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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관중석이 웅성거렸다.
아직 전반전 37분인데도 불구하고, 벨기에가 선수를 교체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명이 아니고, 무려 2명이나.
“뭐야? 2명을 교체한다고? 이렇게 빨리?”
“벨기에가 제대로 할 생각인가 본데? 한국한테 2 대 1로 밀리고 있어서 화가 났나 봐.”
“아무리 그래도 2명을 한 번에 교체한다고? 저건 웬만한 자신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선택일 텐데.”
“벨기에가 제대로 승부수를 띄웠구나!”
신재욱의 시선은 새로 들어오는 선수들에게로 향했다.
“케빈 더브라위너, 드리스 메르턴스. 되게 잘하는 선수들이 들어오네.”
케빈 더브라위너는 아직 완전히 꽃피우지 않은 재능이었다.
하지만 환생을 한 신재욱은 알고 있었다.
케빈 더브라위너의 실력만큼은 지금 시기에도 거의 완성되어 있다는 것을.
‘다음 시즌에 볼프스부르크에서 활약하고, 그다음 시즌부터는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꾸준히 잘하며 월드클래스가 되는 선수지. 그리고 그렇게 가는 곳마다 빨리 적응하고 잘하는 것도 다 실력이 있어서 가능한 거야.’
조심해야 하는 선수였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한 패스를 뿌려대는데, 많이 뛰며 수비 가담까지 잘하는 선수다.
게다가 슈팅도 매우 날카롭다.
한국의 수비진이 매우 막기 어려운 선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들어온 드리스 메르턴스 역시 굉장한 선수였다.
‘발이 빠르고, 드리블 실력이 엄청나게 좋은 선수지.’
드리스 메르턴스의 드리블은 유럽의 수비수들에게도 매우 잘 통할 정도로 뛰어나다.
더군다나 그에겐 날카로운 슈팅 능력도 있었다.
즉, 빠르고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한국 수비수들에겐 아주 위험한 선수였다.
― 케빈 더브라위너 선수와 드리스 메르턴스 선수를 투입했다는 건 벨기에가 더욱 공격적으로 경기 운영을 하겠다는 것이겠죠?
― 그렇습니다. 벨기에는 이제 더욱 공격적으로 하면서 골을 넣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새로 투입된 두 명의 선수는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 케빈 더브라위너! 엄청난 패스입니다!
짧은 패스를 주고받던 케빈 더브라위너는 갑자기 전방을 향해 강력한 스루패스를 뿌려냈다.
한국의 수비수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타이밍에 나온 패스였다.
그리고 그런 케빈 데브라위너의 패스를 받은 선수는 드리스 메르턴스였다.
단숨에 뒷공간을 내준 한국 수비수들은 깜짝 놀라며 복귀하려 했지만.
드리스 메르턴스는 이미 한국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한 상태였고, 슈팅까지 때려내고 있었다.
퍼엉!
드리스 메르턴스는 훌륭한 킥력을 지닌 선수답게, 골망을 찢을듯한 강력한 슈팅으로 정석룡 골키퍼를 뚫어냈다.
― 아…… 들어갔습니다…! 벨기에의 드리스 메르턴스 선수가 동점 골을 터트렸습니다!
― 벨기에의 선수 교체가 제대로 먹혀들었네요. 새로 투입된 케빈 더브라위너 선수와 드리스 메르턴스 선수가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때였다.
동점 골을 터트린 드리스 메르턴스가 골대 안에 있는 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경기장 중앙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벨기에의 팬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저거 한국의 신재욱 세리머니 따라 하는 거 맞지?”
“맞는 것 같은데? 큭큭큭큭! 드리스 메르턴스 저 녀석, 되게 웃긴 놈이라니까?”
“하하하! 한국팬들은 열받겠는데?”
“신재욱이 가장 화나지 않을까?”
경기를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눈치챌 수 있었다.
드리스 메르턴스가 신재욱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모습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는 한국 축구팬들은 화를 참지 못했다.
└ 저 새끼 뭔데 신재욱을 도발하냐? 드리스 메르턴스? 듣보잡 아님???
