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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뭐야?”
눈을 뜬 신재욱이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침착하게 주변의 사물들을 확인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병원인 거 같은데?”
한국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분명 병원의 1인실이었다.
그때였다.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콜롬비아인이었다.
“콜롬비아의 병원이구나.”
신재욱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간호사는 깜짝 놀라며 재빨리 문밖을 나섰다.
잠시 후, 대표팀 선수들과 감독, 코치 모두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재욱아! 괜찮아? 괜찮은 거야?”
“재욱! 몸은 좀 어때?”
“재욱아 드디어 깼구나!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재욱…….”
동시에 여러 명이 입을 열자, 방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자 안기혁 감독이 나섰다.
“다들 재욱이 얼굴 봤으니까, 밖에 나가 있어.”
선수들은 방을 빠져나갔고, 방 안엔 이제 신재욱과 안기혁 감독 단둘만 남았다.
“감독님, 어떻게 된 거예요?”
“너 쓰러졌었어.”
“경기 끝나고 바로요? 경기 끝날 때까지 뛴 건 기억나는데, 그 뒤로 기억이 안 나요.”
“그래, 경기 끝나자마자 쓰러지더라.”
“그렇구나. 원인은 뭐래요?”
“과로. 피로가 너무 쌓여서 쓰러진 거래.”
“그렇군요.”
신재욱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냥 원인이 궁금했을 뿐, 별로 큰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피곤해서 쓰러질 수도 있지 뭐. 그리고 안 쓰러지는 게 이상할 정도로 뛰었잖아?’
그런데.
안기혁 감독의 행동은 달랐다.
그는 신재욱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내 욕심 때문에 널 혹사했어.”
“에이, 왜 이러세요?”
신재욱은 당황해서 재빨리 몸을 일으키곤 안기혁 감독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안기혁 감독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감독이라면…… 적어도 마지막 결승전에서만큼은 교체를 해줬어야 했어. 하지만 재욱이 너를 빼면 질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더군. 그래서 널 쉬게 해주지 못했다. 다시 한번 정말 미안하다.”
“감독님,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좋았어요.”
“……좋았다고?”
“예. 전 최대한 많이 뛰고 싶거든요. 근데 안기혁 감독님은 제가 원하는 걸 제대로 충족시켜주셨어요. 그러니 제가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고개 드세요. 감독님이 이러시면 나이가 어린 저로서는 너무 불편해요.”
안기혁 감독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눈이었다.
이때, 신재욱이 안기혁 감독을 불렀다.
“감독님.”
“……?”
“제가 쓰러지는 바람에 다들 우승하고도 제대로 기뻐하지도 못했겠네요?”
“당연히…… 기뻐할 수 없었지.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니…?”
그 순간 신재욱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파티하러 가시죠. 우승한 거 축하해야죠.”
* * *
입원해서 푹 쉬었기 때문일까?
“개운하다.”
하루가 지난 지금, 신재욱의 몸 상태는 아주 좋았다.
파티를 즐기기에도 충분한 몸 상태였다.
그리고 사실 파티라고 해봤자 엄청난 건 없었다.
만 20세 이하 선수들이 많은 U20 대표팀이었기에, 술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정도였다.
다만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파티가 열리고 있는 공간 안에 우승컵이 있었으니까.
“영롱하네.”
신재욱은 우승컵을 보며 감탄했다.
은색으로 빛나는 디자인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그때였다.
근처에서 음식을 먹던 진 바그너가 다가왔다.
“신재욱 선수, 트로피를 구경하고 계셨군요?”
“예. 음식은 입에 맞으세요?”
“맞다마다요. 말도 안 되게 맛있어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지금 벌써 5접시째예요.”
“…혹시나 에이전트 일을 그만두신다면 푸드파이터 쪽으로 가시는 건 어떨까요?”
“그런 생각을 안 해봤던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되어버리는 건 슬플 것 같더라고요.”
“이미 생각을 해보셨구나.”
“하하! 당연히 해봤죠. 아! 이걸 안 여쭤봤네요. 신재욱 선수,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좋아요. 병원 측에서도 당분간 무리하지 않고 잘 쉬어주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면서요?”
“예. 그랬죠. 심하게 무리하셔서 그렇지, 몸 자체는 워낙 관리를 잘하셔서 건강하신 상태에요.”
“다행이네요.”
“다행이죠. 근데 앞으론 절대 그렇게까지 무리하시면 안 돼요.”
“예. 조심할게요.”
“어우! 아직도 신재욱 선수 쓰러졌을 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떨려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진.”
신재욱은 진 바그너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내가 쓰러지자마자 펑펑 울었다고 했지? 참 어울리지 않게 감성적인 사람이야.’
진 바그너가 경기장에서 펑펑 울고, 신재욱이 입원한 병원에 병문안을 와서도 펑펑 울었다는 소식.
이찬호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순간 191cm에 110kg이 넘는 거구의 근육질 남자가 펑펑 우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신재욱은 재빨리 생각을 전환했다.
‘이건…… 모르는 게 더 아름다울 것 같아.’
그때였다.
진 바그너가 잊고 있던 게 생각난 듯 다급하게 말했다.
“아잇! 내 정신 좀 봐. 어떻게 이걸 잊을 수가 있지? 신재욱 선수… 제가 실수로 잊고 있다가 이제야 말씀드리는 건데, 이택현 선수가 깨어나시면 꼭 연락 달라고 했었어요.”
“택현이가요?”
“예. 신재욱 선수 쓰러진 거 TV로 보면서 많이 놀라신 것 같더라고요.”
“택현이랑도 통화를 해봐야겠네요.”
“부재중 전화 와있는 거 없었어요?”
