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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석용이 낮고 빠르게 찔러준 공.
그 공을 바라보며 신재욱은 계산을 마쳤다.
‘이택현의 침투 타이밍이 좋아.’
그의 넓은 시야에는 동료들의 움직임이 훤히 들어오고 있었고, 그중 가장 좋은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는 건 이택현이었다.
지금 이택현에게 공을 연결할 수만 있다면 아주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주는 게 쉬운 타이밍은 아니었다.
공을 잡고 패스하려고 하면 늦는다.
‘원터치로 보내야 해.’
원터치 패스를 해야만 이택현의 침투 타이밍에 맞출 수가 있다.
또 그래야만 상대 수비수들이 반응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패스를 넣을 수가 있다.
‘충분하지.’
신재욱은 다리를 휘둘렀다.
발을 정교하게 움직여 굴러오는 공에 회전을 먹였다.
원하는 위치는 벨기에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파고드는 이택현의 바로 앞.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끝까지 바라보며, 신재욱은 미소 지었다.
‘복수해준 보답이다. 택현아.’
계산했던 것과 거의 차이가 없이 날아갔다.
이택현이라면 너무나도 쉽게 받아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정도의 좋은 패스였다.
실제로 이택현은 휘어져 날아오는 공을 가슴으로 떨어뜨린 뒤, 무릎으로 한 번 더 건드리고, 곧바로 발리슛을 때려냈다.
이 세 개의 동작이 나온 시간은 매우 짧았다.
벨기에의 수비수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골키퍼인 티보 쿠르투아도 반응하지 못했다.
손을 뻗어보지도 못한 채 날아오는 공을 바라봤다.
철썩!
공이 골망을 흔드는 경쾌한 소리.
그 소리와 동시에 한국의 해설진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 우와아아아아! 골입니다! 고오오오올! 이택현입니다! 신재욱과 이택현 듀오가 또다시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 와! 이걸 또 4 대 4 동점을 만들어내네요! 대한민국! 정말 강합니다!
마음을 졸이며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의 축구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 됐다!!!! 됐어!!!!!
└ 골!!!!!!!!!!!!!!!!!!!!!
└ 워!!!!!!! 들어갔다!!! 바이에른 뮌헨 듀오는 진짜ㅋㅋㅋㅋㅋ 얘넨 너무 잘한다ㅋㅋㅋㅋ
└ 택현이랑 재욱이 모두 진심 사랑스럽다ㅠㅠㅠㅠㅠ 이걸 동점을 만들어?
└ 벨기에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치고받는 팀이 있다????
└ 신재욱이랑 이택현은 정말 클래스가 다르다;;; 너무 잘해ㅠㅠㅠㅠ
└ 이제 4 대 4야ㅋㅋㅋㅋ 골 잔치네ㅋㅋㅋㅋㅋㅋ 이 경기 누가 이기려나? 진짜 모르겠네.
└ ㅋㅋㅋㅋ 이거 그냥 누가 더 골 많이 넣냐 게임이구만ㅋㅋㅋ
└ 우리 대표팀도 화력만큼은 오지네ㄷㄷㄷ 솔직히 공격진만 보면 벨기에한테 전혀 안 밀리는 듯.
└ 더 강한 거지. 중원에서 지원이 센 편이 아닌데도 골을 엄청 잘 넣잖아. 그냥 신재욱이랑 이택현이 사기임.
이택현의 골이 터지며 4 대 4 스코어가 된 지금.
남은 시간은 추가시간을 포함해도 겨우 13분 정도였다.
양 팀 선수들 모두 승리를 바라고 있었고, 그에 맞게 공격적인 운영을 했다.
서로가 가장 치열하게 맞붙는 장소는 중원이었다.
― 구자천과 지동운이 무사 뎀벨레의 전진을 막습니다! 윙어로 나온 두 선수이지만, 밑으로 내려와서 싸워주고 있습니다. 이런 플레이는 아주 좋죠?
― 맞습니다. 지금처럼 1골이 중요한 상황에선 중원에서의 싸움을 이겨내야 하거든요? 윙어들이 이렇게 내려와서 함께 싸워주면 기석용 선수와 김국영 선수에겐 큰 힘이 될 겁니다!
