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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택현이 움직였다.
이타적으로 플레이했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 이택현 선수! 과감하게 전진합니다! 오오! 이택현 선수! 좋은 드리블입니다! 수비수의 타이밍을 완전히 뺏어버렸네요!
측면으로 빠져있던 이택현은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했고, 성공했다.
이어서 더 깊숙하게 드리블하며 전진했다.
수비수들을 끌어내는 좋은 움직임이었다. 알제리 수비수들은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택현이 드리블뿐만 아니라 좋은 양발 슈팅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 이택현 선수! 때리나요?
― 이택현 선수라면 충분히 골을 넣을 수 있는 거리죠!
해설들이 기대감을 드러내며 소리쳤지만, 슈팅 타이밍은 나오지 않았다.
알제리의 수비수 2명이 각을 좁히며 괜찮은 수비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때.
툭!
이택현은 수비수들의 키를 넘기는 로빙패스를 시도했다.
침투하는 신재욱을 노린 킬패스였다.
― 우오오오! 패스입니다! 신재욱! 공을 받나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
신재욱은 그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슈팅하기에 좋은 자세는 아니었지만, 지금이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면 튀어나오는 골키퍼에게 방해받거나 근처에 있는 수비수에게 막힐 수 있으니까.
‘지금 슈팅하는 게 나아.’
공중에 있는 공을 때려내는 슈팅이었다.
당연히 좋은 슈팅을 때려내기엔 더욱 어렵다.
그랬음에도 신재욱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겐 더 어려운 슈팅도 성공시켰던 경험이 많았으니까.
퍼엉!
발등과 공이 만나며 듣기 좋은 타격음이 터졌다.
잘못 맞으면 공이 하늘로 붕 뜰 수도 있지만, 신재욱의 슈팅은 그렇지 않았다. 높게 뜨지 않고 낮게 깔린 채로 쏘아졌다.
“헉!”
알제리의 골키퍼 라이스 므볼리의 눈이 커졌다.
몸을 날려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공이 이미 골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 골! 골입니다! 역시 신재욱! 골키퍼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강력한 발리슛으로 골을 터트렸습니다!
신재욱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어시스트를 해준 이택현에게 엄지를 들어 올렸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시간이 아까웠기에 곧바로 공을 들고 경기장 중앙으로 달렸다.
― 완벽한 마무리였습니다! 신재욱 선수는 지금처럼 기회가 오면 바로 골을 넣어주는 선수죠!
― 신재욱 선수가 세리머니를 생략하네요! 지난 러시아전에서도 이런 모습을 몇 번이나 보여줬었죠! 이렇게 신재욱 선수가 세리머니를 생략하는 이유는 이미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죠?
― 그렇습니다. 더 많은 골을 넣고 싶어서라고 말했었죠. 멋진 이유입니다!
― 러시아전에서 무려 4골을 넣었던 신재욱 선수가 알제리전에서도 시동을 걸었습니다!
한국의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양쪽 윙어로 나온 이청영과 손훈민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이택현이 측면으로 빠져서 크랙 역할을 소화해줬다.
― 이택현 선수! 드리블이 정말 위협적이네요! 알제리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기어코 돌파를 해내네요!
신재욱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손훈민, 이택현과 자리를 바꿔가며 알제리 수비수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계속해서 밑으로 내려오며 중원 싸움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자 알제리는 전처럼 한국을 압도하지 못했다.
― 신재욱 선수와 이택현 선수가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놀랍네요! 팀에서 가장 어린 두 명의 선수가 이렇게까지 큰 영향력을 보여주다니요!
― 이택현 선수의 돌파가 너무 무서우니까, 알제리 선수들이 라인을 쉽게 올리지 못하고 있죠? 그리고 신재욱 선수는 정말 실수가 없네요. 정확하게 공을 받고, 뿌려주는데, 또 공은 절대 뺏기질 않습니다. 원톱 스트라이커가 이런 역할까지 해주면 동료들은 너무 편해지죠!