“아…… 이곳저곳에서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아직 확인 못 했어요.”
“그러셨구나. 부모님과는 연락하셨다고 했죠?”
“그럼요. 어젯밤에 2시간은 통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쓰러져 있을 때, 진이 저희 부모님께 전화해서 안심시켜주셨다면서요?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요. 에이전트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당연한 게 어딨어요. 정말 고마워요 진. 아, 얘기가 길어졌네요. 우선 식사마저 하세요. 저도 택현이한테 전화 좀 할게요.”
“예. 그럼 전 밥 좀 더 먹고 있을게요.”
진 바그너와의 대화를 마친 뒤.
신재욱은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꺼놨었던 핸드폰을 켰다.
― 재욱아! 너 어떻게 연락 한 통 없을 수가 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진한테 괜찮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나 진심으로 콜롬비아로 날아가려고 했다니까?
이택현은 전화를 받자마자 속사포처럼 화를 쏟아냈다.
목소리도 격앙되어 있었다.
신재욱은 아무런 핑계 없이 곧바로 사과했다.
“미안하다.”
― ……바로 사과를 하니까 할 말이 없네. 부모님한테는 연락드렸어?
“드렸지.”
― 그래도 그건 잘했네. 몸은 좀 어때?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멀쩡해. 다 회복했어.”
― 다행이구만. 난 네가 독일로 돌아오면 엄살피우면서 훈련 뺄까 봐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도 했네?”
― 뭐? 큭큭! 하긴 신재욱이 훈련을 빼먹을 리가 없지.
“훈련 한 번 빼먹으면 계속 빼고 싶어져서 안 돼.”
― 빼먹어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얘기한다? 너 그런 적 없잖아.
“없긴…… 하지.”
신재욱은 잠시 머릿속에 있던 기억들을 헤집어봤지만, 훈련을 빼먹었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 그래. 없다니까. 그래서 독일엔 언제 올 거야?
“내일 가야지.”
― 바로 오는구나? 며칠 쉬다가 오는 거 아니었어?
“콜롬비아에서 쉬나, 거기 가서 쉬나 똑같지.”
― 여기 오면 안 쉬고 바로 훈련할 거잖아.
“한 이틀은 설렁설렁할 거야.”
― 그래, 좀 쉬면서 해. 또 쓰러지면 안 되잖아.
“이제 전화 끊을게. 곧 독일에서 보자.”
― 오케이!
이택현과의 통화를 마친 지금.
신재욱은 허공에 상태창을 띄웠다.
쓰러지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했던 변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름] 신재욱
[나이] 17(만 16세)
[키] 179cm
[체력] 76 [슈팅] 82 [패스] 80 [속도] 74
[민첩] 79 [대인방어] 78 [태클] 78 [몸싸움] 77
[탈압박] 77 [드리블] 80 [개인기] 80 [헤딩] 77
[특성] 스트라이커의 본능(A), 경이로운 집중력(B), 고급 패스 컨트롤(B), 고급 볼 컨트롤(B), 경이로운 정신력(B), 완벽에 가까운 무게중심(B), 그라운드의 프로파이터(C), 중급 슈팅 컨트롤(C)
“오!”
신재욱은 상태창을 보며 감탄했다.
능력치의 변화 때문이었다.
“체력, 속도, 몸싸움, 헤딩까지 4개나 올랐잖아? 많이도 올랐네.”
무려 4개의 능력이 각각 1씩 성장했다.
특히 평소에 성장이 느렸던 체력과 속도 능력치가 올랐다는 사실은 신재욱의 기분을 더욱 좋게 만들어줬다.
“키도 더 컸으면 좋겠는데…… 이 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우선 이 정도로 만족하자.”
신재욱은 허공에 떠 있던 상태창을 치웠다.
“슬슬 파티를 즐겨볼까?”
이제부턴 함께 U―20 월드컵 우승을 일궈낸 동료들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 * *
콜롬비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신재욱은 진 바그너와 함께 독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신재욱 선수는 기분 좋으시겠어요.”
“왜요?”
“우승하고 소속팀으로 돌아가시는 거잖아요. 축구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고 소속팀으로 돌아갈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그래요? 전 그냥 별생각이 없었어요.”
솔직한 대답이었다.
정말로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소속팀으로 돌아가서 할 훈련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으하하! 역시 신재욱 선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네요. 근데 혹시 훈련 생각하고 계셨던 건 아니죠?”
“어? 어떻게 알았어요?”
“뻔하죠. 신재욱 선수는 원래 훈련 생각만 하시잖아요. 근데 콜롬비아 병원의 의사와 U20 대표팀의 의료진들 모두 며칠간은 꼭 쉬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시죠?”
“택현이랑 통화할 때도 얘기했던 거긴 한데, 저도 이틀 정도는 휴식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오! 좋은 생각이시네요. 전 신재욱 선수가 바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하실까 봐 조금 걱정했었거든요.”
“하하…… 저 그렇게 무식하게 훈련하는 사람 아니에요. 쉴 땐 쉬면서 해요.”
진 바그너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잠시, 신재욱은 하품을 길게 했다.
“졸려 보이시네요?”
“어우…… U―20 월드컵 내내 쌓였던 피로가 세긴 한가 봐요. 어제오늘 푹 잤는데도 피곤하네요.”
“빨리 풀리는 게 더 이상하죠. 심각할 정도로 많이 뛰셨잖아요. 신재욱 선수, 편하게 눈 좀 붙이세요. 도착하면 깨워드릴게요.”
“고마워요. 그럼 조금 자볼게요.”
신재욱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신재욱 선수, 도착했어요! 일어나세요!”
진 바그너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을 땐, 뮌헨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