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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이 얼어붙었다.
신재욱이 혼자 공을 뺏어내고 말리의 선수들을 뚫어내고 골까지 넣은, 경악스러운 장면을 봤기 때문이었다.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것은 해설들이었다.
― 노, 놀랍습니다……! 정말 놀라운 골이 나왔습니다……!
― 정말…… 두 눈을 의심하게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신재욱 선수는…… 허허! 너무 놀랍다 보니 웃음밖에 안 나오네요. 저 어린 선수가 처음으로 출전한 U―20 월드컵에서 이렇게나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다니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버렸습니다.
해설들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신재욱이 보여준 플레이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경기장에 가득했던 정적도 깨졌다.
우와아아아아!
관중들이 환호했다.
콜롬비아에서 펼쳐지는 경기였기에, 경기장엔 콜롬비아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가장 많았지만.
이들 모두 신재욱을 향해 환호성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걸 지켜본 한국의 축구팬들 역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머냐……?;;;;;;;;; 신재욱, 쟤 머야……? 왜 저렇게 잘해? 한국인 맞아? 저런 애가 한국에서 나왔다고?;;;;;
└이야…… ㅋㅋ…… 바이에른 뮌헨 U19에서 뛸 만하네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말리 선수들을 개털어버리는데?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쩐다 진짜!!!!!!! 말리 애들이 아무것도 못 하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리블이 너무 좋다…… 독일에서 축구 배워서 저렇게 좋은 건가?
└축구천재 FC에 나올 때보다 움직임이 훨씬 좋아졌어. 심지어 그때보다 스피드도 빨라진 것 같은데?
└머리 염색한 걸로 욕하던 사람들 다 대가리 박아라. 축구천재 FC 시절부터 봤으면 신재욱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 선수인지 알지 않냐? 이렇게 잘하는 선수를 겨우 염색 하나로 욕했다고?
└아;;;;;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지;;;;;;; 어떻게 17살짜리가 마지막에 골 넣을 때까지도 침착하냐?
└상대가 약팀인 말리라는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재욱의 실력은 소름이네ㄷㄷㄷ 과거보다 엄청 늘었어.
└헐…… 축구 보려고 TV 틀자마자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보게 되네. 신재욱이 천재는 천재구나…….
모두를 흥분시킨 지금.
골을 기록한 신재욱은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았다.
‘세리머니를 할 시간이 어딨어?’
시간이 아까웠으니까.
그는 골을 넣자마자 상대 골대 안으로 달려가 공을 들었다. 그러곤 경기장 중앙을 향해 달렸다.
경기 재개를 앞당기며 시간을 아끼려는 의도였다.
물론 세리머니가 팀의 기세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신재욱에겐 시간이 더 중요했다.
‘이렇게 성장이 잘 되는 무대에서 세리머니를 하느라 시간을 버린다고? 그럴 순 없지.’
골을 넣은 것과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들 때문이었다.
[드리블이 1 올랐습니다!]
[개인기가 1 올랐습니다!]
드리블과 개인기.
이 두 가지 능력은 신재욱의 예상으론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성장했어야 했다.
그런데 벌써 성장했다.
훈련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U―20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골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재욱은 다짐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대한 많은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겠다고.
세리머니도 생략하며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경기를 보던 사람들은 신재욱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고,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뭐지? 신재욱 왜 저래? 골을 넣어놓고 왜 저렇게 급한 사람처럼 뛰어가?
└그러게;;;; 세리머니도 안 하네? 골 넣자마자 공 들고 경기장 중앙으로 뛰는 건 보통 지고 있는 팀이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멋진 골을 넣을지 몰라서 정신이 없는 건가?
└ㅋㅋㅋ너무 긴장한 듯. 그냥 세리머니를 할 생각조차 못 한 거야.
└귀엽네ㅋㅋㅋㅋㅋ 골 넣을 때까지는 침착했으면서, 넣고 나니까 이상한 행동을 하네ㅋㅋㅋㅋㅋㅋ
└아직 어린 티가 나긴 한다잉?ㅋㅋㅋㅋㅋㅋ 본인도 골 넣고 놀라서 정신이 없겠지ㅋㅋㅋㅋ
여러 의견이 쏟아져나왔지만, 그 누구도 신재욱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진 못했다.
그나마 해설들이 신재욱의 의도와 비슷한 의견을 꺼내 들었다.
― 경기가 재개됩니다! 신재욱 선수가 세리머니를 생략하면서 경기가 조금 더 빨리 재개됐네요. 무엇이 신재욱 선수를 이렇게나 급하게 만들었을까요?
―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세리머니를 할 시간도 아깝게 느껴진 거죠.
물론 당사자인 신재욱은 오로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급하진 않되, 최대한 빠르게 기회를 만들어보자.’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처럼, 공격진에 서서 상대 선수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 강태현 선수가 공을 뺏어냅니다! 좋은 수비네요! 강태현 선수가 신재욱 선수에게 패스합니다!
* * *
― 신재욱 선수가 공을 잡습니다!
신재욱이 동료의 패스를 받은 지금.
말리 선수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나왔던 골 장면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빨간 머리를 막아! 쟨 위험해!”
“드리블 못 하게 강하게 압박해!”
말리 선수들은 신재욱의 움직임에 예민해졌다.
경계를 많이 하고 있지만, 막상 달려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첫 골이 나왔을 때처럼 오히려 돌파를 허용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웬만해선 발 뻗지 마! 뒤로 빠지면서 기다리는 수비를 해!”
“혼자 막으려고 하지 말고 같이 막아! 쟤 드리블 실력 보니까 혼자 막기엔 너무 위험해!”
이제는 신재욱을 한 명이 막아서지 않았다.
무조건 두 명이 가로막았다.
그런데.
