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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바이에른 뮌헨 U19 숙소에 도착한 신재욱을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이택현이었다.
“신재우우우우욱!”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반가워서 그렇지! 어어?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맞지? 살 빠졌지?”
“3kg 정도 빠지긴 했을 거야.”
“헐! 3kg이나 빠졌다고?”
“일정이 빠듯했잖아.”
“하긴…… 거의 2~3일에 한 경기를 소화했으니까 살이 빠질 수밖에 없긴 하겠네. 어우! 그럼 살부터 좀 찌워야겠는데? 살 빠지면 근육도 같이 빠지잖아?”
“그렇긴 한데, 잘 먹고 운동 잘하다 보면 금방 복구할 수 있어.”
“그래 너라면 잘하겠지. 그럼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갈까? 네 살도 좀 찌울 겸, 두 접시 때리자.”
“좋지. 근데 그전에 감독님이랑 다른 친구들 좀 보고 가자.”
“아! 맞네. 인사는 해야지.”
신재욱은 짐을 빠르게 푼 뒤, 이택현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 U19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눴고, U19 팀 동료들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옆에 붙어 다니던 이택현은 지루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지만.
“으어어어어! 재욱아아아아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배고파 죽겠어.”
“그래, 가자.”
“방금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는 거 들렸지?”
“못 들었어.”
“엥? 이걸 못 들었다고? 거의 천둥이었는데?”
“…….”
신재욱은 이택현과 식사를 한 뒤에, 휴식을 취했다.
이후에도 3일간은 휴식에만 집중했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원래라면 가벼운 운동 정도는 하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하지 못했다.
구단에서도 절대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전달이 내려왔고, U19 감독도 훈련은 금지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쉬는 것도 힘드네.”
마침내 3일이 지난 지금, 신재욱은 기지개를 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부턴 드디어 팀훈련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다시 축구를 한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곧 동료들을 놀라게 할 생각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놀랄 거야. U―20 월드컵에서 능력치 많이 올리고 왔거든.’
그때였다.
한참 좋은 기분을 만끽하려는 상황에서.
잠에서 깬 이택현이 분위기를 깼다.
“뭐야? 신재욱 너 왜 그렇게 음흉하게 웃고 있어? 뭔 생각하고 있는 거야?”
“뭔 소리야?”
“자다 깨서 혼자 실실 웃고 있잖아.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있지. 이따 훈련할 때 보면 알게 될 거야.”
잠시 후.
신재욱은 훈련용 옷으로 갈아입은 뒤, 훈련장에 도착했다.
아직 훈련이 시작하려면 1시간 정도가 남아있는 상황이었지만, 신재욱은 당연하다는 듯 몸을 풀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이택현도 몸을 풀기 시작했다.
“재욱아, 오랜만에 훈련해도 일찍 나오는 건 여전하네?”
“다른 건 몰라도, 훈련 열심히 하는 건 변하면 안 돼.”
“그건 인정. 그래서 나도 너 U―20 월드컵 가서 없을 때, 외로워도 참고 혼자 일찍 나와서 훈련했어. 저녁엔 매일 제일 늦게까지 훈련했고.”
“그렇구나.”
“뭐어…? ‘그렇구나’라고? 왜 이렇게 덤덤해? 칭찬 한마디도 안 해줘?”
이택현이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신재욱을 바라봤지만.
신재욱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당연한 걸 했다고 말하는데, 칭찬을 왜 해?”
“당연하다고?”
“늘 해왔던 거잖아.”
“근데 다른 애들은 이렇게까지 안 하잖아.”
“그만큼 실력에서 차이 나잖아. 너 U19에서도 잘하고 있다며? 지금처럼 훈련 안 하고도 만 16살에 U19에서 잘하고 있었을 것 같아? 난 아니라고 봐.”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이택현이 입을 삐죽 내밀며 머리를 긁적였다.
신재욱의 말에 틀린 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훈련이나 하자. 일단 몸부터 풀까?”
“아휴! 이 훈련 귀신! 신재욱 너는 훈련 귀신이야! 완전히 훈련에 미쳐버린 훈련 귀신이라고!”
“칭찬 고맙다.”
“칭찬 아닌데?”
“그래도 고마워.”
“칭찬 아니라고오오!”
“훈련 시작하자.”
“아오!”
이택현이 짜증을 냈지만, 신재욱은 전부 무시하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며칠간 푹 쉬고 하는 훈련이었기 때문에 굳어있던 근육을 잘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역시 며칠 안 했다고 몸이 조금 굳었네.’
스트레칭을 하니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굳었던 근육이 유연하게 풀어질 때의 느낌이었다.
‘그래도 해왔던 게 있어서 금방 좋아지겠어.’
스트레칭은 길게 이어졌다.
옆에서 이택현이 투덜댔지만, 신재욱은 묵묵하게 30분 동안 오로지 스트레칭에만 집중했다.
다음으로 한 건 가벼운 조깅이었다.
몸에 열을 내서 운동하기 좋은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사실 이런 과정들 모두 많은 수의 선수들이 대충 해버리는 부분이었지만.
신재욱은 단 한 번도 대충한 적이 없었다.
기초운동에 대해서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했으니까.
‘제일 중요하다고는 말 못 해도, 엄청 중요한 거라고는 말할 수 있는 게 기초운동이지. 이걸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능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고, 여러 부상을 방지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과정 덕분에 큰 부상을 피해왔다고 생각했으니까.
* * *
각종 기초운동을 마쳤을 때.
바이에른 뮌헨 U19 팀의 선수들이 훈련장에 하나둘 나타났다.
