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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재욱의 선제골이 터진 이후.
상대인 A팀 선수들은 템포를 높였다. 마치 지금까진 몸을 푼 것이라는 듯 빠르게 움직이며 유기적으로 패스를 주고받았다.
전술의 완성도가 높은 데다가 선수들의 개인 기량까지 뛰어나니, A팀의 플레이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B팀 역시 같은 전술을 쓰는 바이에른 뮌헨 1군 선수들이었다.
“오! 저걸 끊어?”
신재욱의 눈이 커졌다.
그와 같은 팀 미드필더인 아나톨리 티모슈크가 깔끔한 태클로 A팀의 돌파를 끊어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아나톨리 티모슈크는 넘어진 상태에서도 공을 끝까지 밀어내며 동료에게 연결했다.
‘아나톨리 티모슈크…… 주로 교체로 뛰는 선수로 알고 있는데, 투지도 좋고 실력이 상당하네. 저런 선수가 주전이 아니고 교체로 뛴다는 거지?’
바이에른 뮌헨의 미드필더진이 얼마나 두꺼운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아나톨리 티모슈크의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는 B팀에게 좋은 역습 기회를 안겨줬다.
현재 공을 잡은 선수는 B팀의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였고.
“토니! 길게 찔러줘!”
“알았어.”
그는 괴물 같은 패스 실력을 보유한 선수였다.
퍼어엉!
단숨에 뿌려낸 패스가 길게 뻗어 나갔다. 오른쪽 측면으로 침투하던 토마스 뮐러를 정확히 겨냥한 패스였다.
B팀의 오른쪽 윙어로 뛰고 있는 토마스 뮐러가 발을 쭉 뻗어서 날아오는 공을 받아냈다.
워낙 기본기가 좋은 토마스 뮐러였기에 공을 받는 움직임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토마스 뮐러가 발을 휘둘렀다.
터엉!
너무나도 빠른 템포에 나온 패스.
페널티박스 안에서 A팀 수비수의 뒤로 침투하는 이택현을 노린 패스였다.
토마스 뮐러의 패스는 정확했다.
그리고.
이택현의 움직임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그는 침투하는 움직임을 가져가며 토마스 뮐러가 보내준 공을 향해 다이렉트 슈팅을 때려냈다.
퍼어엉!
워낙 뛰어난 피지컬을 지닌 이택현이었기에, 다이렉트로 때려낸 슈팅으로도 강렬한 타격음을 만들어냈다.
톰 슈타르케 골키퍼가 깜짝 놀라며 반응하려고 했지만, 이택현이 때려낸 슈팅은 그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해버렸다.
철썩!
A팀의 골망이 흔들렸고.
골을 기록한 이택현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요오오오오오옷! 이택현 님의 1군 첫 골이드아아아아아아! 훠우! 기분 째진다!”
이택현은 괴성을 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실전에서 하던 백덤블링 세리머니까지 펼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신재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과해.”
연습경기에서 나오기엔 과한 세리머니였긴 하지만, 그래도 이택현의 골과 세리머니로 인해서 B팀의 분위기는 좋아졌다.
2 대 0으로 B팀이 앞서가게 됐기 때문에, 선수들의 플레이에도 여유가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B팀의 여유는 길게 유지되지 못했다.
A팀이 골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골을 넣은 선수는 아르연 로번이었다.
그는 주특기인 오른쪽 측면에서 왼쪽으로 접으며 때려내는 중거리 슈팅으로 B팀의 골망을 흔들었다.
심지어 B팀의 골키퍼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인 마누엘 노이어였음에도 아르연 로번의 슈팅을 막아내진 못했다.
“아! 저 패턴은 알고도 꼭 한 번은 당한다니까?”
“아르연 로번의 저 패턴은 알고도 못 막지.”
“로번은 참 같은 팀일 땐 좋은데, 이렇게 다른 팀이 되면 너무 무서워.”
이후에도 A팀과 B팀은 치열하게 치고받았다.
