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 * *
신재욱은 메시지를 여러 번 본다.
훈련 때도 종종 보고, 경기 때는 꽤 많이 본다.
다만, 여러 메시지 중에서 그를 흥분하게 만드는 내용은 많지 않았다.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와 특성이 생성됐다는 메시지 정도.
마지막으로 특성이 성장한다는 메시지까지 신재욱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지금도 그랬다.
[특성이 성장합니다!]
[‘초급 볼 컨트롤(D)’이 ‘중급 볼 컨트롤(C)’로 성장합니다!]
반가운 메시지가 신재욱의 눈앞에 생성됐다.
“오! 초급 볼 컨트롤이 성장했다고?”
신재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특성이 성장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인데, 마침 ‘초급 볼 컨트롤(D)’이 성장했다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초급 볼 컨트롤은 평소에 큰 효과를 보던 특성이었으니까.
“초급 볼 컨트롤이 중급 볼 컨트롤이 됐구나.”
신재욱은 성장한 특성을 확인했다.
[중급 볼 컨트롤]
[등급] C
[효과] 공을 다루는 게 보다 더 편해집니다.
효과에 적힌 내용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러나 등급이 D에서 C로 한 단계 올라갔다.
“얼마나 좋아졌는지 확인해보자.”
이미 고등학교 팀과의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하며 지친 상태였지만, 성장한 스킬을 확인하지 않을 순 없었다.
때문에, 신재욱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공을 발바닥으로 끌어왔다.
“……!”
신재욱의 눈이 커졌다.
잠깐의 터치였지만 알 수 있었다.
발의 감각이 달라졌다는 걸.
“확실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수십 년간 축구를 해온 신재욱이었다. 공을 몇 번 다뤄보는 것만으로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퉁! 퉁!
신재욱은 발등으로 공을 튕겼다.
이후 공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공중에서 차올리는 트래핑을 시작했다.
환생 전이었다면 지금 페이스 그대로 반나절은 버텼을 것이다.
환생 후엔 꾸준한 연습을 한 결과 수십 번은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과거와 같이 수백, 수천 번은 불가능했다.
분명 그랬었다.
그런데.
“이거…… 될 것 같은데?”
신재욱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환생 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 시간은 넘게 트래핑을 할 수 있겠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촬영 중이었으니까.
“신재욱 선수, 오늘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요청이었다.
축구천재 FC의 방송작가가 마이크를 들이밀었고, 신재욱은 익숙하게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이냐고?’
신재욱은 옅게 웃었다.
의도가 있는 질문이었다. 누가 봐도 이번 경기는 자신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해서 상대의 빌드업을 효과적으로 방해했고, 공격 시엔 넓은 시야와 특유의 판단력으로 기회를 창출했다.
또한, 중요한 순간엔 직접 골까지 기록했다.
만약 평점이 있다면 팀 내 최고점을 받았을 것이고, 당연히 MOM으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재욱은 껍데기만 14살 소년일 뿐, 알맹이는 베테랑이었다.
‘만약 여기서 내 활약 때문에 이겼다고 말하면, 나는 거만한 놈이라고 욕을 먹게 되겠지.’
기자들이나 방송작가들의 스타일도 훤히 꿰고 있었다. 축구팬들에게 욕을 먹지 않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물론 신재욱은 악마의 편집, 안티팬들의 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지르는 성격이었다. 할 말은 꼭 해버리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런 건 실력이 있을 때나 하는 거지.’
신재욱의 기준에 지금의 자신은 형편없었다. 거만한 말이나 자신감 넘치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정도로 축구를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겸손한 소년을 연기했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 건 동료들 덕분이에요. 다들 너무 잘해줬기 때문에 고등학생 형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본인의 활약이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예? 전혀요. 팀이 잘했으니까 이길 수 있었던 거죠. 저 하나가 잘했다고 이길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신재욱 선수가 도움도 기록했고, 골도 기록했잖아요.”
