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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신재욱 선수 핸드폰 맞죠?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를 들으며, 신재욱은 번호를 확인했다.
“아.”
등록이 되어 있는 번호였다.
어제 진 바그너에게 받아서 저장한 번호였으니까.
― 내가 연락할 거라는 말은 들었죠?
“예. 안녕하세요.”
― 반가워요! 저 알아요?
본인을 알고 있냐는 상대방의 말.
그 말을 들은 신재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죠. 구자천 선수잖아요.”
구자천.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선수이자,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선수다.
그는 같은 한국인인 신재욱, 이택현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는 이유로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처를 교환했고, 지금처럼 신재욱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동시에 진지한 느낌도 묻어나오고 있었다.
― 오! 기분 되게 좋은데요? 요즘 분데스리가에서 제일 잘나가는 선수가 나를 알다니!
“잘나가긴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 경기 전에 한 번 볼 수 있어요? 밥 한 끼 같이 하고 싶은데.
밥을 먹자는 구자천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독일에서 뛰고 있는 같은 나라 사람과 만나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신재욱은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밥은 경기 끝나고 날짜 맞춰서 같이 먹죠. 지금은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 오…… 대박! 완전 프로네요? 알았어요. 그럼 경기 끝나고 날짜 맞춰봐요. 아 그리고! 만약에 우리 둘 다 경기에 나오면…… 직접 부딪칠 일이 얼마나 있겠냐만, 그래도 재밌게 축구 했으면 좋겠어요.
“좋죠. 경기장에서 뵐게요.”
― 그래요. 경기장에서 반갑게 인사해요!
구자천과의 통화를 끝낸 뒤.
신재욱은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분데스리가에 소속된 팀 중 하나인 ‘아우크스부르크’에 관련된 자료였다.
그리고.
아우크스부르크의 1군 선수 명단엔 구자천의 이름도 보였다.
하지만 신재욱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뿐, 아우크스부르크의 다른 선수들과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때였다.
“뭐야? 방금 구자천 선수랑 통화한 거야?”
이택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 맞아.”
“뭐어어? 헐! 진짜 구자천이라니! 난 왜 안 바꿔줘! 나도 구자천 선수랑 통화하고 싶었는데!”
“바꿔 달라고 말을 하지.”
“구자천 선수랑 통화하는지 몰랐지! 으어어어어…! 재욱아, 다시 전화하면 좀 그렇겠지…?”
“할 수도 있지. 번호는 진한테 받아서 알잖아? 전화해봐.”
“그… 럴까? 아! 아니야! 막상 전화하면 말도 제대로 못 할 것 같아.”
이택현은 긴장하고 있었고.
신재욱은 그런 모습을 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을 못 할 게 뭐가 있어?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 구자천 선수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모르지? 재욱이 너, ‘구글거림’이라고 알아? 구자천 선수의 ‘구’ 씨랑 ‘오글거림’을 붙여서 구글거림이라고 그러는 거거든? 구자천 선수랑 되게 친한 기석용 선수가 만들어준 별명인데, 구자천 선수가 평소에 워낙 오글거리는 말을 많이 한다고 기석용 선수가…….”
이택현은 신이 난 얼굴로 각종 정보를 쏟아냈다.
문제는 신재욱에겐 전혀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근데 난 이제 자료 좀 볼게.”
“뭐? 이야기 더 안 듣고 싶어?”
“거기까지만 들을게. 당장 며칠 뒤에 경기니까 준비해야지.”
“아! 아직 할 말이 많은데?”
“더 말하고 싶으면 진이랑 통화해.”
“야! 진은 말이 너무 많잖아! 진이랑 통화하면 밤을 새워도 얘기가 끝이 안 난다고!”
“그건 그렇겠네.”
“아! 내일쯤 구자천 선수한테 연락해봐야겠다. 도저히 못 참겠네. 재욱아, 어떻게 생각해? 내가 내일 구자천 선수한테 연락해도 민폐 아니겠지?”
“어. 훈련할 때랑 잘 시간에만 안 하면 될 것 같아.”
대답을 끝으로 신재욱은 이어폰을 꼈다.
이어서 자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택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지금 신재욱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다음 경기였다.
* * *
아우크스부르크와의 경기가 펼쳐질 당일.
선발 출전이 확정된 선수들은 아우크스부르크의 홈구장에서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엔 신재욱도 있었다.
‘두 번째 선발이네.’
신재욱은 옅게 미소 지었다.
어제 리그 두 번째 선발 출전 소식을 들었다.
때문에, 기분이 좋은 상태로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환생 전엔 대부분 경기에 선발로 뛰었던 그였지만, 이번 삶은 아니었다.
특히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는 지금은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다.
환생 전의 실력을 전부 되찾으면 당연히 주전으로 뛰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아직 한참이나 더 노력해야 했다.
‘나도 많이 변했네. 당연하게 여겼던 선발 출전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다니.’
몸을 푼 뒤,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향했다.
이제 라커룸에 들어가면 유프 하인케스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들의 컨디션을 토대로 맡은 역할을 미세하게 수정해줄 것이다.
그리고.
라커룸을 향해 걷던 신재욱의 눈엔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남자가 보였다.
며칠 전에 통화했던 구자천이었다.
“신재욱 선수! 반가워요! 아까부터 아는 척하고 싶었는데, 훈련에 너무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못했어요.”
“안녕하세요.”
“컨디션은 어때요? 좋아요?”
구자천은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그보다 신재욱이 6살이나 어렸음에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
누군가는 당연한 예의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선후배 관계가 단단한 스포츠계에서 구자천 같이 행동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권력인 줄 아는 선수들이 워낙 많은 업계였으니까.
