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 * *
텅 빈 앞 공간.
그곳을 향해 신재욱이 뛰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100%의 속도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공을 컨트롤하며 달리고 있었으니까.
“막아!”
“저 자식을 막아! 슈팅은 못 하게 해야 해!”
뒤에선 다급한 독일어가 들렸다. 하지만 뒤에서 들릴 뿐이었다.
현재 신재욱을 방해할 수 있는 선수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골키퍼 하나 남았네.’
상대인 블루팀의 골키퍼.
그는 골대를 비우고 뛰쳐나왔다.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신재욱이 빠르게 골대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고, 가까운 거리일수록 골키퍼로선 슈팅을 막아내기 어려워지니까.
하지만 신재욱이 누구던가.
세계 최고의 공격수였던 남자였다.
환생 후 꾸준히 성장을 거둔 결과 슈팅 능력치도 65였다.
비록 완벽에 가까운 슈팅을 때릴 순 없는 능력치지만.
‘골키퍼와의 일대일에선 자신감 있게 슈팅을 때릴 순 있는 능력치지.’
골을 넣기엔 충분한 능력치였다.
후웅!
신재욱이 움직였다.
눈으로는 달려오는 골키퍼와의 거리를 계산하며, 다리는 짧고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면서 발로는 공을 세밀하게 찍어 찼다.
투웅!
공은 튀어나온 골키퍼의 키를 넘어 날아갔다.
골키퍼가 재빨리 몸을 돌려서 공을 쫓으려고 했지만, 공은 이미 골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퉁! 투웅!
골대 안으로 들어간 공이 통통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장면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선수들이 있었다.
2개 골을 허용한 블루팀의 선수들이었다.
“또 먹혔다고? 우리가…?”
“오늘 들어온 신입한테 2골이나……?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쟤 대체 뭐야? 움직임이 되게 위협적이잖아?”
“옆에서 도와주는 ‘리’도 장난 아니야. 많이 뛰는데 엄청 빠르기까지 해.”
“겨우 둘이서 우리를 다 뚫고 골을 넣는다고? 그것도 두 번씩이나……?”
같은 시각.
신재욱과 같은 팀인 레드팀의 선수들도 당황하고 있었다.
이들 역시 흔들리는 동공으로 신재욱과 이택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벌써 2골을 넣었잖아?”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던 거야?”
“이상한데? 쟤네 움직임이 너무 날카로워. 그리고 움직임을 보면…… 블루팀 애들을 쉽게 상대하는데?”
“뭐야 진짜……? 오늘 블루팀에서 수비하는 애들은 되게 잘하는 친구들인데……? 컨디션이 안 좋나……?”
“아니야…… 아까 경기 전에 컨디션 되게 좋다고 말했었어……!”
“그럼 뭐야……? 저 신입 두 명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거야?”
이처럼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바이에른 뮌헨 U13의 감독 벤은 헛웃음을 흘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허허…… 데이브 감독님이 한국에서 괴물들을 데려왔군.”
그는 꽤 오랜 시간 감독직을 해왔다.
많은 수의 어린 선수들을 지도해왔다.
천재라고 불리는 아이들, 범재라고 불리는 아이들, 둔재라고 불리는 아이들 등등.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부터 재능이 뛰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많이 봐왔다.
그러나 그들 중 지금의 신재욱처럼 했던 아이는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없군. 처음이야, 훈련 참여 첫날에 우리 아이들을 박살 낸 녀석은.”
* * *
[체력이 1 올랐습니다!]
[개인기가 1 올랐습니다!]
능력치가 2개나 올랐다.
두 번째 골을 넣은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골을 넣을 때도 덤덤하던 신재욱이 이번엔 미소를 보였다.
“이래서 유명한 팀에 들어와야 한다니까?”
바이에른 뮌헨에 온 자신의 선택이 만족스러웠다.
능력치가 오르는 속도가 축구천재 FC와 대한중학교에 있을 때보다 더 빨랐으니까.
