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 * *
해트트릭을 기록한 지금.
“이거나 먹어라.”
신재욱은 곧바로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사실상 도발이었다.
비신사적인 콜롬비아 관중들을 향한 도발.
우우우우우우우―!
야유가 쏟아졌다.
신재욱은 그런 콜롬비아 관중들에게 더 크게 떠들어보라는 듯 양쪽 손바닥을 귀에다가 가져다 댔다.
그러자 더욱 커다란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우우―!
그때였다.
신재욱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그곳엔 실시간으로 메시지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슈팅이 좋아집니다!]
[개인기가 좋아집니다!]
[드리블이 좋아집니다!]
…….
…….
각종 능력치가 좋아졌다는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고.
[슈팅이 1 올랐습니다!]
[드리블이 1 올랐습니다!]
슈팅 능력치와 드리블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도 떠올랐다.
“대박이네.”
신재욱의 얼굴에 미소가 진한 걸렸다.
“이 두 개가 성장할 줄이야. 해트트릭을 해서 그런가?”
슈팅과 드리블은 아직 오르지 않을 것 같던 능력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게 슈팅은 80으로 모든 능력 중 가장 높은 능력치였고, 드리블은 능력치가 잘 오르지 않는 구간인 79였으니까.
“이제 슈팅은 81이 됐고, 드리블도 80이 됐네.”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결과물들이었다.
그런데 이때, 야유를 보내던 콜롬비아 관중들이 이번엔 약이 잔뜩 오른 얼굴로 각종 욕설까지 뱉어댔다.
신재욱이 자신들을 비웃고 있다고 오해했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었다.
물론 신재욱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 사람들 왜 저래?”
또한,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화가 많은 사람들이구만.”
자신이 할 건 그냥 콜롬비아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면 콜롬비아의 팬들은 알아서 무너질 테니까.
― 엄청난 골이었습니다! 우리 선수들 모두가 최선을 다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골이 아닌가 싶네요! 채민석의 골킥과 최전방에서 머리로 공을 따내 준 오정훈의 플레이, 마지막으로 신재욱의 마무리까지 너무나도 완벽했습니다!
― 그전에 나왔던 우리 수비수들의 몸을 던지는 희생 플레이들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번 U―20 월드컵에서 최강의 화력을 보여주고 있는 팀 중 하나인 콜롬비아를 상대로 겨우 1실점밖에 안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 그렇습니다. 골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금 같은 기회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경기가 재개된 이후, 콜롬비아는 이제 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경기의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며 골을 노렸다면, 이제는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무리한 돌파 장면도 자주 나왔다.
― 아! 이건 뭔가요? 루이스 무리엘 선수, 방금 돌파 시도는 무리였죠! 우리 수비수 2명이 막고 있었거든요?
― 루이스 무리엘 선수가 다른 경기에선 연계 능력이 매우 뛰어났는데, 지금은 너무 혼자 하려고 하네요.
― 그만큼 마음이 급해진 것이겠죠? 반대로 말하면 우리 선수들이 콜롬비아를 잘 상대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나오는 선수들을 상대로는 지금처럼 자리를 지키면서 수비하는 게 좋거든요!
한국은 흔들리긴 했지만, 골을 내주진 않았다.
콜롬비아는 분명 공격에 많은 신경을 쏟으며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긴 했다.
하지만 한국도 모든 선수가 수비에 가담하며 골문을 필사적으로 걸어 잠그는 중이었다.
다만 수비만 하는 건 아니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신재욱과 공격수로 출전한 이찬호와 오정훈은 항시 역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 22분.
한국의 역습 기회가 왔다.
떠어엉!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왼발 슈팅이 한국의 골대에 맞고 튕겼다.
― 오우……! 엄청난 슈팅이었습니다! 하메스 로드리게스의 왼발 슈팅은 정말 위협적입니다!