선수들은 이미 훈련장에 있는 신재욱과 이택현을 발견하곤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먼저 와서 훈련하고 있었구나? 하도 많이 봤던 장면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네.”
“근데 신재욱은 오랜만에 훈련에 참여하는 건데도 바로 저렇게 하는 거야? 진짜 독하다 독해.”
“쟤들은 잘할 수밖에 없어. 재능도 뛰어난 애들이 축구에 미친 사람들처럼 훈련하는데, 어떻게 못 할 수가 있겠어?”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월장을 계속하는 애들은 뭔가 다르다고. 쟤들처럼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끈기도 다 재능이야. 특별한 거지.”
이들 모두 바이에른 뮌헨 U19에 소속될 만큼 좋은 실력을 지닌 선수들이었지만.
자신들보다 어린 신재욱과 이택현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축구를 잘하니까.
“다들 U―20 월드컵 봤지?”
“봤지. 신재욱 쟨 그냥 미쳤더라. 상대를 전부 박살 내던데?”
“난 브라질의 카세미루를 일대일로 발라버릴 때 깜짝 놀랐잖아. 걔는 일대일로는 절대 안 지는 것으로 엄청 유명한 선수였거든.”
“카세미루만 발랐나? 프랑스, 콜롬비아, 포르투갈 다 신재욱한테 발렸잖아.”
“맞아. 그리고 솔직히 한국팀은 수비도 불안했고 선수들 실력도 아쉬웠는데, 신재욱이 그냥 우승까지 끌고 가버리더라.”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으려나? U―20 월드컵에서 뛰는 거 봤을 땐 꽤 성장한 거 같긴 했는데, 이게 또 같이 훈련해보지 않으면 확실하지 않으니까 빨리 확인해보고 싶네.”
선수들이 전부 모인 뒤, U19 감독과 코치도 금방 훈련장에 나타났다.
그렇게 훈련이 시작됐다.
‘몸은 괜찮네.’
신재욱은 팀 훈련에 참여하면서 몸 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했다.
혹시 모를 이상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몸에 이상은 없었다.
오히려 생각했던 것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심지어 오랜만의 팀 훈련인데도 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몸도 가벼웠다.
미리 기초운동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 이유가 뭔지 알고 있었다.
‘성장을 많이 하긴 했나 보네.’
U―20 월드컵에서 능력치와 특성들이 성장했다는 것.
그게 바로 바이에른 뮌헨 U19에서의 훈련이 쉽게 느껴지는 이유였다.
그때였다.
훈련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처럼 팀 훈련을 쉽게 소화하는 신재욱을 보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뭐야? 뭔가 달라졌는데? 모든 종목을 다 가볍게 소화하는 것 같잖아?”
“원래는 저 정도로 쉽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신재욱 쟤, 실력이 더 늘어서 온 것 같은데?”
“미친…… 괴물이 더 괴물이 돼서 돌아왔다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이택현도 마찬가지였다.
“재욱아! 너 뭐야…?”
“뭐가?”
“왜 이렇게 잘해? 몸도 더 가벼워진 것 같고, 어떻게 된 거야?”
“뭘 어떻게 돼? 성장한 거지.”
“허……!”
이택현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말을 한 신재욱도 민망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실제로 능력치가 오르며 성장한 것을.
“…너도 드리블이 좋아졌던데? 패스나 슈팅도 좋아졌고.”
신재욱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이택현의 실력도 늘어있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드리블과 패스, 그리고 슈팅까지 다 발전한 게 보였다.
하지만 이택현은 여전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이가 없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진짜 천재의 발전 속도는 못 따라가는 건가? 나 진짜 너 놀라게 해주려고 개빡세게 훈련해왔는데, 오히려 내가 놀랐네…….”
“…힘내. 네 발전 속도도 정상은 아니야.”
“참 힘이 난다. 친구야.”
이택현은 한숨을 푹 내쉰 채, 다시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멀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신재욱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택현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재욱은 그 말을 조심스레 뱉어냈다.
“……화이팅.”
* * *
팀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여러 종류의 훈련이 진행됐다.
그리고 이제는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훈련 시간이 다가왔다.
바로 연습경기가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축구 타임이다!”
“긴장해! 오늘 무조건 한 골은 넣을 거니까!”
“어젯밤에 연구한 내 필살기를 보여주지!”
“덤벼봐! 내가 다 막아줄게!”
선수들을 장난을 치며 곧 시작될 연습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들의 분위기는 평소랑은 조금 달랐다.
평소처럼 장난을 치고 있긴 하지만, 계속해서 한 선수를 신경 쓰고 있었다.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이들의 시선은 자꾸만 그 선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이처럼 많은 시선을 받는 상황에서도 신재욱은 묵묵하게 뛸 준비를 했다.
“축구화 끈도 잘 묶여있고…… 불편한 부분은 없네.”
모든 준비가 끝낸 지금.
신재욱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 왜 이렇게들 힐끔힐끔 쳐다봐?”
자신에게 쏟아지는 U19 선수들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옆에 있던 이택현이 이유를 설명해줬다.
“쟤들 다 널 되게 신경 쓰고 있어.”
“날? 왜?”
“U―20 월드컵 우승하고 왔잖아. 쟤들 다 U―20 월드컵에 관심 많아서 네 경기도 다 챙겨봤거든. 근데 네가 거기서 좀 잘했어? 말도 안 되게 잘했잖아. 그러니까 신경이 쓰이는 거지. 긴장도 되고.”
“그렇구나.”
신재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재밌는 생각이 났다.
‘기대치에 맞는 플레이를 보여줘야겠네?’
모두를 놀라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