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 * *
신재욱이 제대로 때려낸 무회전 슛.
20m라는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빠르게 날아간 공은 골대 앞에서 뚝― 떨어졌고, 미국의 골키퍼는 움직이지 못했다.
― 우와! 들어갔습니다! 신재욱 선수가 엄청난 중거리 슛으로 골을 기록했습니다! 스코어는 이제 3 대 1이 됩니다!
― 무회전 슈팅이네요. 이렇게 제대로 구사한 무회전 슈팅은 골키퍼가 막기 힘들죠. 공이 눈앞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니까요.
스코어를 3 대 1로 만드는 신재욱의 골.
한국의 분위기는 크게 살아났고, 미국은 급해졌다.
어떻게든 만회 골을 만들어보려고 또다시 뻥축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반전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종료됐다.
―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후반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한국은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경기를 주도하며 적극적으로 공격했고.
미국은 수비하면서도 틈만 나면 전방을 향해 롱패스를 뿌리며 공격을 시도했다.
이때 더 좋은 경기력을 펼치는 건 한국이었다.
3 대 1 스코어는 선수들에게 여유를 줬고,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도와줬다.
‘확실히 벨기에보다는 약해.’
신재욱은 미국의 전력을 전부 파악했다.
벨기에와 비교하면 벨기에가 서운할 정도로 수준 차이가 꽤 났다.
당연히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도 짙어졌다.
‘큰 실수 한두 번은 괜찮아. 그만큼 상황이 좋아.’
2점 차로 벌려놨으니, 더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할수록 성장에 도움이 되니까.
‘꿀은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지.’
3 대 1이라는 스코어는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한국의 추가 골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 구자천 선수의 골입니다! 이야! 이 선수도 슈팅 한 방이 있는 선수거든요! 시원시원한 슈팅으로 월드컵 첫 골을 기록하는 구자천!
구자천의 골이었다.
미국의 수비수를 등지며 공을 지켜낸 신재욱이 뒤로 밀어준 공을 그대로 때려내서 넣은 골.
미국에겐 8강이라는 희망이 사라지는 골이기도 했다.
― 홍정태 감독이 이제는 지키는 운영을 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선수를 교체하네요.
4 대 1 스코어가 되자마자 홍정태 감독은 선수 교체를 준비했다.
주전 선수의 체력을 아껴주고, 불안한 수비를 보완하는 교체였다.
― 신재욱 선수와 기석용 선수가 나오네요.
― 오늘 굉장히 많이 뛰어준 신재욱 선수에게 휴식을 주는군요.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신재욱 선수는 8강에서도 선발로 나올 선수니까요.
― 기석용 선수도 오늘 아주 좋은 활약을 펼쳐줬죠? 여튼 이 선수들 대신 김보겸 선수와 박종욱 선수가 투입됩니다.
― 김보겸 선수와 박종욱 선수 모두 활동량이 많고, 수비 가담을 성실하게 해주는 선수들이죠. 홍정태 감독은 이대로 경기를 굳힐 생각인 것 같습니다.
교체되어 들어온 신재욱은 벤치에 조용히 앉았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웃고 떠들지 않았다.
아직도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동료들의 집중력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잘 굳힐 수 있겠지?’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신재욱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3점 차로 이기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 역전될지 모르는 스포츠가 축구였으니까.
게다가 신재욱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좋은 오프더볼 움직임을 보여주며 상대가 라인을 쉽게 올리지 못하게 했고, 상대가 공격할 때면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밑으로 내려와서 수비 가담까지 했다.
그런 신재욱이 없어지자 미국 선수들의 움직임엔 자신감이 붙었다.
라인을 더 적극적으로 올린 것은 물론이고, 수비수들도 여유를 찾았다.
미국 대표팀의 모든 움직임에 안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갑자기 너무 밀리는데요?
― 신재욱 선수의 영향력이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도 더 컸던 모양입니다……! 신재욱 선수가 없어지니 미국이 마음 놓고 공격을 하네요! 우리 선수들이 잘 막아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미국은 16강에 올라올 때의 탄탄한 경기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한국은 속절없이 밀렸다.
이택현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동료들이 밑으로 내려와서 버티는 것에만 집중하는 상황이었기에 좋은 공격을 시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후반 39분.
미국이 골을 만들어냈다.
― 아…… 클린트 뎀프시의 골입니다! 이 선수, 오늘 우리 대표팀을 상대로 2개의 골을 기록하네요…! 스코어는 이제 4 대 2가 되었습니다!
분위기는 완전히 미국으로 넘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2점 차가 났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거 찝찝한데.’
신재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교체되어 나온 상황이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팀을 응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한국의 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 위험합니다! 오우! 크리스 원돌로프스키의 헤더였습니다! 골대를 살짝 벗어나네요! 우리 수비수들! 집중해야 합니다! 이렇게 상대 공격수가 편하게 헤딩하게끔 놔두면 안 됩니다!
한국의 수비는 좋지 않았다.
벨기에전에서도 그랬듯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한국 대표팀 수비수들의 실력이 부족했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래도 한국 대표팀의 수비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몸을 날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 파비안 존슨 선수의 슈팅이 홍정오 선수의 몸에 맞습니다! 홍정오 선수! 투지가 대단합니다! 파비안 존슨 선수의 슈팅 타이밍에 맞춰서 몸을 던져버리네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한국은 흔들렸지만, 꾸역꾸역 미국의 공격을 막아내며 추가 실점 없이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 경기 종료됩니다! 대한민국이 8강에 진출합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8강 진출 확정.
