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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축구천재 FC의 해외 일정은 바쁘게 진행됐다.
원래 이런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재욱조차 당황했다.
‘굉장히 주먹구구식이네.’
해외로 떠나는 당일인데도 제작진들 전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완벽하게 준비를 해놓고 당일엔 여유 있게 비행기에 타야 한다는 게 신재욱의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몇 가지 문제가 터졌는지 제작진들은 아직도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저곳 고함이 오가고 있고, 경력이 낮은 제작진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거…… 갈 수 있긴 한 거겠지?’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신재욱이 황당해하고 있을 때.
해맑은 표정을 한 이택현이 다가왔다.
“재욱아, 공항 되게 좋지 않냐?”
“어?”
“으리으리하잖아. 바닥은 또 왜 이렇게 빤짝거려? 그리고 아까 보니까 햄버거 가게 있던데, 햄버거 먹으러 갈래? 불고기버거랑 콜라랑 같이해서 똬악! 먹으면 그냥 끝날 거 같지 않아?”
“……그래, 그전에 진민호 감독님한테 물어나 보자.”
신재욱은 어이가 없었지만, 안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불고기버거는 안 먹어본 것 같아.’
한국의 불고기버거가 궁금해졌으니까.
“이게 이렇게 되네?”
신재욱이 헛웃음을 흘렸다.
공항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던 상황에 진민호 감독을 찾아 햄버거를 빨리 먹고 와도 되냐고 물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눈치 없는 행동이었는데, 진민호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 안 그래도 너희 밥 먹이긴 해야 했는데, 다 같이 햄버거 먹으러 갈래?”
그렇게 축구천재 FC 선수들 모두 제작비로 햄버거를 먹게 됐다.
“재욱아, 내가 옆에 있어서 햄버거로 메뉴 결정하신 거야. 항상 말하지만, 진민호 감독님이 날 얼마나 예뻐하시는지 알지?”
“착각은 자유긴 한데…… 빨리 먹기나 하자.”
“햐… 군침 나온다! 난 이 불고기버거가 제일 좋더라!”
“이게 그렇게 맛있어?”
“그걸 질문이라고 해? 당연히 장난 아니지!”
신재욱의 눈이 빛났다.
이택현의 말을 들으니 더욱 식욕이 올라왔다.
마침 배도 고팠기에 한입 가득 불고기버거를 베어 물었다.
‘오……!’
신재욱이 감탄했다.
솔직히 말하면 놀라운 맛은 아니었다.
유럽에 살면서 이것보다 훨씬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어왔던 그였으니까.
그러나 이 불고기버거가 주는 특유의 감성이 있었다.
건강한 맛은 아니지만, 뛰어난 감칠맛으로 계속해서 당기는 맛.
‘이게 바로 단짠단짠의 정석이구나!’
결국, 신재욱은 오롯이 불고기버거에 집중했다.
옆에서 이택현이 뭐라고 떠들어댔지만,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고기버거…… 이걸 이제야 먹다니…….’
이후 몇 가지 변수들이 있었지만, 축구천재 FC 팀은 결국 비행기에 올랐고 목적지에도 도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얘들아! 독일에 온 기분이 어때?”
독일에 온 기분이 어떠냐는 진민호 감독의 말.
그 말을 끝으로 어린 선수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진짜 쩔어요! 설마 했는데 독일이라니! 너무 좋아요!”
“그냥 외국에 온 것만으로도 좋아요! 비행기도 되게 되게 신기했고요!”
“공기도 좀 다른 것 같아요!”
“아마 친구들이 다 저를 부러워할 거예요!”
이처럼 잔뜩 흥분한 어린 선수들만큼이나, 신재욱도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독일은 오랜만이네.’
과거, 독일에서 축구를 했던 경험이 있는 그였다.
고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친근한 장소에 오랜만에 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팀이랑 하려나? 이왕이면 네임벨류 높은 팀이었으면 좋겠는데.’
독일에 온 이상, 2부 리그 팀과 경기를 하진 않을 것이라는 게 신재욱의 생각이었다.
‘방송사의 자존심이 있으니까 최소 독일 1부 리그에 속한 팀과 붙겠지. 이제 그 팀이 어디냐가 중요한데…….’
그래서 기대가 됐다.
어차피 유럽에서 만날 상대들은 축구천재 FC와 비슷한 또래들이라고 들었고, 이왕이면 유명한 팀과 붙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으니까.
이처럼 신재욱이 기대하고 있을 때.
진민호 감독과 제작진들이 드디어 궁금증을 풀어줬다.
“많이 궁금했지? 너희는 ‘바이에른 뮌헨’을 만날 거야.”
* * *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대어잖아?’
신재욱이 즉각 반응했다.
말 그대로 대어였다.
바이에른 뮌헨이라니!
‘이건… 기대치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선물인데?’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만큼 기뻤다. 기대했던 몇 개의 팀이 있었는데, 훨씬 더 나은 결과가 나와버렸다.
그때였다.
“다들 바이에른 뮌헨이 어떤 팀인지 알지?”
진민호 감독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질문했다.
그런데 축구천재 FC 선수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버렸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뮌헨이라고……? 에이, 설마…….”
“그 독일 최강의 바이에른 뮌헨……? 말도 안 되는데…?”
“우리가 바이에른 뮌헨이랑 붙게 된다고? 헐? TV로만 보던 그 팀?”
“거긴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잖아……?”
FC 바이에른 뮌헨이 어떤 팀인가!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독일 최고의 팀이자,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이지 않은가!
유명세가 대단한 팀이었다.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이름은 아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당연히 축구천재 FC 선수들 모두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놀란 것이었고.
