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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재 스코어 0 대 1.
카타르가 1점 앞서는 상황.
그러나 신재욱은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조건 역전해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쓴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피곤해지겠네.’
이제부턴 카타르의 침대축구가 시작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쟤네 대놓고 드러누울 것 같은데.’
카타르는 중동 국가 중에서도 특히나 침대축구를 심하게 하는 나라였다.
매번 그런 팀이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히 다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삐이익!
경기가 재개됐다.
신재욱의 예상대로 카타르는 갑자기 수비적인 운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수비적인 게 아니었다.
심각할 정도로 수비에만 치중했다.
― 카타르가 너무 웅크리고 있는데요? 이 정도면 공격할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 아…… 그렇습니다. 아직 전반전인데 말이죠? 벌써 이런 전술을 보여주는 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카타르는 이제 겨우 전반전이었음에도 수비 진영에서 공을 돌리는 것을 반복했다.
대놓고 시간을 끄는 플레이였다.
그런 카타르를 상대로 한국 대표팀은 공을 뺏기 위해 전방 압박을 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카타르의 침대축구가 제대로 시작됐다.
― 어어? 방금은 별다른 접촉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카타르 선수, 왜 넘어진 거죠?
― 아…… 이건 시간을 끌겠다는 거죠.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역시 별다른 접촉이 없었네요! 이런 상황에선 주심이 경기를 빠르게 재개해줄 필요가 있겠는데요? 어? 의료진까지 들어오네요……?
해설들의 말처럼 별다른 접촉이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바닥에 누워버린 카타르의 수비수는 마치 팔이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재욱은 심판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훌륭하신 심판님, 저거 엄살이에요. 딱 보면 아시죠? 쟤들 저렇게 시간 끄는 거 이따 추가시간에 포함해주실 거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신재욱은 확신했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더 반복되면 심판이 카타르의 시간 끌기를 모른 척하지 않을 거라는 걸.
‘뒷돈을 먹은 게 아닌 이상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
이처럼 신재욱은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실시간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축구팬들의 반응은 달랐다.
└ 아오! 카타르 새끼들 왜 저렇게 엄살을 부려대냐? 세게 안 부딪쳤잖아? 저렇게 아픈 척할 일이야?
└ 중동 애들 원래 저러잖아ㅋ 개역겨운 플레이ㅋ.
└ 이래서 카타르 같은 팀한텐 선제골 허용하면 안 돼. 바로 침대축구 해버리잖아.
└ 와;;;; 진짜 더럽게 하네ㅋㅋㅋㅋㅋㅋㅋ
└ 1골 넣고 잠그겠다는 건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 경기 지루하게 만드네. 쟤들은 저딴 식으로 하고 싶을까?
└ 월드컵 예선전이니까 저렇게까지 해서라도 이기고 싶나 보지. 근데 추하긴 해.
└ 다치지도 않았는데 엄살피우고, 의료진까지 나와서 쇼를 하고…… 어휴ㅉㅉㅉㅉ 카타르 수준 잘 봤고요.
비매너적인 플레이를 하는 카타르의 모습에 분노를 참지 못한 한국 축구팬들은 경기가 조금 더 재밌게 흘러가길 바랐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카타르의 침대축구는 멈추지 않았다.
― 하산 선수가 넘어집니다……! 또 넘어지나요…?
― 표정만 보면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이네요. 하지만 느린 화면으로 봤을 땐 접촉이 전혀 없었거든요? 하산 선수가 바깥으로 나가서 치료를 받…… 일어나네요? 하산 선수가 멀쩡하게 일어납니다! 아… 이건 정말…… 황당하네요.
― 심판이 주의를 주고 있지만, 과연 카타르 선수들에게 통할진 모르겠습니다.
카타르의 축구는 늪과도 같았다.
각종 더러운 방법을 써가며 한국팀이 정상적으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애꿎은 시간만 계속해서 흘렀다.
‘좋지 않아.’
신재욱이 입맛을 다셨다.
공격수까지 전부 수비에 치중한 카타르의 수비 전술을 뚫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툭하면 누워버린다.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손발이 잘 맞는 바이에른 뮌헨 동료들과 함께했다면 모를까, 지금 함께 뛰는 선수들은 한 달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춰본 선수들이었다.
