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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 대 3으로 동점이 된 상황.
양 팀의 점수는 같았지만, 분위기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3 대 1에서 3 대 3을 만들어낸 아르헨티나의 분위기가 훨씬 더 좋았다.
선수들의 자신감도 달랐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동점이 된 이후로 여유를 찾았다. 실수가 줄었고, 플레이는 더 과감해졌다.
자연스레 한국은 뒤로 몰렸다.
공격수인 신재욱마저도 수비에 가담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 리오넬 메시가 공을 받습니다!
리오넬 메시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과감한 전진이었다.
그리고 그 앞엔 신재욱이 서 있었다.
휘익!
신재욱은 자세를 낮췄다.
그는 많은 경험이 있는 선수였기에 상대의 눈빛과 움직임을 보면 상대가 가진 생각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 친구, 내 기를 꺾고 싶은가 보네.’
리오넬 메시는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인 신재욱의 기를 꺾을 생각이었다.
그 방법으로 한국을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물론 신재욱은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툭! 투욱! 툭!
리오넬 메시의 스피드는 점점 더 빨라졌다. 발로 공을 툭툭 치는 횟수도 급격히 많아졌다.
‘집중하자.’
신재욱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가 아는 리오넬 메시는 이런 움직임을 유지하다가 간결한 기술을 사용하며 순식간에 방향을 틀거나,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며 파고들 수 있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패턴을 지닌 선수다.
또한, 그는 모든 상황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끝까지 보며 드리블한다. 가장 막기 어려운 유형의 스타일이었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세계적인 수비수들도 일대일로는 리오넬 메시를 막지 못한다.
수비수는 아니었지만, 환생 전의 신재욱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리오넬 메시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뚫려버렸던 적이 매우 많다.
‘나도 참 웃긴단 말이야. 공격수면서 이상한 수비 자존심이 있어.’
하지만 뚫리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어쩌다가 한 번은 막아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공통점이 있었다.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인 슬라이딩 태클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택현이나 프랑크 리베리, 아르연 로번, 샤키리도 드리블 엄청 잘하는데, 내 슬라이딩 태클은 잘 못 피하더라고.’
신재욱은 리오넬 메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절대 발을 뻗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리오넬 메시가 슈팅할 수는 없게끔 계속해서 거리를 조절했다.
과거의 기억을 최대한 떠올리며 움직였다.
짧은 순간, 긴장감이 흘렀다.
소속팀에서 로번, 리베리와 같은 뛰어난 드리블러들을 막아본 경험이 많지만, 리오넬 메시는 그들보다도 더 막기 어려운 선수였다.
지금도 그랬다.
바디페인팅을 하며 공을 컨트롤하는 리오넬 메시의 모습에선 여유가 흘렀다.
그는 고개를 높게 든 채로 동료들의 움직임까지 확인하고 있었다.
‘아주 여유가 넘치시네.’
신재욱은 쓰게 웃으며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먼저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메시를 막기 위해선 단 한 타이밍을 노려야 한다.
‘드디어 움직여주시는군.’
리오넬 메시가 속도를 높였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더 역동적으로 바디페인팅을 펼쳤다.
정말 방향을 틀 것 같은 움직임.
웬만한 수비수들은 속아버릴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신재욱은 끝까지 참아냈다.
그리고 지금.
타앗! 휙!
리오넬 메시의 진짜 움직임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갈 것처럼 움직인 뒤, 급격히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팬텀드리블이었다.
신재욱은 빠르게 반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메시보다 먼저 움직이진 못했다.
눈으로 보고 반응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신재욱에겐 슬라이딩 태클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백태클도 겁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슬라이딩 태클.
그 무기를 리오넬 메시에게 사용했다.
촤아악!
몸을 눕히며 메시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발을 뻗었다.
그러면서 발끝을 컨트롤했다. 정확히 공을 건드리기 위해서 집중했다.
다만, 상대는 리오넬 메시였다.
그는 신재욱의 슬라이딩 태클에 빠르게 반응하며 왼쪽으로 한 번 더 치고 나가려고 했다.
그 짧은 순간에 태클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단 신재욱의 발이 더 빨랐다.
툭!
성공이었다.
왼쪽으로 치고 나가려던 리오넬 메시가 바닥에 뒹굴었다.
공을 먼저 건드리며 들어온 신재욱의 다리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
그 즉시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아르헨티나의 팬들이 뿜어내는 야유였다.
이들은 신재욱의 반칙을 주장했다.
그러나 반칙은 선언되지 않았다.
주심은 경기를 그대로 진행했다.
깔끔하게 공을 먼저 건드린, 정당한 태클이라고 판정한 것이다.
“좋은 심판이네.”
신재욱은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자세가 불안정해서 리오넬 메시에게서 뺏어낸 공을 소유하진 못했지만, 다행히 동료 선수가 멀리 걷어내 버렸다.
― 김국영 선수가 공을 걷어냈습니다! 이야~! 방금 저희가 뭘 본 거죠? 신재욱 선수가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리오넬 메시를 일대일로 막아냈습니다!
― 놀랍네요! 세계적인 수비수들도 일대일로는 막아내지 못하는 리오넬 메시를 신재욱 선수가 막아냈습니다!
