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빨로 축구천재-155화 (155/224)

155

* * *

“자네, 잠깐 얘기 좀 하지.”

토마스 샤프 감독은 신재욱을 부르며 고민했다.

거친 말로 으름장을 놓을지.

아니면 부드럽게 말하며 은근히 기를 죽여놓을지.

그런데.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경기 끝나고 하시죠.”

그걸로 끝이었다.

“뭐? 이봐!”

토마스 샤프 감독이 다급하게 신재욱을 다시 불러봤지만.

라커룸으로 향하는 신재욱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나를 무시했다고?”

이런 일을 겪은 건 처음이었기에, 토마스 샤프 감독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어린 선수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신재욱…… 두고 보자!”

같은 시각.

라커룸에 들어온 신재욱은 붉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중얼거렸다.

“경기도 안 끝났는데 얘기는 무슨. 그럴 시간에 전술이나 수정하시지.”

토마스 샤프 감독의 제안을 거절한 건 그를 무시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경기 전에 도발을 받았기 때문에 뒤끝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상대 팀 감독과 대화를 하지 않으려 했던 것뿐이었다.

물론 상대방은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지만.

그때였다.

“재욱쓰! 뭔 일 있어?”

먼저 라커룸에 도착해있던 이택현이 다가왔다.

전반전에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친 그는 평소랑 표정부터가 달랐다.

툭 건들면 곧바로 웃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일은 무슨. 기분 좋아 보이네?”

“으흐흐흐! 골 넣었잖아. 어시스트도 했고.”

“그렇구나.”

“‘그렇구나’라니? 먼저 물어봐 놓고 그게 끝이야? 무려 1골 1어시스트라고! 근데 너도 똑같이 1골 1어시스트 했으면서 별로 안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 좋긴 왜 안 좋아? 나도 좋지.”

“근데 재욱이 네 표정은 너무 덤덤해 보여서 좋아하는지를 모르겠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직 만족이 안 되니까.”

“어엉?”

“이 정도로는 만족 안 된다고.”

“하…… 갑자기 자존심 확 상하네? 그래, 사실 나도 하나도 만족 안 하고 있었어. 이 이택현 님은 최소한 해트트릭은 해야 만족한다고!”

신재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발끈하는 이택현의 모습이 재밌게 느껴졌다.

“그래, 꼭 해트트릭하는 거 보여줘.”

“오케이! 딱 기다려. 후반전에 2골 더 넣어서 해트트릭해버릴 테니까!”

그때였다.

해트트릭이라는 말을 알아들은 바이에른 뮌헨 동료들이 웃으며 환호했다.

“오! 택현! 해트트릭이라는 말이 들린 것 같은데? 맞아? 오늘 해트트릭할 생각이야? 오늘 네 컨디션을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긴 해. 응원할게!”

“훠우! 내가 한국말은 할 줄 모르지만, ‘해트트릭’은 분명히 들렸어. 다들 들었지? 아무래도 이택현이 오늘 3골을 넣을 생각인가 봐.”

“택현의 해트트릭? 충분히 가능하지! 훈련 때는 가끔 해트트릭하는 거 보여줬었잖아?”

그 순간 이택현도 벌떡 일어나서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기대해도 좋아요! 저 오늘 해트트릭합니다!”

라커룸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이제 선수들은 서로 골을 넣겠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소란스럽던 바이에른 뮌헨의 라커룸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호통을 친 뒤에야 조용해졌다.

같은 시각, 바이에른 뮌헨의 팬들은 평소보다 더욱 기뻐하고 있었다.

└ 후반전 언제 시작하는 거야? 전반전을 너무 재밌게 봐서 더는 못 기다리겠어.

└ 흐흐! 신재욱과 이택현이 경기장을 뜨겁게 달궈놨어! 이 한국인들은 명백히 바이에른 뮌헨의 미래야. 이들은 최고의 유망주들이야.

└ 원래는 신재욱이 압도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까 이택현도 대단하네. 전반전 내내 베르더 브레멘의 수비수들을 쉽게 요리해버렸잖아.

