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 * *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
그런 팀과의 경기를 앞둔 지금.
신재욱의 마음속엔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질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기대할 뿐이었다.
‘능력치가 얼마나 잘 오르려나?’
프랑스전에서 얻게 될 이득들을.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기만 하면 꽤 잘 오르겠지?’
반면 그의 동료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말수도 확연히 줄어있었다.
때문에, 경기장으로 향하는 한국 U―20 국가대표팀의 버스엔 적막이 흘렀다.
이런 분위기는 경기장에 도착할 때까지 바뀌지 않고 이어졌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안기혁 감독이 폭발했다.
“다들 쫄지 마! 야! 다들 표정이 왜 그래? 특히 장호연! 구재윤! 우민규! 너흰 평소엔 자신감 넘치던 애들이 왜 이래? 상대가 프랑스라서 겁나냐? 어? 나라를 대표해서 온 놈들이 경기를 바로 앞에 두고 겁을 먹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금 호명한 놈들 말고도 다른 놈들도 다 마찬가지야! 다들 정신 안 차려? 지러 왔어? 이기러 콜롬비아까지 날아온 거 아니야?”
안기혁 감독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선수들을 향해 연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위축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선수들이 안기혁 감독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느낀 바가 있었던 걸까?
어떤 이유이든 간에 감독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선수들의 얼굴에 흐르던 긴장감이 조금은 줄어들었고, 더 나아가 자신감마저 조금은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분위기 살벌하다…… 그치?”
옆에 앉은 이찬호가 작게 속삭였다.
버스의 맨 앞에 있는 감독의 귀에 들어갈까 봐 조심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신재욱은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조금 전보단 훨씬 낫네요.”
“조금 전? 네가 봐도 다들 쫄아있는 것 같았어?”
“예.”
“나도?”
“별로 다를 건 없던데요?”
“넌 참 솔직해. 근데 너무 솔직한 경향이 있어.”
“거짓말쟁이보단 낫지 않나요?”
“그건 맞지만…… 그래도 너무 얄밉단 말이야. 하여튼 그건 그렇고, 재욱아 넌 긴장도 안 되냐? 프랑스전 시작할 때까지 2시간도 안 남았잖아.”
“전 괜찮아요. 긴장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부러운 성격이네.”
“고마워요.”
그때였다.
이찬호가 신재욱의 손에 들린 종이 뭉치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거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에 대한 자료 맞지?”
“맞아요.”
“재욱아,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곧 경기 시작하는데 지금 자료 보는 게 도움이 될까?”
“될지 안 될지는 경기에 나가봐야 알죠. 그래도 안 보는 것보단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나도 좀 보여줄 수 있어?”
“코치님들한테 말하면 자료 줄 거예요.”
“냉정하긴.”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드린 거죠.”
“너 17살짜리 맞냐? 말빨이 왜 이렇게 세?”
“애늙은이라서요.”
“……할 말이 없게 만드네.”
이찬호가 투덜댔고, 신재욱은 씨익 웃었다.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이찬호랑은 친해진 상태였다.
청소년 대표팀에 온 이후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동료이기도 했고, 콜롬비아에 온 이후로 같은 방을 쓰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화가 끝난 이후, 신재욱은 곧바로 손에 들린 자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금이라도 더 봐야겠어.’
잠시 후.
경기장에 도착한 한국 U―20 대표팀 선수들은 몸을 풀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패스를 주고받고, 슈팅 훈련을 하며 몸의 감각을 깨웠다.
다만 선수들은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몸을 풀고 있는 프랑스 선수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런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쓰게 웃었다.
‘신경이 많이 쓰이나 보네.’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뭐든 적당한 게 좋지 않겠는가.
지금 한국 선수들의 행동은 적당함을 넘은 모습이었다.
몸을 푸는 것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자꾸만 프랑스 선수들에게 시선을 뺏기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신재욱이 나섰다.
“집중! 경기 시작할 때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상대 선수들한테 신경 그만 쓰고 우리가 해야 할 거에 집중하죠?”
팀의 막내가 내뱉은 외침이었다.
놀랍게도 신재욱의 말을 들은 한국 선수들의 눈빛이 변했다.
대한중학교에서 그랬듯, 축구천재 FC에서 그랬듯,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에서 그랬듯.
신재욱과 함께하는 동료들은 가장 어린 그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뛰어난 실력 때문이었다.
“그래, 재욱이 말이 맞아! 우리 지금 너무 프랑스 애들을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 이제 쟤네는 무시하고 몸 푸는 거에 집중하자.”
“맞아! 정작 쟤네는 우릴 신경도 안 쓰고 있잖아? 우리도 자존심 상하게 쟤네 쳐다보지 말자.”
“으어어어! 좋아! 집중하자!”
“해보자아아아!”
한국 선수들은 기합을 넣어가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러곤 최선을 다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신재욱은 생각했다.
이 변화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진 모르지만.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거라고.
‘드디어 프랑스랑 제대로 붙어볼 준비는 된 것 같네.’
* * *
― 양 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프랑스가 A조 3차전에서 맞붙게 됐습니다!
― 프랑스…… 굉장히 강팀이죠?
― 그렇습니다. 원래는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팀이었는데, 최근에 이번 U―20 월드컵 개최국인 콜롬비아에게 4 대 1로 패배하며 자존심을 구겼죠.
― 당시 콜롬비아의 경기력이 좋기도 했지만, 프랑스의 조직력이 좋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 예. 그 경기는 프랑스답지 않게 수비도 흔들렸고, 패스 실수도 이상할 정도로 많았던 경기였습니다.
