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 * *
신재욱의 일상은 훈련 또 훈련이었다.
더구나 이전과는 다르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을 소화했다.
보통은 금요일에 진행했다. 주말엔 휴식을 취하거나 강도를 낮춘 훈련을 진행했다.
그래서일까?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에 이택현이 투덜거렸다.
“와…… 또 금요일이네. 재욱아, 나는 빡센 훈련을 한 뒤로부터 금요일이 싫어졌어.”
“그래도 몸 상태는 좋아지고 있잖아. 축구 실력도 좋아졌고.”
“나도 실력이 느는 건 좋아. 훈련이 상상 이상으로 지옥 같아서 문제지. 금요일마다 하는 훈련은 정말 너무 힘든 것 같아.”
“다른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우린 그나마 나이가 어린 성장기이기 때문에 적당히 조절하면서 훈련하고 있잖아.”
“적당히 조절? 신재욱, 네 기준은 가끔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어. 이게 적당히 조절하는 거면, 조절 안 하면 얼마나 빡세진다는 거야?”
“궁금해?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경험시켜줄게.”
“거절할게.”
“그만 투덜대고 이제 시작하자.”
“아오! 참 인간미 없는 친구라니까? 조금 늦게 시작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한 5분 만이라도.”
“5분이 10분 되고, 10분이 1시간이 되는 거야. 못하겠으면 나 혼자 한다?”
“못하기는 누가 못해? 바로 시작하자.”
발끈하는 이택현을 보며, 신재욱이 미소 지었다.
‘자존심은 세계 최고라니까?’
동시에.
신재욱은 심호흡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 금요일에 진행되는 훈련은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
솔직히 가끔은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도.
“러닝부터 시작하자.”
신재욱은 움직였다.
인내하고 버티고 이겨내는 건 그에게 익숙한 일.
이번 삶에서도 최고가 되려면 힘든 과정을 훨씬 더 많이 견뎌내야 하지만, 신재욱은 필요한 모든 걸 해낼 생각이었다.
“오늘도 고생했어. 대단하다.”
모든 훈련이 끝난 뒤, 신재욱은 쓰러져있는 이택현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냥 하는 칭찬이 아니었다. 신재욱은 이택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한국 나이로 15살이고 유럽 나이로는 13살밖에 안 된 어린앤데, 뭐 이렇게 잘 따라와? 볼 때마다 신기하네.’
한두 번이면 모를까, 벌써 4주째였다.
나이를 생각해서 훈련의 강도를 조절하고는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따라오기 힘든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택현은 투덜대기는 해도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다. 놀랍고 대단한 일이었다.
“응? 징그럽게 갑자기 웬 칭찬이야? 재욱아, 이건 당연한 거야. 네가 하면 나도 무조건 해낼 거야.”
“좋은 마인드야. 계속 유지할 수 있길 바랄게.”
“물론! 절대 방심하지 마. 언젠가는 널 뛰어넘을 거니까.”
“꿈이 많이 커졌네? 택현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 괜히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해서 실패하면 정신건강에 안 좋아.”
“……넌 어째 점점 더 재수 없어지는 것 같다? 아오! 이렇게 재수 없는 모습을 여자애들이 봐야 하는데!”
* * *
어린 축구선수가 성장하려면 무조건 경기에 출전해서 뛰어야 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수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성장이 정체될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팀 훈련으로 진행되는 경기가 아닌,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 골입니다! 축구천재 FC의 선제골입니다!
― 신재욱이 해냈네요! 상대의 수비진을 흔들고 직접 골을 만들어냈습니다!
― 요즘 신재욱 선수는 대한중학교 소속으로 대회도 참여하는 중이기 때문에 굉장히 바쁠 텐데, 이렇게 축구천재 FC의 경기에도 빠짐없이 나와서 좋은 활약을 해주고 있습니다!
대한중학교의 전국대회 참여 때문에 일정이 바빴지만, 그래도 신재욱은 경기만 있다면 지금처럼 시간을 내서 축구천재 FC 촬영 현장에 나왔다.
성장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아 역시 능력치는 강한 상대랑 붙어야 더 빨리 오른다니까?’
오늘 축구천재 FC 팀은 고등학교 팀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고등학교 팀이 아닌, 강팀으로 평가받는 팀이었다.
그런 상대에게 선제골을 기록한 지금.
신재욱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봤다.
[슈팅이 1 올랐습니다!]
슈팅이 올랐다는 메시지.
반가운 내용이었다. 이제 슈팅 능력치는 65가 됐다.
다만,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슈팅도 앞으로는 되게 안 오르겠네.’
능력치가 65가 되면 성장이 심하게 더뎌진다는 걸 느끼는 중이었으니까.
‘패스가 엄청 안 오르는 걸 보면 슈팅도 비슷하겠지.’
슈팅 능력을 제외하고, 현재 65 이상의 능력은 패스밖에 없다.
문제는 패스 능력치가 65가 된 지 꽤 오래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고생 좀 하겠군.’
하지만 신재욱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에게 이런 것쯤은 고생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유럽에서 동양인으로서 월드클래스로 인정받고, 더 나아가 발롱도르를 받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왔던가.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노력하면 무조건 최고의 자리에 다시 오를 것이라는 자신감이.
“역시 신재욱이야! 고등학생 형들을 상대로도 쉽게 골을 넣네!”
“그러니깐 얜 진짜 괴물이야!”
“시작이 너무 좋은데? 재욱아, 오늘도 또 골 넣은 거 축하해!”
동료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신재욱은 감사함을 드러낸 뒤, 상대 선수들을 바라봤다.
