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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우리 선수들이 모든 걸 쏟아붓고 있습니다! 체력이 다 떨어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있습니다!
― 지금 같은 시간대면 선수들은 서 있는 것조차 힘들거든요? 그래도……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 바랍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공격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라인을 올린 채로 공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골을 넣기보단 시간을 끌려는 의도.
한국대표팀 선수들도 그 의도를 눈치챘지만,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공간을 내주면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아르헨티나의 화력은 그만큼 강력했으니까.
― 아르헨티나 선수들도 정말……필사적으로 뛰고 있네요. 이 선수들, 4강을 향한 의지가 대단합니다.
― 시간이 별로 없네요……하지만 끝까지 봐야 합니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90분이 되었을 때.
추가시간은 4분이 주어졌다.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동료들을 끊임없이 격려하고 희망적인 말을 내뱉는 신재욱과 이택현 덕분이었다.
그러나 한국을 응원하던 팬들은 불안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 진 것 같은데……?
└ 아……한국의 기적은 8강에서 끝나는구나…….
└ 결국엔 아르헨티나한테 발목이 잡히는 건가ㅠㅠ
└ 근데 어쩔 수 없긴 해……우리 수비 실력 알고 있었잖아? 얘네로 리오넬 메시랑 곤살로 이과인을 어떻게 막아…….
└ 90분 됐네……하……이젠 진짜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되겠네…….
└ ㅠㅠㅠ진짜 수비ㅠㅠㅠ 개빡친다ㅠㅠㅠㅠ
└ 수비한텐 애초에 기대하면 안 돼. 근데 오늘은 신재욱이랑 이택현, 기석용 말고는 다 못했어.
└ 아르헨티나랑 수준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그나마 희망적인 건 신재욱과 이택현은 몇 년 뒤면 더 무서워질 것 같다는 거야. 잘하면 4년 뒤의 월드컵에선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어.
└ 아쉽지만 8강도 잘한 거긴 해ㅠㅠㅠ
한국팬들은 불안해하는 것을 넘어서 체념했다.
시간은 없는데, 경기는 여전히 아르헨티나가 이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추가시간 2분이 되었을 때.
여전히 활발하게 뛰어다니던 신재욱이 상대의 패스를 끊어냈다.
주특기인 슬라이딩 태클을 이용한 컷팅이었다.
― 신재욱 선수가 페르난도 가고 선수에게서 공을 뺏어냈습니다! 아! 이건 후반전에 교체되어 들어온 페르난도 가고 선수의 치명적인 실수이기도 하죠!
조금은 느린 타이밍에 패스를 시도한 페르난도 가고.
그 틈을 신재욱은 놓치지 않았다.
촤악!
신재욱은 손바닥으로 잔디가 깔린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가능한 한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최대 속도로 역습을 펼쳐야 했다.
그래야 역습이 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번 기회는 꼭 살려야 해.’
한국의 해설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오오?! 이러면 역습 기회입니다!
― 신재욱 선수! 재빨리 몸을 일으킵니다! 빠르게 전진해야 합니다! 우리 선수들! 힘들겠지만, 그래도 힘을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대표팀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지쳐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기 내내 너무 많이 뛰었으니까.
더구나 신재욱의 빠른 역습 템포에 따라올 수 있는 선수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재욱아! 일단 넘겨줘!”
이택현의 존재였다.
터엉!
신재욱은 이택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패스를 뿌렸다.
워낙 시야가 넓은 그였기에 이미 이택현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툭!
이택현도 지쳐있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선 상태가 나았다.
타고난 체력이 좋은 데다가 체력훈련까지 치열하게 해온 결과였다.
― 이택현 선수가 공을 몰고 달립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신재욱 선수도 달립니다! 바이에른 뮌헨 듀오가 사실상 마지막 공격을 펼치고 있습니다!
― 이택현 선수의 체력은 대단하네요! 경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간대임에도 너무나도 빠른 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달리는 이택현에게 아르헨티나의 수비형 미드필더 루카스 비글리아가 덤벼들었다.
지금은 아르헨티나에게도 워낙 급한 상황이었기에, 루카스 비글리아는 반칙으로 이택현의 전진을 막아내려고 했다.
옷을 붙잡은 것이다.
웬만한 선수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반칙.
그런데 이택현은 달랐다.
“으아아아아! 놔 인마!”
강한 힘과 굉장한 피지컬을 지닌 이택현은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옷을 잡는 루카스 비글리아를 강하게 뿌리쳐냈다.
그 과정에서 이택현의 유니폼 상의가 찢어졌다.
찌지직!
이택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로지 골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뿐이었다.
‘집중! 계속 집중하자! 내가 뺏기지만 않으면 돼. 그리고 꼭 혼자 할 필요도 없어. 재욱이라면 분명 근처에 있을 거야!’
이택현은 땅을 강하게 박찼다.
옷이 잡혀서 줄어든 속도를 다시 높였다.
타앗! 타다닷!
빠르게 역습을 나온 상황.
그럼에도 아르헨티나의 수비수는 4명이나 있었다.
애초에 아르헨티나의 수비수들은 라인을 올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재욱이랑 둘이 다 해야 하는구나?’
이택현과 신재욱 둘이서 수비수 4명을 이겨야 하는 상황.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택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걱정도 없었다.
‘그랬던 적 많잖아.’
비슷한 경험이 많았으니까.
‘다른 동료라면 모를까, 신재욱이랑 같이 가는 건데 뭘.’
그에게 있어서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동료는 신재욱이었으니까.
‘내가 조금 실수해도 저 괴물이 다 해줄 거야.’
