명이 달라붙었다.
그런데 크로스의 높이가 너무 높았다.
점프한 신재욱의 머리에 닿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이택현의 얼굴엔 만족감이 드러났다.
“흐흐! 재욱이한테 보내는 크로스가 아니거든!”
신재욱보다 더 뒤에 선 동료에게 보낸 패스였기 때문이었다.
― 구자천 선수! 머리에 맞춥니다!
그러나 곧 이택현의 얼굴엔 아쉬움이 드러났다.
구자천의 머리에 맞은 공이 골대를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 아……! 이게 안 들어가나요?! 굉장히 아쉽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는데 말이죠!
― 구자천 선수……! 조금 더 정확한 헤더를 해줬어야 합니다. 방금 헤더는 너무 아쉽네요! 완전히 노마크 상황에서의 헤더이지 않았습니까!
한국대표팀 선수들 모두 탄식했다.
그만큼 아쉬운 장면이었다.
구자천이 조금 더 침착했으면 충분히 골로 연결됐을 장면이었다.
슈팅하는 순간 네덜란드 선수들은 한 골 먹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쉽네. 이건 넣어줬어야 했는데.”
신재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중요한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그러나 구자천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고, 운 안 좋게 지금 나와버린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그는 구자천을 격려했다.
“자천이 형! 아까웠어요! 근데 다음에도 실수하면 평생 놀립니다?”
그러자 이택현도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크로스는 내가 올렸는데, 왜 네가 생색을 내? 자천이 형! 근데 저도 평생 놀릴 거예요! 대신 오늘 한 골 넣으시면 안 놀릴게요!”
“내가 수비수들 끌고 갔잖아. 내 지분도 꽤 커.”
팀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두 명이 장난스레 떠들자, 차갑게 굳었던 팀의 분위기도 빠르게 녹아내렸다.
구자천 역시 굳었던 표정이 사라지고 미소를 되찾았다.
“그래! 내가 오늘 어떻게든 한 골은 넣을게!”
그 모습을 본 선수들은 전부 웃음을 터트렸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지만 한국 선수들의 긴장감도 풀렸다.
집중력도 더욱 살아났다.
― 우리 선수들의 긴장감이 조금 풀린 것 같죠?
― 그렇네요. 패스를 주고받는 움직임이 조금 전보다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러나 집중력이 높아진 건 네덜란드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위험한 상황을 내줬다는 것에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고, 더욱 신중하게 플레이했다.
― 네덜란드가 점점 볼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지난 경기들과는 다르게 압박을 강하게 하고 있지는 않네요. 아무래도 체력에 부담이 있기 때문이겠죠?
―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겁니다. 너무 바쁜 일정을 소화해왔기 때문에 선수들이 많이 지쳐있을 거거든요.
네덜란드 선수들이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반전 10분이 넘어간 뒤로부터는 중원 싸움에서도 네덜란드가 우위를 점했다.
신재욱이 많이 뛰면서 중원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네덜란드의 볼 점유율은 점점 더 높아졌다.
자연스레 위기도 찾아왔다.
툭! 투욱!
네덜란드의 공격형 미드필더 스네이더르가 겨우 두 번의 터치로 기석용의 압박을 벗어났다.
이어서 그는 앞으로 달려갈 것처럼 페인팅을 넣은 뒤, 측면에 빠져있던 아르연 로번에게 공을 넘겼다.
― 아르연 로번이 공을 받습니다!
아르연 로번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왼발로 공을 툭툭 치며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나 조금 먼 곳에서 그 모습을 보던 신재욱은 눈치챘다.
아르연 로번이 곧 엄청난 속도로 움직일 것이라는 걸.
그래서 신재욱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위험해요! 왼발! 왼발 슈팅을 조심해요! 절대 왼발 슈팅각 주지 마요!”
아르연 로번의 왼발을 조심하라고.
절대 왼발 슈팅각을 내주면 안 된다고.
한국의 수비수들은 신재욱의 말에 반응했다.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아르연 로번의 왼발에 신경을 쏟았다.
그러나 아르연 로번이 누구던가.
비슷한 패턴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 패턴으로 세계적인 수비수들을 자주 무너뜨리는 선수이지 않은가.
수비수가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무기를 지닌 월드클래스 윙어.
그 선수가 지금, 한국의 수비수를 앞에 둔 상황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 오른쪽 측면에 있던 아르연 로번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