그때였다.
신재욱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슬슬 흔들리나 보네.”
빨간색 조끼를 입은 팀원들의 표정을 보는 건 재밌었다.
분명 연습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신입생들에게 좌절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짓궂은 표정이었건만, 지금은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눈빛들도 흐리멍덩한 동태눈 같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상대를 봐가면서 까불어야지.”
패스를 주지 않는 텃세 따위는 신재욱이 과거에 다 겪어봤던 것이었다.
어떻게 대응하면 되는지도 다 알고 있었다.
때문에, 신재욱의 표정엔 여유가 흘렀다.
‘다음엔 세트피스에서 골을 노려볼까?’
상대의 텃세에는 전혀 고민이 없었고, 공격포인트를 기록할 방법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너희 뭐 하냐? 같은 팀끼리 패스를 안 주면서 따돌리지를 않나, 태클해서 공을 뺏질 않나, 대체 뭐 하는 짓거리들이야?!”
U13의 감독 벤이 호통을 쳤다.
자연스레 경기가 중단됐고, 경기장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선수들 역시 숨죽인 채 감독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 양반, 드디어 나서네.’
신재욱은 피식 웃었다.
벤 감독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행동엔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재밌게 구경했으면서 왜 이제야 화난 척을 하고 그러실까?’
어린 선수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다.
감독들이 보여주는 저런 행동은 아주 많이 봤던 것들이니까.
다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감독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니까.
‘나랑 이택현의 정신력을 확인하고 싶었겠지.’
오늘처럼 선수들이 텃세 부리는 걸 잠시 지켜보는 것만으로 신입생들의 성격과 멘탈을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이 어린 선수들의 텃세를 굳이 방관했던 이유였다.
게다가 지금이라도 벤 감독이 나섰다는 건, 이제부터는 선수들의 텃세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신재욱에겐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이젠 같은 팀원들에게서 패스가 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공이 얼마나 올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라지겠지.’
잠시 후 멈췄던 경기가 재개됐다.
신재욱의 생각처럼 같은 팀 선수들로부터 패스가 오기 시작했다.
자주 오는 건 아니었지만, 짧은 거리에서의 보여주기식 패스 정도는 보내왔다.
반대로 신재욱도 필요한 상황에선 팀 동료들에게 패스를 보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텃세가 당장 전부 사라질 수는 없다.
아마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교환은 나쁘지 않다. 적어도 꼭 줘야 할 때 안 주지는 않을 테니까.
신재욱과 이택현이 패스를 받기 시작하자 변화가 생겼다.
우선 경기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기울었다.
이전까지는 스코어만 2 대 0일뿐 레드팀의 경기 흐름은 좋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신재욱과 이택현이 속한 레드팀은 상대인 블루팀을 압도했다.
자연스럽게 양 팀의 점수를 더욱 벌리는 골도 터졌다.
골을 넣은 선수는.
“쟤 좀 막으라고!”
“아오! 자꾸 안 보이는 곳에서 나타나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주변을 계속 확인해야 할 거 아니야!”
“왜 나한테만 그래! 너도 봤으니까 알잖아! 내가 못한 게 아니라 저 한국에서 온 허약해 보이는 자식이 잘하는 거라고!”
신재욱이었다.
‘해트트릭이네.’
3골을 넣으며 해트트릭을 기록했지만, 신재욱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실전이 아니고 훈련이었으니까.
때문에, 피식 웃어버리는 것으로 해트트릭에 대한 기쁨은 끝났다.
하지만 이택현은 아니었다.
어느새 달려온 그는 신재욱의 등에 매달린 채로 괴성을 질러댔다.
“우어어어어어! 봤냐, 이 자식들아! 어딜 감히 텃세를 부려? 뒤질라고!”
“좀 내려오지? 그리고 텃세는 같은 팀 애들이 부렸지, 상대가 그런 건 아니잖아.”