날카로운 연계 플레이가 나오긴 더욱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호흡을 오래 맞춰온 선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택현아, 하나 하자.”
신재욱은 이택현을 향해 신호를 줬다.
대답은 빠르게 돌아왔다.
“좋지!”
* * *
신재욱에게 신호를 받은 이택현이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수비수가 움직임을 방해하지 못하게끔 계속해서 이동하며 위치를 바꿨다.
그 모습을 보며, 신재욱은 동료들에게 공을 요구했다.
― 신재욱 선수가 공을 받습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이택현 선수의 움직임도 예사롭지가 않고요!
― 이 두 선수의 움직임은 늘 기대할 수밖에 없죠! 두 선수는 지금보다도 더 어린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선수들이거든요? 게다가 이 선수들의 실력은 세계적인 무대인 분데스리가에서 통할 정도로 높고요!
해설들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을 때.
한국의 축구팬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 역시 신재욱과 이택현이 답답한 상황을 바꿔주길 바랐다.
└ 재욱아, 택현아!!!! 뭐라도 해줘ㅠㅠㅠ 믿을 게 너희밖에 없다!!!!
└ 저 침대축구하는 녀석들한테 골 좀 맥여주라! 개매너 카타르 좀 박살 내줘!
└ 재욱아!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주던 실력을 보여줘!
└ 카타르 애들이 너무 수비만 하니까 진짜 할 게 없네ㅡ,ㅡ
└ 진짜 재미없게 축구 한다.
그런 상황에서 신재욱이 공을 소유한 채로 움직였다.
상체페인팅을 역동적으로 써가며 상대 수비수들을 끌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카타르의 수비진은 여전히 웅크린 채 자리를 지켰다.
보통은 이렇게 상대가 눌러앉으면 중거리 슈팅으로 풀어나가면 좋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방법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공간이 없어서 슈팅각이 안 나와.’
카타르의 페널티박스 안엔 선수들이 빼곡했다.
슈팅을 때려도 저들의 몸에 맞고 튕겨 나갈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방법이 있지.’
신재욱은 슈팅을 때릴 것처럼 페인팅을 준 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택현에게 공을 넘기며 앞으로 달렸다.
이때, 이택현이 원터치 패스로 다시 신재욱에게 공을 넘겼다.
좁은 공간에서의 빠른 원터치 패스.
수비수들이 반응하기 힘든 플레이였다. 그만큼 펼치기 어려운 플레이이기도 했고.
‘좋아.’
신재욱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택현의 패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공은 이미 그의 발밑까지 와 있었다.
카타르의 수비수들은 깜짝 놀라며 다급히 신재욱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들 모두 알고 있었다.
분데스리가에서 스트라이커로 뛰는 신재욱의 득점력이 얼마다 대단한지를.
그런데 이때.
신재욱은 공을 잡지 않고, 뒤꿈치로 툭― 밀어버렸다.
더 좋은 위치로 움직인 이택현에게 다시 넘겨주는 원터치 패스였다.
이 두 번의 원터치 패스에 카타르의 수비진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뻣뻣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빈틈을 드러냈다.
퍼어엉!
이택현의 슈팅이 나왔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아주 강하게 때려낸 슈팅이었다.
더구나 임팩트도 좋았기에, 공은 높이 뜨지 않고 카타르의 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 고오오오오오올! 골입니다! 드디어 한국의 골이 나왔습니다! 신재욱 선수와 이택현 선수가 만들어냈습니다!
― 우와! 정말 아름다운 플레이네요! 두 선수가 매우 좁은 공간에서의 원터치 패스로 기어코 카타르의 밀집 수비를 뚫어냈습니다!
― 이 선수들이 괜히 분데스리가에서 많은 골을 넣고 있는 게 아니네요!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방금 보셨다시피 빈틈이 없어 보이던 카타르의 수비를 단숨에 뚫어내지 않았습니까? 이런 플레이는 정말…… 정말 놀랍습니다!
경기장에 함성이 터졌다.
한국의 홈구장이었기에 관중들의 열기는 굉장했다.
“오오오오! 고오오오오올! 드디어 됐다! 신재욱이랑 이택현이 해냈어!”
“쟤넨 진짜 다르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쟤들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것 같아!”
