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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송건우가 움찔했다.
신재욱보다 3살이나 많은 그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만큼 신재욱에게서 느껴지는 카리스마는 강렬했다.
“훈련 때 잘했잖아요? 긴장 푸시고요. 그리고 방금 말한 것처럼 주변에 줄 데도 딱히 없고, 압박 들어와서 불안할 땐 그냥 나한테 줘요.”
“그럼 네가 너무 부담되니까…….”
“괜찮아요. 전 그런 거 익숙하거든요.”
“……알겠어.”
“잘해봅시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신재욱은 곧바로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긴장이 좀 풀렸으려나.”
U20 대표팀에서 봐온 송건우는 피지컬도 좋고, 발기술도 좋은 선수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는 좋은 재능을 지닌 인재였기에, 신재욱은 그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겨내고 잘할 거라고 믿었다.
“긴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렇지, 송건우 정도의 실력이면 긴장만 풀리면 달라질 거야.”
경기가 재개됐다.
공은 방금 실점한 한국의 소유였다.
신재욱은 중원에서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공을 받아주고, 뿌려주고, 지켜주는 역할을 전부 소화했다.
당연하게도 의사소통도 활발하게 이끌었다.
한국의 선수들 모두 실시간으로 신재욱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재욱아! 한 타이밍 쉬고 침투해볼까?”
“그렇게 하세요. 타이밍 맞으면 패스 넣어드릴게요.”
“재욱! 더 강하게 압박할까?”
“지금이 딱 좋아요. 이 정도만 해줘도 상대는 답답함을 느낄 거예요. 대신 쉬지 않고 압박해줘야 해요.”
“알게쓰!”
이처럼 한국 선수들은 실시간으로 신재욱에게 여러 가지를 질문하며 의지했고.
신재욱은 그런 선수들에게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답을 던져줬다.
― 신재욱 선수가 팀을 완전히 지휘하고 있는 것 같죠?
― 예, 그렇게 보이네요. 다른 선수들이 신재욱 선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장면이 많습니다. 그리고 신재욱 선수는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고 있고요. 사실 이런 장면은 지난 경기들에서도 볼 수 있었던 거죠.
― 놀라운데요? 사실 이건 세계적인 선수들도 거의 하지 못하는 일이잖습니까? 경기 중엔 자신의 플레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에, 신재욱 선수처럼 실시간으로 동료들의 움직임까지 신경 쓰며 의사소통을 하는 건 정말 어려운 거거든요!
― 우선 신재욱 선수의 수준이 굉장히 높고, 넓은 시야와 다른 선수들에겐 없는 침착함과 여유까지 지녔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실수로 인해서 실점했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은 공을 오래 소유하고 있지 않고 안정적으로 패스를 주고받았다.
포르투갈이 강하게 압박을 해왔지만, 그럴 때마다 신재욱에게 공을 넘겼다.
그리고.
동료들이 공을 줄 때마다 신재욱은 든든한 모습을 보여줬다.
― 신재욱 선수가 이번에도 쉽게 탈압박을 해냅니다! 포르투갈 선수들이 신재욱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전혀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재욱은 팀의 공격을 이끌기까지 했다.
― 신재욱 선수가 이찬호 선수와의 2 대 1 패스로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오! 좋은 패스입니다! 신재욱 선수가 전방으로 쇄도하는 오정훈 선수를 봤네요!
지금처럼 압박을 벗어난 뒤, 좋은 움직임을 가져가는 동료에게 킬패스를 뿌려주는 역할까지 했다.
그 결과 신재욱은 도움을 기록하며 또다시 공격포인트를 추가했다.
― 오정훈이 골을 기록합니다! 호쾌한 슈팅으로 스코어를 3 대 1로 만들었습니다!
― 슈팅 파워가 대단한 오정훈 선수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신재욱 선수의 패스를 받자마자 자신감 있게 때려 넣었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이 더욱 적극적인 공격에 나섰지만, 한국의 강한 압박에 고전하며 골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후반전에도 흐름은 비슷했다.
신재욱이 많이 뛰면서 동료들의 위치와 압박의 강도를 잘 조정해줬고, 포르투갈은 그런 한국을 효율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 20분이 지나면서 한국은 위기를 맞았다.
“……슬슬 힘드네.”
신재욱이 지쳤기 때문이었다.
중원에서 위아래를 오가며 공격과 수비에 활기를 불어넣던 에이스가 지쳐버린 건 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아…… 대한민국의 볼 점유율이 전반전에 비교하면 너무 많이 떨어졌는데요? 중원 싸움에서도 밀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신재욱 선수의 활동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건데요. 아…… 신재욱 선수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 신재욱 선수는 그동안 너무 많이 뛰어줬죠. 체력이 정상일 수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뛰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 지쳐버린 신재욱 선수를 교체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아무리 지쳤어도 신재욱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는 없거든요……!
한국은 속절없이 밀렸다.
중원이 흔들리자 공격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수비까지 흔들렸다.
더구나 한국의 수비는 원래 약한 편이었는데, 신재욱의 지원마저 끊기자 위태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안기혁 감독은 칼을 빼 들었다.
― 오정훈 선수를 교체해주네요? 수비수인 방태민 선수를 투입합니다!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를 투입한다는 건, 이제부터는 수비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겠죠?
― 안기혁 감독이 결정을 내렸네요. 하지만 신재욱 선수는 끝까지 뛰게 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중앙수비수 방태민이 경기장에 들어왔다.
