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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전부 TV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독일.
그리고 브라질.
세계적인 팀들이 만난 것이기에 매우 흥미로운 경기였다.
또한, 어쩌면 결승전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는 상대들의 경기이지 않은가.
‘이 경기는 봐야지.’
신재욱은 이 경기의 결과를 기억하고 있었다.
‘브라질의 충격적인 패배였지.’
워낙 충격적인 경기였기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이었다.
당연히 치열할 것이리라 생각했던 거물급 팀들의 대결이었는데.
막상 뚜껑이 열리자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삼바축구라고 불리며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라고 평가받던 브라질은 전반전에만 5골을 허용했다.
후반전에도 2골을 허용하며 7 대 1이라는 충격적인 스코어로 독일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브라질을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꺾어낸 독일은 그 기세를 이어가며 2014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신재욱은 생각했다.
환생 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이미 내가 알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적도 많았잖아.’
당장 한국이 4강에 올라간 것부터가 환생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미 미래는 바뀌고 있었고, 이번에도 바뀌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신재욱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브라질도 수비가 불안했을 뿐이지, 화력은 강했어.’
브라질의 공격력이 굉장히 강력했던 것을.
‘독일의 골키퍼가 마누엘 노이어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어.’
당시 브라질은 엄청난 화력으로 총 18개의 슈팅을 쏟아냈었다.
유효슈팅도 8개로 꽤 많았다.
하지만 독일의 골대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인 마누엘 노이어가 지키고 있었다.
그는 8개의 유효슈팅 중 7개를 막아내는 괴물 같은 선방쇼를 보여줬었다.
‘오늘은 어떻게 되려나. 마누엘 노이어의 컨디션이 좋으려나?’
신재욱은 바이에른 뮌헨 팀 동료인 마누엘 노이어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라는 말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 친구랑 뛰면 11명이 아니라 12명이 같이 뛰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
골키퍼의 필수능력인 선방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발기술까지 좋아서 공격 시 라인을 올리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더군다나 정확도 높은 패스 능력까지 지녀서 빌드업에도 큰 관여를 하고 종종 어시스트까지 해준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골키퍼였다.
‘잠깐 생각이 많았었네.’
신재욱은 생각을 멈추고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브라질과 독일의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 경기 시작됩니다! 독일과 브라질! 이 두 팀 중 월드컵 결승에 오를 팀이 오늘 정해지게 됩니다!
― 막강한 팀들이 만났네요. 축구팬이라면 기다렸던 경기죠?
― 그렇죠. 분명 수준 높은 경기가 나올 테니까요!
많은 기대감 속에서 시작된 독일과 브라질의 경기 전반전은 환생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양 팀 모두 공격에 큰 힘을 싣는 운영을 했고, 실제로 여러 개의 슈팅을 시도했다.
그 결과, 이득을 본 팀은 독일이었다.
브라질의 줄리우 세자르 골키퍼는 상대의 슈팅을 막아내지 못했고,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는 놀라운 선방들을 보여주며 팀을 구해냈다.
― 독일이 전반전부터 5 대 0으로 앞서갑니다! 전 세계가 놀랄만한 스코어가 나왔습니다! 다른 팀도 아니고 브라질이 이렇게나 처참하게 당하다니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브라질은 유력한 우승 후보라고 불리던 팀입니다! 팀 전력도 얼마나 강력합니까! 전부 세계적인 무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지 않습니까? 물론 독일대표팀의 전력도 굉장히 강력하지만, 그래도 브라질이 이 정도까지 당하는 건…….
TV를 뚫고 나오는 해설들의 목소리에서 당혹감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경기를 보던 한국대표팀 선수과 코치들, 감독도 경악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아직 전반전인데 브라질이 5 대 0으로 털리고 있는데요……?”
“와…… 허허……! 이건 전혀 예상 못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독일이 정말 강하구나…….”
“독일이 우승하겠는데요? 화력이 너무 세요. 게다가 중원도 말이 안 되게 단단하고요.”
“저 골키퍼 저거, 노이어 맞지? 쟤는 뭐 저렇게 잘 막냐? 거참, 막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슈팅도 막아버리네.”
“슈바인슈타이거랑 토마스 뮐러, 사미 케디라는 체력이 무한인가 봐.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데?”
“필립 람도 마찬가지야. 공수를 오가는 플레이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호흡이 멀쩡해 보여.”
“메수트 외질은 확실히 공을 예쁘게 찬다. 특히 볼 컨트롤할 때가 예술이야.”
“클로제는 옛날부터 봐왔던 선수 같은데 아직도 국가대표로 뛰네? 도대체 몸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 거야?”
“독일은 수비도 장난이 아니다. 웬만해선 뚫리질 않겠어.”
경악했던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이제는 감탄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프로선수였지만, 독일대표팀 선수들의 실력을 보니 높은 벽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홍정태 감독이 입을 열었다.
“재욱아, 택현아. 쟤네 대부분 너희 친구들 맞지? 바이에른 뮌헨! 같은 팀이잖아. 너희 친구들 왜 저렇게 잘해?”
그 순간 모든 시선이 신재욱과 이택현에게로 쏟아졌다.
독일대표팀 선수들과 관련된 썰을 풀어달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 * *
신재욱은 이택현과 함께 거짓말을 했다.
“잘하긴 하는데, 큰 차이는 없어요.”
“아르헨티나전 때처럼 필사적으로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정도예요.”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팀의 사기를 꺾지 않기 위한.