“하하하하! 카타르놈들! 더러운 침대축구하더니만, 결국 골 먹혔네!”
“쌤통이다!”
TV로 경기를 보던 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 ㅋㅋㅋㅋㅋㅋㅋㅋ카타르 수비 개털리네ㅋㅋㅋㅋㅋ 11명 다 페널티박스 쪽에 처박아놓고도 골을 먹히냐?ㅋㅋㅋㅋㅋㅋ
└ 정의는 승리한다!!!!!! 신재욱 힐패스도 지렸고, 이택현 슈팅도 완벽했어!!! 어휴! 속이 너무 시원하다ㅋㅋㅋㅋㅋ
└ 카타르 애들 이제 불안해졌을걸?ㅋㅋㅋㅋㅋ 1 대 0으로 전반전 마무리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절대 안 되지! 한국엔 신재욱이랑 이택현이 있거든!
└ 근데 손훈민도 있음.
└ 손훈민은 이렇게 상대가 수비만 할 때는 힘을 쓰기 힘든 스타일이야.
└ 묵직한 슈팅을 가진 기석용도 있음.
└ 인마, 슈팅할 공간이 없는데 기묵직이 왜 나와? 그냥 이번 경기는 신재욱이랑 이택현이 얼마나 잘해주냐에 달렸어.
└ 와…… 근데 카타르는 저렇게 수비만 하는데도 신재욱이랑 이택현 둘을 못 막네ㄷㄷㄷ 확실히 바이에른 뮌헨 듀오가 클래스가 다르긴 한가 봐.
└ 다르지. 우리가 TV로 봐도 놀라운 플레이를 하는데, 직접 상대하면 어떻게 느껴지겠어?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덜 어렵진 않을 거야.
└ 재욱이랑 택현이 진짜 잘한다;;; 순식간에 타다닷 하더니 바로 골 넣어 버리네;;;;;;
└ 미쳤어 그냥ㅋㅋㅋㅋ 끕이 달라. 끕이.
이처럼 한국 축구팬들은 신재욱과 이택현이 카타르의 침대축구를 뚫고 골을 기록했다는 것에 굉장히 기뻐했다.
반면 카타르의 분위기는 급격히 안 좋아졌다.
심지어 동료들끼리 말다툼을 하기까지 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됐는데…….”
“여기서 이렇게 뚫린다고? 어이없네…….”
“뭐 하는 거야? 좀 더 집중했으면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뭐? 네가 앞에서 편하게 패스하도록 놔두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
하지만 이들 역시 프로였기에, 경기가 재개된 이후부터는 다시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들의 플레이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카타르 선수들이 여전히 소극적인데요? 이제는 1 대 0이 아니고, 1 대 1이 되었는데도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전반전을 동점으로 끝내겠다는 생각일까요? 쉽게 이해되지 않는 플레이네요.
카타르는 여전히 템포를 늦추며, 시간을 끄는 경기 운영을 펼쳤다.
현재 이들의 의도는 확실했다.
한국의 기세가 살아났기 때문에, 전반전은 일단 1 대 1로 마무리를 짓겠다는 것.
침대축구 역시 계속해서 이어졌다.
쓰러지고, 엄살을 부리고, 누워서 아픈 척 시간을 끄는, 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행동을 했다.
그때였다.
― 신재욱 선수와 유수프 선수가 공중볼 경합을……어? 유수프 선수가 넘어집니다! 아…… 또 안 일어나는데요?
― 주심이 경기를 멈춥니다…! 하하하…… 정말 황당하네요. 신재욱 선수는 평범하게 공중볼 경합을 한 건데, 유수프 선수는 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을까요?
신재욱과 공중볼 경합을 하던 카타르의 수비수 유수프가 바닥에 쓰러졌다.
“때리지도 않았는데 아픈 척을 하네…….”
그 모습을 보며, 신재욱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도 여러 번 당하니 어이가 없는 걸 넘어서 슬슬 짜증이 났다.
그래서 다짐했다.
“어차피 쓰러질 거니까 다음엔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아파서 쓰러지게끔 도와줘야겠다.”
엄살을 부리는 카타르 선수들에게 진짜 고통이 뭔지 느끼게 해주겠다고.
“잘하면 오늘 ‘그라운드의 프로파이터(C)’특성이 성장할 수도 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