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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재욱은 아주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축구를 할 때는 늘 즐거운 생각만 들었다.
아무리 슬프고 힘들 때도 공을 차면 이겨낼 수 있었다.
이렇게나 축구를 좋아해서인지, 축구에 관련된 일이라면 무작정 즐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심지어 기분이 나쁠 만한 일을 겪고도 오히려 재미를 느낄 때도 있었다.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를 치르게 된 오늘도 그랬다.
└ 하세베 마코토라면 신재욱을 막을 수 있을 거야.
└ 막기만 할까? 하세베가 경기장 위에서 신재욱을 완전히 죽여버릴 거야.
└ 신재욱은 대단한 선수지만, 훨씬 경험이 많은 하세베 마코토에겐 상대가 안 될걸?
└ 먼 미래엔 신재욱이 더 대단한 선수가 될 것 같긴 하지만……그래도 아직은 하세베 마코토가 보여준 게 더 많다고 봐. 이번 경기에서도 하세베 마코토가 한 수 가르쳐줄 거야.
└ 볼프스부르크의 하세베 마코토는 훌륭한 선수지. 분명 신재욱을 효과적으로 괴롭힐 거야. 그리고 볼프스부르크의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밀리지 않을 거야.
└ 볼프스부르크가 바이에른 뮌헨을 잡아줬으면 좋겠어. 바이에른 뮌헨은 이번 시즌에 너무 이기기만 해.
└ 신재욱은 분명 잘해. 그러나 그의 태클은 항상 위험해.
└ 신재욱의 태클이 위험하다고? 매번 공을 향해 들어가는 태클이잖아?
└ 아무튼 위험해! 아무튼 위험하고 더러운 태클이라고!
일본 축구팬들의 반응이었다.
오늘 만나게 될 볼프스부르크에 일본인 선수인 하세베 마코토가 있다는 것.
그 사실 때문에 일본 축구팬들은 신재욱을 깎아내리고 하세베 마코토를 높게 띄웠다.
그리고 이런 반응들은 선수 당사자를 기분이 나쁘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신재욱은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하! 이 사람들 되게 재밌네.”
환생 전엔 수많은 악플을 봐왔던 그였다.
이 정도는 애교 수준으로 보였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게 만들어주잖아?”
조금 뒤.
버스에서 내린 신재욱과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은 볼프스부르크의 홈구장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상대의 홈구장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었고,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다.
그때였다.
“재욱!”
팀의 붙박이 주전인 토니 크로스의 목소리.
다른 동료와 롱패스를 주고받던 신재욱이 고개를 돌렸다.
“왜요?”
“엇? 그 귀찮다는 표정 뭐야? 아니지? 내가 잘못 본 거지?”
“제대로 본 것 같아요.”
신재욱이 장난스럽게 대답하자, 토니 크로스가 헛웃음을 흘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와! 변했다, 변했어! 이러면 너무 서운한데?”
“원래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죠. 왜 불렀어요?”
이제는 굉장히 많이 친해진 사이였기에 가능한 대화였다.
토니 크로스 역시 말로는 서운하다고 했지만, 얼굴엔 미소가 떠 있었다.
“롱패스가 더 좋아진 것 같아서, 너무 놀라서 불렀어.”
“그래요? 기분 탓 아니에요?”
“뭐? 기분 탓이라니! 거만해 보이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스스로 패스 하나만큼은 도가 튼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당연히 패스를 보는 눈도 확실하고. 그런데 네 패스의 퀄리티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대표팀 경기 다녀오더니 감이라도 잡은 거야?”
“아뇨, 별다를 건 없는데.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까 나아졌나 봐요.”
“그래?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이렇게까지 빨리 좋아진다고? 역시 ‘특별한 천재’는 다르구나.”
“천재면 그냥 천재지, 특별한 천재는 또 뭐예요?”
“나같이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빨리 성장하는 사람이 천재고, 너처럼 믿을 수가 없는 속도로 성장하는 사람은 특별한 천재지.”