― 우리 선수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힘내주길 바랍니다! 방금은 운 좋게 골대에 맞아서 골이 되진 않았지만, 사실상 골이 됐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우리 선수들은 이 하메스 로드리게스 선수의 슈팅을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튕겨 나온 공은 다시 콜롬비아의 소유가 됐다.
콜롬비아의 미드필더 앤서니가 날아오는 공을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투웅!
앤서니는 가슴으로 공을 받아낸 뒤, 슈팅을 때리기 위해 다리를 휘둘렀다. 시간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시도한 슈팅.
발등에 잘 걸리기만 하면 단숨에 골로 연결될 수 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앤서니의 발은 공을 끝까지 때려내지 못했다.
촤아악!
그의 발밑으로 들어온 슬라이딩태클 때문이었다.
민첩한 몸놀림을 지닌 앤서니였지만, 지금 들어온 태클엔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뒤에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 신재욱이 공을 뺏어냅니다! 우오오오오! 순간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완전히 백태클처럼 보였거든요?
― 실제로 자칫 잘못하면 곧바로 퇴장을 당할 수도 있는 게 백태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재욱 선수는 과감하게 백태클을 해버리네요! 그리고 반칙이 되지 않게끔 정확히 공만 빼냈습니다!
―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태클이네요! 감히 말하자면 신재욱 선수의 태클은 조금만 갈고닦으면 어떤 무대에서든 통할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뛰는 대단한 수비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태클 실력이거든요?
해설들의 극찬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반대로 경기장엔 야유가 쏟아졌다.
콜롬비아 관중들이 보내는 야유였다.
우우우우우―!
그런 상황에서 신재욱은 근처에 있던 오정훈에게 공을 툭― 밀어주며 몸을 일으켰다.
태클을 하느라 넘어져 있는 신재욱에게 달려들던 콜롬비아 선수들은 방향을 틀어 오정훈에게 덤벼들었다.
이때, 오정훈은 다시 신재욱에게 공을 넘겼다.
― 신재욱과 오정훈의 호흡이 상당히 좋네요! 패스를 주고받으며 콜롬비아의 압박을 벗어났습니다!
― 콜롬비아 선수들이 필사적으로 역습을 끊어보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재욱은 어지간해선 공을 뺏기지 않는 선수거든요!
― 그리고 이런 역습 기회를 너무나도 잘 살리는 선수이기도 하죠!
오정훈과의 호흡으로 탈압박을 해낸 지금.
신재욱은 앞으로 직접 치고 나가지 않았다.
대신 더 앞쪽에서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는 이찬호를 향해 패스를 찔러넣었다.
― 오오! 좋은 패스입니다! 이찬호가 공을 향해 뛰어나갑니다!
신재욱이 뿌려낸 패스의 퀄리티는 높았다.
압박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한 패스였기 때문에, 달려 나가는 이찬호의 앞쪽 공간에 정확히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투욱!
이찬호는 공의 밑부분을 찍어 찼다.
달려오는 콜롬비아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칩슛이었다. 이미 긴장감은 떨쳐버린 지 오래인 이찬호였고, 워낙 기본기가 좋은 선수였기에 슈팅엔 실수가 전혀 없었다.
― 우어어어어! 고오오오오오올! 이찬호 선수의 골입니다! 오늘 경기 내내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던 이찬호 선수인데, 결국엔 골까지 만들어냈습니다!
― 신재욱의 패스도 기가 막혔고,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칩슛을 해버리는 이찬호 선수의 판단도 놀랍습니다!
― 한국이 콜롬비아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습니다! 현재 스코어는 4 대 1입니다!
이찬호가 골을 넣은 지금.
경기장엔 또다시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찬호는 그런 야유를 무시하며 매번 해왔던 백덤블링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런 이찬호에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찬호 형, 마무리 아주 좋았어요.”
그러자 이찬호는 상기된 얼굴로 신재욱을 향해 고마움을 드러냈다.
“네 패스가 좋았지! 진짜 고맙다 재욱아! 근데 어떻게 그렇게 공을 딱 받기 좋게 주냐? 네 패스를 받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넌 공격수의 마음을 되게 잘 아는 것 같아. 공격수의 입장에서 어떤 패스가 받기 쉽고 좋은지를 아는 것 같달까?”