└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듣보잡은 아니야. 나폴리에서 잘하고 있는 선수거든. 근데 그래도 우리 재욱신은 건들면 안 되지!!!!
└ 왜 도발을 하고 난리야? 짜증 나게.
└ 아…… 이 경기는 꼭 이겼으면 좋겠다. 도발은 신재욱이 당했는데, 내가 다 자존심이 상하네.
└ 아오!!!!! 우리 수비수들 도대체 뭐하냐고!!! 자동문처럼 뚫리니까 저딴 도발이나 당하지!!!!
└ 드리스 메르턴스인지 메르텐스인지 뒤지고 싶냐!!!
경기장에 있던 한국 축구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경기장 중앙으로 뛰는 드리스 메르턴스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야유는 잘 들리지 않았다.
벨기에 팬들이 만들어낸 함성의 크기가 더 컸으니까.
같은 시각.
도발을 당한 당사자인 신재욱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는 드리스 메르턴스의 도발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경기에서 승리할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뒷공간을 너무 쉽게 내주는 경향이 있어. 이럴 바엔 차라리 라인을 내리는 게 낫겠는데?’
신재욱이 홍정태 감독을 바라봤다.
다행히 홍정태 감독은 이미 수비수들에게 라인을 내리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좋은 판단이야. 지금 같은 상황에선 차라리 라인을 내려서 뒷공간을 내주지 않는 게 더 안전해.’
그때였다.
근처에 있던 이택현이 말을 걸어왔다.
“재욱아, 드리스 메르턴스가 너 도발하는 거 봤지?”
“어. 봤어.”
“내가 골 넣어서 복수해줄게.”
“난 아무렇지 않은데 네가 왜 복수를 해?”
“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도 나는 아니야. 내가 골 넣고 저놈 앞에 가서 제대로 도발할 거야.”
“카드 받을 정도로는 하지 말고.”
“당연하지. 전반전은 거의 다 끝났으니까 후반전 들어가서 보여줄게.”
“기대할게.”
신재욱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굳이 이택현을 말리지 않았다. 어찌 됐건 골을 넣으면 팀에게 좋은 일이니까.
동료의 동기 부여를 사그라뜨릴 필요는 없었다.
‘근데 진짜 골 넣고 카드 받는 거 아니야?’
* * *
경기가 재개된 이후, 전반전은 금방 끝이 났다.
선수들 모두 휴식을 취한 뒤, 후반전을 위해서 다시 경기장에 입장했다.
그 과정에서 드리스 메르턴스가 도발을 해왔다.
“이봐, 신재욱! 내 세리머니 어땠어?”
그는 굳이 세리머니에 관해서 물어보며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신재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멋있던데?”
“하하하! 네 걸 따라 했다고 멋있다고 해주는 거야?”
“알아서 생각해.”
“너무 까칠한 거 아니야? 설마 화났어? 내가 네 세리머니를 따라 해서 화난 거야? 아니지?”
드리스 메르턴스는 계속해서 말을 걸며 깝죽거렸지만, 신재욱은 상대해주지 않았다.
손을 휘휘 내저으며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너랑 떠들어줄 여유가 없어.’
드리스 메르턴스의 도발은 신재욱에게 전혀 영향이 없었다.
현재 신재욱의 머릿속은 너무 복잡해서 같잖은 도발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생각하자. 어떻게 하면 벨기에를 잘 공략할 수 있을까.’
신재욱은 승리할 방법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 중이었다.
수비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든든해서가 아니었다.
너무 불안해서 그냥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벨기에를 공략하고, 여러 개의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후반전이 시작됐으니까.
― 전반전에 2 대 2 동점으로 치열한 경기를 펼친 대한민국과 벨기에! 두 팀 중 승리할 팀이 이번 후반전에는 가려지게 됩니다!
신재욱은 생각을 비웠다.
단, 이길 방법만큼은 확실하게 생각해냈다.
‘내가 더 잘해주면 돼.’
자신이 더 잘해서 벨기에의 수비를 흔들고, 직접 골을 넣거나 동료에게 골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그걸 반복해서 실점보다 득점을 더 많게 하는 것.