“으흐흐! 재욱아! 네 해트트릭 맛에 쟤들 멘탈이 다 깨져버린 것 같은데? 그러니까 왜 우리 듀오를 건드리고 난리야, 난리는!”
“알겠으니까 진정하고 좀 내려오라고.”
신재욱이 팔을 뻗어 이택현을 떼어놨다.
“재욱아! 넌 역시 쩐다니까? 어떻게 오자마자 3골을 박아버리냐?”
“더 많이 넣을 생각이니까 흥분 좀 가라앉혀봐.”
“응? 더 많이 넣는다고? 골을?”
“그럼 여기서 끝내려고 했어? 넌 골 안 넣을 거야? 아직 후반전도 아니고 전반전인데?”
“오오! 당연히 넣어야지! 아,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네. 재욱아 나 엄청 침착하게 갈 거니까 말리지 마!”
“…어, 그래.”
“으하하하! 신재욱이 해트트릭했으니까 나도 똑같이 해트트릭 간드아아! 침착모드 이택현이 얼마나 개쩌는지 보여주마!”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으면서 침착할 거라고 말하는 이택현의 모습은 기괴했다.
그러나 신재욱은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전혀 믿음이 안 가는 이택현이지만, 막상 경기가 재개되면 뱉은 말을 지키며 침착한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것을.
* * *
삐이이이익!
경기가 재개됐다.
레드팀에서 투톱의 위치에서 뛰는 이택현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공을 가지고 있을 때면 빠른 스피드와 양발을 이용한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인 블루팀의 수비진을 무너뜨렸다.
심지어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도 위협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을 위협했다.
지금도 그랬다.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인 이택현은 수비 뒤 공간을 빠르게 침투하며 수비를 흔들었다.
이택현으로 인해서 흔들린 수비는 다른 쪽에 빈틈을 노출했다.
그리고.
그 빈틈을 향해 신재욱이 슈팅을 때려냈다.
퍼어엉!
공이 뻗어 나갔다.
강력한 슈팅은 아니었다. 정확도도 그리 좋진 않았다.
애초에 신재욱은 골대 구석을 노리고 찬 것이었지만, 막상 쏘아진 슈팅의 방향은 구석보단 더 안쪽이었다.
그래서일까?
골키퍼는 몸을 날려 신재욱의 슈팅을 쳐냈다.
하지만 완벽하게 쳐내지는 못했다.
슈팅의 퀄리티는 낮았지만, 슈팅의 타이밍 자체는 너무나도 예리했으니까.
터엉!
주먹으로 쳐낸 공은 골키퍼의 왼쪽 대각선 앞에 떨어졌다. 공은 멀리 뻗어져 나가지 못했다. 블루팀으로선 여전히 위기였다.
골키퍼는 제대로 공을 걷어내기 위해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블루팀의 수비수들은 공을 멀리 걷어내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좋은 위치에서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두르는 선수가 있었다.
“이택현! 네가 마무리해!”
“당연하지! 침착모드 이택현이거든!”
이택현.
그는 신재욱의 말에 대답하며 강력한 슈팅을 때려냈다.
뻐어엉!
슈팅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택현이었다.
그런 선수가 골키퍼와 2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때린 슈팅이었다.
방향도 구석을 향했다.
골키퍼가 막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블루팀의 골키퍼는 재빨리 몸을 던져보려 했지만.
공은 그전에 이미 골망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철렁!
흔들리는 골망을 확인한 이택현은 포효하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 재욱아! 봤어? 이게 바로 침착모드 이택현 님이다 이 말이야!”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신재욱은 엄지를 들어 올려줬다.
“골키퍼가 튕겨낸 공에 본능적으로 반응했어. 저건 골에 대한 집착을 타고나야 하는 건데…… 이택현은 제대로 타고났군.”
그렇게 중얼거린 신재욱의 시선이 허공으로 이동했다.
골은 이택현이 넣었지만, 그도 얻어낸 게 있었다.
바로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