“도움은 다른 선수도 기록했고요, 골도 저만 기록한 게 아니잖아요? 다들 잘했어요. 무엇보다 저는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경기에서 특정 선수 한 명만을 칭찬하고 싶지 않아요.”
“…신재욱 선수의 말을 들으니 되게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게다가 겸손하고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거기까지였다.
작가는 더 얻을 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신재욱과의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선수를 찾아갔다.
“이택현 선수! 오늘 엄청난 활약을 펼치셨는데, 따로 준비한 게 있었나요?”
“매일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죠! 그리고 제 재능도 최고고요! 아, 최고는 아닌가? 신재욱이 최고니깐…… 하하! 그래도 저 정도면 거의 최고의 재능을 지녔고, 훈련까지 열심히 하니 잘할 수밖에 없죠.”
신재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뒤 생각 없이 지르는 꼴이 꼭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참 빠꾸없네.’
* * *
촬영을 마친 뒤, 신재욱은 집으로 가지 않았다.
당연하게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 평소보다 피곤하구만! 오늘 촬영이 너무 길었어. 그치, 재욱아?”
늘 그랬듯 함께 온 이택현이 기지개를 피며 질문을 던졌다.
“선수들 인터뷰 딴다고 길어지긴 했지. 자, 몸 풀자.”
“어우! 기계야 뭐야? 조금만 쉬었다가 하면 안 돼?”
“우리가 언제부터 쉬었다고. 괜히 애매하게 쉬면 더 힘들어. 바로 가자.”
“신재욱 넌 참 특이해. 체력도 안 좋으면서 정신력은 세계 최강이야.”
“체력이 안 좋으니까 좋게 만들어야지. 그만 떠들고 시작하자.”
“아, 예~!”
신재욱은 이택현과 함께 몸을 풀고, 각종 훈련을 진행했다.
환생 전, 영국에 있을 시절에 했던 훈련들이었다.
이택현은 모를 것이다. 본인이 얼마나 최신식 훈련을 하고 있는지.
이후, 드리블 훈련이 시작됐다.
여러 개의 고깔을 복잡하게 세워두고, 그 사이를 공을 컨트롤하며 지나가는 훈련. 이걸 잘하게 되면 경기장에서도 자연스레 부드러운 드리블이 나오게 된다.
‘얼마나 달라졌으려나?’
신재욱의 얼굴에 기대감이 스쳤다.
환생한 직후엔 굉장히 둔탁한 드리블로 고깔을 여러 번 쓰러뜨렸었다. 이후 꾸준히 훈련하고 ‘초급 볼 컨트롤’ 특성을 얻게 되며 고깔 사이를 제법 잘 지나갈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중급 볼 컨트롤’을 얻은 지금은.
툭! 휘익! 투욱!
부드러웠다.
확실히 드리블이 부드러워졌다. 발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달랐다.
앞서 트래핑을 했을 때에도 달라진 감각을 느꼈지만, 이렇게 드리블을 해보니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중급 볼 컨트롤(C)은 신재욱의 실력에 큰 도움이 됐다.
“오우?! 뭐야? 신재욱! 너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
이택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질문을 쏟아냈다.
그만큼 놀라운 장면이었다. 드리블을 하는 신재욱의 움직임이 갑자기 달라졌으니까.
“하하!”
“아니이이이! 웃지만 말고, 대답 좀 해달라니까? 너 방금 보여준 움직임 뭐냐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드리블이 또 늘었어?”
“그러게 좋아졌네.”
“그러게가 아니라! 아까 경기할 때만 해도 방금 같은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았잖아? 혹시 힘을 숨기거나 그런 거야?”
“숨기긴 무슨, 그냥 꾸준히 하다 보니까 좋아졌겠지.”
꾸준히 했으니까 좋아졌다고.
신재욱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둘러댔다.
반면, 이택현은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도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신재욱 넌 진짜 다르다.”
“다르긴 뭘 달라.”
