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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재욱이 갸웃거렸다.
‘쟤, 왜 저래?’
친한 척 손을 흔들고 있는 김준기 때문이었다.
“어? 재욱아! 왔어?”
행동만 보면 굉장히 반가운 것처럼 보였다.
다만, 신재욱의 눈엔 보였다.
떨리는 김준기 눈동자가.
‘긴장하고 있잖아?’
분명 김준기는 동공이 크게 떨릴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면서 신재욱에게 애써 친한 척을 하고 있었다.
‘의도가 뭘까?’
신재욱은 김준기가 왜 연기를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상대의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신재욱은 우선 김준기의 연기를 받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어차피 받아줄 거, 더 과감하게 나갔다.
“어, 준기 형! 내가 좀 늦었지?”
오래전부터 친했던 사이처럼 대답하며 신재욱은 김준기를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순간 김준기는 움찔했지만, 이내 웃으며 자신의 주먹을 신재욱의 주먹에 맞댔다.
툭!
“어…… 그래! 컨디션은 좀 어때? 시차 적응은 잘 되는 것 같아? 독일이랑 한국은 시차 차이가 꽤 크잖아…?”
“어, 생각보다 적응이 빨리 되는 것 같아. 어제보다 오늘 훨씬 몸이 가벼운 걸 보면.”
“다행이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걱정은 무슨, 난 괜찮으니까 닭살 돋는 소리 그만해.”
신재욱이 김준기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화를 마쳤다.
‘김준기가 이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괜찮은 것 같네.’
갑작스러운 김준기의 연기를 받아준 건 별로 유쾌하지 않았지만, 효과는 괜찮았다.
주변에 있던 선수들의 시선도 달라졌으니까.
팀의 실세인 김준기가 친근하게 신재욱과 대화를 나눈다?
더구나 신재욱이 김준기를 상대로 말까지 놓으며 너무나도 편하게 대한다?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로선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야? 김준기 선배가 갑자기 왜 신재욱이랑 친해진 거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신재욱이랑 대화하려고만 하면 죽일 것처럼 노려보던 사람이 갑자기 왜 저래? 분명 신재욱 따돌리라고 눈치 줬었잖아? 그리고 신재욱은 뭔데 김준기 선배같이 기가 센 사람한테 저렇게 편하게 할 수 있는 거지?’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둘이 친해 보이잖아…? 그럼 이제 신재욱이랑 가깝게 지내도 되는 건가?’
신재욱과 김준기 사이에 생긴 변화.
이와 같은 변화는 훈련 때에도 나타났다.
“재욱이한테도 말 좀 자주 걸어주고 해! 같은 팀 동료면 재욱이가 적응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할 거 아니야!”
김준기는 훈련이 진행되는 내내 선수들에게 신재욱과 소통할 것을 요구했다.
자연스레 대표팀 선수들은 신재욱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을 무시하던 대표팀 동료들이었지만, 신재욱은 그런 일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개인적인 감정을 살려봤자 나한테 좋을 건 없어. 우선 팀에서 자리를 잡는 게 먼저야.’
신재욱이 원하는 건 능력치의 성장이었고.
그것을 잘 이뤄내려면 경기에 출전해야 했고,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선 동료들과의 호흡이 매우 중요했으니까.
“좋아! 이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 어제는 왜 그랬어? 이대로만 가자! 이대로만!”
청소년 대표팀의 감독 안기혁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 역시 달라진 훈련 분위기가 만족스러웠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정은 별로였지만, 확실히 나아지긴 했네.’
신재욱은 늘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해서 훈련에 임했다.
그의 현재 능력치는 전부 70이 넘은 상태였고, 컨디션도 매우 좋았다.
그러다 보니 많게는 4살이 더 많은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을 상대로도 훈련 내내 전혀 밀리지 않는 능력을 보여줬다.
오히려 뛰어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더 많을 정도였다.
게다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메시지가 뜨는 횟수도 빈번했다.
[민첩이 좋아집니다!]
[패스가 좋아집니다!]
[몸싸움이 좋아집니다!]
[태클이 좋아집니다!]
[탈압박이 좋아집니다!]
아직 능력치가 오르진 않았지만, 신재욱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좋아, 이제 얼마 안 남은 거 같은데?’
능력치가 오를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것을.
* * *
“다들 10분간 휴식! 쉬는 시간 끝나면 곧바로 경기 들어갈 거니까 다들 늦지 말고 제시간에 모여!”
안기혁 감독의 말과 동시에 선수들이 흩어졌다.
화장실에 가는 선수, 바닥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선수, 동료들과 떠들기 시작한 선수 등.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 갔어?”
신재욱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김준기를 찾고 있었다.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한 이유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김준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갔나?”
왠지 화장실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움직이진 않기로 했다.
귀찮았으니까.
“나중에 물어보지 뭐.”
휴식이 끝났다.
선수들은 훈련장에 늦지 않게 모여있었다.
김준기 무리의 모습도 보였지만, 신재욱은 그에게 다가가진 않았다.
지금은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됐다.
신재욱은 빨간 조끼를 입은 팀이었다.
그는 빠르게 눈동자를 움직이며 같은 팀 동료 10명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선수들은 동료들의 얼굴을 헷갈려서 패스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부분이지만, 의외로 여러 선수가 이런 실수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신재욱은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기본적인 실수를 할 순 없지.’
어젯밤 그는 바로 잠들지 않았다.
동료들의 특징을 확실하게 익히기 위해서 공부했다.
주로 쓰는 발, 플레이 스타일, 포지션, 신체 스펙을 머릿속에 주입했다.
