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 * *
마틴의 복수심은 컸다.
팀이 코너킥 기회를 얻었지만, 골에는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오로지 신재욱에게 고통을 줄 생각만 가득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틴의 팀인 볼프스부르크가 코너킥 기회를 얻었다.
“좋아, 신재욱 넌 이제 죽었다!”
마틴은 드디어 복수할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양 팀 선수들이 바이에른 뮌헨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몰려든 지금.
그는 신재욱에게 접근했다.
시작은 옷을 잡아당기는 것부터였다.
꽈악!
상대의 옷을 잡는 것.
코너킥 상황이라는 특수한 경우엔 주심이 보고도 넘어가 주는 정도의 반칙이었다.
다만 당하는 사람은 짜증이 솟구치는 반칙이었다.
당연히 마틴은 몰랐다.
자신이 더 짜증이 날 줄은.
“아오! 좀 놔라!”
마틴이 신경질을 냈다.
자꾸만 옷을 잡아끄는 신재욱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냥 옷을 잡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씩 꼬아서 옷을 잡고, 신경 쓰이는 곳만 골라서 잡아당겼다.
어느새 마틴은 신재욱의 옷을 잡아당길 생각을 할 수 없게 됐다. 자꾸만 짜증 나게 만드는 신재욱의 손을 뿌리치느라 바빴다.
“넌 진짜 죽었다!”
“마텡, 너 아까부터 자꾸 뭐라는 거야? 집중해. 곧 공 날아온다.”
“미친놈이 상대팀한테 별걸 다 알려주는군! 그리고 난 마텡이 아니라 마틴이야!”
그때였다.
볼프스부르크의 선수가 코너킥을 찼다.
페널티박스 안에 모인 선수들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 순간.
‘이 타이밍만을 기다렸다!’
마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몸을 띄우는 것과 동시에 강한 복수심을 담아 신재욱의 얼굴을 향해 팔꿈치를 휘둘렀다.
‘이건 심판도 못 볼걸? 흐흐흐! 신재욱 넌 그냥 나한테 억울하게 처맞으면 되는 거야!’
얼핏 보면 공중볼 경합을 위해 팔을 휘두른 것처럼 보이는 동작.
만약 반칙이 선언된다고 해도 고의성이 없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동작.
그러나 마틴의 목적은 분명했다.
신재욱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치는 것.
휘익!
마틴은 팔꿈치를 휘두르며 웃었다.
복수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다.
곧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질 신재욱의 모습을 상상하니 짜릿한 감정도 몰려왔다.
그런데.
그는 팔꿈치를 끝까지 휘두르지 못했다.
퍼억!
“억?!”
명치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 때문이었다.
“너……이 자식……!”
마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만큼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신재욱을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넌 왜 네가 당할 거라는 생각은 못 하냐? 역시 멍청해서 그런 거야?”
귀속을 파고드는 신재욱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얄밉게 느껴졌다.
“신재욱 너……!”
마틴은 너무 화가 났지만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다.
신재욱에게 맞은 곳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삐이익!
경기가 중단됐다.
의료진이 들어와 바닥에 쓰러진 마틴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틴은 심판을 향해 억울함을 드러냈다.
“방금 못 봤어요? 저 한국인 자식이 팔꿈치로 내 복부를 찍어버렸다고요! 완전히 고의였다고요! 저렇게 더러운 플레이를 하는 놈은 바로 퇴장시켜주셔야 한다고요!”
그러나.
심판은 마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마틴, 코너킥 경합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거 알잖아?”
“아니! 무슨 경합이에요? 내가 맞았다니까요? 날 일부러 때렸다니까요?”
“그만! 더 항의하면 카드를 줄 거야.”
너무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일까?
심판의 냉정한 말을 들은 마틴은 순간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맞았다는데 왜 나한테 그러냐고! 당장 퇴장 안 주고 뭐 하냐고? 당신이 그러고도 심판이야?”
그때였다.
방금 경고를 했던 심판이 망설임 없이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어서 레드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이미 옐로카드가 한 장 있는 마틴이었기에 주어진 레드카드였다.
“마틴, 퇴장이야.”
“뭐? 뭔 개소리야! 내가 왜 퇴장이에요? 예? 내가 왜 퇴장이냐고요!”
마틴은 크게 당황했다.
어떻게든 퇴장을 막기 위해 뒤늦게 비굴한 표정으로 ‘죄송합니다.’라고 빌어댔다.
그러나 이미 퇴장은 선언됐기에 번복은 없었다.
“으아아아아! 신재욱 너 이 자식! 다음에 만나면 내가 절대 가만 안 둔다!”
그렇게 마틴은 발광하며 동료들에게 이끌려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모든 걸 지켜보던 신재욱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상대 선수와의 마찰은 자주 겪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재밌게 느껴진다.
지금처럼 특별한 반응을 보여주는 상대라면 더더욱.
“마틴이 참 찰지게 맞아준단 말이야?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네.”
* * *
한 명이 퇴장당하며 10명이 뛰게 된 볼프스부르크 U16의 전력은 크게 약해졌다.
경기에서 밀리고 있기에 공격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숫자에서 밀리니 과감하게 공격을 하기도 어려웠다.
반면 바이에른 뮌헨 U16의 경기력은 더욱 좋아졌다.
스코어에서 크게 앞서면서 여유가 생겼고, 기세가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특히 신재욱은 중원을 장악하며 경기를 지배했다.
“옆으로 넘겨줘! 그래, 좋아! 레온! 주변에 줄 곳 많으니까 천천히 해! 이택현! 앞으로 들어가 줘!”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동료들은 신재욱이 내리는 지시를 그대로 이행했다.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월드클래스 미드필더였던 신재욱의 시야는 매우 넓었다.
