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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의 공항.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신재욱 일행이 나타나자 수많은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밝은 조명이 터져 나왔다.
공항에서 기다리던 팬들의 환호도 쏟아졌다.
“이택현! 잘생겼다!”
“사! 랑! 해! 요! 신! 재! 욱!”
“재욱아! 네가 최고야!”
부담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신재욱 일행은 잘 대처했다.
지난번엔 긴장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었던 이택현도 오늘만큼은 당황하지 않고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잠시 후.
이택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그래도 한 번 겪어봤다고 이번엔 좀 낫네요. 진, 저 괜찮았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오늘의 이택현 선수는 완전 슈퍼스타 같았어요. 미소도 잘 짓고, 손 흔드는 것도 자연스럽던데요? 그동안 연습한 거예요?”
“예. 저번에 너무 얼어있어서 쪽팔렸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여유를 가지려고 미리 연습 좀 했죠.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점점 더 익숙해지실 거예요.”
“그렇겠죠? 근데 재욱아, 너는 그냥 프로처럼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신재욱이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타고났지.”
“뭐? 헐! 이건 예상 못 했던 대답인데?”
“그럴 거 같았어.”
“재욱아, 나 지금 소름 돋아. 어떻게 이렇게나 재수 없는 답을 할 수가 있지? 진! 진도 들었죠? 얘가 이렇다니까요?”
이택현은 진 바그너에게 고자질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신재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재밌네.’
타고났다는 대답은 당연히 장난이었다.
신재욱 역시 환생 전, 사람들의 관심을 처음 받아봤을 땐 긴장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부 익숙해진 일이다.
즉, 사실은 경험으로 극복한 것이었다.
‘겨우 한 달 만에 온 건데도 되게 반갑네.’
전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한국은 독일과 공기부터가 달랐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분명 그렇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분위기도 친근하고……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재욱은 고개를 돌렸다.
이택현과 진 바그너는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여전히 수다를 떨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음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진, 그래서 오늘은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에 뭐 먹고 들어갈까요? 한우? 갈비찜?”
“한우와 갈비찜이 모두 나오는 한정식집으로 가면 되겠네요.”
“오오오! 그 방법이 있었네요? 역시 진은 똑똑하다니까요? 안 그래도 한식이 땡겼는데, 한정식 전문점에 가면 여러 가지 한식을 먹어볼 수 있겠어요.”
“그럼 신재욱 선수만 괜찮다고 하시면, 이번엔 한정식 전문점으로 가는 것으로 하실래요?”
“좋아요!”
조금 뒤, 진 바그너가 신재욱에게 질문했다.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에 한정식 전문점에서 밥을 먹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그 질문에 신재욱은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평소에도 한식을 매우 좋아했으니까.
* * *
신재욱 일행은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개의 카메라에 사진을 찍혔다.
전부 기자들이었다.
불편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예상하던 것이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렇게 대표팀에 들어간 신재욱 일행은 훈련장을 돌며 감독, 코치, 선수들,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미 지난달에 봤던 얼굴들이었기에 서로 간에 어색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대표팀 선수들은 신재욱과 이택현을 굉장히 반가워했다.
“드디어 우리 천재들이 왔구만!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멀리서 오느라 피곤하지 않아?”
“천재들아 어서 와! 안 그래도 너희 얘기하고 있었는데, 딱 왔네!”
“재욱! 택현! 반가워!”
당연히 적응도 쉬웠다.
신재욱과 이택현은 한 달 전에 그랬던 것처럼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근황을 공유했다.
이어서 대표팀 감독인 홍정태와도 전술에 대해서 긴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하자. 둘 다 푹 쉬고, 내일부터 훈련에 참여하면 돼.”
홍정태 감독은 장시간 비행을 하고 온 유럽파 선수들에게 쉴 시간을 최대한 줬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휴식이 주어진다고 해도 겨우 하루였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 배려면 괜찮지.’
신재욱은 감독과의 대화를 끝내고 곧바로 쉬기 시작했다.
매번 느꼈듯이 장시간 비행은 컨디션에 좋을 수가 없다.
지금은 필사적으로 쉬어야만 할 때였다.
그리고 이택현도 지난번 경험으로 많은 걸 느꼈는지,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재욱아, 난 먼저 잘게!”
“어. 먼저 자. 나도 금방 잘 거야.”
그렇게 대답한 신재욱은 옆에 놔둔 종이 뭉치를 들었다.
이번에 맞붙게 될 상대 팀의 전력에 대해 상세히 적혀있는 자료였다.
‘할 건 해야지.’
마음 같아선 바로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외워야 할 정보들이 많았으니까.
‘카타르라……오랜만에 상대해보겠네.’
한국 대표팀의 상대는 카타르였다.
강한 팀은 아니지만 까다로운 상대였고, 잘 준비해야 이길 수 있는 팀이었다.
‘지저분한 행동을 많이 했던 것 같기도……아, 마침 여기 적혀있네.’
신재욱은 자료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점수에서 앞서 나가면 꼭 시간을 끈다. 매우 심하게……하하!”
웃음이 터졌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국가대표 선수로 뛰었을 때의 기억이었다.
“맞아. 기억났어. 얘넨 정말 너무 심했었지.”
카타르의 침대축구.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축구였다.
평소엔 평범하게 경기에 임하지만, 선제골을 넣기만 하면 심각할 정도로 수비만 한다.
게다가 상대 선수와 조금만 스쳐도 엄살을 피우며 바닥을 뒹군다.
“여러 의미로 힘든 상대를 만나게 됐어.”
신재욱은 한참이나 자료를 살핀 뒤에야 몸을 눕혔다.
