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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볼프스부르크의 어린 유망주들은.
분명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었다. 이들 중 몇은 미래에 아주 훌륭한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미래의 이야기일 뿐.
현재 경기장 위에서 뛰고 있는 볼프스부르크의 선수들은 아직은 그냥 어린 선수들일 뿐이었다.
적어도 신재욱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 신재욱이 파고듭니다! 이 선수가 마음먹고 돌파를 하면 어지간해선 막기 힘들죠!
― 특별히 빠른 것도 아니고, 몸싸움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기술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더구나 신재욱 선수는 심리전에서 늘 상대를 압도해버리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돌파를 쉽게 해내는 느낌입니다!
한 명을 제쳐내자 이번엔 중앙수비수가 덤벼들었다.
‘단단해 보이네.’
신재욱이 눈을 빛냈다.
상대는 체형만 봐도 일대일 수비에 특화된 파이터형 수비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방금 뚫어냈던 선수보다 더 큰 체구였다.
물론 신재욱은 상대의 겉모습만으로 스타일을 예측하지 않는다. 꼭 분석을 곁들인다.
이번에도 그랬다.
신재욱은 경기 시작 전부터 진민호 감독과 제작진들에게 이미 상대의 정보를 얻어냈다.
‘저런 선수랑은 생각 없이 붙으면 나가떨어지기 쉽지.’
심리전을 걸어야 했다.
통할 수밖에 없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택현!”
동료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오케이! 뭔지 알아!”
이택현은 빠른 눈치를 지녔다. 지금도 그랬다.
신재욱의 부름과 거의 동시에 대답하며 전방으로 쇄도했다. 그 모습을 본 볼프스부르크의 수비수들은 깜짝 놀라며 이택현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러나.
신재욱은 이택현에게로 공을 보내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으니까.
패스는 페인팅이었고, 신재욱은 한 번 더 공을 끌고 전진했다.
“어딜 감히 잔재주를 부려?!”
볼프스부르크의 중앙수비수 데이먼.
그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스피드를 지닌 선수였다. 신재욱과 이택현의 속임수에 속았지만, 재빨리 신재욱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때였다.
투욱!
신재욱의 발이 공을 밀어냈다.
페널티박스 오른쪽으로 파고들던 이택현에겐 공을 보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페널티박스 왼쪽으로 파고드는 장현에게로 전진 패스를 찔러넣었다. 볼프스부르크의 수비진 모두를 속인 킬패스였다.
― 신재욱의 패스입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온 패스네요!
팀의 윙어이자 가장 빠른 스피드를 지닌 선수 중 하나인 장현은 순식간에 볼프스부르크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이어서 부드러운 터치로 공을 받아냈다.
― 장현! 좋은 터치입니다!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을 맞이합니다!
장현은 겨우 15살의 나이였지만 한 학교의 에이스답게 늘 자신감이 넘쳤고 과감했다.
지금도 볼프스부르크의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지만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슈팅까지 이어갔다.
퍼엉!
잘 때린 슈팅이었다. 빠르고 정확한. 볼프스부르크의 골키퍼가 재빨리 몸을 날려봤지만, 그의 움직임은 공보다 빠르진 못했다.
― 고오오오오오올! 장현이 골을 기록했습니다!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축구천재 FC가 선제골을 기록하며 1 대 0으로 앞서갑니다!
― 장현 선수, 오랜만에 득점을 기록해서 기쁜 모양입니다! 하하! 신재욱 선수를 끌어안으며 격하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네요!
열리지 않던 볼프스부르크의 골문이 열렸다.
장현의 골이었고, 신재욱의 어시스트였다.
그리고.
도움을 기록한 신재욱은 동료의 골을 축하해주며, 눈으로는 허공에 생성된 메시지들을 바라봤다.
[속도가 1 올랐습니다!]
[탈압박이 1 올랐습니다!]
[드리블이 1 올랐습니다!]
[개인기가 1 올랐습니다!]
* * *
첫 번째 골을 기록한 이후.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강한 기세를 드러내며 볼프스부르크를 압박했다.