‘솔직히 말해서 좋을 게 없어.’
신재욱은 이택현과 눈을 마주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알고 있었다.
현재 독일대표팀과 한국대표팀의 수준 차이는 굉장히 심하다는 것을.
그래도 다행이었다.
한국대표팀 선수들의 사기가 높아졌으니까.
“그래? TV로 볼 때는 엄청 차이 나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 정도는 아닌가 보네?”
“다들 재욱이랑 택현이 말 들었지? 만약 우리가 결승에 올라가서 쟤네랑 만나면 쫄지 말고 자신 있게 하자. 충분히 이길 수 있다잖아.”
“오우! 갑자기 자신감이 샘솟는데?!”
“일단 내일 네덜란드부터 잡아봅시다!”
“솔직히 네덜란드가 독일보다는 약한 느낌이잖아? 죽어라 뛰어서 네덜란드 잡고, 독일이랑 영혼의 맞다이 떠 보자!”
독일과 브라질의 경기는 환생 전처럼 독일이 압도하는 그림이었다.
환생 전에 그랬던 것처럼, 후반전에 2골을 더 넣은 독일은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하며 추가 골을 노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환생 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7 대 0이 나오네? 환생 전에는 7 대 1이었는데…….’
환생 전과 같았다면 후반 90분에 브라질의 미드필더 오스카의 골이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 펼쳐진 경기에서 브라질의 골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독일과 브라질의 최종 스코어는 7 대 0이었다.
‘어려운 상대야.’
신재욱의 눈엔 보였다.
독일대표팀이 얼마나 잘 짜인 전술로 움직이고 있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만약 결승에서 만나게 되면 한국대표팀이 얼마나 힘든 경기를 치를지.
휘익!
신재욱이 고개를 저었다.
복잡해지려는 생각들을 빠르게 날려버렸다.
‘우선 당장 앞에 있는 경기부터 생각하자.’
숙소를 향해 걸으며, 신재욱은 내일 맞붙을 상대를 떠올렸다.
‘네덜란드도 되게 강한 팀이잖아.’
다음 날.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아침부터 경기장으로 향했다.
잔디 위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뛰어다니며 경기장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럽에서 뛰며 여러 잔디에 적응이 되어있는 유럽파 선수들은 평온했지만.
한국에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은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부터 느낀 건데, 이곳 잔디는 한국보다 좀 촉촉한 것 같아.”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촉촉 보다는 축축이 맞는 것 같아. 뭔가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불편하달까?”
“선배님들도 그러셨구나. 저도 한국의 잔디랑 너무 달라서 뛸 때마다 불편했었어요.”
하지만 이들은 프로선수들답게 현재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
잔디를 계속해서 밟아보며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했다.
이후, 한국대표팀은 손발을 맞춰보는 시간을 가진 뒤 라커룸으로 향했다.
어느새 경기가 시작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다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 많았다.”
라커룸의 중앙에 선 홍정태 감독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선수들을 향해 연설을 시작했다.
“우린 16강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평가받던 팀이다. 그런 우리가 8강에 오르고, 이제는 4강까지 올라왔다. 우리는 이미 기적을 만들고 있는 팀이야. 전혀 잃을 게 없지. 그러니 무서울 것도 없다! 다들 싸우러 가자! 겁내지 말고 네덜란드와 시원하게 붙어보자!”
신재욱은 홍정태 감독을 바라봤다.
‘많이 떨리시나 보네.’
그는 애써 감추려고 했지만, 손을 떨고 있었다.
선수들도 다를 건 없었다.
오히려 더 심했다.
이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월드컵 4강이라는 큰 무대에 서게 된다는 사실에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손과 발을 떠는 건 물론이고, 호흡도 쉽지 않은지 거친 숨소리가 라커룸을 가득 메웠다.
‘쉽게 풀릴 긴장이 아니야. 이 정도면 전반 20분까지는 얼어있겠는데?’
신재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좋은 상황이었다.
상대적으로 큰 무대에 섰던 경험이 많은 네덜란드 선수들은 그만큼 긴장을 덜 할 게 분명했다.
가뜩이나 실력에서도 차이가 날 텐데,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긴장감 때문에 지닌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택현, 기석용, 손훈민, 이청영, 구자천과 같은 유럽파 선수들의 상태는 괜찮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까지 6명을 빼고 죄다 긴장하고 있는 상황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재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기장에 들어갈 시간이 매우 가깝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기러 가봅시다!”
라커룸이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치며, 신재욱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네덜란드와의 4강전을 치르기 위해서.
‘정말 4강까지 왔구나.’
신재욱은 복도에 선 채로 경기장 입구를 바라봤다.
조금 뒤 저곳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초록색 잔디와 수많은 관중을 볼 수 있다.
동시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느낌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재밌겠어.’
신재욱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
그곳엔 상대 팀 선수들이 서 있었다.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아르연 로번!”
바이에른 뮌헨 동료이자, 월드클래스 윙어인 아르연 로번이었다.
“오! 재욱, 반가워! 옆에 택현도 있네? 여기서 보니까 되게 반갑다!”
아르연 로번은 경기를 앞두고 있었음에도 신재욱, 이택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만큼 편한 사이였다.
다만 소속팀에서도 경쟁 관계인 아르연 로번과 이택현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고 있었다.
‘맞네. 이 두 명은 최근까지 주전 경쟁을 했던 사이였지.’
신재욱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굉장히 재밌는 경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