― 반면에 지난 말리전에서 6골을 넣었을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보여줬던 우리 대한민국인데요! 과연 프랑스를 상대로도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양 팀 선수들은 악수를 나눴다.
이때, 신재욱의 눈엔 익숙한 인물이 보였다.
이미 사전 조사를 끝내긴 했지만, 익숙한 인물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라카제트, 오랜만이네.’
프랑스의 공격수 라카제트.
그는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 선수 중 유일하게 친근한 인물이었다.
환생 전, 라카제트가 EPL에서 뛸 때 신재욱도 EPL에서 뛰고 있었으니까.
‘어린 버전의 라카제트라니, 신기하네.’
신재욱의 기억 속 라카제트는 아스널 FC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였다.
게다가 현재의 실력도 뛰어날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겨우 만 19세의 나이에 올랭피크 리옹에서 프로 생활을 하고 있진 못했을 테니까.
프랑스 1부리그의 명문 팀인 올랭피크 리옹.
수준이 높은 팀이다.
그런 팀에서 라카제트는 겨우 만 19세의 나이에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고 있다.
그가 대단한 재능이라는 증거였다.
‘우리 수비수들이 고생 좀 하겠구만.’
신재욱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같은 팀 수비수들을 바라봤다.
오늘 경기 내내 저들이 얼마나 고생을 할지 훤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신재욱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상대 팀 수비수들이 더 힘들 거야.’
분명 한국의 수비수들은 라카제트를 막느라 힘든 시간을 보낼 테지만, 반대로 프랑스의 수비수들은 훨씬 더 힘든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자신의 존재 때문이었다.
― 경기 시작됩니다! 대한민국이 먼저 공을 소유합니다.
오늘 선발로 출전한 신재욱의 포지션은 지난 말리전과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게다가 일반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와는 다르게 밑으로도 많이 내려가며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까지 소화해야 했다.
중원에서 경기를 조율해주고, 팀의 공격을 이끌기까지 하는 역할.
그래서 신재욱은 경기 초반부터 공을 여러 번 만지고 있었다.
― 신재욱 선수가 초반부터 많이 뛰어주고 있네요. 중앙에서 볼 터치의 횟수도 많습니다.
― 확실히 신재욱 선수가 공을 잡으면 안정감이 느껴지네요.
― 웬만해선 공을 뺏기지 않을 것 같은 신뢰를 주죠? 공을 워낙 잘 다루고, 탈압박 능력이 좋은 신재욱 선수답게 프랑스 선수들의 압박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 사실 신재욱 선수의 이런 플레이들이 굉장히 대단한 것이거든요? 지금 프랑스 선수들의 압박이 강한데, 현재 경기장에 있는 선수 중 가장 어린 신재욱 선수가 이겨내고 있다는 게 놀라운 겁니다.
― 역시 천재는 다르네요! 신재욱의 한국 U―20 대표팀의 퀄리티를 높여놓고 있습니다!
툭! 투욱!
동료와 원터치 패스를 주고받으며, 다시 공을 소유한 신재욱의 눈이 빛났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엔 보였다.
프랑스 수비진의 빈틈들이.
툭!
신재욱이 공을 옆으로 살짝 밀었다.
그러자 프랑스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반응했다. 그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성을 보여주며 몸을 부딪쳐왔다.
몸싸움으로 중심을 흔들고, 어깨를 집어넣어 공을 뺏어내려는 의도.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들이 보여주는 수비 방법이었다.
그러나 신재욱에겐 너무나도 뻔한 수비일 뿐이었다.
휘익! 휙! 툭!
신재욱은 순간적으로 상체를 좌우로 흔든 뒤, 덤벼드는 상대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툭― 집어넣었다. 알까기였다. 그와 동시에 손으로 상대의 어깨를 밀어내며 추진력을 얻었다.
반칙이 선언되지 않을 정도의 교묘한 손기술.
신재욱이 잘 쓰는 기술 중 하나였다.
― 신재욱이 프랑시스를 수비를 뚫어냅니다! 엄청난 드리블 실력입니다! 거구의 선수를 단숨에 뚫어내다니요!
한 명, 그것도 수비형 미드필더를 제쳐내자 프랑스의 수비진에서 보이던 빈틈은 더욱 커졌다.
그 순간 신재욱의 입맛을 다셨다.
‘타이밍이 괜찮은데?’
프랑스의 수비수들과의 거리는 아직 꽤 벌어져 있었고.
골대와의 거리는 22M 정도였다.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을 시도할 수 있는 거리.
일주일 전이었다면 모를까, 중거리 슈팅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지금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해보자.’
신재욱은 거리와 각도, 궤적을 계산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이뤄진 일이었다.
다음으로 해야 할 건 오직 하나였다.
수없이 반복해왔던 대로 슈팅을 때려내는 것.
퍼어엉!
공이 쏘아졌다.
감아 찬 슈팅이 아닌, 발등으로 때려낸 슈팅이었다.
골대의 왼쪽을 겨냥한 오른발 슛.
타앗!
프랑스의 골키퍼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전통적으로 괜찮은 골키퍼를 배출하는 프랑스답게, 골키퍼의 반응속도는 대단히 빠른 편이었다.
팔도 길어서 골대 안으로 파고들려는 공을 손끝으로 건드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손끝으로 쳐내기엔 공에 실린 힘이 너무 컸다.
티익!
공은 골키퍼의 손끝을 밀어내며 골대 안으로 파고들었다.
― 우오오오오오오! 고오오오오오오오올! 신재욱입니다! 또다시 신재욱이 해냈습니다!
전반 4분.
프랑스를 상대로 터진 신재욱의 선제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