경기장에 간신히 서 있던 한국 선수들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감격했다.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보던 선수들도 경기장으로 튀어나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 대한민국이 기적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이대로 4강까지 올라가서 2002년의 기적을 다시 한번 재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 선수들!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이 8강에 올라갈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해설들과 팬들, 선수들, 감독, 코치들 모두가 기뻐하는 상황.
신재욱도 다르지 않았다.
환하게 웃으며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
‘쉽게 풀어가는 경기가 없네.’
오늘도 어려운 경기였다.
정말 많이 뛰었고, 골도 많이 넣었다.
그랬음에도 마지막까지 불안했다.
그래서인지 경기의 내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쁨은 더 컸다.
“힘들게 이겨서 그런가? 기분 되게 좋네.”
그렇게 말하며, 신재욱은 계속해서 허공을 바라봤다.
“메시지가 뜰 것 같은데…….”
월드컵 16강에서 2골 1도움을 기록 팀 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패스 횟수와 성공률, 수비 성공률까지 계산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11명이 한 팀으로 뛰는 경기지만, 사실상 신재욱 혼자 2.5인분 이상은 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곧 떠오를 메시지를 기대했다.
“떴다!”
신재욱의 표정이 밝아졌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가 담은 내용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슈팅이 1 올랐습니다!]
[드리블이 1 올랐습니다!]
[패스가 1 올랐습니다!]
[대인방어가 1 올랐습니다!]
[태클이 1 올랐습니다!]
[탈압박이 1 올랐습니다!]
[특성이 성장합니다!]
[‘완벽한 무게중심(A)’이 ‘더 완벽한 무게중심(S)’로 성장합니다!]
“우와!”
신재욱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감탄했다.
그만큼 깜짝 놀랐다.
“이렇게 올라준다고?”
무려 6개의 능력치가 성장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현재 능력치가 낮으면 모를까, 성장한 능력들 모두 90대였다.
신재욱의 기대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결과였다.
“월드컵 8강에 진출했고, 좋은 활약까지 펼쳐서 이렇게 오른 건가? 대박이네.”
이처럼 엄청난 성장을 거뒀기에, 마지막에 떠오른 특성 성장 관련 메시지가 무게감이 떨어져 보였다.
그러나 이건 신재욱의 착각이었다.
신재욱의 몸싸움 능력과 드리블 능력에 큰 도움을 주던 ‘완벽한 무게중심(A)’특성.
[완벽한 무게중심]
[등급] A
[효과] 몸의 무게중심이 매우 낮아집니다. 몸싸움과 드리블하는 상황에서 놀라운 안정감을 얻습니다.
이미 좋은 효과를 보여주던 이 특성은 ‘더 완벽한 무게중심(S)’으로 성장하며 사기적인 특성이 됐다.
[더 완벽한 무게중심]
[등급] S
[효과] 몸의 무게중심이 굉장히 낮아집니다. 몸싸움과 드리블하는 상황에서 놀라운 안정감을 얻습니다. 조금 더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공중볼 경합에서도 놀라운 안정감을 얻습니다.
신재욱이 눈을 부릅떴다.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다시 한번 ‘더 완벽한 무게중심(S)’의 효과를 확인했다.
“이건 그냥 좋아진 수준이 아닌데? 완전히 다른 수준의 특성이 됐잖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좋아 보였다.
당장 몸으로 확인해볼 수가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경기중에 성장했으면 확인해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대로 다음 훈련 때 확인해봐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재욱은 동료들과 함께 다시 8강에 오른 기쁨을 누렸다.
환생 전에도 월드컵 8강에 오른 경험이 있지만, 지금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그땐 영국 국적으로 해낸 것이었고, 지금은 한국인으로서 해낸 것이니까.
난이도도 달랐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영국 대표팀 땐 어렵지 않게 8강에 진출했었지만, 이번엔 정말 힘들었다.
매 경기가 전쟁이었다.
그래서 더욱 뿌듯했다.
벅차오르는 감정의 크기도 훨씬 더 컸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계속 올라가 보자.”
* * *
월드컵 8강.
강팀이라고 평가받던 유럽의 여러 팀이 오르지 못한 곳.
그곳에 한국이 올라갔다.
「한국, 16강전에서 4 대 2로 미국 꺾고 8강 진출!」
그 사실은 전 세계 축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들 중 한국의 8강을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한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이변을 흥미로워했다.
그러나 전 세계 축구팬들은 확신했다.
“한국? 걔넨 8강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적이지. 4강은 무리야.”
“한국이 4강을 어떻게 가? 대진운이라도 좋으면 모를까, 대진표 봤어? 한국의 운은 여기까지야.”
“한국 선수들은 8강에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할걸? 솔직히 8강전 대진을 보면, 4강에 올라갈 생각은 못 할 것 같아.”
“한국이 4강은 힘들지.”
한국의 이변은 여기까지라고.
4강까지 올라가지는 못할 거라고.
이유 없는 확신은 아니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은 한국의 8강전 상대가 너무 강한 팀이라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한국, 8강에서 만날 상대는 아르헨티나!」
「신재욱의 한국 vs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 4강에 올라가는 팀은 어디가 될 것인가?」
「한국,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와 만난다! 4강의 기적 이뤄낼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
한국의 다음 상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