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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퍼어엉!
신재욱이 슈팅을 때렸고.
미국의 골망이 흔들렸다.
그 순간 5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인 거대한 경기장이 조용해졌다.
무려 4명을 제치고 넣은 골.
그 놀라운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관중들이 순간 말을 잃으며 생긴 일이었다.
큰 충격으로 인해서 생긴 침묵.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우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은 받은 충격만큼이나 커다란 함성을 뿜어냈다.
미국을 응원하던 관중들은 여전히 충격을 받은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봤고, 한국을 응원하던 관중들은 터질 듯 달아오른 얼굴로 열광했다.
― 고오오오오오올! 골입니다! 신재욱! 엄청난 골이 나왔습니다! 보고도 믿기질 않습니다! 4명을 제쳐내고 골을 집어넣다니요! 게다가 상대는 탄탄한 경기력으로 16강에 올라온 미국이지 않습니까?!
― 우와……!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플레이네요! 우리 선수들이 실수를 저지르며 선제골을 허용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지 못했었는데, 신재욱 선수가 겨우 3분 만에 분위기를 바꿔놓았습니다!
경기장엔 신재욱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팀이 실점한 뒤에, 오직 개인 능력만으로 3분 만에 터트린 동점 골.
그런데 이토록 놀라운 일을 해낸 신재욱은 전혀 기뻐하지 않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미국의 골대 안에 있는 공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달려오려는 동료들을 말리며 경기장 중앙으로 뛰기 시작했다.
“축하는 다음 골 넣고 해주세요.”
누군가에겐 거만해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신재욱을 보며 거만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신재욱이 상대 팀을 위축시키려고 일부러 심리전을 하는 것이라는걸.
‘미국 애들은 이제 신재욱이 무서워질 거야. 안 무서워하려고 해도 방금 보여준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을걸?’
‘신재욱한테 저렇게 당해보면 다음부턴 쫄 수밖에 없지. 거기다가 저 시그니처 세리머니까지 당하면 더 위축될 거야.’
‘저건 당해봐야 알아. 신재욱한테 당한 사람은 모를 수가 없지.’
한국 대표팀 선수들 모두 신재욱에게 처참하게 당해본 경험이 있었다.
사실상 훈련 때 상대 팀으로 만나면 만날 때마다 당했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미국 선수들은 이제 신재욱에게 위축될 것이라는 걸.
― 신재욱 선수가 자주 보여주는 세리머니죠! 공을 들고 경기장 중앙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저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은 상대 선수들에게 위압감을 줄 것 같은데요?
― 위압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그냥 평범한 상황에서 골을 넣은 것이라면 모를까, 4명을 제치고 넣은 골이지 않습니까? 미국 선수들은 이제 신재욱 선수가 공을 잡으면 긴장하게 될 겁니다!
경기가 재개됐다.
해설들의 말처럼 미국 대표팀 선수들은 신재욱이 공만 잡으면 잔뜩 긴장한 채로 덤벼들었다.
과하게 긴장한 선수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환생 전의 실력을 많이 되찾은 신재욱에겐 더욱 쉬웠다.
투욱! 툭!
이택현과의 2 대 1 패스로 달려드는 미국 선수 한 명을 가볍게 제쳐냈다. 이어서 신재욱은 측면에 있던 구자천과 공을 주고받았다.
이 과정으로 인해서 또다시 미국의 압박을 벗어났다.
― 신재욱 선수는 정말 영리하네요! 굳이 힘들게 탈압박을 하지 않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미국의 압박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 축구 지능이 워낙 높은 선수니까요. 그런데 미국은 이런 식으로 마구잡이로 압박을 하면 체력 소모가 클 것 같은데요?
― 지금 미국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지난 경기들과는 다릅니다. 신재욱 선수에게 먹힌 골에 큰 충격을 받은 걸까요? 이번 월드컵에서 뛰어난 조직력을 보여줬던 팀인데,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 신재욱 선수의 골 이후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밖에는 설명할 부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신재욱은 너무나도 편하게 움직였다.
