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 * *
전반전 6분.
무언가 중요한 일이 생기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대였다.
그런데 골이 나왔다.
한국의 스트라이커 신재욱의 골이었다.
그 사실에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 축구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골!!!!!!!!
└ 한국이 선제골을 넣었어!
└ 신재욱이야! 신재욱의 헤더골이 터졌어!
└ 또 신재욱이군! 이 녀석,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어렵지 않게 골을 넣었어! 신재욱은 도대체 얼마나 높은 클래스인 거지?
└ 아르헨티나의 수비수가 신재욱을 전혀 막아내지 못하고 있어! 오늘 아르헨티나가 고전을 좀 하겠는데?
└ 조금이 아니야. 이거, 아르헨티나가 질 수도 있겠어. 신재욱을 못 막잖아.
└ 아직 몰라. 너희 잊은 거냐? 한국의 수비는 최악이라고. 아르헨티나의 공격에 분명 쉽게 뚫리며 골을 내줄걸?
└ 이 경기는 양 팀의 화력전이 되겠어! 굉장히 흥미로운데?
└ 에세키엘 가라이는 뛰어난 수비수인데 신재욱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
월드컵 8강이라는 큰 무대답게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이들은 실시간으로 재송출되는 신재욱의 골 장면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아르헨티나의 중앙수비수 에세키엘 가라이와의 공중볼 경합에서 완벽하게 이겨내는 신재욱의 플레이.
그 모습은 전 세계 축구팬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됐다.
그리고 이때.
한국 선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팀이 선제골을 넣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던 부담감이 줄었다는 게 더 크게 느껴졌다.
‘재욱이가 해줘서 다행이야.’
‘휴…이제 숨 좀 쉬겠네.’
‘이제야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은데? 더 집중해보자.’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강하게 마음먹고 훈련했고, 오늘도 승리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경기장에 들어왔지만.
막상 월드컵 8강이라는 무대에 올라서자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너무 긴장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긴장한 건 한국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더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역시 신재욱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야…….”
“우리가 선제골을 허용하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빨리…….”
“에세키엘 가라이가 질 줄은 몰랐는데…….”
“…경기 전에 보여주던 여유가 자신감이었나?”
이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한국에 선제골을 허용하는 건 원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신재욱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당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당해버렸다.
특히 리오넬 메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중얼거렸다.
“마음에 안 들어.”
선제골을 허용했다는 게 불만스러웠다.
더 짜증 나는 건 팀의 중앙수비수 에세키엘 가라이가 실점 상황에서 실수한 게 없었다는 것이다.
“에세키엘 가라이는 실수하지 않았어. 그냥 실력에서 밀렸지.”
아르헨티나의 핵심 수비수가 한국의 스트라이커 신재욱에게 실력으로 완패했다.
그게 리오넬 메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동점을 만드는 정도로는 기분이 안 풀리겠어.”
리오넬 메시는 다짐했다.
전반전 안에 2골을 만들어서 역전을 해내겠다고.
― 대한민국이 또다시 이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유력한 우승 후보로 뽑힐 정도로 강력한 아르헨티나에게 선제골을 터트렸습니다! 이제 4강이라는 기적이 한 걸음 더 다가왔습니다!
― 우리 선수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나 절대 방심해선 안 됩니다! 더 집중해야 합니다! 상대가 아르헨티나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해설들은 기쁜 마음을 드러냈지만 동시에 선수들이 경각심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다행히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이들은 여전히 경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공격은 방심하지 않고 집중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 앙헬 디 마리아가 공을 몰고 전진합니다! 이택현 선수가 막아보려고 했지만, 디 마리아가 어렵지 않게 탈압박 해냅니다! 이 선수 정말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네요!
― 워낙 공을 잘 안 뺏기는 선수죠. 우리 선수들은 이 선수의 움직임을 방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선수를 편하게 놔두면 위험에 빠질 수 있거든요?!
앙헬 디 마리아.
세계적인 수준의 미드필더인 그는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공을 운반했다.
어느새 한국의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접근한 그는 슈팅 자세를 취했다. 진심으로 슈팅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한국의 수비진을 흔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 앙헬 디 마리아! 슈팅 페인팅으로 기석용을 제쳐냈습니다! 홍정오 선수는 신중하게 거리를 두고……앗! 디 마리아! 패스합니다!
앙헬 디 마리아는 한국 수비진의 빈틈을 발견했고, 그곳으로 패스를 찔러넣었다.
빠르게 침투하는 리오넬 메시에게 가볍게 밀어준 패스였다.
툭!
리오넬 메시는 굴러오는 공을 부드럽게 받아낸 뒤.
퍼엉!
그대로 슈팅을 때려냈다.
수비수들과 골키퍼의 허를 찌르는 슈팅이었다.
단 2번의 터치로 만들어낸 슈팅.
정석룡 골키퍼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만큼 슈팅의 타이밍이 빨랐다.
철썩!
한국의 골망이 흔들렸다.
리오넬 메시는 웃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동점인 거 잊지 마. 전반전 안에 최소한 1골은 더 넣을 거니까 계속 적극적으로 가자.”
* * *
신재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리오넬 메시의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까지 한 골 더 넣을 생각이구나.”
승부욕이 끓어올랐다.
원래도 이길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 의지가 더 강해졌다.
“스코어에서 앞서갈 생각인가 본데, 쉽지 않을걸?”