* * *
다음 날.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서울에서 펼쳐지는 경기였기에, 경기장엔 한국 팬들이 만들어낸 함성이 가득했다.
귓속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강렬한 응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 팬분들의 함성이 대단합니다! 우리 선수들, 큰 힘이 되겠는데요?
― 엄청나긴 하네요! 이게 바로 홈경기의 이점이라고 할 수 있죠! 아마 카타르 선수들은 꽤 위축됐을 겁니다!
카타르 선수들의 매너는 겉으로는 좋아 보였다.
경기장에 입장하기 전부터 한국 선수들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고, 좋은 경기를 하자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러나 신재욱은 굳이 저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안 속아.’
전부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카타르 선수들의 태도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달라졌다.
― 아……! 카타르 선수들이 너무 거친데요? 방금은 굳이 반칙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구자천 선수를 밀었죠!
― 심판은 왜 반칙을 선언하지 않는 거죠?
카타르는 거칠었다.
필요하지 않은 반칙을 남발했고, 공중볼 경합 때는 일부러 팔꿈치를 한국 선수의 얼굴 쪽으로 휘두르기도 했다.
한국 선수들은 카타르가 이런 비매너적인 플레이를 할 것이라는 걸 예상했지만, 그랬음에도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들 안 다치게 조심해! 쟤네 너무 거칠어!”
“쟤네 왜 저러는 거야? 진짜 미친놈들 같아!”
“경기 전엔 좋은 경기 하자고 하더니만, 막상 경기 들어오니까 더럽게 나오네.”
그런 상황 속에서.
신재욱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은 채, 동료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고함을 질렀다.
“쟤네 저렇게 나올 거 다들 알고 있었잖아요! 정신 차리고 훈련 때처럼 해요.”
말과 동시에, 신재욱은 밑으로 내려왔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고 있었기에 동료들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툭! 투욱!
손훈민과 패스를 주고받은 신재욱은 몸을 휙 돌려서 측면으로 달리는 이택현을 향해 패스를 뿌렸다.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며 보낸 패스였기 때문일까?
공은 정확하게 이택현의 발 앞에 떨어졌다.
툭!
날아오는 공을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이택현은 어렵지 않게 공을 받아냈다.
― 이택현 선수가 측면에서 공을 잡았습니다! 이 선수, 최근 폼이 굉장히 잘 올라와 있는 선수죠!
― 그렇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아주아주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죠! 특히 이택현 선수는 일대일 돌파에서 강한 자신감을 보여주는데……오오! 돌파합니다!
이택현은 카타르의 측면 수비수를 앞에 둔 채, 자신감 있게 돌파를 시도했고 성공했다.
이어서 크로스까지 올렸다.
그러나 공을 차낸 순간 이택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오!”
발에 제대로 맞지 않은 느낌이 났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을 드러낸 이택현의 반응처럼, 날아가는 공엔 날카로움이 없었다.
― 수비수가 머리로 공을 걷어냈습니다! 이택현 선수의 크로스가 조금 부정확했죠?
― 아마 페널티박스 안으로 파고들던 신재욱를 노린 것 같은데, 마지막에 발에 잘못 맞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크로스를 올리기 전까지는 굉장히 위협적이었습니다! 비록 골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우리 선수들이 이렇게 이택현 선수처럼 자신감 있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맞습니다. 두드려야 골도 나오는 거니까요.
이후에도 신재욱은 밑으로 내려와 경기를 풀어줬다.
스트라이커로 출전했지만, 마치 중앙 미드필더처럼 움직일 때가 많았다.
수비 가담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체력 조절을 하긴 해야 하는데.’
당연히 체력에 무리가 갔지만, 신재욱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한국 대표팀의 수비력과 중원 싸움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밑에서 봐주지 않으면 중원 싸움에서 밀리니까 안 내려갈 수가 없네.’
― 우리 선수들이 카타르의 스피드에 제대로 대응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카타르가 이런 점이 무섭긴 하네요!
― 중동 선수들이 보시다시피 개인기가 좋고, 빠르거든요? 잘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도 위험할 수가 있습니다!
신재욱의 지원 덕에 한국의 중원은 안정감을 찾았다.
하지만 수비는 처참했다.
카타르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 어어? 이렇게 쉽게 뚫리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 끝까지 붙어줘야 합니다!
카타르의 윙어는 이택현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측면을 뚫어냈다. 개인기를 이용한 돌파였다.
그는 크로스를 선택하지 않고, 돌파를 시도했다.
한국의 중앙수비수 곽태희를 앞에 둔 채 헛다리를 짚던 그는, 뒤에서 달려오는 동료에게 기습적인 컷백 패스를 뿌렸다.
― 어! 슈팅하지 못하게 막아야죠!
해설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 순간 카타르의 미드필더가 슈팅을 때려냈다.
퍼엉!
낮게 깔아 찬 슈팅이었다.
한국의 수비수들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몸을 들이댔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이 오히려 독이 됐다.
틱!
카타르의 미드필더가 때려낸 공이 한국의 중앙수비수 장혁수의 정강이에 맞고 굴절이 되어버렸으니까.
굴절된 공이 막을 수 없는 궤적으로 한국의 골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 아…… 골입니다! 카타르의 선제골이 나왔습니다……!
― 마지막에 굴절이 됐네요……! 이런 공은 김영훈 골키퍼라고 해도 반응할 수가 없죠…….
해설들이 탄식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동시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열정적으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던 관중들은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경기장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신재욱이 나섰다.
“다들 고개 들어요! 실점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대신 바로 따라잡으러 갈 거니까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동료들을 다독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쓴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피곤해지겠네.’
이제부턴 카타르의 침대축구가 시작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