이택현은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2명을 앞에 둔 채로 자신감 있게 움직였다.
뚫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물론 빈틈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상대는 수준 낮은 수비수들이 아니다.
빈틈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택현은 스텝오버를 한 뒤, 오른쪽 대각선으로 움직였다.
수비수들을 끌어들이려는 의도였다.
투욱! 툭! 툭!
수비수 하나가 가까이 달라붙었지만 이택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강력한 피지컬과 볼 키핑 능력을 발휘하며 공을 지켜냈다.
그때였다.
‘지금! 지금이라면 재욱이가 뒤에 있을 것 같아!’
감각과 경험에 의존한 플레이였다.
이택현은 뒤를 보지 않은 채, 발뒤꿈치로 백패스를 했다.
신재욱이 있을 것을 예상하며 보낸 힐패스였다.
뒤를 확인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이렇게 해야 속으니까.’
아르헨티나의 수준 높은 수비수들을 속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도박성 플레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만약 신재욱이 이택현의 의도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냥 어이없게 기회를 날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 이택현의 뒤에서 기다렸던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패스야.”
그 순간 이택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신재욱 너라면 거기쯤 있을 줄 알았어.”
경기장엔 거대한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이택현과 신재욱의 놀라운 호흡과 기적적인 동점 골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담긴 함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재욱이 다리를 휘둘렀다.
굳이 수비수들을 직접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슈팅 한 방이면 충분한데, 왜 상대를 해줘야 해?’
이택현이 공간을 다 만들어줬다.
패스도 슈팅하기 좋게끔 줬다.
굳이 공을 잡고 시간을 끌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슈팅은 신재욱의 가장 강한 무기 중 하나이지 않은가.
퍼어엉!
신재욱의 발등에 걸린 공이 커다란 타격음과 함께 빠르게 날아갔다.
― 신재욱! 때립니다!
함성을 지르던 관중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들 모두 눈을 부릅뜬 채 공에 집중했다.
* * *
신재욱은 발등으로 공을 때려낸 순간 느꼈다.
‘잘 맞았어.’
아주 좋은 슈팅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쒸이이이익!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공을 바라봤다.
당연하게도 골키퍼가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세르히오 로메로, 좋은 골키퍼야.’
그러나 공은 골키퍼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근데 이 슈팅은 못 막을 거야.’
골키퍼가 손을 휘둘렀을 때.
공은 골대 안으로 들어가 골망을 찢을 듯 흔들었다.
“……됐다.”
신재욱은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아무런 표정이 없던 얼굴엔 드디어 미소가 떠올랐다.
― 어억? 우어어어어! 고…골! 골입니다…! 신재욱 선수의 골입니다! 기적적인 골이 나왔습니다! 한국! 동점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이택현 선수와 신재욱 선수가 환상적인 호흡을 발휘하며 기적과도 같은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실상 우리의 패배로 끝이 날 것 같은 경기였는데, 이 어린 천재들이 희망의 불씨를 살려냈습니다!
― 신재욱 선수는 방금 넣은 골로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월드컵 8강이라는 큰 무대에서! 아르헨티나라는 강팀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하는 만18세의 선수가 여기 있습니다!
현재 시각 추가시간 3분.
경기 종료를 1분 남기고 터진 골이었다.
* * *
신재욱의 기적 같은 골로 4 대 4 스코어가 된 지금.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
“아……이렇게 된다고……?”
“말도 안 돼…….”
“다 왔는데……4강까지 다 왔는데…….”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던 팬들도 경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 미친!!!!!!!!!!!!!!!! 됐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뭐야?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된다고?ㅋㅋㅋㅋㅋㅋ
└ ㅅㅂ 꿈 아니지? 이거 실화 맞지?
└ 골!!!!!!!!!!!!!!!!!
└ 신재욱 해트트릭ㅋㅋㅋㅋㅋㅋㅋㅋ 아르헨티나한테 해트트릭 박는 한국인 선수가 있다????
└ 와나ㅋㅋㅋㅋㅋ 이택현이 뒤 안 보고 힐패스 할 때 쌍욕 나올 뻔했는데, 이걸 또 신재욱이 다이렉트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어버리네ㅋㅋㅋㅋㅋㅋㅋ 얘네 둘 진짜 뭐야? 둘이 텔레파시 있는 거 아니냐고?ㅋㅋㅋㅋ
└ 둘이 호흡이 미쳤어ㅋㅋㅋㅋ 신재욱은 이택현이 패스할 걸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움직였다니까?ㅋㅋㅋㅋ 이택현도 신재욱이 올 걸 알고 있다는 듯이 힐패스를 했고ㅋㅋㅋㅋㅋ
└ 이런 게 기적인가……? 이 경기가 연장전까지 간다고……?
└ 대박!!!!! 설마 이기려나? 아르헨티나를?;;;;;
└ 신재욱은 신이야. 걍 GOD재욱임.
└ 4강 가나요? 여러분!!! 4강 갈 수 있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 GOD재욱이 이걸 멱살 잡고 끌고 가네ㅋㅋㅋㅋㅋㅋㅋ
이처럼 TV로 경기를 보던 한국팬들은 미친 듯 열광했고.
각종 방송사는 실시간으로 일어난 기적을 재빨리 보도하기 시작했다.
한국 최대의 포털사이트에서의 반응도 비슷했다.
신재욱의 이름과 월드컵 8강전과 관련된 기사들이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었다.
같은 시각.
골을 넣은 신재욱은 골대 안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다.
지금은 경기장 중앙으로 뛸 생각이 없었다.
대신 그는 한국대표팀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다들 모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