미국의 압박이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마음껏 펼쳐냈다.
스트라이커인 신재욱이 중원에서도 날뛰고, 최전방에서도 날뛰자 어느새 경기의 흐름도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 명의 선수가 경기의 흐름을 매우 짧은 시간에 바꿔버린 것이다.
터엉!
밑으로 내려와서 공을 지켜낸 신재욱이 갑자기 패스를 뿌렸다.
엄청난 스피드를 내며 중앙으로 침투하는 이택현을 노린 패스였다.
― 우오오! 신재욱! 날카로운 패스입니다!
패스는 좋았다.
하지만 이택현과의 호흡이 아주 살짝 아쉬웠다.
간발의 차이로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려버렸다.
“아오! 이게 걸리네? 재욱아, 굿 패스! 다음 기회엔 내가 더 확실한 타이밍에 침투할게!”
“지금처럼 해도 돼. 내가 맞춰서 줄게.”
“그럼 나야 편하지.”
미국대표팀 선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프사이드 트랩에 아슬아슬하게 걸렸기에 망정이지, 자칫 그대로 골키퍼와의 1 대 1 상황을 내줄 뻔했다.
다행히 실점은 피하게 됐지만, 신재욱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신재욱이 날뛰지 못하게 방해해줘야 해! 지금 너무 자유롭게 놔두고 있잖아!”
“공을 뺏기질 않는 걸 어떡해? 그리고 반칙으로라도 끊으려고 하면 그 타이밍에 패스해버린다고.”
“신재욱은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닌 것 같은데……어떡하지?”
“그냥 무작정 반칙으로 끊어야 하나? 근데 그러면 카드가 나올 텐데…….”
미국 대표팀 선수들의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생각과는 다르게 신재욱이 막히질 않았다.
얄미울 정도로 잘해서 압박도 안 통하고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어댔다.
더군다나 이택현이나 손훈민, 구자천 같은 선수들까지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신재욱을 막는 것에 집중하다가 다른 곳에서 실점하게 될 수 있는 흐름이었다.
―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굉장히 좋은데요? 이대로라면 곧 골이 터질 것 같습니다!
어느새 점유율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한국은 언제 골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미국 대표팀 선수들이 가장 잘 느끼고 있었다.
“집중하자!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잊지 마! 이번 월드컵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해왔는지 기억해! 한국이 생각보다 강하긴 하지만, 정신 차리고 우리의 플레이를 하면 못 이길 것도 없어!”
“억지로라도 공격을 시도해야 해! 한국팀의 약점은 수비인 거 알지?”
“롱패스의 숫자를 늘려서 더 적극적으로 공격해보자! 분위기를 바꿔야 해!”
미국 선수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됐다.
어떻게든 공격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긴장이 풀리고, 멘탈이 회복된 결과였다.
그러나 알면서도 상황을 타개하는 건 어려웠다.
역습할 틈이 없을 정도로 한국의 공격이 매서웠기 때문이었다.
― 신재욱 선수! 멋진 터닝슛이었습니다! 골키퍼가 간신히 쳐내며 코너킥을 얻어냅니다!
― 허허! 골대와 거리가 꽤 있었는데도 과감하게 터닝슛을 시도하네요. 정말 신재욱 선수의 슈팅 자신감은 대단하네요.
― 다른 선수는 시도하지 못할 거리에서 터닝슛을 했는데, 이게 또 유효슈팅이 되긴 하네요. 미국은 팀 하워드 골키퍼가 잘 막았기 때문에 실점을 피한 거지, 골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신재욱의 슈팅 덕에 얻어낸 코너킥 기회.
한국은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몰려들었다.
이때도 신재욱을 향한 견제는 심했다.
미국 선수들은 신재욱이 공중볼 경합에서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 선수들은 이번에도 신재욱을 막느라 다른 선수를 놓쳤다.