후반전에 투입된 구자천, 지동운을 비롯해 신재욱과 이택현마저도 밑으로 내려와서 상대를 압박하고, 연계를 도왔다.
이때, 가장 빛난 선수는 신재욱이었다.
― 우와! 신재욱 선수! 벨기에 선수 2명을 달고도 공을 지켜냅니다! 이런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주는 거죠? 이 선수는 공이 발에 달라붙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 엄청나네요. 벨기에의 무사 뎀벨레 선수도 탈압박이 대단한 선수로 유명한데, 그보다도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신재욱 선수의 탈압박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은데요?
― 이미 신재욱 선수의 볼 키핑 능력과 탈압박 능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죠! 전 이 선수가 공을 뺏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해설들의 말처럼 신재욱은 벨기에 선수 2명을 상대로도 공을 지켜냈다.
이런 모습을 한두 번 보여준 게 아니고, 벌써 여러 번 보여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팀에겐 큰 도움이 됐다.
지금도 그랬다.
툭! 투욱!
신재욱은 2명에게서 둘러싸인 상태에서 버티는 것으로도 모자라 빠져나오기까지 했다.
― 신재욱 선수! 엄청난 움직임입니다! 2명의 선수에게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페인팅을 준 뒤에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돌파해냈습니다! 무사 뎀벨레 선수에게 알까기를 제대로 먹여주네요!
마루앙 펠라이니와 무사 뎀벨레에게 압박을 받으면서도 기어코 무사 뎀벨레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집어넣으며 압박을 벗어나는 움직임.
보는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내는 플레이였다.
신재욱의 드리블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전진 패스를 뿌려도 되지만, 지금은 직접 공을 운반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 신재욱 선수가 전진합니다! 패스하지 않고 직접 끌고 가네요! 혼자 해볼 생각인 걸까요?
― 신재욱 선수라면 충분히 이기적으로 플레이해도 되죠! 차라리 이 방법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어차피 신재욱 선수는 공을 거의 뺏기질 않으니까요! 이왕이면 직접 슈팅까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선수는 때리는 족족 유효슈팅을 만들어주는 선수거든요!
2명의 압박을 벗어났기 때문에 슈팅할 수 있는 타이밍이 나왔다.
하지만 아직 거리가 멀었다.
제아무리 신재욱이라고 해도 정확하게 골대 구석을 노리기엔 어려운 거리.
툭!
그래서 신재욱은 한 번 더 전진했다.
그러자 벨기에의 수비수 다니엘 판바위턴이 튀어나오며 공간을 좁혀 버렸다.
신재욱이 슈팅할 각을 좁히는 좋은 수비였다.
같은 팀 소속이기에 신재욱의 타이밍에 대해서 잘 아는 선수다운 수비.
그러나 그런 다니엘 판바위턴의 수비는 신재욱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다니엘 판바위턴이라면 이렇게 수비할 것 같았어.’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훈련이었다면 과감하게 슈팅을 시도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신재욱은 슈팅하는 척 페인팅을 준 뒤 갑자기 속도를 높였다.
신체 능력이 떨어져 스피드가 더 느려진 다니엘 판바위턴의 약점을 노린 돌파 시도였다.
자주 보던 패턴이 아니었기에, 다니엘 판바위턴은 당황했다.
자연스레 반응속도도 느렸다.
“엇?!”
다니엘 판바위턴이 ‘엇’하는 순간, 신재욱은 이미 그를 지나쳤다.
페인팅과 스피드를 이용한 깔끔한 돌파였다.
‘속도 능력치가 85 정도 되니까 이런 것도 되네.’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돌파했기에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좋은 슈팅을 때려낼 정도의 체력이 남아있었다.
이제 골대와의 거리는 17m.
신재욱이 아주 좋아하는 거리였다.
슈팅을 시도할 때마다 높은 확률로 골을 넣는 거리였으니까.
그래서 신재욱은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자신감이 담긴 슈팅이었고, 발등으로 때려낸 공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 * *
경기 종료까지 12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신재욱의 슈팅이 나왔다.
그것도 17m라는 꽤 가까운 거리에서.
― 신재욱! 슈우우우우웃!
― 때렸습니다!