낮았던 한국의 볼 점유율도 조금씩 높아졌다.
― 신재욱이 공을 받습니다! 한 명을 가볍게 제쳐내는 신재욱!
최근 월드클래스에 올랐다고 평가받게 된 신재욱은 확실한 클래스를 보여줬다.
공을 가졌을 때와 가지지 않았을 때 모두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답게 모든 상황에서 알제리를 위협했다.
게다가 이택현은 그런 신재욱을 철저하게 보조해줬다.
― 이택현 선수와 2 대 1 패스를 주고받으며 침투하는 신재욱 선수입니다!
― 두 선수의 호흡은 대표팀에서도 여전하네요!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여주던 그 모습이죠! 알제리의 수비진을 너무나도 쉽게 흔들고 있습니다!
깊게 침투한 신재욱은 슈팅을 때릴 것처럼 다리를 짧게 휘둘렀다.
반 박자 빠른 타이밍의 슈팅.
다만 알제리의 수비수들은 이런 신재욱의 슈팅 스타일을 이미 연구해왔다.
그래서 빠르게 반응했다.
그러나 슈팅은 속임수였다. 신재욱은 알제리의 수비수가 발을 뻗는 타이밍에 맞춰서 옆으로 이동했다.
수비수는 발을 뻗는 바람에 더는 신재욱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퍼엉!
왼발로 정확하게 때려낸 슈팅이었다.
날카롭게 휘어진 공은 알제리의 골대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 동점 골입니다! 신재욱 선수가 기어코 동점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수비수를 앞에 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공을 컨트롤하며 정확한 슈팅을 때려내네요! 역시 월드클래스답습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알제리 선수들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신재욱과 이택현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상대하니 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어려운 상대였다.
‘너무 잘하잖아…? 어떻게 막아야 하지?’
‘신재욱 하나로도 힘든데, 이택현까지 이렇게 잘하면…….’
‘이택현이랑 신재욱은 드리블을 왜 저렇게 잘하는 거야? 마음먹고 드리블하니까 반칙하지 않고서는 막을 수가 없는데…?’
‘위험해…… 신재욱이 골 맛을 보기 시작했어……!’
반면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마음속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알제리도 이길 수 있겠는데?’
‘재욱이랑 택현이가 완전 잘해주고 있어. 점수도 벌써 동점이 됐고. 이러면 충분히 할만하지!’
‘흐흐! 16강 가는 건가?’
‘죽기 살기로 뛰어서 1인분만 하자. 그러면 이길 것 같아.’
* * *
신재욱과 이택현이 마음먹고 공격에 집중하자, 알제리의 수비는 비상이었다.
이들은 신재욱과 이택현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도 막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러자 자연스레 다른 한국 선수들에게 기회가 생겼다.
― 손훈민! 슈팅! 우와아아아! 들어갔습니다! 손훈민 선수도 슈팅력이 굉장한 선수죠! 분데스리가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슈터이지 않습니까?
― 이건 알제리가 너무 손훈민 선수를 편하게 놔뒀네요! 신재욱 선수랑 이택현 선수를 막는 데에만 집중한 것 같네요! 알제리의 수비수들은 머릿속이 더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신재욱 선수와 이택현 선수를 계속 막자니, 지금처럼 손훈민 선수가 편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또 위험해지거든요!
손훈민의 골이었다.
페널티박스 바로 바깥 지역에서 때려낸 슈팅이 그대로 골로 연결된 것이었다.
― 스코어는 3 대 2가 됐습니다! 2 대 0이었던 스코어를 3 대 2로 역전한 한국! 너무나도 대단합니다!
― 경기 재밌네요! 전반전에만 5골이 나왔습니다!
손훈민에게 골을 허용했지만, 알제리는 여전히 신재욱과 이택현을 향한 경계를 풀지 못했다.
그만큼 두 선수가 보여준 실력은 알제리 선수들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됐다.