‘이제 두 명이 막는구나? 현명하네.’
신재욱은 침착했다.
움직임에서 흐르는 여유도 여전했다.
사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근데 살짝 아쉬워. 세 명이었으면 잘 막았을 수도 있는데.’
2명을 상대로도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휘익! 휙!
신재욱은 상체 페인팅을 이용해 앞에 있는 선수들의 중심을 흔들었다. 다음으로 왼쪽으로 돌파를 할 것처럼 움직인 뒤, 반대로 몸을 돌렸다. 선수 2명을 한쪽으로 몰아넣은 다음 반대편으로 빠져나가는 드리블이었다.
― 화려한 드리블입니다! 신재욱 선수가 2명을 상대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뚫어냈습니다!
― 이야~! 신재욱 선수! 정말 너무 잘하네요! 이러면 말리 선수들은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혼자서 못 막으니까 2명이 붙었는데, 그래도 뚫리면 답이 없죠! 그렇다고 신재욱 선수 1명한테 3명이 달라붙을 수도 없으니까요!
― 하하! 한 선수에게 3명이 붙으면, 그만큼 다른 곳이 허술해질 수밖에 없죠.
2명의 압박을 벗어난 신재욱은 다시 앞으로 뛰어나갔다.
공을 몰고 전진하는 그의 움직임에 말리 선수들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신재욱 한 명에게 과할 정도로 몰려들었다.
“빨리 끊어야 해!”
“태클! 태클을 해!”
그 순간, 신재욱의 발이 움직였다.
페인팅 동작은 아니었다.
투웅!
진짜로 공을 찼다.
다만 슈팅은 아니었다.
뒷공간을 파고드는 동료에게 보내는 로빙패스였다.
― 오오오오! 신재욱의 절묘한 패스! 이찬호가 받습니다! 이찬호! 때리나요? 때립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올! 골입니다! 이찬호가 골을 터트렸습니다!
― 신재욱의 패스도 완벽했고, 이찬호의 움직임과 결정력도 훌륭했습니다! 아름다운 골이네요! 이제 대한민국이 말리에게 2 대 0으로 앞서갑니다!
“우어어어어어어어!”
골을 넣은 이찬호는 크게 기뻐했다.
얼마나 기뻤으면 미리 준비했던 세리머니는 하지도 못한 채, 괴성만을 질러댔다.
그때, 신재욱이 나섰다.
“찬호 형! 세리머니로 백덤블링 한다면서요.”
“우어어어어어어억!”
“찬호 형!”
“우어어……어? 재욱아, 왜?”
“세리머니 준비했잖아요. 안 할 거예요? 백덤블링 연습을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
“어?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알려줘서 고맙다 재욱아!”
이찬호는 그제야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는 깔끔한 백덤블링을 구사하며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었다.
이처럼 골을 넣은 이찬호에게 시선이 집중된 지금.
“대박이네, 진짜……!”
신재욱은 허공에 뜬 메시지를 보며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탈압박이 1 올랐습니다!]
* * *
신재욱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른데?’
빠르게 오르는 능력치 때문이었다.
‘골을 넣었을 때도 능력치가 올랐고, 어시스트를 한 지금도 능력치가 올랐어. 물론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치가 있어서 가능했던 거겠지만, 그래도 오늘 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할 때마다 많은 경험치를 얻은 건 맞아.’
비록 U―20 선수들끼리 맞붙는 대회지만, 그래도 월드컵은 월드컵이었다.
그동안 치러왔던 경기들과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대단한 성장 속도였으니까.
‘더 만들자.’
신재욱은 계속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여했다.
다만 수비에 신경을 안 쓴 건 아니었다.
오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연했음에도, 신재욱은 수비에도 최선을 다했다.
― 신재욱이 태클로 공을 뺏어냅니다! 진짜 이 선수! 수비수들보다 태클을 더 잘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 태클을 하는 자세도 그렇고, 타이밍도 너무 완벽합니다. 공격적인 재능이 뛰어난 신재욱 선수인데, 이렇게 수비까지 잘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놀랍네요.
상대의 공을 뺏어낸 상황.
신재욱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싶은 욕심은 컸지만, 절대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며 전진했다.
하지만 신재욱은 앞으로 많이 나아가진 못했다.
퍼억!
다리로 깊숙하게 들어온 태클 때문이었다.
“윽!”
신재욱이 바닥에 쓰러졌다.
상대 선수의 슬라이딩태클이 들어오는 순간, 공을 지키려고 몸을 돌렸는데 애꿎은 다리를 걷어차였다.
“……되게 아프네.”
고통이 느껴지는 정강이를 쓰다듬으며, 신재욱은 심판을 바라봤다.
말리의 반칙을 선언하긴 했지만, 아쉽게도 카드를 꺼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건 카드 줘도 이상하지 않은 장면이지 않나?”
신재욱이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을 때.
태클을 했던 선수가 다가왔다.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말리 대표팀의 주장인 코네였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신재욱을 향해 영어로 소리를 질러댔다.
“야! 빨간 머리!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더럽게 시간 끌 생각인 거냐?!”
정강이를 걷어찬 선수가 오히려 화를 내는 황당한 상황.
그럼에도 신재욱은 당황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덤덤한 얼굴로 코네에게 되물었다.
“넌 이게 엄살로 보여?”
“그래! 살짝 스친 것 정도인데 그렇게 얼간이처럼 주저앉아 있으면 엄살이지!”
“진짜 아픈데…… 억울하네. 그래 뭐, 알겠어. 넌 얼마나 엄살이 없는지 한 번 확인해볼게.”
엄살이 없는지 확인해보겠다는 신재욱의 말.
그 말을 들은 코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소리냐?”
그 순간, 신재욱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있다가 알게 될 거야. 내가 그라운드의 프로파이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