한국의 해설들은 흥분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실시간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축구팬들 역시 눈을 부릅뜨며 공의 궤적을 쫓았다.
신재욱이 오른발로 때려낸 공은 처음엔 벨기에의 골대 중앙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금방 궤적이 바뀌었다.
중앙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공이 바깥쪽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휘어지던 공은 이제는 골대 구석으로 휘어져 들어갔다.
발등으로 공을 아주 강하게 때려냈을 때 생기는 무브먼트였고, 골키퍼로서는 막을 수가 없는 슈팅이었다.
공은 아무런 방해 없이 벨기에의 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 고오오오오오오올! 신재우우우우욱! 신재욱 선수의 슈팅이 그대로 빨려 들어갑니다!
― 우와아아아! 엄청납니다! 정말 엄청난 슈팅입니다!
한국의 해설들이 경악해서 소리를 질렀다.
실시간으로 경기를 보던 한국 축구팬들 역시 흥분한 채로 소리를 질러댔다.
“우오오오오! 들어갔다! 신재욱이 넣었어!”
“신재욱 저 미친놈이 해트트릭했어!”
“와하하하! 이게 뭔 슈팅이야? 무슨 저렇게 휘어 들어가?”
“이건 못 막지! 와! 한국이 벨기에를 잡나?”
“미친! 개 잘하네!”
관중석에서도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브라질까지 와서 한국 대표팀을 응원해주던 한국 축구팬들은 이제 목이 쉰 채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악!
한국 대표팀 선수들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하며 신재욱에게 달려들었다.
신재욱은 세리머니를 할 틈이 없었다.
이미 동료들이 주변을 둘러싼 채로 헹가래를 치기 시작했으니까.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내려줘도 된다니까요?”
몇 번이나 허공에 떠오른 신재욱은 흥분한 동료들을 말려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나도 모르겠다.”
신재욱은 그냥 지금 상황을 즐겼다.
동료들의 반응이 과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팀에게 아주 귀중한 골을 넣은 건 맞으니 그러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헹가래는 심판이 다가와 말릴 때까지 이어졌다.
“다들 자리로 빨리 돌아가! 경기 아직 안 끝났어!”
다시 뛸 준비를 하라는 심판의 말에 한국 선수들은 신재욱을 내려놓곤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홍정태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중해! 남은 시간 동안 지금 스코어 지킬 거야!”
현재 스코어를 지키라는 감독의 지시.
선수들은 그 지시를 곧바로 알아들으며 다른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감독님 말씀 들었지? 수비적으로 하면서 지금 점수 지키자!”
“다들 힘들어도 조금만 더 뛰자! 거의 다 왔어!”
“10분도 안 남았어! 이것만 버티면 벨기에 잡고 조 1위로 올라가는 거야!”
“지금 스코어 지키라는 감독님 말 들었지? 우린 할 수 있어! 페널티킥이랑 프리킥 내주는 것만 조심하면서 어떻게든 막아보자!”
체력이 바닥난 시간대였지만, 한국 선수들은 애써 소리를 질러대며 힘을 내려고 했다.
반면 벨기에 선수들의 표정엔 다급함이 드러났다.
이들 모두 경기가 10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한국에게 패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상상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던 일이 현실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경기가 재개된 이후, 10분 동안 펼쳐진 벨기에의 공격은 벨기에답지 않았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정교했던 움직임과 복잡한 패턴은 사라졌고, 뻔하고 투박한 공격만이 이어졌다.
물론 그런 공격이었음에도 위협적이었다.
투박해지고 뻔해졌다고는 해도, 그래도 벨기에의 공격이었으니까.
그러나 한국 대표팀은 잘 막아냈다.
골키퍼를 포함한 11명의 선수가 전부 페널티박스 안팎에서 자리 잡은 채 오로지 수비에만 집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몇 번이나 막아냈을까?
삐이이이익!
마침내 심판의 휘슬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잔디 위에 드러누웠다.
이들에겐 서 있을 힘조차 남지 않았다.
신재욱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많이 뛴 그였기에 다리의 힘이 풀려버렸다.
다만 표정은 밝았다.
승리했다는 것도 기뻤지만,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들의 내용을 보며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감독님 찾아가길 잘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