마음이 급해지는 건 볼프스부르크였지만,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며 공격을 이끄는 건 오히려 축구천재 FC 쪽이었다.
― 볼프스부르크가 너무 밀리는데요? 우리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플레이에 고전하고 있습니다!
― 우리 선수들이 확실히 성장했네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 때만 해도 체격이 큰 유럽 선수들을 상대하기 힘들어했었는데, 벌써 적응을 한 것 같습니다!
― 허허… 이렇게나 빠르게 성장하는 게 가능한 일이군요? 역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선수들답습니다!
이변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U15 팀에게 승리했던 경기는 이기긴 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시종일관 밀렸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는 달랐다.
경기력에서 축구천재 FC가 우위를 가져가고 있었다.
볼프스부르크의 어린 선수들은 분명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그에 맞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오늘만큼은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이 더 잘했다.
― 경기 종료됩니다!
― 축구천재 FC가 볼프스부르크의 유소년팀을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독일에 온 이후로 한 번도 지지 않고 2연승을 거둔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네요!
경기가 종료됐다.
축구천재 FC는 경기 종료 직전에 한 골을 더 넣으며, 볼프스부르크를 상대로 2 대 0 승리를 거뒀다.
코너킥 상황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은 신재욱이 이택현에게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주며 나온 결과였다.
이에 이택현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신재욱을 졸졸 따라다니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으흐흐흐! 재욱아, 진짜 너밖에 없다! 네 덕에 한 골 넣었어. 크! 내가 볼프스부르크 애들한테 골을 넣을 줄이야! 근데 재욱아, 너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너라면 직접 골을 넣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한테 패스 줬잖아.”
“나보다 네 위치가 더 좋아서 줬던 것뿐이야.”
“그래? 흐흐! 내 위치선정이 그렇게 쩔었나? 재욱아, 이럴 때 보면 너랑 한 특훈들이 할 때는 죽을 것같이 힘든데 확실히 효과는 좋은 거 같아. 바이에른 뮌헨 애들한테도 통했고, 볼프스부르크한테도 통했잖아?”
이택현은 말을 하는 도중에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만큼 골을 넣은 것과 자신의 플레이가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택현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어진 신재욱의 말 때문이었다.
“당연히 통하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열심히 훈련하자.”
“지금보다 더 열심히……? 아…… 갑자기 기분 다운됐어. 한국 가면 진짜로 뒤질 때까지 훈련할 거 아니야.”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하자는 말이잖아. 어? 이택현, 너 표정이 왜 그래? 안 좋아? 땀 흘리면서 건강해지고 실력도 쭉쭉 늘고, 얼마나 좋아?”
“재욱아…… 네가 하는 훈련을 직접 함께하는 나로선 유쾌할 수가 없어. 그건 그냥 생지옥이거든.”
이택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재욱이 하는 훈련들은 끔찍했다. 강도도 높은 편이었지만, 가장 힘든 건 육체보다도 정신이었다.
하나가 안 되면 될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신재욱의 훈련 스타일은 매번 이택현을 힘들게 했다.
만약 효과가 좋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도망갔을 것이다.
“네가 그전까지 하던 훈련이 너무 물렀던 건 아닐까? 그리고 실력은 확실히 잘 늘잖아.”
“그래…… 실력은 늘지. 아주 잘 늘어.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거야.”
“괜히 엄살피우지 마. 다 적응했잖아. 이제 한국 가면 강도를 조금 더 올려야 해.”
“미친! 야! 신재욱! 그건 아니지! 그러다 사람 죽는다니까?”
“안 죽어.”
그렇게 말하며, 신재욱은 몸을 돌렸다.
이젠 저 멀리서 상기된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볼프스부르크 유소년팀의 감독과 대화를 할 시간이었다.
신재욱은 며칠 전 바이에른 뮌헨 U15의 데이브 감독에게 했던 것처럼 독일어로 인사를 건넸다.
볼프스부르크 유소년팀 감독의 반응은 데이브 감독과 비슷했다.
경악한 채로 신재욱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꼭 메일 보내주게! 아니, 아니지! 괜히 시간 끌 필요 없지 않은가? 내가 자네의 감독에게 잘 말할 테니, 지금 당장 협상테이블로 가는 게 어때?”
