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빨로 축구천재-61화 (61/224)

061

* * *

으하하하하!

바이에른 뮌헨 U15의 감독 사무실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데이브 감독이 터트린 웃음이었다.

배를 부여잡고 한참을 웃어댄 그는 이제는 눈물까지 닦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웃음이 끊긴 데이브 감독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나와 금방 헤어질 것 같아서 아쉽다고? 그 말은 내가 감독인 U15에서도 빠르게 월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자신이 맡은 팀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일까?

데이브 감독의 질문엔 날이 서 있었다.

그런데.

신재욱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변한 감독의 분위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을 내놓았다.

“예. 그런 뜻입니다.”

“U15를 무시하는 건가?”

눈을 부릅뜬 데이브 감독이 신재욱을 노려봤다.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단숨에 위축될 정도로.

하지만 많은 경험을 겪어온 신재욱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그냥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겁니다.”

“본인이 어린 나이에 너무 거만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위축되고 답답하게 행동하는 것보단 자신감을 지니는 게 낫다는 생각은 했었죠.”

솔직한 생각이었다.

환생 전, 신재욱은 늘 자신감 있게 살아왔다.

타고난 성격은 아니었다.

동양인으로서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특히 축구천재 FC 촬영 때는 자주 겸손한 척을 해왔지만.

유럽에 나온 순간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

살아왔던 대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표정을 굳혔던 데이브 감독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핫! 신재욱, 자네는 못 당하겠군! 장난을 좀 쳐보려고 했는데, 전혀 통하지 않는구만. 혹시 내 연기가 별로였던 건가?”

연기였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신재욱의 눈엔 보였다.

데이브 감독의 입술이 잠깐 삐죽거리는 것을.

하지만 그 부분을 굳이 걸고넘어질 생각은 없었다.

“연기력이 상당하시던데요? 하마터면 속을 뻔했어요.”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지. U15에 온 걸 환영하네.”

손을 내민 데이브 감독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신재욱 역시 미소를 띤 얼굴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긴장한 채로 지켜보던 이택현이 작은 목소리로 옆에 있던 진 바그너에게 질문을 던졌다.

“진……! 분위기가 좀 좋아진 것 같죠?”

“그러네요. 서로 웃으면서 악수도 하는 걸 보니 풀린 것 같아요.”

“근데 어떤 대화를 한 거예요? 독일어를 잘 못 하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눈으로 보고도 알 수가 없네요.”

“데이브 감독님이 신재욱 선수에게 장난을 치려고 하신 것 같은데, 신재욱 선수가 전혀 당하질 않았어요.”

“엥? 장난을 저렇게 살벌하게 쳐요?”

“하하! 데이브 아저씨… 아니지, 데이브 감독님이 조금 짓궂은 편이시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데이브 감독님의 옆집에서 살았던 거 아시죠? 그때 데이브 감독님은 절 볼 때마다 툭하면 장난을 치셨는데, 하루는 어떤 장난을 쳤냐면 제가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데이브 감독님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더니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때 제가 한참 귀신을 무서워할 때인데…….”

진 바그너의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이택현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이야기가 최소한 20분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으니까.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를 구해준 건 데이브 감독이었다.

“진 바그너! 너는 아직도 말로 사람을 괴롭히나? 그것 좀 고쳐야 한다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안 되는 거냐?”

“데이브 아저씨! 괴롭히다니요! 제가 미쳤다고 제 선수를 괴롭히겠어요?”

“넌 아니라고 우기겠지만, 넌 말이 너무 많아. 그럴 거면 차라리 에이전트 일을 때려치우고 음악을 시작하는 게 어떤가? 그래, 장르는 랩이 좋겠다.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떠들어댈 수 있는 능력을 랩과 접목하면 꽤 훌륭한 래퍼가 될 수 있을 거야.”

“랩은 무슨 랩이에요. 이상한 소리 그만 하세요. 그리고 아저씨는 살 좀 빼셔야겠어요. 예전엔 몸이 좋으셨던 분이 이제는 배 나온 할아버지가 다 됐잖아요.”

“간만에 너희 아버지를 찾아가야겠군. 아들이 한층 더 예의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려주면 아주 좋아하겠어.”

“아! 갑자기 아버지를 꺼내는 건 반칙이죠!”

데이브 감독과 진 바그너는 티격태격하며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두 남자 모두 내뱉는 말과는 달리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이택현은 신재욱에게 다가와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 이상해. 싸우는 것 같은데 둘 다 웃고 있어.”

신재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 그렇네. 확실히 이상하긴 해.”

* * *

데이브 감독을 만나고, U15에 들어가게 된 이후 며칠이 지났다.

바이에른 뮌헨 U15에서 적응하는 것은 U13과 U14보다 더 쉬웠다.

신재욱이 과거 축구천재 FC 소속으로 독일에 왔을 때, 상대했었던 선수들이었으니까.

U15의 선수들은 이미 신재욱과 이택현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이들을 존중해줬다.

다만 잘 풀리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곧바로 실전에 투입됐던 U13, U14 때와는 달리 데이브 감독은 신재욱과 이택현을 실전에 투입하지 않고 있었다.

팀 동료들과의 호흡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눈앞에서 U15 리그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고, 신재욱은 이택현과 함께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이에른 뮌헨 U15의 경기력은 준수했다.

기본기가 잘 갖춰진 선수들답게 좋은 실력을 보여줬다. 다만 오늘만큼은 상대가 더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르트문트가 잘하네.’

오늘 만난 상대는 도르트문트 U15 팀이다.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긴장시키는 몇 안 되는 강한 팀답게, 유소년 선수들도 뛰어난 실력을 드러내며 바이에른 뮌헨 U15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조만간 기회를 얻겠어.’

