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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며칠 전.
신재욱은 이택현을 불렀다.
“택현아, 알려줄 게 있어.”
“응? 뭔데?”
“아르헨티나의 마스체라노 알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당연히 알지!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잖아. 최근에 걔 이기려고 엄청 분석하고 있어. 근데 갑자기 마스체라노는 왜?”
“걔 이길 방법을 알려주려고.”
“어? 정말? 진심이야? 그런 방법이 있다고?”
“당연하지.”
이후, 신재욱은 이택현과의 일대일 연습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약점이 별로 없는 선수였다.
그러니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말을 듣는 것이고.
다만, 상대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환생 전에 마스체라노를 여러 번 상대해봤던 신재욱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들을 이택현에게 알려줬다.
물론 이유 없는 가르침은 아니었다.
‘이택현이 중원에서 마스체라노를 이겨주면 내가 골을 넣기도 편해질 거야.’
이택현이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이길 수 있다면.
그건 신재욱의 성장에 분명히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8강전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
― 우오오오오! 이택현 선수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제쳐냈습니다!
― 이건 놀라운데요? 마스체라노 선수는 일대일에서는 웬만해서 뚫리지 않는 선수거든요?
이택현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일대일에서 이겨냈다.
“이게 바로 이택현 님의 폭풍드리블이다!”
연습한 것이 잘 통했다는 것에 잔뜩 신이 난 이택현은 그대로 다리를 휘둘렀다.
슈팅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수비수들의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신재욱을 향한 스루패스였다.
터엉!
패스를 보낸 후.
이택현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혀를 내둘렀다.
“재욱이의 저 침투 타이밍은 보고도 못 따라 하겠다니까?”
공은 낮고 빠르게 쏘아졌다.
일반적인 전진 패스보다 훨씬 더 강한 패스였다.
웬만한 공격수들은 받기 힘들다고 투덜댈 정도로 힘이 들어간 패스.
그러나 신재욱은 좋아했다.
‘이래야 수비수들이 중간에 못 끊지.’
패스가 세면 셀수록 자신에게 연결될 가능성이 늘어나니까.
아무리 강한 패스라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좋은 스트라이커라면 어려운 패스도 받을 수 있어야지.’
지금도 그랬다.
공에 실린 힘은 굉장히 강했지만, 신재욱은 자신감 있게 발을 뻗었다.
타이밍도 정확히 잡아냈다.
툭!
빨랐던 공이 신재욱의 발에 닿자 급격히 힘을 잃었다.
너무나도 얌전하게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 공을 강하게 때려냈다.
골키퍼가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하게끔 구석을 겨냥한 슛이었다.
쒸이이익!
짧은 바람 소리가 들렸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쏘아진 공은 아르헨티나의 골망을 흔들고 있었고, 신재욱은 골대 안으로 달렸다.
스윽!
골대 안에 있던 공을 들어 올리고 뛰기 시작했다.
경기장 중앙으로.
― 고오오오오오오올! 신재욱 선수가 또 넣었습니다! 이택현 선수의 패스를 받아서 강력한 슈팅을 때려 골을 기록했습니다! 신재욱 선수의 귀중한 골로 스코어는 3 대 1이 됩니다!
― 놀랍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싸워주고 있습니다!
신재욱은 경기장 중앙으로 뛰었고, 그 주변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뛰면서 골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이택현은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기뻐하며 입을 쉬지 않았다.
“재욱아! 봤지? 내가 마스체라노 발라버리는 거 봤지? 마스체라노 당황한 표정 봤지? 와! 이건 내가 하고도 소름이었다. 며칠간 했었던 특훈의 성과가 제대로 나왔어! 그리고 내 패스 어땠어? 딱 너만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쎄게 후려버렸는데, 역시 받아 넣더라고? 쩔었지? 신재욱 맞춤 택배 패스 맞지?”
신재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부 다 봤고, 패스도 최고였어.”
실제로 이택현의 플레이는 매우 좋았다.
솔직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뚫어냈을 때는 신재욱조차 깜짝 놀랐다.
‘보면 볼수록 천재성이 대단한 친구야. 고작 며칠 연습했다고 마스체라노를 뚫어버리네.’
며칠간 이택현을 훈련 시켰지만, 그가 마스체라노와의 대결에서 100% 이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준비한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어지간해선 당해주지 않는 대단한 선수니까.
그런데 이택현은 이겨버렸다.
천재적인 재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툭!
신재욱은 공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곤 상대 선수들을 바라봤다.
‘기가 꺾이지 않았어. 3 대 1로 밀리고 있지만, 여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저건 승리를 생각해야만 나오는 눈빛이었다. 즉, 아르헨티나는 한국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아르헨티나는 그럴 수 있는 팀이니까.’
신재욱은 상대의 실력을 인정했다.
저들은 한국의 수비를 부숴버릴 수 있는 팀이다.
전반전은 운 좋게 실점을 최소화했지만, 말 그대로 운이 좋았을 뿐이다.
후반전에도 운이 따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신재욱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지금 스코어에 만족하면 안 돼. 더 골을 넣어야 이길 수 있어.’
* * *
3 대 1 스코어가 된 이후.
아르헨티나의 공격은 더욱 매서워졌다.
신재욱이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 리오넬 메시! 2명에게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탈압박을 해냅니다! 이 선수를 막으려면 적어도 3명은 붙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붙어줘야 합니…… 어엇?
― ……!
해설들이 당황했다.
특유의 민첩한 드리블로 탈압박을 해낸 리오넬 메시가 기습적인 왼발 슈팅을 때려냈고, 부드럽게 휘어진 공이 골대 상단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순간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을 정도로 깔끔한 골이었다.
