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 * *
연장전 전반 13분.
전방으로 달리던 신재욱의 시야엔 보였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슬라이딩 태클을 피해내고, 파블로 사발레타마저도 뚫어낸 이택현의 모습이.
‘대단한데?’
신재욱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놀라운 장면이었다.
이택현의 실력은 원래 잘 알고 있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로 돌파할 수 있는 선수다.
그러나 지금은 정규시간이 아니라 연장전이지 않은가.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저렇게 용기 있는 돌파 시도를 하는 건 매우 어렵다.
‘더 성장했구나.’
신재욱은 속도를 높였다.
왠지 패스가 올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근거 없는 예상은 아니었다.
이미 여러 번 경험했었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택현은 5번 중 2번은 패스를 준다.
나머지 3번은 직접 슈팅을 시도하고.
‘어떻게 할 거냐.’
신재욱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이택현이 어떤 플레이를 선택하든 맞춰줄 수 있다.
그때였다.
이택현은 패스를 선택했다.
그는 신재욱에게 공을 넘겨준 뒤 전방으로 뛰어나갔다.
그 순간 아르헨티나의 중앙수비수 한 명도 이택현의 뒤를 쫓았다.
자연스레 신재욱의 앞엔 한 명의 수비수밖에 없었다. 꽤 많은 공간도 보였다.
‘이 정도면 원하는 거 다 할 수 있겠네.’
신재욱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장 쉽게 골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건 때려야지.’
신재욱은 슈팅을 결심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현재 그의 슈팅 능력치는 93이었으니까.
또한, 슈팅 훈련에 꾸준히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더 높아진 정확도를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휘이익!
다리를 휘둘렀고 발의 안쪽으로 공을 강하게 감아 찼다.
발등으로 때릴 때보다 슈팅의 파워는 약하지만, 정확도가 높아서 원하는 곳으로 때리기엔 더 좋은 방법이었다.
‘구석으로.’
다행히 슈팅할 때의 느낌은 좋았다. 날아가는 공의 궤적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신재욱은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앞으로 뛰어나갔다.
‘어차피 골키퍼가 공을 잡진 못할 거야. 잘 막으면 튕겨내는 거겠지.’
슈팅의 궤적은 완벽했다.
오른쪽 구석으로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갔다.
골키퍼가 막는 게 거의 불가능한 슈팅이었다.
그러나 신재욱은 방심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골키퍼의 슈퍼세이브 상황을 그려내며 세컨볼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철렁!
날아간 공이 아르헨티나의 골망을 흔들었다.
세르히오 로메로 골키퍼는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 우와아아아! 고오오오오올! 신재욱 선수가 멋진 중거리 슈팅으로 또다시 골을 기록했습니다! 놀라운 경기력입니다! 지금이 연장전이 맞는 걸까요?
― 방금은 아르헨티나의 수비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죠! 이택현 선수와 신재욱 선수를 이렇게 놓치면 골을 허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6 대 4로 앞서갑니다! 이러면 4강이 매우 유력해졌죠?
― 놀라운 경기력입니다! 신재욱 선수와 이택현 선수는 연장전에도 이렇게나 좋은 호흡을 보여주네요! 정말……놀랍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골을 기록한 직후.
신재욱은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냈다.
‘아직은 아니야.’
감정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동료들이 더 집중하게 도와줘야 했다.
“아직 연장전 전반입니다! 지금처럼 계속 집중해주세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신재욱의 말을 들었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지는 못했다.
6 대 4라는 스코어.
4강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으흐흐! 다들 재욱이 말 들었지? 계속 집중하자!”
“그래, 아직 연장 후반 남았잖아. 쏟아붓자!”
“으어어어! 다 왔다! 아르헨티나 잡는다!”
“다들 힘내! 4강이 눈앞까지 왔다!”
다만 기뻐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경기가 빠르게 재개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경기 재개와 동시에 라인을 깊숙하게 내렸다.
완전히 수비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 한국이 전술을 바꿨네요! 이제는 지키는 운영을 해서 실점을 최소화하겠다는 거겠죠?
― 그렇습니다. 영리한 선택입니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이고 스코어에서도 2점이나 앞서고 있으니까 차라리 지금처럼 수비에만 집중하는 게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움직임은 굉장히 급해졌다.
체력이 떨어졌음에도 필사적으로 공격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연장전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의 시간은 매우 짧았다.
― 연장전 전반이 끝났습니다! 선수들은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최대한 쉬어주며 회복을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 사실상 회복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굉장히 힘들 텐데 부디 힘을 내서 연장전 후반에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해설들의 말처럼 쉬는 시간은 짧았다.
양 팀 선수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화이팅! 가보자!”
“으어어어엇! 다 쏟아내서 이겨버리자! 4강까지 이제 다 왔어!”
“다들 괜찮지? 그냥 오늘 여기서 죽는다는 마인드로 뛰어보자!”
“재욱이 뛰는 거 봤지? 연장 후반에서는 최소한 쟤보단 많이 뛰자.”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힘을 냈다.
이들은 믿고 있었다.
동료들을 위해서 조금씩 더 뛰다 보면 4강행이 현실이 될 거라고.
반면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바쁘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이길 수 있어! 쟤들이 연장전 전반에 2골 넣었으니, 우리도 연장 후반전에 똑같이 해주면 돼!”
“가자! 아르헨티나는 강하다!”
“패스 실수는 최대한 줄이고, 너무 끝까지 만들려고 하지 마! 기회가 왔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슈팅해!”
“다들 지친 건 알지만, 그래도 끝까지 뛰어줘야 이길 수 있다는 거 알지? 일단 1점부터 따라가 보자!”