└ 이택현은 굉장해. 특히 그의 드리블 능력은 분데스리가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이야. 조금만 더 다듬으면 드리블만큼은 프랑크 리베리나 아르연 로번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부상에서 돌아온 아르연 로번의 컨디션도 좋아 보여서 다행이야.

└ 신재욱은 미친 선수야!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실력은 이미 분데스리가 최고 수준이지!

└ 신재욱 얘 지금 23골째 넣고 있어!!! 이게 말이 돼? 고작 17살짜리 선수가 스테판 키슬링이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보다 훨씬 더 많은 골을 넣고 있다고!

└ 지금의 바이에른 뮌헨은 무적이야. 정말 어떤 팀을 만나도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이들이 응원하는 팀이 연승을 거두고 있고, 신재욱과 이택현이라는 특급 유망주까지 발굴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 *

후반전이 시작될 시간이 가까워졌다.

양 팀 선수들도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베르더 브레멘 선수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패배를 직감하며 의욕이 떨어진 전반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얼굴이었다.

눈빛도 달라졌다.

― 베르더 브레멘 선수들의 눈빛이 굉장히 강렬한데요? 전반전이 끝난 뒤에 라커룸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온 것일까요? 선수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 토마스 샤프 감독이 선수들에게 무언가 말을 해줬을 겁니다. 이렇게 선수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는 건 보통 감독의 능력이거든요.

해설들의 말은 정확했다.

자존심이 상한 토마스 샤프 감독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펼쳤고, 전술도 적절하게 수정해줬다.

그랬기 때문에 베르더 브레멘 선수들이 자신감을 찾게 된 것이다.

―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베르더 브레멘 선수들이 신중하게 패스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패스 하나하나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네요!

― 전반전에 여러 번의 패스 실수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많이 생겼었거든요? 선수들이 바뀐 분위기처럼 후반전엔 실수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베르더 브레멘의 경기력은 분명 나아졌다.

전반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러나 기세가 오른 바이에른 뮌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 베르더 브레멘 선수들이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긴 한데,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가 너무 좋네요! 베르더 브레멘이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는데도 흔들리질 않습니다!

― 바이에른 뮌헨이 괜히 연승을 이어가고 있는 팀이 아니죠. 이렇게 단단한 수비가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베르더 브레멘의 공격은 잘 통하지 않고 있었다.

토마스 샤프 감독이 당장이라도 경기장에 들어올 것처럼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는 뚫리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신재욱이 움직였다.

슬금슬금 밑으로 내려온 그는 태클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고.

‘지금이야.’

기다렸던 타이밍이 왔다.

사각에서 움직이던 신재욱은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상대 선수가 공을 받자마자 들어간 기습적인 태클이었다.

촤악!

잔디 위로 미끄러지던 신재욱은 발을 쭉 뻗었다. 이때, 상대의 다리를 건드리면 곧바로 반칙이 된다.

그렇게 되면 자칫 카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신재욱은 발끝을 정교하게 컨트롤하며 공을 건드렸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툭!

깜짝 놀란 상대 선수가 공을 다시 가져오려고 했지만, 신재욱은 이미 몸을 돌려 뺏어낸 공을 지키고 있었다.

― 신재욱 선수가 공을 뺏었습니다! 아름다운 태클이었습니다!

― 태클이 정말 날카롭네요! 이제는 신재욱 선수가 태클할 때의 모습은 그냥 수비수 같습니다!

― 분명 스트라이커인데, 태클할 때만큼은 세계적인 수비수 같은 느낌을 주는 신기한 선수죠! 말을 하는 도중, 신재욱 선수가 케빈 더브라위너 선수를 등지면서 공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역시 신재욱 선수는 공을 지켜내는 움직임이 정말 좋네요!

― 케빈 더브라위너 선수는 웬만해선 공을 뺏기지 않는 선수인데, 신재욱 선수의 태클엔 어쩔 수가 없네요!