그에 대한 대가는 컸다.
― 고오오오오오올! 한국의 골입니다! 이택현 선수입니다! 이택현 선수가 머리로 골을 넣었습니다!
― 이택현 선수도 공중볼에 강한 선수죠! 점프력도 뛰어났고, 위치선정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기석용 선수의 코너킥도 매우 날카로웠죠.
― 기석용 선수의 킥은 말이 필요 없죠.
미국의 수비는 이택현을 놓쳤고, 그 결과 실점을 했다.
이제 스코어는 2 대 1이 됐다.
* * *
전반전이 끝을 향해 달려갔다.
한국은 계속해서 좋은 공격을 시도했지만, 골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의 골키퍼 팀 하워드의 놀라운 선방 쇼가 이어지며 추가 골은 쉽게 터지지 않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두 팀 중 더 급한 쪽은 스코어에서 밀리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공을 잡으면 일단 전방으로 보냈다.
중원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며 롱패스를 뿌려댔다.
뻥축구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최전방에 있는 클린트 뎀프시와 파비안 존슨에게 연결하려고 했다.
너무나도 단순한 패턴의 공격.
웬만큼 실력이 있는 수비라면 절대 당하지 않을 미국의 공격이었지만, 한국의 불안한 수비는 이 공격에마저 한 차례 위기를 맞이했다.
― 어어? 이게 연결되나요? 홍정오 선수! 막아줘야죠! 어어?! 클린트 뎀프시! 슈팅!
― 오우! 클린트 뎀프시의 슈팅이 골대에 맞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행운이 따릅니다!
미국의 스트라이커가 때려낸 슈팅은 한국의 골대에 맞고 아웃이 됐다.
한국에겐 행운이었고, 미국에겐 불운이었다.
“워…… 다행이야. 정말 위험했어.”
신재욱조차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한국의 수비수들에게 더 자신감 있게 수비하라는 요구를 했다.
‘저렇게 뻔한 패턴에 당하면 안 되는데.’
신재욱의 눈엔 미국의 공격패턴이 하품이 나올 정도로 구식이었다.
너무나도 수준 낮은 공격 전술이었다.
그런데 그 공격이 한국에게 통하고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내가 더 잘해서 점수를 벌려야겠어. 한 2골 차이는 나야 안심이 되겠는데?’
신재욱은 더 많은 골을 넣겠노라 다짐했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이택현과 손훈민, 구자천도 그런 신재욱을 도왔다.
이들은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미국의 수비수들을 끌어들였다.
자연스레 신재욱에게 들어오는 견제도 줄었다.
더군다나 신재욱은 벌써 몇 번이나 패스 위주로 플레이했다. 공을 잡아도 돌파하거나 슈팅하는 빈도를 줄였고, 대부분 손훈민이나 이택현에게 킬패스를 보냈다.
그래서일까?
신재욱이 공을 잡고 전진하는 지금.
미국의 수비수들은 날카로운 패스가 나올 것을 예상하며 빠르게 침투하는 손훈민과 이택현을 쫓았다.
그때였다.
휘익!
신재욱이 다리를 휘둘렀다.
골대와의 거리는 20m.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기엔 꽤 먼 거리였지만.
발등으로 공을 때려내는 신재욱의 움직임엔 자신감이 드러났다.
‘넣을 수 있어.’
신재욱은 슈팅하는 순간 확신했다.
‘됐다!’
이 슈팅은 골키퍼가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걸.
그만큼 잘 맞은 슈팅이었다.
실제로 신재욱의 발을 떠난 공은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더군다나 공에 실린 힘도 강력했다.
쉬이이이잇!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공은 골대와 가까워지자 밑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무회전 슛이라고 불리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했을 때 나오는 무브먼트.
미국의 골키퍼 팀 하워드는 오늘 몇 번이나 슈퍼세이브를 해냈지만.
지금만큼은 뻣뻣하게 굳은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