‘강덕고등학교…… 축구로 꽤 이름을 날리는 학교라던데.’
늘 그랬듯 신재욱은 상대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상대는 강덕고등학교.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한 고등학교 팀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들든, 세 손가락 안에 들든, 그런 건 신재욱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 신재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하나였다.
경험치를 많이 주는 상대인가?
그리고.
상대인 강덕고등학교에게 골을 넣었을 때, 예상보다 더 빠르게 슈팅 능력치가 올랐다.
즉.
‘명성에 걸맞게 괜찮네.’
신재욱의 기준에 맞는 아주 좋은 상대였다.
* * *
― 양 팀 선수들이 모든 걸 쏟아낸 경기였습니다!
― 최선을 다해준 양 팀 선수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경기가 종료됐다.
― 너무 재밌는 경기였죠?
― 맞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경기였습니다!
― 경기 전엔 축구천재 FC가 밀릴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막상 경기가 펼쳐지니 굉장히 치열했습니다! 특히 신재욱 선수의 플레이가 굉장히 날카로웠죠?
― 그렇습니다! 신재욱은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는 선수답게 오늘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평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해줬고, 공격할 땐 과감하게 킬패스를 뿌리고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 모든 선수가 잘해주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신재욱의 활약으로 인해서 축구천재 FC가 승리를 거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압도적이었으니까요!
승리한 팀은 축구천재 FC였다.
사실 이건 놀라운 결과였다.
강덕고등학교는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다. 더구나 이들은 매일 손발을 맞춘다.
반면, 축구천재 FC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손발을 맞췄고, 많아야 일주일에 두 번이었다.
당연히 강덕고등학교에 비해서 조직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 경기를 보게 될 시청자분들도 깜짝 놀라실 것 같습니다. 양 팀은 조직력뿐만 아니라 나이 차이도 있거든요! 무려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맞붙은 경기입니다!
― 축구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나이 차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는 한두 살 차이가 크게 작용합니다. 특히 피지컬에서 아주 큰 차이가 생기게 되죠.
해설들의 말처럼 나이로도 매우 불리한 경기였다.
그럼에도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경기가 방영되었을 때, 시청자들과 여러 축구팬들은 놀라움을 드러냈다.
└ㅋㅋㅋㅋㅋ이젠 고등학교 팀까지 잡아내네?ㅋㅋㅋㅋ 진짜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ㅋㅋㅋ
└축구천재 FC 애들 다 실력이 너무 좋아졌어;;;;;;;;; 강덕고등학교면 실력 좋은 걸로 꽤 유명한 팀인데, 저길 잡네;;;;;;
└신재욱이 너무 잘함ㄷㄷㄷ 다른 애들은 그래도 상식선에서 잘하는데, 신재욱은 상식을 뛰어넘어ㄷㄷㄷ
└인정ㅋㅋㅋㅋㅋ 신재욱은 찐 천재야. 와…… 이 정도는 돼야 천재라는 소리 듣는 건가? 중학생이 고등학생들보다 훨씬 잘하네.
└난 그래서 더 아쉬워. 신재욱이 발까지 빨랐으면 얼마나 쩔었을까? 바로 유럽에서 러브콜 쏟아지겠지? 그리고 킥력도 조금만 더 좋았으면……에이 아까워!
└그랬으면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영입했겠지.
└아닌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영입했을걸?
└위에 다 좋은 팀들이니까 싸우지들 마. 그리고 이미 충분히 좋은 팀인 바이에른 뮌헨에 갈 예정이잖아. 이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거야.
└근데 바이에른 뮌헨으로 언제 감? 데이브 감독한테 명함 받고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왜 소식이 없지?
그리고 며칠 뒤.
신재욱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정말요? 정말 된 거예요? 고생 많으셨어요!”
비자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됐다는 소식이었다.
영국인으로 살아왔던 신재욱이었기에, 이번에 겪은 비자 문제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때문에, 반사적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휴……! 드디어 해결됐네.”
이처럼 신재욱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일이 다행히 해결됐고.
며칠 뒤, 신재욱은 또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함께 독일로 가야만 하겠다는 고집을 꺾으신 부모님 덕분이었다.
“아들…… 고민 많이 했는데, 엄마랑 아빠는 널 믿고 독일로 보내기로 했어. 여보! 얼른 무슨 말 좀 해보세요.”
“……엄마 말처럼 아빠도 너 혼자 독일에 가겠다는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재욱아, 내 아들이니까 충분히 잘 이겨내고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 너무 힘들면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걸 절대 잊지 말아다오.”
항상 감사한 분들이었다.
독일로 함께 가겠다고 우기셨던 것도 전부 신재욱을 생각하는 마음에 하셨던 것.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
신재욱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 * *
“우오오오오! 으어어어어! 재욱아! 이거 진짜야? 꿈 아니지?”
이택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신재욱은 침착하게 손으로 이택현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좀 해. 여기 공항이야. 지금 너 말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한 명도 없어.”
“읍……! 으읍……!”
“조용히 할 거야?”
“읍…!”
“…….”
고개를 위아래로 흔드는 이택현의 모습에, 신재욱은 그의 입을 막았던 손을 뗐다.
“푸후! 야! 그렇다고 입을 막냐?”
“공공장소에서 매너는 지키자.”
“……알겠어. 나도 모르게 너무 흥분했나 봐.”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진정하자.”
말을 마친 신재욱은 주변을 둘러봤다.
한국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었으니까.
‘오랜만에 다시 왔네.’
독일의 ‘뮌헨 국제공항’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