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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재욱은 화가 나면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
누군가 시비를 걸면 더 세게 갚아주는 편이었다.
지금도 다를 건 없었다.
근처까지 날아온 페트병을 바라보며, 신재욱은 낮게 중얼거렸다.
“후회하게 해줄게.”
야유까지는 이해했다.
홈팀 관중들이 상대 팀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건 축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였으니까.
그러나 쓰레기를 던지는 행위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이해할 필요조차 없는 미개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날아온 건 페트병 하나로 끝이 아니었다.
쓰레기는 지금도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열받게 하네.”
신재욱은 알고 있었다.
저렇게 수준 낮은 관중들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간단했다.
저들이 응원하는 팀을 지켜보는 게 괴로울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뜨리면 된다.
“경기를 보기 싫어지게 만들어줄게.”
같은 시각.
콜롬비아 팬들의 매너 없는 행동에 해설들도 감정이 격해진 모습을 보였다.
― 어어? 페트병이 날아왔네요! 이런 행동은 정말 비신사적인 행동이죠! 콜롬비아의 팬들은 이런 행동들이 본인들의 국가의 이미지를 깎아내린다는 걸 모르는 걸까요?
― 야유도 너무 심합니다! 콜롬비아의 팬들이 부디 매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네요! 어……? 쓰레기가 계속 날아 들어오는데요? 관계자들이 서둘러 조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건 너무 심하네요. 콜롬비아 팬들이 굉장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이 실점했다고 해도, 이건 아니죠!
그리고 격해진 건 해설들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축구팬들 역시 콜롬비아 팬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저것들이 미쳤나????? 이거 지금 U―20 월드컵 맞지???? 어떻게 개최국의 팬들이라는 놈들이 저딴 행동을 하지??? 진짜 사람 빡돌게 하네.
└매너 드럽게 없네 ㅡ,ㅡ 저 콜롬비아 관중 새끼들 어떻게 좀 안 되나? 죄다 수갑 채워서 경찰서 보내면 안 돼?
└근데 저거 지금 뭐 던진 거야? 돌은 아니지? 돌이면 살인미수잖아?
└페트병 던진 듯. 근데 저 새끼들은 아무리 골을 먹혀도 그렇지 경기장에 있는 선수한테 쓰레기를 던지냐? 개념 없는 놈들! 저러다 선수 다치면 어쩌려고!
└내일 비행기 표 끊어서 콜롬비아 날아간다. 감히 우리 재욱이한테 페트병을 던져? 뒤지고 싶나!!!!!!!!!!!
└어휴! 미개한 놈들ㅉㅉㅉㅉㅉ
└콜롬비아 관중 수준 쓰레기네. 아주 쓰레기가 쓰레기를 던지는구나.
└미친놈들이 쓰레기 계속 던지는데? ㅅㅂ 뭐 이래? 콜롬비아는 왜 U―20 월드컵 관중 관리를 이따위로 하냐?
└아오! 개빡치네 진짜!!!!!! 우리 재욱이 다치기만 해봐라!!!!
└귀 아플 정도로 야유를 보내더니 이젠 쓰레기까지 던지네. 한심한 놈들. 에라이!!! 퉤!!!!
그때였다.
심판이 나서서 경기를 잠시 중단시켰다.
U―20 월드컵 관계자들은 재빨리 뛰어나와서 쓰레기를 수거했고, 이어서 경기장에 쓰레기를 투척하지 말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처럼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신재욱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대 윙어들이 계속해서 자리를 바꿔가며 뛰고 있어. 그리고 하메스 로드리게스도 한 번씩 윙어처럼 움직이고 있고.’
상대 선수들의 위치나 전술에 변화가 없는지 확인했고, 오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동료들을 다독였다.
“동기 형! 정태 형! 콜롬비아 윙어들 상대할 때, 안쪽으로만 못 들어오게 해주세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리고 준기 형! 지금까지 수비 너무 잘하고 있어!”
그때였다.
심판이 선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경기가 재개될 거라는 신호였다.
― 관중들이 쓰레기를 투척하는 바람에 경기가 꽤 오래 지연됐네요. 아마도 경기가 끝나갈 때쯤에 추가시간이 길게 주어질 것 같습니다.
― 드디어 경기가 재개됩니다! 조금 전에 신재욱 선수에게 역전 골을 허용한 콜롬비아이기 때문에, 빨리 골을 넣고 싶을 겁니다.
해설들의 말처럼 콜롬비아의 선수들은 골을 원했다.
이들에겐 한국팀에 2 대 1로 밀리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당연했다.
FIFA 랭킹도 한국보다 훨씬 높을뿐더러 한국팀에게 실점을 허용하기 전까지 경기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홈구장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일방적인 응원을 받으며 뛰는 중이었으니까.
― 콜롬비아가 이번에도 측면을 공략합니다! 아…… 이미 여러 번 당한 패턴임에도 막는 게 어렵네요! 그만큼 콜롬비아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좋다는 거겠죠…?
― 그렇습니다. 제 생각엔 이번 U―20 월드컵에서 콜롬비아의 공격진은 브라질이나 스페인 같은 팀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것 같습니다. 특히 루이스 무리엘 선수와 산티아고 선수, 주안 선수로 이뤄진 삼각편대는 정말 막강한 화력을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이 삼각편대 바로 뒤에서 콜롬비아의 에이스인 하메스 로드리게스 선수가 받쳐주고 있고요.
한국의 수비진은 고전했다.
콜롬비아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기량 차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국의 수비수들은 콜롬비아의 공격을 꾸역꾸역 막아내고 있었다.