리오넬 메시.
그는 황당해하며 몸을 일으켰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스트라이커의 수비가 이래?”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지금처럼 놀란 적은 없었다.
신재욱의 수비 능력이 스트라이커답지 않게 매우 뛰어나다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경계하진 않았었다.
스트라이커치고 뛰어난 정도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랬기에 과감하게 일대일 대결을 펼친 것이다.
한국의 에이스를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며 팀의 기세를 높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상대한 신재욱의 수비는 리오넬 메시가 깜짝 놀랄 수준이었다.
“카를레스 푸욜이나 제라르 피케도 나를 이렇게까지 놀라게 하진 못했는데…….”
특히 슬라이딩 태클의 완성도가 놀라웠다.
리오넬 메시는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신재욱만큼의 뛰어난 슬라이딩 태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이면서 세계 최고의 수비수들보다 뛰어난 슬라이딩 태클 실력을 지녔다고……? 재밌는 녀석이네.”
리오넬 메시의 눈빛이 변했다.
흐르던 여유가 사라졌고 표정도 진지하게 변했다.
“이제 진지하게 상대해주마.”
* * *
김국영이 걷어낸 공은 라인 밖으로 나갔다.
― 아르헨티나의 스로인입니다. 신재욱 선수는 오늘 굉장히 열심히 뛰어주고 있네요.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인데, 오늘도 에이스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 하지만 경기의 분위기는 여전히 아르헨티나 쪽으로 넘어간 상황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 선수들이 경기력에서 밀리고 있기에, 연장전까지 가는 것은 우리에게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후반전이 끝나기 전에 우리 선수들이 골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아르헨티나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한국이 웅크린 채로 얻어맞는 반코트 게임도 다시 시작됐다.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은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으면서도 공을 뺏기질 않았다.
더 심각한 건 한국 수비수들의 불안한 볼 처리였다.
체력이 떨어진 후반전이었기에, 한국의 수비수들은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줬고 강한 압박을 펼치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르헨티나의 볼 점유율은 더욱 높아졌다.
― 아…… 우리 선수들이 계속해서 밀리고 있습니다……! 상황이 좋지 못한데요?
―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위험한 상황을 내주고 있습니다! 우리 수비수들은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집중해서 볼 처리를 확실하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스레 한국의 위기도 이어졌다.
그리고 후반전 84분이 되었을 때.
한국은 큰 위기를 맞았다.
― 에세키엘 라베시가 측면을 파고듭니다! 크로스!
에세키엘 라베시가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는 날카로운 궤적으로 한국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날아갔다.
그 공을 향해 점프한 선수는 한국의 수비수 김영원과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곤살로 이과인이었다.
동시에 점프한 두 선수.
그러나 두 선수의 피지컬 차이는 컸다.
점프력과 몸싸움 능력, 심지어 위치선정 능력까지 곤살로 이과인이 김영원을 압도했다.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 곤살로 이과인.
그는 너무나도 쉽게 공중볼을 따내며 헤더 골을 터트렸다.
― 아…… 곤살로 이과인 선수의 골입니다……! 아르헨티나가 4 대 3으로 앞서나갑니다……!
― 우리 선수들이 잘 싸워줬는데…… 결국 실점을 하고 말았네요…….
후반전 84분에 나온 한국의 실점.
한국 해설들의 목소리엔 안타까운 감정이 묻어나왔다.
이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늦은 시간에 실점을 해버리면 사실상 승리는 멀어진다는 것을.
한국의 축구팬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 아…… 결국 지는 건가……?
└ 잘했는데ㅠㅠㅠ 4강 갈 것 같았는데ㅠㅠㅠㅠㅠ
└ 아르헨티나가 후반전에 강하네…….
└ 우리 선수들이 너무 지쳤어…… 지치면 집중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지.
└ 아르헨티나가 잘하긴 한다…… 리오넬 메시, 라베시, 곤살로 이과인, 마스체라노는 특히 잘하고.
└ 이거 동점 골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 힘들다고 봐야지. 이제 후반 85분이야. 추가시간까지 전부 포함해도 10분도 안 남았어.
└ 경기력이 좋으면 그나마 기대할 수 있을 텐데, 반코트 게임이라서 이건 뭐……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지.
└ 아ㅠㅠㅠㅠㅠ 어떻게든 동점 골만 넣으면 연장전이라도 갈 텐데ㅠㅠㅠㅠㅠ
한국 축구팬들은 사실상 한국의 패배가 매우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경기력에서 밀리고 있었으니까.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달랐다.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집중해요! 적어도 한 번은 기회가 올 거예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기회가 올 때까지 버텨요.”
쉬지 않고 동료들을 다독이는 신재욱과.
“재욱이 말이 맞아요! 저랑 재욱이가 또 이런 상황에 강하거든요? 딱 한 번만 기회 오면 어떻게든 살려줄 테니까 힘들어도 참아줘요!”
커다란 목소리로 맞장구를 치는 이택현의 노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렀다.
후반 87분…… 89분…… 90분…….
한국 대표팀 선수들과 팬들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추가시간 2분이 흘렀을 때.
― 오오?! 이러면 역습 기회입니다!
드디어 한국의 공격 기회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