“토니한테 이런 말을 들으니까, 영광인데요?”
신재욱이 머리를 긁적였다.
토니 크로스가 어떤 인물이던가.
어린 나이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지금은 그 치열하다는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이지 않은가.
굉장히 젊은 나이임에도 이미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중 하나라는 평을 받는 선수였고.
미래엔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인정받게 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에게 ‘특별한 천재’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민망했다.
물론 환생 전의 신재욱은 토니 크로스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던 선수였지만, 그래도 민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영광은 무슨, 솔직하게 말한 거야.”
“고마워요. 근데 최근엔 패스가 좋아졌다는 생각은 못 했었는데, 확인 좀 해봐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신재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롱패스가 좋아졌다고? 능력치가 오르거나 하진 않았는데? 꾸준히 훈련을 한 게 효과가 있던 걸까?’
이후, 신재욱은 확인을 위해 동료와 롱패스를 몇 번 더 주고받았다.
그 결과 알 수 있었다.
미세하지만 롱패스의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걸.
다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는 아니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실제로 신재욱 본인조차 모르지 않았던가.
‘토니 크로스는 이 차이를 발견했다고? 참 대단한 사람이야.’
신재욱은 저 멀리서 몸을 풀고 있는 토니 크로스를 바라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때.
함께 롱패스를 주고받던 동료가 짜증 섞인 외침을 보내왔다.
“야! 신재우우우욱! 언제까지 롱패스만 할 거야? 다른 것도 좀 하자고!”
이택현의 목소리였다.
계속해서 롱패스만 반복하는 신재욱의 행동에 짜증을 낸 것이다.
이에 신재욱은 곧바로 대응했다.
“미안!”
빠른 사과였다.
* * *
볼프스부르크의 홈구장엔 많은 관중이 함성을 보내고 있었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볼프스부르크 선수들을 향한 함성이었다.
동시에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을 향해선 거대한 야유를 뿜어냈다.
우우우우우우!
관중석엔 볼프스부르크를 응원하는 일본인 팬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신재욱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애송이! 넌 오늘 하세베 마코토라는 벽을 만나서 아무것도 못 할 거다!”
“신재욱 너 인마! 볼프스부르크한테 지고 나서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하지나 마!”
“그 빨간 머리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냐? 건방지게 그게 뭐야!”
거친 말이 섞인 야유들.
기분이 나쁠 만한 말들이었다.
그러나 신재욱에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역시 볼프스부르크의 홈구장이야. 여기 팬들도 되게 열정적으로 응원하네.”
그저 상대 팀 팬들의 열정에 감탄할 뿐이었다.
다만 한 선수의 이름은 확실하게 귀에 들어왔다.
“하세베 마코토라고? 잘하는 선수로 기억하고 있긴 한데, 그렇게 대단했나?”
신재욱의 시선이 움직였다.
180cm 정도의 단단한 체격을 지닌 하세베 마코토가 보였다.
뚜렷하진 않지만 하세베 마코토에 대한 기억은 존재했다.
굉장히 예의 바르고 열정이 좋았던 선수였던 기억.
그러나 실력으로는 기억나는 게 전혀 없었다.
“실력이 뛰어났으면 내가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뭐, 붙어보면 알겠지.”
신재욱은 궁금해졌다.
하세베 마코토와 맞붙었을 때, 그가 어떤 실력을 보여줄지.
“못하면 재미없으니까, 이왕이면 잘해줬으면 좋겠네.”
잠시 후.
양 팀 선수들이 서로 악수를 했다.
아무런 대화 없이 의례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세베 마코토와 악수를 할 땐 달랐다.
“절대 지지 않을 겁니다. 무조건 이길 겁니다.”
신재욱은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하세베 마코토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분명 예의는 있었지만, 하세베 마코토의 눈빛에선 강한 승부욕이 드러났다.
‘저번에 오카자키 신지도 그러더니, 이 사람도 똑같이 이러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향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재밌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굳어있어요? 우리 그냥 재밌게 경기해요.”