이처럼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연장전에 2점 차로 밀리고 있었음에도 이길 방법만을 생각했다.
이들의 의지는 대단했다.
언제 지쳐있었냐는 듯, 연장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날카로운 공격으로 한국을 몰아쳤다.
― 위험합니다! 우리 선수들! 흔들려선 안 됩니다! 아! 좋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절대 마크를 놓치면 안 되죠!
― 아르헨티나의 움직임이 달라졌습니다! 뒤가 없이 공격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네요! 라인도 높게 올린 채로 완전히 골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는 뒤가 없죠. 오로지 골을 생각할 때가 맞습니다. 반대로 우리 선수들은 잘 막아줘야 하고요! 절대 실점해선 안 됩니다! 만약 여기서 골을 허용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 있거든요?
지쳐버린 한국의 수비수들은 크게 흔들렸다.
미드필더들도 마찬가지였다. 숨을 헐떡이며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했다.
신재욱이 많이 뛰며 적극적으로 수비 가담을 하고 있었지만,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공을 뺏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르헨티나는 지금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빈틈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태클을 시도하겠지만, 빈틈이 없었다.
‘장난 아닌데?’
신재욱의 얼굴이 굳었다.
이런 분위기는 위험했다. 보통 실점은 이런 상황에서 많이 나오곤 하니까.
‘끊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반대편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왔다.
한국의 풀백이 뚫려버린 것이다.
‘막아야 해!’
신재욱이 움직였다.
공의 궤적과 도착 위치를 빠르게 예측하며 달렸다.
그러나 현재 있던 위치와 너무 멀었다.
‘내가 도착하는 것보다 상대가 헤딩하는 게 더 빨라.’
게다가 공이 떨어지는 곳에서 몸을 띄운 선수는 곤살로 이과인이었다.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인 그는 여러모로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당연하게도 헤더 능력도 대단한 선수였다.
지금도 그랬다.
곤살로 이과인은 한국의 중앙수비수 홍정오와의 공중볼 경합에서 이겨냈다.
높게 점프한 그는 머리로 공의 방향을 바꿨다.
터엉!
공이 머리에 제대로 맞았을 때의 타격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곤살로 이과인은 골을 확신하며 골대 안으로 달려갔다.
― 아…… 곤살로 이과인의 골입니다……! 홍정오 선수가 곤살로 이과인 선수를 막아줬어야 했는데요……!
― 막기 어려운 선수죠. 유럽의 수비수들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선수가 곤살로 이과인이니까요. 더군다나 지금처럼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선 더 힘들 수밖에 없고요.
― 아쉽습니다. 이러면 아르헨티나의 기세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스코어는 6 대 5가 됐다.
실점한 이후로도 한국은 위태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헨티나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신재욱의 태클을 철저히 경계하며 패스를 주고받았다.
이제는 반코트 게임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과감하게 슈팅을 때리고 크로스를 뻥뻥 올려댔다.
때문에, 한국의 팬들은 연장전 후반전이 진행되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 아오;;;;; ㅅㅂ 떨려서 못 보겠네! 이거 동점 돼서 승부차기 가면 100% 질 것 같은데?;;;;; 한국 애들 좀 봐봐. 뛰지도 못하고 다 지쳐서 공도 제대로 못 걷어내잖아.
└ 하……ㅜㅠㅠ 경기 너무 불안하다. 이제 5분 정도 남았는데 버틸 수 있을까……?
└ 나만 곧 동점 골 먹힐 것 같냐?ㅋ 아니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 아오!!!! 수비수들 뭐하냐 진짜!!! 먹은 치킨 체할 것 같다고!!!!!
└ 쟤네 ㅈㄴ 영리하네ㅠㅠㅠㅠ 신재욱이 태클 잘하니까 없는 곳으로만 공격하잖아. 이건 신재욱이 홍길동이 되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ㅠㅠㅠㅠ
└ 쫌만 더 버티면 되는데 진짜…… 후…….
아르헨티나의 슈팅 폭격이 이어졌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은 계속해서 한국의 페널티박스 안에 자리 잡고 세컨볼을 노렸다.
그때였다.
신재욱이 움직였다.
그는 이제 아예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와서 수비하기 시작했다.
지금만큼은 수비 가담이 아니라, 그냥 수비수가 될 생각이었다.
‘내가 막는다.’
신재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특성의 효과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계속 움직였다.
어떻게든 추가 실점 없이 버텨야 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승부차기는 절대 안 돼!’
동료들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다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지쳐있었다.
슈팅은커녕 움직일 힘조차도 없는 상태.
당연하게도 승부차기에 가면 패배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신재욱은 이를 악물었다.
몸에 힘은 전부 빠져있었지만, 그래도 몸을 던져가며 상대의 슈팅을 막아냈다.
― 신재욱 선수가 몸으로 슈팅을 막아냈습니다! 처절한 수비입니다! 신재욱 선수는 다리가 전부 풀려버렸는데도 팀을 위해서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앞으로 대표팀을 이끌어갈 선수입니다!
효과는 있었다.
신재욱은 슈팅의 달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슈팅엔 도가 텄고, 뛰어난 위치선정을 지닌 선수.
상대의 슈팅 궤적을 무서울 정도로 정확히 예측하며 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양 팀 선수들 모두 무아지경이었다.
한쪽은 수비에만, 한쪽은 공격에만 치중했다.
그때였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공을 잡았다.
그 순간 신재욱은 시선을 살짝 움직여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이번만 막아내면 돼.’
지금의 공격만 막아낸다면 4강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