그러자 계속해서 손훈민과 이청영에게 기회가 생겼고, 후반전부터는 더욱 좋은 기회가 생겼다.
― 손훈민 크로스! 크로스가 조금 긴데요? 오! 이청영 선수를 본 거군요! 이청영 슈우우웃! 아! 아쉽습니다! 이청영 선수의 슈팅이 빗맞았네요!
잠시 후, 뒤에 서 있던 기석용에게도 좋은 슈팅 기회가 생겼다.
기석용은 대표팀 내에서 슈팅력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수답게 망설임 없이 중거리 슈팅을 때려냈다.
퍼어엉!
발에 제대로 걸린 슈팅이었다.
더군다나 슈팅을 때린 선수가 기석용이었다.
슈팅 능력만큼은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선수답게, 공에 실린 힘은 굉장했다.
그러나 알제리 골키퍼의 집중력도 상당했다.
기석용의 슈팅 타이밍을 읽은 그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190cm가 넘는 알제리의 골키퍼 라이스 므볼리.
그는 기어코 손끝으로 기석용이 때려낸 공을 건드리는 것에 성공했다.
투욱!
강렬하게 쏘아지던 공은 급격히 힘을 잃었다.
라이스 므볼리 골키퍼는 손끝에 맞고 튕긴 공을 향해 움직였다. 한국의 선수가 공을 건드리기 전에 빨리 공을 잡아 지켜내야만 했다.
그러나 한 번 몸을 날린 상태였기에, 공을 잡으러 가는 속도가 빠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위치선정 능력을 지닌 선수가 기다렸다는 듯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툭!
알제리의 골키퍼가 공을 잡기 직전.
신재욱의 발끝이 공을 툭― 찍어 차올렸다.
골키퍼의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만 가볍게 띄워 찬 슈팅이었다.
그 공은 알제리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골대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 고오오오오오오올! 이번에도 신재욱 선수입니다! 지금 몇 골째인가요? 세, 세 번째 골입니다! 해트트릭입니다!
― 알제리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신재욱! 기가 막힌 위치선정 능력을 보여주며 추가 골을 터트렸습니다! 이제 스코어는 4 대 2가 됐습니다! 대한민국이 러시아에 이어서 알제리까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 중심엔 신재욱이라는 천재가 당당히 서 있네요!
경기장이 달아올랐다.
한국 선수들은 미친 듯 흥분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신재욱은 평소처럼 공을 들고 경기장 중앙으로 향하려고 했지만, 동료들이 둘러싸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관중들의 반응도 대단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브라질에서 펼쳐지는 월드컵인 만큼 한국인뿐만 아니라 브라질인들도 경기장에 많았는데, 이들도 신재욱의 실력을 인정하며 뜨거운 함성을 질러댔다.
“으어어어어! 고오오오오오올! 재욱아! 됐다! 네 덕에 됐어! 우리 16강 갈 수 있다고!”
“네가 오늘도 해냈어! 재욱아! 넌 내가 정말 형으로 모신다!”
“어떻게 딱 골키퍼가 튕겨낸 곳에 딱 서 있냐? 재욱이를 보면 위치선정이 그냥 인자기가 따로 없다니까?”
“내가 볼 땐 인자기보다 위치선정 능력이 더 좋은 것 같아.”
기뻐하는 동료들을 보며, 신재욱도 미소를 지었다.
들고 있던 공도 내려놨다.
자신보다 더 기뻐해 주는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때.
신재욱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체력이 1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올랐습니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들 때문이었다.
‘월드컵답네.’
대단한 성장 속도였다.
이미 해트트릭을 했지만, 더 많은 골을 원하게 될 정도로.
‘아무래도 오늘 욕심 좀 더 내야겠는데?’
그래서 신재욱은 다짐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많은 골을 넣겠다고.
알제리 선수들이 충격받을만한 스코어를 만들어주겠다고.
‘미안하지만 내 성장이 우선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