“네 재능은…… 개사기야. 보는 사람 의욕이 떨어질 정도로 개사기라고.”
“아니야, 재능은 네가 더 뛰어나.”
“웃기고 있네! 난 너처럼 하루아침에 실력이 확 좋아지진 않거든!”
“대신 꾸준하게 빨리 좋아지잖아.”
“아 몰라! 현타 왔어. 살아생전 이런 천재를 만나다니…… 에휴! 훈련이나 더 빡세게 해야겠다.”
“그래도 집에 가겠단 말은 안 하네?”
“그럼! 집에 갔다가 너랑 격차가 더 벌어지면 어떡하라고? 난 그렇겐 못 살아. 이택현 인생에 2등으로 사는 건 없어. 무조건 널 뛰어넘고 일인자가 될 거야.”
“그래. 열심히 해봐.”
신재욱이 씨익 웃었다.
그는 뒤에서 칼을 가는 사람보단 대놓고 승부욕을 드러내는 사람을 좋아했다. 지금의 이택현처럼.
‘저런 열정은 언제든 환영이지.’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체력이 전부 바닥날 때까지.
* * *
축구천재 FC의 유명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졌다.
특히 프로팀 인천과의 경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3골이나 기록했다는 사실에 축구팬들은 열광했다.
└이건…… 진짜 졌지만 잘 싸웠다.
└인정ㅋㅋㅋ 6 대 3으로 졌지만, 상대는 프로였잖아.
└나만 감동이었냐?ㅠㅠ 축구천재 FC 애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는 거 보니까 눈물 나던데…….
└진심 너무 놀랐어ㄷㄷㄷ 너넨 축구천재 FC 애들이 인천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해줄 줄 알았음?
└당연히 몰랐지;;;;; 신재욱이 개쩔게 잘하고 이택현도 엄청 잘하긴 하지만, 그래도 프로한테는 아예 안 될 줄 알았지. 근데 생각보다 꽤 비볐네?;;;;
└신재욱은 대체 뭐냐? 왜 14살짜리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처럼 축구 하냐고ㅋㅋㅋㅋ
└ㅋㅋㅋㅋㅋ리얼 축구 도사야ㅋㅋㅋㅋㅋㅋ
└근데 또 피지컬은 약하고, 롱패스는 아예 안 뿌리는 건 반전매력임ㅋㅋㅋㅋ
└패스에 별로 자신이 없는 것 같더라. 가까운 곳으로만 뿌리던데? 스루패스도 딱 찌르기 좋은 공간 확실하게 날 때나 시도하고.
└지닌 능력에 비해서 훨씬 뛰어난 플레이를 해. 보면 그냥 축구 지능이 엄청 높아 보이더라.
└왜 이택현 칭찬은 별로 없냐? 얘도 미쳤던데? 신재욱한테 조금 가려져서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천재야.
└이택현도 천재지. 얘는 잘 크면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크랙이 될 거야. 일단 일대일 돌파를 겁내지 않고 되게 잘하더라.
└이택현은 스트라이커로 더 잘될 것 같던데? 몸싸움도 좋고, 민첩하고, 슈팅도 좋고, 센스도 좋음. 그리고 연계까지 좋아.
이처럼 축구천재 FC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많은 인정을 받았다.
더불어 신재욱과 이택현이 보여준 실력은 축구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그런 상황에서.
「중학생 소년들의 위대한 도전은 빛났다! 축구천재 FC, K리그 최상위권 팀인 ‘울산’을 상대로 5 대 2 분투!」
「신재욱과 이택현 듀오, 프로팀 상대로 또다시 2골 만들어내며 천재적인 재능 드러내!」
「역시 프로팀은 강했다. 울산, 잘 싸운 축구천재 FC를 상대로 5골 기록!」
축구천재 FC는 다시 한번 프로팀과의 경기를 치렀고, 패배했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금.
신재욱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프로팀 ‘울산’과의 경기에서 성장한 능력치들 때문이었다.
“역시 프로팀이 좋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