리오넬 메시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게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게 할 자신감도 있었다.
“나도 골 넣을 거거든.”
신재욱이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상대 선수들과 동료들을 바라보며 전술을 확인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며 전술에 맞지 않는 위치에 있는 동료에겐 곧바로 소리치며 자리를 잡아줬다.
‘확실히 아르헨티나의 화력은 세. 우리 수비가 막기 버거운 게 사실이야.’
신재욱은 인정할 건 인정했다.
아르헨티나의 공격력은 한국보다 강했다.
한국의 수비수들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오늘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진 못할 것이다.
그랬음에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이유가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수비도 단단하지 않아.’
신재욱 정도로 수준이 높은 공격수는 상대 수비수와 부딪쳐보면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수비는 신재욱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수비수 두 명이 붙지 않으면 과감하게 돌파하거나 유효슈팅을 만들어낼 수 있겠어.’
경기가 재개됐다.
신재욱과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천천히 패스를 주고받았다.
공을 뺏기면 아르헨티나의 무서운 공격이 시작될 것을 알기에 패스도 조심스러웠다.
‘다들 집중력이 괜찮은데?’
신재욱이 옅게 미소 지었다.
동료들의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다.
훈련 때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이택현의 움직임은 매우 좋았다.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쉬지 않고 움직이며 아르헨티나의 수비진을 괴롭히고 있었다.
‘택현이는 컨디션이 좋은가 보네.’
신재욱은 오늘 경기 내내 밑으로 내려와서 공을 받고 있었다.
체력 소모는 생기지만 더 강한 팀을 상대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경기를 풀어주지 않으면 동료들이 힘들어지게 될 테니까.
―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이 좋습니다! 손발도 매우 잘 맞는 것처럼 보이고요!
― 그중에서도 신재욱 선수는 정말 잘하네요! 안정적으로 연계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거, 무언가 만들어질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
신재욱의 노력으로 한국은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아르헨티나가 적극적으로 압박을 펼쳤지만, 쉽게 공을 뺏기지 않으며 공격을 전개했다.
하지만 곧 실수가 나왔다.
― 아! 구자천 선수의 패스 미스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습입니다! 빨리 끊어줘야 할 텐데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라는 월드클래스 수비형 미드필더의 강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구자천의 실수였다.
그는 넘어져 버리며 엉뚱한 곳에 패스를 보내고 말았고,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은 역습에 나서기 위해 움직였다.
한국으로선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
그때였다.
촤아악!
신재욱이 잔디 위로 미끄러졌다.
공을 몰고 전진하려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향해 들어간 과감한 슬라이딩 백태클이었다.
태클 실력이 굉장한 신재욱으로서도 부담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다.
그냥 태클도 아니고 백태클이었기에 미세한 차이로 카드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툭!
발끝으로 공을 건드린 신재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다행히 마스체라노의 다리보다 공을 먼저 건드렸다.
주심도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정확히 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반칙은 선언되지 않았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의했지만, 주심은 경기를 멈추지 않고 진행시켰다.
재빨리 몸을 일으킨 신재욱이 빠르게 동료를 찾았다. 멋지게 공을 뺏어냈지만,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지금 시간을 끌면 순식간에 상대 선수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그런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패스를 뿌렸다. 최전방으로 달려 나가는 이택현을 향해.
퍼엉!
신재욱의 발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갔다.
적당한 높이로 이택현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매우 정확한 롱패스였다.
― 신재욱 선수! 이택현 선수에게 공을 연결합니다! 신재욱 선수의 슈퍼 태클 덕과 좋은 패스 덕에 한국이 중요한 골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택현 선수! 이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이택현의 실력은 뛰어났다.
어린 나이에 바이에른 뮌헨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기본기 역시 뛰어났다.
어릴 때부터 해온 신재욱과의 훈련 덕에 이택현의 기본기는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지금도 그의 실력과 기본기가 빛났다.
타닷!
아르헨티나의 오프사이드 라인을 절묘하게 뚫어내며 침투한 이택현은 발을 뻗어 떨어지는 공의 힘을 죽였다.
투욱!
부드러운 트래핑.
이어서 슈팅하는 척 오른발을 휘두르며 방향을 틀었다.
여유가 넘치는 움직임이었다. 이 움직임으로 다급하게 태클을 하는 수비수 한 명을 제쳐냈다.
“상대가 누구든 쫄지 않고 항상 침착해야 한다고 했지?”
이택현은 기억했다.
신재욱이 해줬던 말을.
동시에 왼발을 휘둘렀다.
오로지 골키퍼 한 명만 서 있는 넓은 골대를 향해서.
퍼어엉!
공이 휘어져 날아갔다.
스피드도 매우 빨랐다. 워낙 슈팅력이 좋은 이택현이 제대로 감아 찬 공이었다.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도 몸을 날렸다.
노련한 골키퍼답게 이택현의 슈팅 궤적을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막아내기엔 슈팅이 너무 강했다.
휘익!
세르히오 로메로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공은 이미 골대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철렁!
아르헨티나의 골망이 흔들렸다.
동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관중석에 있던 한국인 팬들과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지르는 함성이었다.
우와아아아아!
― 고오오오오오오올! 들어갔습니다! 이택현 선수의 골입니다!
그 순간 신재욱이 웃었다.
오늘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미소였다.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아주 잘 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