U16 리그의 어린 선수들에겐 없는 시야였다.
그렇게나 넓은 시야로 지휘를 하니 당연하게도 볼프스부르크는 제대로 된 공격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했다.
더군다나 신재욱은 동료들을 지휘하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빈틈이 너무 많은데? 저러면 한 번 뚫어줘야지.”
필요할 때면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기 위해 욕심을 내기까지 했다.
지금도 그랬다.
신재욱은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했고.
곧바로 머릿속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투욱! 휘익!
상대 선수를 돌파해내는 건 쉬웠다.
몸 상태가 꽤 괜찮아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만 16세 선수들도 못 뚫으면 창피한 일이지.’
신재욱의 드리블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급하지 않고 신중했다. 상대의 움직임을 끝까지 보며 돌파를 시도했다.
상대가 먼저 덤벼들지 않을 땐 덤벼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지금도 신재욱의 앞을 가로막은 볼프스부르크의 수비수는 쉽게 덤벼들지 않았다.
신재욱의 실력을 경계하기 때문에 신중한 수비를 펼쳤다.
그러나 그런 수비수의 앞에 너무나도 달콤한 미끼가 던져졌다.
휘청!
신재욱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영락없이 미끄러진 듯한 움직임이었다. 잔디가 미끄러울 때 드리블을 하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 중 하나.
볼프스부르크의 수비수 던은 곧바로 반응했다.
“흐흐! 미끄러졌구나! 그럼 공 뺏겨야지!”
중심이 흔들린 상대의 상체를 밀면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때 덤벼들면 다른 상황보다는 공을 훨씬 쉽게 뺏을 수 있다.
때문에, 수비수 던은 신재욱에게 달라붙었다.
우선은 강하게 부딪쳐서 중심을 흔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걸릴 수밖에 없지.’
모든 게 신재욱의 미끼였다.
미끄러진 것과 같은 움직임.
전부 연기였다. 상대를 끌어내기 위한 연기.
볼프스부르크의 수비수 던은 참지 못하고 덤비고 있었고.
애초에 중심이 흔들린 적이 없었던 신재욱은 몸을 회전하며 던과의 충돌을 피해냈다.
툭! 툭! 휘익!
그거면 충분했다.
다시 한번 공을 터치하며 던과의 거리를 벌렸다.
단숨에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온 상황.
신재욱은 계속 들어갔다. 골키퍼가 나올 수밖에 없게끔.
타다닷!
결국, 골키퍼가 골대를 비우고 튀어나왔다.
그냥 슈팅을 허용하는 것보단 슈팅을 방해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신재욱이 기다렸던 행동이었다는 것.
투욱!
신재욱은 오른발로 공의 밑부분을 찍어 찼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달려오는 골키퍼의 키를 넘어 날아갔다.
“앗?!”
볼프스부르크 골키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슈팅이 나온 순간 알 수 있었다. 망했다는 것을.
“저 자식…… 하필 칩슛을 하네.”
신재욱의 슈팅엔 실수가 없었다.
골대 안을 향해 날아간 공은 천천히 떨어져 내리며 골망을 향해 부드럽게 안겼다.
철렁!
이후에도 신재욱은 계속해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도움을 기록했고, 골을 넣었다.
1명이 없는 볼프스부르크는 여러 개의 구멍이 있었고, 신재욱은 그 구멍들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볼프스부르크 U16에겐 처참한 경기였고, 바이에른 뮌헨 U16에겐 축제와 같은 경기였다.
삐이이이익!
8 대 0 스코어로 경기가 종료된 지금.
“오! 많이 올랐네!”
신재욱은 허공에 뜬 메시지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U16 리그에서 볼프스부르크라는 강팀을 만나 여러 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기 때문인지, 능력치가 성장했다는 메시지의 숫자도 많았다.
[드리블이 1 올랐습니다!]
[개인기가 1 올랐습니다!]
[헤딩이 1 올랐습니다!]
* * *
U16에 적응한 이후로 신재욱은 공부에도 시간을 투자했다.
주로 언어 공부였다.
이미 몇 가지 외국어를 굉장히 잘하는 신재욱이었지만, 언어는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퇴화하기 마련이었다.
당연하게도 축구에는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몸으로 하는 훈련은 물론이고, 전술 훈련, 분석과 같은 머리로 하는 훈련도 꾸준히 해왔다.
사실상 하루의 대부분은 축구에만 쏟았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재욱아! 이것 좀 봐봐! 드디어 된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신재욱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이택현이 최근에 열심히 연습하던 개인기를 펼치고 있었다. 기술이 좋기로 유명한 브라질 선수들조차 어지간해선 흉내도 내지 못할 고급 기술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변엔 다른 동료들이 모여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택현처럼 어려운 기술들을 어렵지 않게 해내는 선수들도 있었다.
‘네이마르를 보는 것 같네.’
네이마르.
신재욱의 기억 속에서 중 가장 개인기가 좋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브라질의 산투스 FC라는 클럽에 있지만, 몇 년 뒤엔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엄청난 선수가 될 남자였다.
‘뭔가 비슷하단 말이야. 근데 이택현 쟤는 왜 한국인이면서 드리블하는 건 브라질 사람 같지?’
놀랍게도 이택현의 드리블 스타일은 그런 네이마르와 많이 닮아있었다.
게다가 피지컬은 오히려 이택현이 더 좋았다.
신재욱의 기억 속 네이마르는 호리호리한 스타일이었지만, 이택현은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을 지녔다.
‘이택현이 이대로 잘 성장하면 네이마르 이상의 선수가 될지도 모르겠어.’
생각을 마치며, 신재욱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신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