공격수를 한 명 줄여가면서 투입된 선수였다.
위태로운 수비진을 강화하기 위한 안기혁 감독의 과감한 선택이었다.
효과는 있었다.
지친 신재욱이 수비에 가담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수비에 안정감이 생겼다.
다만 방태민은 이번 대회에서 교체로만 투입됐던 선수였기에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건 불안한 요소였다.
― 방태민 선수의 패스 실수가 나왔습니다! 이런 플레이는 너무 아쉬운데요? 방태민 선수는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방태민이 들어오기 전보다는 나았지만, 한국의 수비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흔들렸다.
결국엔 후반 41분,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 넬슨 올리베이라가 침투합니다! 막아야 합니다! 어? 반칙…… 아…… 반칙이 선언되네요…….
세르지오 올리베이라가 한국의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던 넬슨 올리베이라에게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줬고.
한국의 중앙수비수 구재윤이 슈팅을 때리려던 넬슨 올리베이라를 방해하며 주어진 반칙이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반칙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
페널티킥이었다.
사실상 한 골을 내줬다고 생각해도 되는 상황이었기에, 한국 선수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페널티킥이라니…….”
“이거 먹히면 1골 차이밖에 안 나는데…….”
“막을 수 있으려나…?”
이들처럼 한숨을 쉬진 않았지만, 신재욱도 쓴웃음을 지었다.
‘페널티킥을 내준 타이밍이 안 좋은데.’
포르투갈의 기세가 살아난 상황에서 내줬기에 위험성이 더 컸다.
이런 분위기에서 포르투갈이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 더욱 기세가 올라 동점 골까지 나오게 될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반칙을 한 구재윤이 레드카드가 아닌 옐로카드를 받았다는 것.
‘퇴장이라도 당했으면 난리 날뻔했어.’
신재욱은 동료들과 함께 서서 한국의 골대를 바라봤다.
그곳엔 채민석 골키퍼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고, 페널티킥의 키커로 나선 넬슨 올리베이라가 심판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삐익!
주심의 신호가 나왔고.
오늘 한 개의 골을 넣은 넬슨 올리베이라는 두 번째 골을 넣기 위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어엉!
자신 있게 때려낸 슈팅이었다.
채민석 골키퍼가 몸을 날려봤지만, 슈팅의 방향을 맞추지 못했다.
철렁!
한국의 골망이 흔들렸다.
* * *
― 넬슨 올리베이라 선수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켰습니다…! 이제 스코어는 3 대 2가 됐습니다!
― 우리 선수들이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네요! 남은 시간 동안 포르투갈의 공세를 잘 막아내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를 바랍니다!
양 팀 모두 필사적이었다.
포르투갈은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했고.
한국은 그런 포르투갈의 공격을 몸을 던져가며 막아냈다.
특히 신재욱의 수비 가담이 압권이었다.
― 신재욱이 걷어냅니다! 이 선수는 정말 대단하네요! 완전히 지쳐버린 상황에서도 몸을 던지는 걸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에이스 품격인가요? 정말 놀라운 정신력이네요! 팀을 위한 신재욱 선수의 희생은…… 이번 대회가 끝나도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정신력으로 뛰며 몸을 던지는 신재욱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본 전 세계 축구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도 안 돼! 신재욱 방전된 거 아니었어? 저 녀석 좀비야? 어떻게 계속 뛸 수 있는 거지?
└OMG…! 신재욱을 보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야. 마치 목숨이라도 걸려있는 사람처럼 열심히 뛰잖아?
└이게 뭐야? 신재욱이 포르투갈의 공격을 몇 번이나 막아내고 있는지 모르겠어! 경기를 보니까 확실하게 알겠네. 한국팀은 신재욱이 없었으면 포르투갈한테 5 대 0으로 졌을 거야.
└신재욱은 U―20 월드컵에서 가장 수준 높은 선수야. 혼자서 여러 명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잖아? 그가 후반전에 지친 건 당연한 거야.
└심지어 신재욱은 U―20 월드컵에서 계속해서 풀타임을 소화하는 중이지.
└수비수라고 해도 믿겠는데? 그냥 지금부터 수비수 훈련을 받고, 키가 커지기만 하면 월드클래스 수비수로 성장할 수 있겠어.
└한국이 처절하게 버티고 있어. 특히 신재욱의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는 감동적으로 느껴질 정도야.
└하하……! 이번 경기를 본 사람들은 전부 신재욱의 팬이 될 수밖에 없겠어.
“후읍…… 후우…….”
신재욱은 숨을 헐떡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몸도 무거웠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 피로도 어마어마했다. 잔디 위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움직이자.’
신재욱은 멈추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이 끊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팀은 10 대 11로 싸우게 되는 거나 다름없잖아. 그렇게 만들 순 없지.’
다만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나마 경이로운 정신력(B) 특성의 효과 덕분에 버티고는 있지만, 이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좀 끝내라.’
신재욱은 고개를 돌려 주심을 바라봤다.
추가시간이 거의 다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빨리 경기를 끝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삐익! 삐이이익!
마침내 주심의 휘슬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경기 종료였다.
― 우와아아아아아아! 끝났습니다! 이겼습니다!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이기고 U―20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 믿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양 팀 선수들 모두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들 모두 지닌 힘을 전부 쏟아부었기 때문에,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때였다.
한국대표팀의 의료진들이 다급하게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 어어…? 신재욱 선수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의료진들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신재욱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