단순하지만, 결국 그게 승리를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 신재욱 선수에게 공이 잘 안 가네요. 우리 선수들이 벨기에의 강한 압박 때문에 신재욱 선수에게 공을 연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벨기에 선수들은 정말 잘하네요. 잘 보시면 이 선수들은 신재욱 선수에게 공이 흐르는 걸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의 공격은 신재욱 선수를 거쳤을 때 가장 강한데, 그런 상황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벨기에는 신재욱이 공을 잡지 못하게끔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나 신재욱은 수많은 경험이 있는 선수답게 답을 찾아냈다.
상대 선수들의 압박을 피해내며 밑으로 내려가서 공을 받아냈다.
툭! 툭!
동료들과 원터치 패스로 공을 주고받던 신재욱은 갑자기 몸을 틀며 공을 강하게 차 냈다.
퍼어엉!
측면으로 뿌려주는 패스였다.
오프더볼 상황에서 침투가 좋은 손훈민을 정확히 노린 패스였다.
벨기에의 미드필더 무사 뎀벨레는 패스를 끊어내기 위해서 발을 뻗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끊어내기엔 신재욱의 패스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 신재욱! 좋은 패스입니다! 손훈민이 잡습니다!
손훈민은 킥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많은 축구팬들은 이 선수가 슈팅 능력만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패스 능력도 꽤나 좋은 선수였다.
지금도 그랬다.
양발을 모두 잘 쓰는 손훈민은 벨기에의 측면수비수 반덴 보레를 헛다리 짚기로 제쳐낸 뒤, 정교한 크로스까지 뿌려냈다.
벨기에의 페널티박스 안엔 스트라이커인 신재욱이 없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190cm에 가까운 큰 키를 지녔고, 놀라운 신체 능력까지 지닌 이택현이 있었으니까.
터어엉!
빠르게 침투하며 점프한 이택현은 이마로 날아오는 공을 찍어 내렸다.
벨기에의 수비수 니콜라스 롬바르츠가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택현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
철썩!
벨기에의 골망이 크게 흔들렸다.
워낙 강력한 헤더였기에, 벨기에의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우와아아아아~! 이택현 선수의 골입니다! 완벽한 헤딩이었습니다!
― 손훈민 선수의 크로스도 매우 좋았고, 이택현 선수의 움직임과 헤더 모두 완벽했네요! 또다시 벨기에의 수비를 뚫어내는 대한민국입니다!
그때였다.
골을 넣은 이택현이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이택현을 향해 신재욱이 크게 소리쳤다.
“택현아! 카드 안 받을 정도로만!”
다행히 대답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
이택현의 목적지는 드리스 메르턴스의 앞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이택현은 백덤블링을 하기 시작했다.
총 3번의 백덤블링.
누가 봐도 상대를 도발하는 행동이었다.
― 하하하하! 이택현 선수! 드리스 메르턴스 선수 앞에서 백덤블링 세리머니를 하네요? 이건…… 조금 전에 신재욱 선수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며 도발했던 것에 대한 보복성 세리머니 같죠?
― 하하!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신재욱 선수와 워낙 친한 이택현 선수니까요.
그리고 강렬한 이택현의 도발에 벨기에의 선수들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붉어진 이들은 이택현에게 화를 냈고, 주심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택현! 한 번만 더 이런 행동을 하면 카드를 줄 거야. 알겠어?”
“조심하겠습니다! 너그럽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심의 경고를 받은 이택현은 능글맞게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신재욱을 향해서.
“재욱아! 이 이택현 님께서 복수해줬다! 봤어? 이 이택현 님이 드리스 메르턴스 앞에서 슈퍼 파워 3연속 백덤블링 한 거 봤냐고!”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이택현이 한 말은 TV로 경기를 보던 축구팬들에게까지 정확히 들렸다.
한국의 각종 포털사이트엔 실시간으로 이택현의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댓글 창도 폭발적이었다.
한국 축구팬들은 이택현의 특이한 성격에 대해서 떠들며 웃음을 터트렸다.
경기장에 있던 한국 축구팬들 역시 커다란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오직 신재욱만 웃지 못하고 있었다.
“행동은 저 친구가 했는데, 이상하게 내가 더 창피하네.”
그렇게 중얼거린 신재욱은 머리 색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