― 리오넬 메시 선수다운 골이 나왔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축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선수답게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비록 실점했지만, 괜찮습니다! 아직 우리가 3 대 2로 앞서나가고 있으니까 남은 시간 동안 잘 싸워준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해설들은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며 애써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다만, 이들은 느끼고 있었다.
한국의 수비가 아르헨티나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 에세키엘 라베시! 윤성영을 너무나도 쉽게 상대하며 한국의 측면을 뚫어냈습니다! 아! 윤성영과의 스피드 차이가 너무 심합니다!
한국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후반 74분에 공을 잡은 에세키엘 라베시가 과감하게 드리블하며 한국의 수비를 휘저었다.
― 오늘 윤성영 선수가 라베시 선수를 전혀 막아내질 못하고 있습니다……!
에세키엘 라베시.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에 소속된 선수로 윙어로 뛸 때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특히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은 라베시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였다.
― 에세키엘 라베시가 공을 몰고 들어옵니다! 막아야죠! 더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더 무서운 건 라베시의 무기는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그는 위협적인 드리블뿐만 아니라 슈팅과 패스, 연계플레이에도 능한 선수였다.
지금도 그랬다.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곤살로 이과인을 막는 것에 집중하던 한국의 수비수들 앞에서.
에세키엘 라베시는 직접 슈팅을 시도했다.
측면에서 페널티박스 안으로 파고들며 강하게 때려버린 슈팅.
퍼어엉!
강렬한 타격음이 터졌다.
각도가 매우 좁은 곳에서의 슈팅. 흔히 골키퍼의 머리를 보고 때린다고 말하는 슈팅이었고, 의외로 많은 골이 나오는 위치였다.
“……!”
깜짝 놀란 정석룡 골키퍼가 팔을 위로 뻗었다.
휘익!
그러나 공은 그의 행동보다 더 빨랐다.
이미 골대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으니까.
철렁!
기어코 터진 아르헨티나의 동점 골.
이어진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세리머니.
한국 대표팀 선수들, 한국의 팬들에겐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한국의 축구팬들은 크게 당황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 아르헨티나 진짜 세다…… 이거 지는 거 아니야……?
└ 그냥 수비에만 올인하고 승부차기까지 가야 할 것 같은데……? 아르헨티나랑 맞다이 뜨려고 하니까 계속 골 먹히잖아.
└ 승부차기까지 가려면 연장전도 버텨야 하는데 가능할까? 메시랑 라베시 오늘 하는 거 보니까 미쳤는데……?
└ 아르헨티나 애들 개잘한다…… 우리 수비는 변한 게 없네. 몸을 열심히 던지긴 하는데, 던지지 말아야 할 때도 던져서 골을 먹히네…….
└ 에휴…… 신재욱이랑 이택현이 다 만들어준 밥상을 걷어차 버리는구나.
└ ㅠㅠㅠㅠㅠ아르헨티나는 왜 후반전 되니까 더 세진 것 같냐?
└ 전반전도 셌어. 우리가 운이 좋아서 골 안 먹혔던 것뿐이야.
└ 신재욱이랑 이택현이 말도 안 되게 잘해주는데, 얘네한테 공이 연결되기도 전에 끊길 때가 너무 많아. 진심 팀이 도움이 안 되고 있어.
└ 아…… 이거 나만 질 것 같냐?
└ 패배 냄새 진하게 풍김…… 기적은 8강에서 끝나는 건가…….
같은 시각.
신재욱은 동료들을 다독이며 침착하게 상황을 바라봤다.
팀이 연달아 골을 내주며 3 대 3 동점이 된 것.
씁쓸하지만 예상 범위 안에 있는 일이었다.
‘어려운 상대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
상대는 아르헨티나였다.
어떤 팀을 만나도 골을 넣을 수 있는 강팀.
더구나 리오넬 메시라는 세계 최고의 선수까지 보유한 팀이지 않은가.
신재욱이 생각하기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충분히 잘해주고 있었다.
훨씬 더 수준이 높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 정도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래서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가 더 잘하면 돼.’
자신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겠다고.
― 경기 재개됩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움직임에서 기세가 오른 게 느껴지네요.
― 3 대 1로 밀리던 상황에서 2골을 연달아 넣으며 동점을 만들었으니까요.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자신감이 매우 높아진 상태일 겁니다.
아르헨티나는 적극적이었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한국을 압박했고, 공을 가지고 있을 때는 과감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체력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가장 많이 뛴 선수들을 교체해줬기 때문이었다.
후보 선수들조차 실력이 뛰어난 아르헨티나였기에, 이들의 공격력은 교체 카드를 사용한 이후에도 강력했다.
반면 한국은 쉽게 교체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와는 다르게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 차이가 큰 편이었으니까.
“기죽지 말고 자신감 있게 하세요! 집중력 잃지 마세요! 역습 기회는 분명히 옵니다!”
신재욱은 밑으로 내려와서 수비에 가담하며 계속해서 동료들을 다독였다.
공격할 기회는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은 경기력에서 밀리고 있었다.
사실상 반코트 게임이었다.
아르헨티나에게 불쌍할 정도로 얻어맞는 중이었다.
그랬음에도 신재욱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길 수 있다는 믿음도 여전했다.
‘지금 아르헨티나의 수비엔 빈틈이 많아. 이번 한 번만 잘 막으면 타이밍은 나온다.’
많은 경험으로 인해서 알 수 있었다.
지금 아르헨티나는 너무 신이 난 나머지 방심하고 있었다.
신재욱은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툭! 툭!
짧게 공을 치는 특유의 드리블을 하며 다가오는 아르헨티나의 한 선수.
신재욱은 그 선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 친구, 내 기를 꺾고 싶은가 보네.’
동시에 자세를 낮췄다.
당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리오넬 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