신재욱이 장난스레 말했지만, 하세베 마코토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더불어 그의 입에서 나온 말도 여전히 딱딱했다.
“팬들의 기대가 걸려 있는 경기입니다. 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길 겁니다.”
“그러시구나. 알겠어요. 근데 그렇다고 제 다리를 걷어차진 않겠죠?”
“…….”
“우와! 이걸 대답을 안 한다고요? 우리 그래도 동업자잖아요? 만약 하세베가 제 다리를 까버리면 너무 슬플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해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지 않나요?”
“…….”
하세베 마코토는 입을 꾹 닫았지만.
신재욱의 눈엔 보였다.
흔들리는 하세베 마코토의 동공이.
‘놀리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구나.’
짧은 대화를 마친 신재욱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하세베 마코토의 상태를 보니, 경기장 위에서 심리전으로도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대 선수들과 악수를 끝낸 이후.
이택현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재욱아, 너 하세베 마코토랑 뭔 얘기했어?”
“그냥 이런저런.”
“뭐지? 수상한데? 설마…… 너! 또 놀렸지?”
“놀리긴 뭘 놀려. 그리고 ‘또’가 왜 나와?”
“너 평소에 날 엄청 놀리잖아. 그리고 상대 선수들도 멘탈에 빈틈 보이면 바로 약 오르게 하면서 반칙 유도도 많이 했잖아.”
“……네 말만 들으면 내가 되게 야비한 사람 같은데?”
“어쩔 땐 같은 팀인데도 얄밉더라.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서 은근히 반칙할 땐 너무 야비해서 감탄이 나올 때도 있어.”
“억울하다, 억울해. 택현아, 이제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자리로 가자. 금방 경기 시작하겠다.”
억울하다고 말했지만.
신재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관찰력이 좋네.’
이택현의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으니까.
같은 시각.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한국 축구팬들도 평소보다 더욱 큰 관심을 드러냈다.
└ 엥? 하세베 마코토랑 신재욱이 뭔 얘기를 한 거지? 보통은 악수만 간단하게 하고 넘어가는데, 꽤 길게 대화를 나눴잖아?
└ 싸운 건 아니겠지? 하세베 마코토 표정이 별로 안 좋던데.
└ 신재욱은 웃으면서 말하던데? 뭐지?ㅋㅋㅋㅋ 그냥 하세베 마코토가 긴장한 건가?
└ 그나저나 이번에도 한일전이라 기대되네. 일본 애들 하세베 마코토 응원하다가 신재욱 실력 보고 충격받을 거 아니야ㅋㅋㅋㅋㅋ
└ ㅋㅋㅋㅋ하세베 마코토가 탈탈 털리는 걸 보고 충격받겠지.
└ 근데 하세베 마코토랑 신재욱이 부딪치긴 하겠지?
└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야. 신재욱은 스트라이커고, 하세베 마코토는 오늘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왔잖아.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어.
└ 오!!!ㅋㅋㅋㅋ 재밌는 장면 여러 번 나오겠네.
이처럼 팬들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삐이이이익!
경기가 시작됐다.
― 경기 시작됩니다! 볼프스부르크가 빠르게 공을 돌립니다!
― 오! 볼프스부르크의 선수들이 초반부터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는데요? 바이에른 뮌헨을 이기기 위해 준비해 온 전략일까요?
볼프스부르크는 탐색전을 펼칠 생각이 없다는 듯,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하세베 마코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그는 평소보다 높게 올라와서 동료들과 공을 주고받았다.
공격적인 플레이였다.
일본 팬들의 큰 기대감을 받는 경기여서인지, 하세베 마코토는 직접 중거리 슈팅까지 시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성공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신재욱 때문이었다.
― 우오오오오옷! 신재욱 선수의 엄청난 슬라이딩 태클이 나왔습니다!
― 이야~! 신재욱 선수! 슈팅을 하려던 하세베 마코토 선수의 뒤에서 과감하게 백태클을 해버리네요! 완벽한 타이밍에 정확하게 공을 건드린 태클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심판은 반칙을 선언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