― 김준기 선수가 몸으로 루이스 무리엘 선수의 슈팅을 막아냈습니다! 루이스 무리엘이 머리를 감싸 쥐며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잘 때린 슈팅이었기 때문에 슈팅을 때리는 순간 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거든요?
― 우리 선수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콜롬비아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네요! 대단합니다! 경기를 지켜보는 팬분들도 우리 선수들에게서 이런 수비를 보고 싶었을 겁니다!
부족한 기량을 투지로 메꾸는 것.
안기혁 감독이 매번 강조했던 것이었고, 김준기를 비롯한 수비수들은 그것을 잘 해내고 있었다.
‘되게 잘해주네?’
신재욱이 미소를 지었다.
기대 이상의 수비를 보여주는 동료들을 보니, 절로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수비수들이 저렇게 열심히 해주면 공격에서도 뭔가 보여주긴 해야지.’
투지를 보여주고 있는 동료들을 위해 좋은 플레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그때.
한국의 골키퍼 채민석이 골킥을 길게 차 냈다.
퍼엉!
최전방에 있는 공격수 오정훈을 노린 골킥이었다.
오정훈은 U―20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공중볼 능력이 강한 선수였고, 그런 선수답게 콜롬비아 수비수와의 경합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투웅!
오정훈의 머리에 맞은 공이 잔디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 공을 향해 발을 뻗었다.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처럼 골키퍼가 골킥을 하고 오정훈이 머리로 공을 떨어뜨리는 움직임은 훈련 때 여러 번 반복했던 장면이었으니까.
더구나 신재욱이 떨어지는 공을 잡는 것까지도 전부 약속된 플레이였으니까.
그리고.
그다음은 신재욱의 자유시간이었다.
상황에 맞게 스스로 판단해서 플레이할 것.
안기혁 감독이 내린 지시였다.
‘감독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신단 말이야?’
신재욱은 많은 기회를 주는 감독과 최선을 다해서 뛰어주는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지닌 채, 공을 몰고 전진했다.
지금은 자신이 팀을 위해 골을 만들어줄 시간이었다.
‘두 명.’
신재욱의 앞에 있는 선수는 2명이었다.
다만 둘 모두를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이찬호가 다른 한 명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으니까.
즉, 한 명만 뚫어내면 곧바로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수비수 한 명을 뚫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신재욱에겐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수비수가 U―20 월드컵에 출전하는 어린 선수라면 더욱 어렵지 않았다.
타닷!
신재욱이 드리블의 속도를 높였다.
콜롬비아의 수비수 바르가스와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그 순간 바르가스가 자세를 낮춘 채, 신재욱을 향해 소리쳤다.
“절대 안 뚫릴 거니까 언제든지 들어와!”
바르가스의 도발적인 말.
그러나 신재욱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움직임과 바르가스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그때였다.
타닷! 타…… 앗!
속도를 높여서 전진하던 신재욱이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바르가스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비웃음을 흘렸다.
“속도 다 죽었네? 역시 못 뚫겠지? 흐흐! 이제 동료한테 한심하게 공을 넘길 차례겠군!”
바르가스는 확신했다.
그의 앞에 있는 신재욱이 돌파를 포기할 것이라고.
그 순간 신재욱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오른쪽 대각선으로 움직였다.
“뭐야!”
기습적인 움직임이었지만, 바르가스는 민첩성이 좋은 선수답게 바로 반응했다. 그러나 이건 바르가스를 속이기 위한 신재욱의 속임수였다.
신재욱은 오른쪽으로 가려던 것을 멈추고 왼쪽 대각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속도를 높였다가 급격히 줄이고, 다시 속도를 높이며 방향 전환 페인팅.
겉으론 간결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고도의 심리전이 녹아든 드리블이었다.
그리고 그런 드리블을 겨우 만 20세 선수인 바르가스가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 오오오! 뚫어냈습니다! 신재욱 선수가 과감한 드리블로 바르가스 선수를 제쳐냈습니다!
― 신재욱! 골키퍼와 일대일입니다! 신재욱 선수는 이런 상황에서 굉장히 강한 선수죠!
바르가스의 수비를 뚫어낸 지금.
신재욱의 귀엔 들렸다.
거대한 야유 소리가.
우우우우우우―!
슈팅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담긴 콜롬비아 팬들의 야유였다.
그러나 신재욱이 누구던가.
훨씬 더 심한 야유도 수없이 많이 받아봤던 선수이지 않은가.
우우우우우우―!
신재욱은 지금처럼 쏟아지는 야유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집중한 채로 슈팅을 때려냈다.
퍼어엉!
골키퍼가 튀어나오지 않고 골대를 지키는 걸 보자마자 강하게 때려낸 슈팅이었다.
방향은 골대 상단 구석.
가운데에 서 있던 골키퍼로선 몸을 날리면서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위치였다.
―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올! 골입니다! 신재욱 선수가 또다시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 우오오오오! 해트트릭입니다! 콜롬비아를 해트트릭을 기록한 신재욱 선수입니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3개의 득점을 기록한 것을 뜻하는 해트트릭.
그것을 해낸 지금.
신재욱은 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골을 기록했을 때와는 달리, 공을 가지러 가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껏 하지 않던 세리머니를 하기 시작했다.
스윽!
신재욱은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채로 손가락 3개를 펼쳤다.
그 상태로 관중석에 가득한 콜롬비아의 팬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다시 한번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우우우우―!
그 순간 신재욱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이번엔 양쪽 귀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더 떠들어보라는 의미를 담은 행동.
그와 동시에 신재욱은 실실 웃기 시작했다.
허공에 기분 좋은 내용을 담은 메시지들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박이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모르는 콜롬비아의 팬들에겐 신재욱의 미소가 너무나도 얄밉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