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 * *
FC 바이에른 뮌헨.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다.
팀의 명성만큼이나 유소년 시스템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다.
당연하게도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선수들 역시 동년배에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이 훈련장에 입장했다.
“크다.”
신재욱의 입에선 크다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쟤들이 어떻게 한국의 중학생 나이라는 거야? 덩치로는 성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인데.”
유럽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던 그였지만, 유럽인들의 빠른 성장은 볼 때마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유럽인들의 피지컬에 익숙한 신재욱이 이렇게 느낄 정도였다.
역시나 축구천재 FC의 다른 선수들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우와…… 저게 뭐야…?”
“쟤넨 뭐 저렇게 커? 한약이라도 잘못 먹었나?”
“우리랑 비슷한 나이…… 맞아?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
“덩치가 무슨…… 몸싸움에서 엄청 밀리겠다…….”
벌써 위축된 게 보였다.
어린 선수들이기에 상대의 겉모습에 쉽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좋을 게 없기에, 신재욱은 직접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더 먼저 나선 선수가 있었다.
“다들 왜 쫄고 그래? 내 눈엔 그냥 키만 큰 멸치들처럼 보이는데? 안 그래? 똑! 하면 부러질 것 같은데?”
이택현이었다.
한껏 짜증이 난 얼굴로 동료들을 향해 큰소리를 쳤다.
“우리 프로선수들이랑도 경기했던 거 잊었어? 아니지? 다 까먹은 거 아니지? 쟤들이 아무리 잘해봤자, 그 프로 형들보다는 못해. 알아들었어? 쟤들 정도는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그러니까 쪽팔리게 쫄지 말라고!”
최근 온순하게 살고 있지만, 학교짱 출신이었던 이택현의 말이었다.
더 나이가 많든 적든, 또래들이 모인 축구천재 FC 내에서의 효과는 확실했다.
‘제법이네?’
앞으로 나서려던 신재욱이 피식 웃으며 움직임을 멈췄다.
굳이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 불안해하던 선수들의 눈빛이 이제는 강렬하게 변했으니까.
게다가 진민호 감독까지 직접 나서서 선수들을 독려하기 시작했으니까.
“자, 자! 다들 긴장하지 말고, 평소에 하던 대로 하자. 다만 상대 선수들의 키가 우리보다 크니까 웬만하면 롱패스보다는 짧은 패스로 풀어나가자. 그리고 수비수들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더 집중해줘. 독일의 팀들은 전통적으로 공중볼이 강해서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골이야. 근데 알지? 헤딩하는 애 안 놓치고 방해만 해주면 쉽게 못 넣는 거. 집중만 하면 너희가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얼굴에 흐르던 긴장감은 여전했지만.
기세만큼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좋아. 분위기 좋네.’
신재욱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축구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는 그였다.
당연하게도 강팀을 만났을 때, 동료들의 기세가 좋아야 더 재밌다. 경기가 보다 더 치열해지니까.
‘경험상 이러면 경기가 재밌어질 확률이 높아지지.’
축구천재 FC와 바이에른 뮌헨의 U15 선수들이 경기장 가운데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섰다.
신재욱도 상대 선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다만, 금방 흥미를 잃고 고개를 돌렸다.
‘기억에 있는 선수는 없네.’
지금은 2008년.
환생 전의 신재욱은 2028년에도 현역으로 뛰던 선수였다.
당연하게도 같은 팀에서 뛰던 선수나 유명한 선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리고 현재 바이에른 뮌헨 U15 선수 중, 신재욱의 기억에 있는 선수는 없었다.
때문에, 신재욱은 생각했다.
‘해볼 만하겠는데?’
이번 경기, 이길 수도 있겠다고.
* * *
“어떻게 할까?”
이택현의 질문이었다.
각자의 포지션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한 질문.
이에 신재욱이 대답했다.
“슈팅 타이밍인 거 같으면 절대 망설이지 말고 때려. 괜히 한 번 더 만들어보겠다고 패스하지 말고.”
“엥? 왜? 확실하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잖아.”
“그럴 때도 있지. 근데 이런 경기에선 초반부터 기선을 잡는 게 중요해.”
“이런 경기?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어린 선수들끼리 붙는 경기. 이런 경기에선 실력도 중요하긴 한데, 멘탈 싸움이 굉장히 중요해.”
“상대 멘탈을 먼저 흔드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
“그렇지.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슈팅을 때리면, 쟤들은 분명 당황할 거야. 그리고 상대 수비수들 몸을 봐봐.”
“상대 수비수들 몸을?”
이택현이 상대 수비수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신재욱도 같은 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몸이 되게 크지? 제 나이로 안 보일 정도로.”
“어… 엄청 크네. 액면가도 그렇고 덩치고 그렇고, 쟤네가 어떻게 우리 또래라는 건지 모르겠어.”
“그 부분은 인정. 하여튼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런 게 아니고, 저런 몸을 지닌 선수들은 보통은 느리다는 거야.”
“…그렇겠지. 덩치가 크니까 빠르긴 힘들겠다. 근데 덩치가 커도 빠른 애들도 가끔 있잖아?”
“그래, 가끔 있지. 근데 그런 애들은 여기에 없고 월반을 했겠지.”
월반.
축구에서의 월반은 어린 선수가 재능을 인정받아 상급반으로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보통 이런 선수들은 나이가 많은 선수들과 경쟁할 기회를 얻는 만큼, 대단한 재능을 지니곤 했다.