“감독님! 저희 정말 바이에른 뮌헨이랑 붙는 거예요?”
“진짜예요? 진짜 바이에른 뮌헨이에요? 거짓말하시는 거 아니죠?”
“우워! 저 바이에른 뮌헨 완전 팬인데!”
“대박이다!”
진민호 감독의 얼굴엔 장난기가 맴돌았다.
그는 원하는 반응을 만들어낸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신재욱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옆에서 잔뜩 흥분한 채로 떠들어대는 이택현 때문이었다.
“재욱아, 재욱아! 듣고 있지? 너도 알지? 바이에른 뮌헨에 루카 토니랑 포돌스키 있는 거? 내가 되게 좋아하는 공격수들이잖아! 거기 갔다가 그 사람들 만나면 어떡하지? 그러면 나 심장 터져서 죽어버릴 것 같은데?”
“안 죽어.”
“또, 또! 차갑게 대답하기는! 그래, 만약에 안 죽는다고 해도 필립 람이랑 프랑크 리베리까지 보면 진짜 위험할 것 같은데? 그런 슈퍼스타들을 보게 되면 심장이 그냥 터질 것 같은데?”
“안 터져.”
“우와……! 근데 생각할수록 떨리네? 그 사람들이랑 붙으면 어떻게 될까? 엄청 털리겠지?”
“그 사람들이랑 붙을 일 없어.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이랑 붙는다잖아.”
“아오~! 나도 알지! 그냥 상상만 해보자는 거잖아!”
“그래, 상상은 자유지.”
“어휴! 아 맞다! 재욱아! 만약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이랑 붙을 때, 스카우트들이 날 보고 마음에 든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럴 순…… 있겠네.”
“나도…… 어? 뭐라고?”
이택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그 모습을 본 신재욱은 피식 웃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택현의 재능은 신재욱이 봐도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재능을 세계적인 팀들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고, 분명 욕심을 낼 것이다.
때문에, 신재욱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대답해줬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재욱아…… 너 진심이야?”
“나 농담 같은 거 안 하잖아.”
“그렇긴 하지. 농담도 웬만해선 안 하고 완전 딱딱하지.”
“……과장이 심하네.”
“전혀! 있는 그대로 말한 거야.”
“택현이 넌 참 농담을 잘해.”
“농담 아니라니까?”
“…….”
“하여튼 재욱아, 네가 볼 땐 정말 내가 바이에른 뮌헨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아?”
“긴장만 안 한다면 뭐, 충분할 것 같은데?”
“오오…… 네가 말하니까 진짜 같긴 한데, 직접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 애들이랑 붙어보기 전까지는 믿기 힘들 것 같아.”
“그래 잘 생각했어. 스카우터고 뭐고, 일단 이기고 보자.”
“이길 수 있으려나? 우리랑 또래인 유소년들이긴 해도, 그래도 바이에른 뮌헨이잖아.”
“붙어보면 알겠지.”
대답을 한 신재욱이 눈을 빛냈다.
쉬운 경기는 아닐 것이다. 승리를 확신할 수도 없다. 승리는커녕 처참하게 패배할지도 모른다.
비록 유소년이라고 할지라도 ‘바이에른 뮌헨’의 아이덴티티가 녹아있을 테니까.
그래도 확신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있었다.
‘재밌겠네.’
직접 뛰는 선수와 구경을 하는 사람들 모두 재밌는 경기가 될 거라는 것이다.
* * *
FC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독일 최고의 명문답게 세계 최고의 유망주들이 모여있고, 훈련 시스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소년 아카데미의 규모도 웬만한 클럽은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지금.
축구천재 FC 팀은 그런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훈련장에 도착했다.
선수들은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훈련장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와… 여기가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훈련장이구나! 근데 내 생각보다 크진 않네?”
“그러게? 한국의 대학교보단 작아 보이는 거 같아. 근데 그래도 뭔가 포스가 장난 아니긴 해.”
“당연하지! 여기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만들어지잖아.”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훈련장이 이렇게 생겼을지 몰랐어. 되게 신기하다.”
“난 여기를 바이에른 캠퍼스라고 부르는지도 처음 알았잖아.”
“잔디부터 완전 다른데?”
반면, 신재욱의 반응은 달랐다.
‘이 시기엔 시설이 이랬구나.’
환생 전, 독일에서 축구를 했었기에 이곳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다만 신기한 점은 있었다.
‘운명인가? 어떻게 그 많은 팀 중 바이에른 뮌헨이랑 만나지?’
유럽에는 여러 팀이 있다.
당연히 축구천재 FC 제작진 측에서도 여러 팀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중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연결됐다.
신재욱으로서는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환생 전, 독일에서 뛰던 시절.
당시 그의 소속팀이 바이에른 뮌헨이었으니까.
‘내가 있었을 땐 리모델링이 된 상태였나 보네.’
성인팀, 그것도 1군 팀이었기에 이곳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 훈련장에는 올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구경삼아 왔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지금보다는 더 좋은 상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2008년인 현재의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 훈련장은 고풍스러운 느낌은 있지만, 최신식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모습이었다.
‘아니면 워낙 몇 번 안 왔던 곳이라서 기억이 잘못됐을 수도 있겠고.’
신재욱은 어지간해선 덤덤한 편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다른 어린 선수들만큼이나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지형지물,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처음엔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들도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치! 저기에 벤치가 있었지. 잔디는 여전히 퀄리티가 높네. 참 관리를 잘한단 말이야? 한국의 유소년 시스템도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였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신재욱이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다른 것들은 더 이상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저 친구들이구나?’
훈련장에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선수들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