볼프스부르크 유소년팀의 감독은 아예 직접적으로 영입을 제안했다.
조건도 속사포처럼 구두로 내뱉은 내용만 들었을 땐, 파격적으로 좋았다.
영국에서 유소년 선수로 뛰어봤던 신재욱이었기에 볼프스부르크 측이 내민 조건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볼프스부르크로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뛸 거면 이왕이면 뮌헨이 낫지.’
독일의 최강 팀은 누가 뭐래도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강한 팀. 더 나아가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팀.
특별한 시스템을 지닌 신재욱의 성장 속도에도 큰 도움이 될 팀이다.
더군다나 과거에 뛰어봤던 팀이기도 했다. 해외 생활에서 ‘익숙함’이라는 건 큰 장점이 된다.
‘불편하고 어색한 곳에선 축구에만 집중하기 힘들지. 편해지려면 시간도 꽤 걸리고.’
때문에, 신재욱은 상대측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 치트키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부모님께 여쭤보고 연락드릴게요.”
14살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 *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를 마친 축구천재 FC 팀은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들은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간 신재욱은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부모님은 그런 신재욱을 반겨주셨다.
“아들! 이게 얼마 만이니? 어머, 얘! 얼굴 마른 것 좀 봐! 배고프지? 밥 차려놨으니까 손발만 씻고 바로 먹어.”
“재욱아, 몸은 좀 어때? 확실히 살이 조금 빠지긴 했네. 방송 보니까 독일에서 엄청 많이 뛰긴 하던데, 괜찮은 거지? 그나저나 우리 아들 요즘 되게 유명해졌더라? 아들이 유명해지니까 회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물론이고, 그동안 연락 안 되던 아빠 친구들한테까지 연락이 오더라.”
부모님과의 대화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오랜만에 한국에 온 것이어서 그런지, 부모님은 더욱 할 말이 많아 보이셨다.
특히 아버지는 가끔 조기축구를 하실 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기에, 신재욱에게 많은 질문을 하셨다.
“재욱아, 그럼 매일 그런 훈련을 한 거야?”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렇게 해왔죠.”
“아침부터 등산하고, 학교 가서 밤늦게까지 훈련을 한다고? 난 우리 아들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줄은 몰랐네. 역시 노력하니까 빛을 보는구나?”
“잘되려면 열심히 해야죠.”
“그래, 재욱아, 멋있다. 근데 아빠는 네가 너무 부담 갖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네 나이 때에는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재밌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예. 즐기면서 할게요.”
축구와 관련된 얘기들을 이어가던 때.
아버지의 표정이 변했다.
지금까지의 인자한 얼굴이 아닌, 무언가 궁금한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재욱아, 축구천재 FC 최근 편을 보면…… 그……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 감독이 너한테 달려가면서 끝났잖아?”
“아, 그랬어요? 저는 최근 거는 못 봤어요. 그 장면에서 끝났어요?”
“그래, 그 장면에서 끝났어. 게다가 볼프스부르크랑 한 경기 전반전을 먼저 보여주고, 네가 바이에른 뮌헨의 데이브 감독과 대화하는 장면을 제일 뒤로 빼버렸다고. 와! 너무 잔인하지 않니?”
“하하! 더 늦게 한 볼프스부르크 경기를 먼저 보여줬구나. 편집 잘했네요. 시청자들이 마지막 장면 되게 궁금해하시겠네.”
“잘했다고? 나 같은 시청자들은 궁금해 죽어. 그래서 재욱아…… 혹시…… 에이! 아니다! 스포하면 안 되는 거지?”
“아직 방송되지 않은 내용은 말하지 않는 게 좋긴 하죠. 근데 데이브 감독님이랑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아, 물론 아버지께서 비밀로만 해주신다면요.”
“당연히 비밀로 해야지! 아들 앞길 막을 일 있어? 무조건 비밀로 할 테니까 알려줄래?”
“제가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으로 왔으면 좋겠대요.”
신재욱이 말과 동시에.
“뭐……?”
아버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