관계자들에게 준 자료를 외웠고, 인터넷으론 동료들의 경기 영상을 찾아봤다.
그 효과는 무작위로 팀을 나눠서 펼쳐지는 연습경기에서 아주 잘 나타났다.
‘김준기는 수비 상황에서 어지간하면 전진 패스를 뿌리려고 하는 편이지.’
중앙수비수인 김준기는 인성은 별로였지만, 실력만큼은 동 나이대의 한국인 중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주전 센터백으로 뛰게 된 것이고.
타닷!
신재욱이 속도를 높여 밑으로 내려갔다.
김준기가 뿌리는 패스를 받아줄 수 있게 위치를 조정한 것이다. 그러자 김준기는 곧바로 패스를 뿌렸다.
친근하게 신재욱의 이름을 부르며.
“재욱아! 받아!”
황당했지만, 신재욱은 경기에 집중했다.
주변의 상황, 동료들과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 패스 경로, 전술 등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았으니까.
툭! 툭!
공을 잡고 앞으로 두 번 치며 나아가는 시간.
신재욱이 완벽한 판단을 내리기까지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내가 막을게!”
콜을 하며 자신 있게 덤벼드는 블루팀 선수 하나가 보였다.
‘자신감 넘치네.’
신재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동시에 생각했다.
상대가 지금처럼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건, 첫 연습경기이기 때문이라고.
‘앞으로 자신감이 너무 떨어지진 않길 바랄게.’
상대의 수비는 허술했다.
수비수가 아니어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마음이 너무 급했다.
감독의 앞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싶다는 조급함.
‘안타깝네. 급하면 더 안 되는 게 축구거든.’
물론 탈압박을 하려던 신재욱에겐 아주 좋은 일이었다.
지금처럼 먼저 덤벼주는 상대에겐 체력을 많이 쓸 필요도 없다.
그냥 발이 들어오는 것에 맞춰서 방향을 바꿔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툭! 휘익!
가볍게 압박을 벗어난 신재욱은 계속 전진했다.
그의 눈엔 빨간 조끼를 걸친 동료들과 파란 조끼를 걸친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넓은 시야를 가진 그였기에, 더 좋은 패스 타이밍을 기다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신재욱이 기다리던 타이밍은 나오지 않았다.
바쁘게 움직이며 공간을 창출해내려는 선수가 없었으니까.
‘전체적으로 오프더볼 움직임이 아쉬운데? 아직 호흡이 안 맞아서 그런 건가?’
신재욱은 생각을 바꿨다.
‘직접 해야겠네.’
패스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에서.
패스 타이밍을 직접 만들기로.
* * *
“끊어내라고!”
“뭐해! 계속 들어오잖아!”
파란색 조끼를 입은 블루팀 선수들은 바빠졌다.
공을 몰고 들어오는 신재욱 때문이었다.
단순히 공을 몰고 들어오는 선수는 막으면 되지만.
신재욱은 막히질 않았다.
빠르진 않지만, 특유의 정교한 드리블과 심리전으로 벌써 3명을 제쳐냈다.
‘이제야 좀 줄 곳이 생기네.’
패스를 줄 공간도 많이 보였다.
상대 진영에 들어왔음에도 상대 선수 숫자와 동료들의 숫자가 비슷했다.
공격하는 쪽이 매우 유리해진 상황.
그런데 신재욱은 패스를 선택하지 않고 다시 전진했다.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럴 때 상대 선수 하나만 더 끌어내면 아주 유리해지거든.’
정면으로 드리블하던 신재욱이 갑자기 대각선으로 움직였다. 상대 수비수들을 효과적으로 끌어들이고, 패스할 공간을 더 넓게 만들기 위한 영리한 플레이였다.
“젠장! 내가 끊을게!”
마침내 상대 수비수가 자리를 비우고 튀어나왔다. 신재욱의 전진을 끊기 위해서 반칙을 감안해가며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투웅!
신재욱이 넓은 공간을 향해 킬패스를 뿌려냈으니까.
촤자자잣!
공은 잔디 위로 빠르게 굴러갔다.
다소 강하긴 했지만, 충분히 좋은 패스였다.
공을 받기 위해 움직인 레드팀의 스트라이커는 이찬호.
신재욱의 옆을 졸졸 따라다니는 그 선수였다.
투웅!
공을 받는 이찬호의 움직임은 부드러웠다.
침착하게 발의 안쪽을 이용해서 슈팅하기 좋은 위치로 공을 잡아두는 능력도 매우 훌륭했다.
뛰어난 재능이었다.
사실 당연했다.
고작 만 18세의 나이에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니까.
이어진 슈팅 역시 깔끔했다.
단순히 강하게 차는 게 아니고, 정확한 임팩트를 주며 원하는 위치로 꽂아 넣었다.
“잘하는데?”
신재욱이 감탄했다.
이찬호의 실력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대표로 뽑힌다는 건 실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방금 이찬호가 보여준 모습은 신재욱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다행이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저렇게 괜찮은 동료가 있으면, 월드컵에서 괜찮은 성적을 낼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더 괜찮은 성적을 낼수록 성장의 속도도 빨라질 테니까.
“재욱아, 고맙다! 패스 너무 좋았어! 이 골은 사실상 네가 거의 다 만든 거야. 신재욱 0.9골!”
이찬호는 환하게 웃으며 신재욱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제가 더 고맙죠.”
신재욱도 이찬호를 향해 고맙다고 말했다.
“응? 고맙다고? 뭐가? 네가 어시스트해줬는데, 왜 고마워?”
“어시스트가 되게끔 골 넣어줘서 고맙다고요.”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이찬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패스가 1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