경기 시작 전, 신재욱은 진민호 감독에게 부탁해서 상대 선수들의 정보를 얻었다.
경기 영상까지는 얻지 못했지만, 프로필은 볼 수 있었다.
저들 모두 U15에 맞는 나이였고, 월반하거나 월반 예정인 선수는 없었다.
“오…! 재욱아, 되게 일리 있는 말인데? 저렇게 덩치가 큰데 발까지 빠르면…… 진짜 월반을 했겠네! 그러니까 저기서 뛰는 수비수는 발까지 빠르진 않을 가능성이 크고! 역시 너는 천재라니까?!”
“천재는 무슨, 이제 자리로 가자. 경기 시작하겠다.”
“어? 그러네. 흐흐! 재욱아 저기 봐봐. 주심이 눈치 주는 거 맞지? 빨리 뛰어가야겠다!”
마지막 말을 끝으로 이택현은 자리로 돌아갔다.
신재욱 역시 자리를 잡고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
경기가 시작됐다.
― 축구천재 FC와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하하! 바이에른 뮌헨이라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네요~!
― 아마 시청자분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다른 팀도 아니고 독일 최고의 명문 팀인 바이에른 뮌헨이지 않습니까? 이 팀과 만날 거라는 예상은 정말 하기 어렵죠!
― 우리 선수들이 잘 싸워주길 바랍니다! 상대가 비록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선수들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전술은 성인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거든요?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은 유소년 육성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인 걸로 유명합니다.
― 그러면 우리 축구천재 FC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유소년팀과 맞붙게 된 것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 그렇습니다. 굉장히 강팀을 만난 거죠.
― 실력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 선수들의 덩치만큼은 우리 선수들보다 훨씬 크네요. 우리 선수들이 느끼는 위압감이 대단할 것 같습니다……!
― 이럴 때일수록 국내 프로팀과 대결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때도 우리보다 상대의 덩치가 훨씬 컸었거든요!
경기 초반, 축구천재 FC는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을 상대로 강한 압박을 시도했다.
― 축구천재 FC의 압박이 되게 강한데요? 덩치가 큰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오히려 강하게 나가고 있네요!
― 이런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세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거거든요!
이택현, 신재욱, 장현, 허기혁 같은 전방에 있는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펼치는 압박.
몸이 덜 풀렸던 것일까?
아니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당황했던 것일까?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진은 잠깐이지만 분명히 흔들렸다.
“엇!”
시작은 패스 실수였다.
압박에 부담을 느낀 바이에른 뮌헨의 센터백은 뻔한 타이밍에 뻔한 방향으로 패스를 뿌렸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런 실수를 웬만해선 놓치지 않는 선수였다.
‘실수를 해주네. 고맙게.’
타앗!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발부터 쭉 뻗는 슬라이딩.
환생 전의 몸이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느린 지금은 이렇게 해야만 했다.
‘아슬아슬했어.’
신재욱이 씨익 웃었다. 발 안쪽에 공이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태클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다면 공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다.
주변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신재욱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그에게 습관이었으니까.
― 신재욱이 공을 끊어냈습니다! 이 선수의 슬라이딩 태클은 명품이죠! 웬만한 프로선수들보다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태클인데, 역시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을 상대로도 잘 통하네요!
― 축구천재 FC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몸을 일으킨 신재욱은 고개를 좌우, 뒤까지 빠르게 돌리며 상대 선수들과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몸에 밴 습관이었다. 더불어 그를 세계적인 선수로 만들어준 습관 중 하나이기도 했다.
‘왼쪽 대각선 앞에 한 명, 오른쪽에도 하나. 이 정도면…… 찔러볼 만하겠어.’
짧은 시간.
신재욱은 판단을 내렸다.
머릿속엔 이미 그림이 그려졌고, 실제로 구현해내기 위해서 움직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 선수 하나를 제쳐내는 것이었다.
* * *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팀의 중앙수비수 켈리는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이 최고의 팀에서 뛰고 있고, 최고의 재능을 지닌 수비수 중 하나라는 자부심이었다.
훈련 중 동료들에게 뚫리거나 실수를 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에 대해서 의심했던 적이 없었다.
아직은 어려서 나오는 미숙함이라고 믿었다. 더불어 자신이 상대하는 친구들 역시 최고의 재능들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늘 자신감에 차 있었다.
때문에, 어딘지도 잘 모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비실비실한 아이들을 봤을 땐 코웃음이 나왔다.
‘푸흡! 저런 놈들이 우리랑 붙는다고? 같은 나이는 맞는 거야? 덩치가 작은 걸 보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것 같은데.’
이처럼 상대를 만만하게 보는 건 켈리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다른 동료들 역시 한국에서 온 ‘축구천재 FC’를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
이 경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몸이나 풀고 팀워크를 다지는 가벼운 경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승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눈앞의 작은 소년이 멋진 슬라이딩 태클로 동료의 패스를 끊어낼 때도 켈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유를 보였다.
“오~! 태클 좋다! 제법인데?”
켈리는 눈앞의 한국인 소년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크게 문제 될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거기까지야.”
자신이 직접 공을 뺏어주면 되니까.
“넌 날 못 뚫거든.”
켈리는 당연히 몰랐다.
눈앞의 선수가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남자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