“항상 생각해서 패스하려고 하고 있긴 해요.”
“하여튼 진짜 고맙다! 콜롬비아 관중들 야유하는 거 짜증 나서라도 한 골 넣고 싶었는데, 네 덕에 넣었네. 근데 저 사람들은 목도 안 아픈가 봐? 어떻게 야유 보내는 걸 쉬질 않냐.”
“저 관중들이 입 다물게 하려면 골 더 넣으셔야죠.”
“하하! 에이스님이 기회만 주시면 못 넣을 거 없죠.”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 하나 더 만들어보죠.”
“너무 좋지!”
이찬호와의 대화를 마치며, 신재욱은 허공을 바라봤다.
그곳엔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패스가 1 올랐습니다!]
‘드디어 패스도 80이 되는구나.’
* * *
후반 25분이 됐다.
쓰레기가 경기장에 투척된 일 때문에 추가시간이 많이 주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은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일까?
콜롬비아 선수들은 이전까지 보여줬던 것보다 훨씬 더 조급한 모습을 보였고, 예민해지기까지 했다.
― 반칙입니다! 콜롬비아가 너무 거친데요? 옐로카드가 주어집니다! 주안 선수는 억울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 주심이 이미 여러 번 구두로 경고를 했었거든요?
― 우리 선수들은 오늘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반칙이 난무했다.
대부분 콜롬비아의 반칙이었다. 자연스레 카드가 나오는 빈도도 늘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 좋은 컷팅입니다! 신재욱이 콜롬비아의 패스를 끊어냅니다!
신재욱이 콜롬비아의 패스를 중간에 끊어냈다.
상대의 패스 길의 예상하고 슬라이딩을 해서 공을 가로채는, 신재욱의 특기 중 하나였다.
촤악!
미끄러지는 힘을 이용해 재빨리 몸을 일으킨 신재욱은 직접 공을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 콜롬비아의 미드필더 앤서니가 빠르게 달려왔다.
앤서니의 움직임을 본 신재욱이 씨익 웃었다.
조급한 심리 상태가 훤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되게 급해 보이네.’
빨리 공을 뺏어서 골을 만들어야 하는 콜롬비아의 상황.
그리고.
신재욱은 그런 상대의 심리를 이용했다.
휘익!
먼저 방향을 바꿀 것처럼 상체를 흔들었다.
속임수 동작이었다. 앤서니는 이에 반응하려다가 재빨리 자세를 바꿨다. 완벽하게 속기 직전에 눈치를 챈 것이었다.
그러나 잠깐의 틈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신재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툭!
가볍게 찬 공이 앤서니의 가랑이 사이로 쏙 들어갔다. 그사이 신재욱은 이미 속도를 내서 앤서니를 지나치고 있었다.
그 순간 앤서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가뜩이나 마음이 급한 상황에서 굴욕적인 돌파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 지배했다.
그래서 앤서니는 손을 뻗어 신재욱의 옷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신재욱은 버티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넘어져 버렸다.
삐이이이익!
휘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판은 입에 물던 호루라기를 뺀 뒤, 티셔츠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노란색 카드였다.
하지만 앤서니는 이미 옐로카드를 한 장 받은 상태였기에, 이어서 나오는 레드카드를 허탈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퇴장입니다! 앤서니 선수가 레드카드를 받네요! 이미 옐로카드가 한 장 있던 상황에서 너무 무리한 반칙이었죠!
― 하하! 신재욱 선수에게 알까기를 당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터진 화를 참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그나저나 신재욱 선수는 정말… 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노련한 베테랑을 보는 것 같네요. 이 시간대에 밀리고 있는 팀의 선수들이 어떤 심리 상태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고, 그걸 이용할 줄 아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해설들의 칭찬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신재욱은 동료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이런 기회는 못 참지.’
자신이 직접 프리킥을 차겠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