“예. 컨디션은 괜찮아요. 구자천 선수는요? 오늘 선발이시던데.”
“저도 컨디션은 괜찮은데, 상대가 바이에른 뮌헨이라 좀 떨리네요. 흐흐! 뮌헨이 워낙 강팀이잖아요?”
“강팀이긴 하죠. 그만큼 주전 경쟁도 치열하고요.”
“그러니까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는 저조차도 치열하게 경쟁하느라 힘든데, 바이에른 뮌헨에 있으면 얼마나 피 말리겠어요. 그래도 우리 힘내서 꼭 분데스리가에서 같이 성공해요.”
“좋죠. 꼭 같이 성공해요.”
신재욱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구자천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택현이 말했던 것처럼 오글거리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가식적인 모습이 전혀 없고 사람 자체가 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였다.
구자천이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행동을 하더니, 이내 신재욱을 향해 질문했다.
“그런데 이택현 선수는 어딨어요? 조금 전에 훈련할 때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신재욱이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택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요…? 분명 있었는데, 안 보이네요. 아마 라커룸에 들어간 것 같아요.”
“일찍 들어가셨네. 그럼 우리도 이제 들어가죠. 이따가 경기장에서 봐요!”
구자천과의 대화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온 신재욱은 피식 웃었다.
라커룸으로 향하는 길목에 숨어있던 이택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 여기서 뭐 해? 나 방금 구자천 선수랑 얘기하고 왔는데, 어디 갔었어? 팬이라며?”
“너랑 구자천 선수 대화하는 거 봤어. 근데 떨려서 못 다가가겠더라.”
“그 정도라고?”
“어, 나는 구자천 선수가 한국에서 축구 할 때부터 팬이었거든.”
“팬인 건 좋은데, 다음엔 용기 좀 내봐. 구자천 선수도 너랑 얘기해보고 싶은 것 같던데.”
“어? 진짜로? 구자천 선수가 나랑?”
“진짜야. 널 찾더라고.”
“오오……! 후! 안 되겠다! 다음엔 무조건 용기 내서 내가 먼저 다가간다! 재욱아, 나 구자천 선수랑 친해질 거니까 절대 말리지 마. 알겠지?”
“말릴 생각 전혀 없었어.”
신재욱은 피식 웃었다.
항상 자신감에 차 있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던 이택현이 쑥스러워하는 모습은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만 계속 보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
‘덩치 큰 녀석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진 않아.’
잠시 후.
유프 하인케스 감독의 연설을 끝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걸어 나갔다.
우우우우우우!
아우크스부르크의 홈구장이니만큼 굉장한 야유가 쏟아졌다.
전부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을 향한 야유였다.
“그치 이게 원정 경기지.”
신재욱은 야유를 보내는 아우크스부르크의 팬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상대 팬들이 저렇게 야유를 보내주는 게 나았다.
그래야 미안한 마음 없이 골을 넣을 수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뛸 수 있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재욱이 상대 선수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대부분 긴장하고 있었다.
구자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드러났다.
‘긴장하기보다는 즐기는 게 실력 발휘에 더 좋긴 한데…… 임대 온 상황에서 즐기기는 쉽지 않겠지.’
신재욱은 구자천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볼프스부르크 소속이지만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를 온 상황이었다.
당연히 더욱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고,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축구를 즐기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야.’
구자천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신재욱은 쓰게 웃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당장 무언가를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고.
‘살아남길 바랄게요.’
그저 응원할 뿐이었다.
* * *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됐다.
― 아우크스부르크 선수들이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우크스부르크 선수들의 움직임이 조금 굳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 아우크스부르크 선수들이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네요. 아무래도 상대가 현재 리그 1위인 바이에른 뮌헨이기 때문이겠죠?
― 그런 이유도 있지만, 아우크스부르크의 최근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도 선수들에겐 부담감으로 느껴질 것 같습니다.
해설들의 말처럼 아우크스부르크의 초반 움직임은 좋지 않았다.
바이에른 뮌헨의 압박에서 공을 지켜내고 있긴 하지만, 언제 뺏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불안해 보였다.
그때였다.
― 어어? 사샤 묄더스 선수! 빨리 처리해야죠!
아우크스부르크의 공격수 사샤 묄더스가 빠르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공을 끌었다.
문제는 그의 주변에 수비 능력이 좋은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 아! 결국엔 사샤 묄더스 선수가 공을 빼앗기고 맙니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선수와 하비 마르티네스 선수의 좋은 협동 수비였죠!
― 사샤 묄더스 선수는 조금 더 빠른 판단을 내렸어야 합니다!
사샤 묄더스의 턴오버로 인해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공격권이 넘어온 상황.
공을 잡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는 침착하게 전진했다.
속도를 높이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움직였다.
그 순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눈이 빛났다.
“……!”
지금 그의 넓은 시야엔 보였다.
아주 좋은 움직임을 가져가는 동료의 모습이.
“역시 신재욱이군.”
전반전 6분.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전방을 향해 날카로운 롱패스를 뿌려냈다.
그리고.
아우크스부르크의 오프사이드 라인을 뚫어낸 신재욱이 발을 뻗었다.
투욱!
발등으로 공을 받아냈다.
달리는 움직임에 전혀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부드러운 퍼스트 터치였다.
또한, 바로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완벽한 퍼스트 터치이기도 했다.
퍼어엉!
오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한 신재욱.
그의 첫 슈팅이 아우크스부르크의 골문을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