신재욱은 강하게 압박하는 케빈 더브라위너를 여유 있게 상대하며 미소를 띠었다.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실력이 완벽하게 올라오지 않았네. 케빈 더브라위너답지 않게 너무 태클을 쉽게 허용했어. 압박도 너무 성급하고.’

상대인 케빈 더브라위너는 신재욱이 환생하기 전에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였던 인물이었고, 그런 선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본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지금처럼 직접 상대하는 건 더더욱 즐거운 일이었고.

다만 적당히 해줄 생각은 없었다.

휘익! 툭! 투욱!

신재욱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케빈 더브라위너를 상대로 기어코 몸을 돌려냈다.

동시에 상체 페인팅으로 방향을 속여주며 거리를 벌렸다.

― 신재욱 선수가 케빈 더브라위너 선수를 떨쳐냈습니다! 우와……! 감탄만 나오는 탈압박입니다!

― 케빈 더브라위너 선수가 당황한 것 같은데요?

― 하하! 당황할 만도 합니다. 케빈 더브라위너 선수가 첼시 FC에서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를 오고 난 이후로 이렇게까지 압도당한 건 처음일 거거든요. 이 선수, 전반전에도 신재욱 선수에게 몇 번이나 공을 뺏겼었거든요!

케빈 더브라위너의 압박을 이겨낸 지금, 신재욱은 빠르게 역습을 진행하기 위해 상황을 파악했다.

‘직접 공을 몰고 나가는 것보단 패스로 연결하는 게 빨라.’

스트라이커인 자신이 밑으로 내려와서 공을 뺏어냈기 때문에, 빠르게 역습하기 위해선 동료를 이용해야 했다.

현재 그의 시야에 들어온 선수는 2명이었다.

오른쪽에서 엄청난 스피드로 달리고 있는 아르연 로번.

그리고 역시나 놀라운 스피드로 왼쪽에서 달리는 이택현이었다.

두 선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신재욱은 고민하지 않고 롱패스를 뿌려냈다.

‘아르연 로번의 움직임이 더 좋아.’

경험이 많은 아르연 로번이 이택현보다 더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며 달리고 있었으니까.

투욱!

아르연 로번은 발등으로 공을 받아냈다.

자연스레 속도가 죽었지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공을 받은 위치가 베르더 브레멘의 페널티박스 근처였으니까.

― 엄청난 패스네요! 신재욱 선수의 롱패스가 정확하게 아르연 로번에게 연결됐습니다!

― 아르연 로번이 좋은 위치에서 공을 잡았는데요! 단숨에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면 골 기회죠!

페널티박스 근처.

아르연 로번은 이 정도의 위치에선 쉽게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선수였다.

공을 보유한 채로 두 걸음을 더 전진한 그는 달려드는 골키퍼를 바라보며 여유 있게 왼발슛을 때려냈다.

― 오오옷! 들어갔습니다! 돌아온 아르연 로번이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스코어를 4 대 0으로 만듭니다!

― 이 선수의 왼발 슈팅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알고도 못 막는 슈팅이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의 아르연 로번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죠!

해설들은 아르연 로번을 칭찬한 이후, 직접 공을 뺏어내고 좋은 롱패스로 아르연 로번의 골을 도운 신재욱을 더 많이 칭찬했다.

독일의 현지 해설들과 현지 팬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아르연 로번보단 신재욱의 플레이를 더욱 치켜세우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신재욱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칭찬에 보답하듯, 후반전 내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1개의 어시스트를 추가로 기록했다.

― 경기 종료됩니다! 바이에른 뮌헨이 베르더 브레멘에게 6 대 1로 승리하며 리그 1위 자리를 더욱 굳건하게 이어갑니다!

― 팬들의 함성이 엄청나네요! 하하! 바이에른 뮌헨의 팬들은 큰 점수 차로 승리한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경기가 끝난 이후.

토마스 샤프 감독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다급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베르더 브레멘 선수들도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베르더 브레멘의 한 선수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아쉬움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홍당무처럼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그는 기다렸다는 듯 신재욱을 향해 다가갔다.

“재욱…! 난 너의 팬이야. 혹시…… 나랑 유니폼 교환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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