골도 굉장히 많이 나왔다.
연습경기라는 특성상 거친 수비를 최대한 하지 않으며 플레이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었다.
삐이이익!
연습경기가 종료됐다.
평소대로라면 선수들 모두 음료수나 물을 마시면서 휴식을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경기를 치른 바이에른 뮌헨의 선수들 모두 기다렸다는 듯 신재욱과 이택현에게 몰려들었다.
“너희 둘 뭐야? 왜 이렇게 잘해?”
“둘 다 정말 17살이라고? 이게 말이 돼?”
“U19에서 올라온 신입생들 맞아? 너무 잘하잖아? 특히 신재욱! 넌 대체 어떻게 17살짜리가 27살처럼 뛰는 거야? 왜 노련한 거야?”
“너희 진짜 천재들이 맞았구나? 나 너희 플레이 보면서 굉장히 놀랐어!”
“우리를 상대로 신재욱이 2골 2도움 기록했고, 이택현이 1골 1도움…… 이야! 너희 정말 대단하다!”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 모두 상기된 얼굴로 신재욱과 이택현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U19에서 올라온 17살 선수들이 바이에른 뮌헨 1군 연습경기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좋은 활약을 펼쳤으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신재욱이 뱉어낸 말은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겨줬다.
“다들 왜 놀라고 그래요? 아직 다 보여주지도 않았어요.”
* * *
신재욱은 1군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사실 적응이랄 것도 없었다.
잠은 여전히 바이에른 뮌헨 캠퍼스에서 자고 있었고, 훈련할 때만 1군 훈련장에서 하는 것뿐이었으니까.
동료들과의 사이도 좋았다.
애초에 텃세도 부리지 않는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이들과 가까워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토마스 뮐러와 가장 빨리 친해졌다.
“재욱! 잘돼가?”
훈련 중 휴식 시간에 팀 전술 자료를 보고 있는 신재욱을 향해 토마스 뮐러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럼요. 금방 마스터할 거 같아요.”
“으하핫! 자신감이 미쳤다니까? 근데 재욱 너라면 정말 금방 우리의 전술을 다 익힐 것 같긴 해.”
“맞아요. 전 이런 거 가지고 거짓말 안 해요.”
“하하하! 조금은 겸손할 필요도 있지 않아? 보면 볼수록 솔직하네.”
“솔직한 건 토마스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빨리 친해진 거고요.”
“그건 맞지! 사실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어.”
“그런 것 같았어요.”
“크흐흐흐! 진짜 웃긴 녀석이라니까.”
“토마스도요.”
장난스러운 대화가 오가던 도중.
토마스 뮐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평소 진지한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던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장난기를 전부 뺀 채로 말을 했다.
“재욱, 지금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힘내서 계속 열심히 해. 팀 전술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고, 동료들과의 호흡도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까 곧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열심히 할게요.”
토마스 뮐러가 멀어지는 걸 보며, 신재욱이 입맛을 다셨다.
“슬슬 출전 기회를 얻고 싶긴 한데.”
벌써 1군에 올라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축구선수는 경기에 출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신재욱이기 때문에, 최근 들어서 출전 욕심이 나고 있었다.
“감독님이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이젠 뛰고 싶단 말이지.”
신재욱은 유프 하인케스 감독을 존중했다.
그의 마인드, 훈련 방식, 선수 기용 스타일 모두 존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뛰고 싶은 욕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한 번 찾아뵙고 말씀드려야 하나?”
감독에게 뛰고 싶다고 어필하는 것.
유럽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효과가 있을 때도 있으니,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이번엔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이택현이 다가왔다.
“에휴!”
“왜 오자마자 한숨이야?”
“한숨이 나오네…… 재욱아 우리 언제쯤 출전할 수 있을까? 나 너무 뛰고 싶은데…….”
“…나도 모르지.”
“아오! 진짜 출전만 하면 잘할 자신 있는데! 그리고 나 훈련 때도 꽤 잘하고 있지 않아? 이 정도면 기회 한 번은 받을 만한 것 같은데?”