신재욱은 상황을 지켜보며 옅게 웃었다.

오랜 경험으로 쌓인 눈썰미로 알 수 있었다.

데이브 감독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머지않아 변화를 주려고 할 거라는 것을.

‘빠르면, 오늘이 될 수도 있겠고.’

축구선수는 늘 뛰고 싶어한다.

신재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매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길 원했다.

환생 이후로는 그 열망이 더 강해졌다.

능력치의 성장 때문이었다.

‘실전에서 능력치가 가장 잘 오르니까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아직은 기회가 오길 기다려야 할 때였다.

현재 경기 시각은 전반전 44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전반전은 선수 교체 없이 이대로 마무리가 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삐익!

전반전이 종료됐다.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주어진 휴식 시간.

‘열정적이시네.’

신재욱은 데이브 감독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는 전술 판을 꺼내든 채 선수들을 향해 열정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오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분위기는 데이브 감독과는 달랐다.

‘대부분 위축되어 있어. 도르트문트가 전반전에 보여준 경기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었나 보네.’

선수들은 전반전에 들어갈 때보다 자신감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감독이 보고 느끼는 것과 경기장 위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선수들이 느끼는 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그런 선수들의 분위기를 데이브 감독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적어도 신재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러면 정말 기회가 금방 오겠는데?’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팀 분위기가 좋지 못한 것을 본 데이브 감독은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그는 후반전이 시작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선수 교체 카드를 사용했다.

“신재욱, 출전이다.”

“알겠습니다.”

신재욱은 빠르게 대답하며 유니폼을 입었다.

따로 몸을 풀 필요는 없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데이브 감독에게서 몸을 풀라는 지시를 받았었으니까.

때문에, 현재 신재욱의 몸은 더 달굴 필요도 없이 뜨겁게 예열된 상태였다.

‘느낌이 괜찮은데?’

신재욱은 제자리에서 점프하며 잔디를 느꼈다.

느낌이 좋았다. 다른 선수는 모르겠지만, 신재욱은 이처럼 잔디에서 좋은 느낌을 받을 때면 볼 터치가 잘 되곤 했다.

‘예전 동료들은 미신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 어떡하라고.’

신재욱은 고개를 돌려 벤치를 바라봤다.

그가 경기장에 들어간 순간부터 큰 목소리로 응원을 하는 이택현의 모습이 보였다.

“신재우우우욱! 시원하게 한 골 가즈아아아!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 쫌 이따가 내가 지원 간다!”

“…민망하게 왜 저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재욱은 이택현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려줬다.

받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과한 응원이었지만 솔직히 힘이 되긴 했으니까.

‘그래, 보여줄게.’

오랜만의 출전이었다.

또한, U15에 온 이후로 가장 이른 시간에 얻은 기회였다.

앞으로 기회를 계속 얻으려면 이럴 때 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신재욱은 임팩트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한 임팩트를.

* * *

툭! 툭! 투욱!

바이에른 뮌헨 U15는 중원에서 천천히 패스를 돌리며 점유율을 높여갔다.

그 중심에 있는 선수는 신재욱이었다.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고 뿌려줬다.

데이브 감독에게 중원에서 경기를 풀어주는 플레이메이킹 역할도 부여받았기 때문이었다.

툭!

신재욱이 다시 공을 잡았다.

후반전에 투입되자마자 많은 볼 터치를 한 그였다. 하지만 줄곧 짧은 패스 위주로 풀어갔었다.

도전적인 플레이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지금과 같은 순간을 위해서였다.

투욱!

신재욱이 패스를 하는 척하며 대각선 앞으로 공을 치고 들어갔다.

이 움직임에 당연히 패스가 나올 줄 알고 느슨하게 압박하던 도르트문트의 미드필더가 가볍게 벗겨졌다.

한 명을 제쳐낸 상황.

신재욱은 더욱 속도를 높여서 계속 전진했다.

하지만 많이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스피드가 빠른 편이 아니었을뿐더러 속도를 내면서도 드리블의 안정감을 살려야 했으니까.

‘줄 데가 없네.’

신재욱은 드리블하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고 동료들과 상대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아쉽게도 좋은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져가는 동료는 없었다.

이럴 땐 더욱 전진해서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주는 게 낫다.

때문에, 신재욱은 그의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며 지역방어를 하는 상대 선수를 향해 전진했다.

‘우선 한 명 더 제치자.’

더 좋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선 저 선수를 제칠 필요가 있었다.

저 선수만 제쳐낸다면 동료에게 확실한 골 기회를 만들어줄 수도, 직접 슈팅을 때려낼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집중해야 해.’

툭! 툭!

신재욱이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전진했다.

상대 선수는 신중했다. 절대 먼저 덤벼들 생각이 없는 듯, 발을 뻗지 않고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좋은 수비였다.

상대가 신재욱이 아니었다면 뚫리지 않았을 정도로.

휘익! 툭!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신재욱은 왼쪽 대각선으로 파고들 것처럼 움직이며 상대의 움직임을 끌어들인 뒤, 그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집어넣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팀 동료들이 내뱉는 함성일 수도 있었다.

다만, 신재욱은 모든 소음을 차단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충분한 공간이 나왔어. 더 들어간다.’

그는 순식간에 판단을 내리며 상대의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그의 앞엔 상대 팀인 도르트문트 U15의 골키퍼가 달려오고 있었다.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진 지금.

신재욱은 다리를 휘둘렀다.

슈팅을 때리는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

그와 동시에 골키퍼가 슬라이딩을 하며 덤벼들었다.

그런데 이때.

신재욱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속을 수밖에 없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