“맞아. 너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절대 좌절하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해.”
“넌 괜찮아? 너도 출전 못 하고 있잖아.”
“괜찮을 리가 있겠어? 나도 답답하지. 근데 감독님 입장에선 성적을 내는 게 우선이니까 우리보단 경험이 많은 선수를 쓸 수밖에 없을 거야.”
“그거야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우리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우선 계속 열심히 하자. 유프 하인케스 감독님은 꽉 막힌 사람이 아니야. 우리가 출전할 준비가 되면 분명 기회는 올 거야.”
“알겠어. 네 말을 들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놓이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팀 훈련 끝나면 따로 일대일 훈련이나 할래?”
“좋지.”
대답과 동시에 신재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식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 팀 훈련에 참여할 시간이었다.
‘기회는 분명히 온다. 대신 그 기회를 무조건 살려야 돼.’
* * *
신재욱은 기회가 올 거라고 믿으며 매일 최선을 다해서 훈련했다.
그리고.
1군에 올라온 지 한 달하고도 13일이 지난 지금.
드디어 기회가 왔다.
바이에른 뮌헨의 교체 명단에 ‘신재욱’이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박혀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신재욱의 눈이 빛났다.
경기는 내일이었지만, 벌써 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물론 교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재욱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유프 하인케스 감독에게 10분 이상은 무조건 뛰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상태였으니까.
그때였다.
이택현이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네왔다.
“재욱아, 명단에 이름 올린 거 축하한다. 감독님이 꼭 출전시켜주기로 약속도 했다고 했지?”
“그랬지. 축하해줘서 고마워.”
“내일 경기에서 신재욱이 누군지 확실하게 보여줘. 알겠지?”
“웬일로 멋있는 응원을 하고 그래?”
“웬일이라니! 이 이택현 님은 원래 멋있거든? 그리고 네가 기회를 얻었을 때 잘해야, 나한테도 기회가 올 거 같아서 한 말이야.”
“걱정하지 마. 잘할 거니까.”
“진짜 잘해야 해. 만약에 못하면 한 달 동안 놀릴 거야.”
“너무 잘한다고 놀라지나 마라.”
“어우! 방금 한 말 되게 재수 없던 거 알아?”
“그건 전혀 모르겠고, 난 오늘은 추가 훈련 없이 쉴게.”
“내일 경기 때문에?”
“맞아. 컨디션 조절하려고.”
이택현과의 대화를 마친 이후.
신재욱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내일 경기가 있다고 운동을 아예 쉴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훈련으로 감각을 살려주는 게 더 나은 방법이었으니까.
‘오늘은 기초운동이랑 트래핑 정도만 하고 푹 쉬어야겠네.’
선수마다 경기 전날에 지키는 루틴이 존재하는데, 신재욱의 경우엔 푹 쉬어주는 게 루틴이었다.
심지어 그게 교체 출전일지라도.
다음 날.
신재욱은 다른 1군 선수들과 함께 구단 버스에 올라탔다.
‘조용하네.’
버스 안에서 조용했다.
떠드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선수들은 각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시간을 보냈다.
신재욱도 마찬가지였다.
귀로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고, 눈으로는 오늘 바이에른 뮌헨이 상대하게 된 팀의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FC 뉘른베르크…….’
FC 뉘른베르크.
바이에른 뮌헨과는 역사적으로 라이벌과 같은 관계였지만, 현시점에서는 무게감이 많이 떨어진 팀이었다.
그러나 FC 뉘른베르크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팀답게 저력을 지닌 팀이었다.
절대 방심해선 안 되는 상대였다.
그래서 신재욱은 다시 자료에 집중했다.
어젯밤에 충분히 상대의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왔지만, 늘 그랬듯 봤던 자료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
“전부 내리세요! 도착했습니다!”
신재욱을 포함한 바이에른 뮌헨 1군 선수들은 FC 뉘른베르크의 홈구장 ‘막스 모를로크 슈타디온’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