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 * *
스트라이커의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말해보라면 백이면 백, 골을 넣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신재욱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자고로 스트라이커는 골로 말해야지.’
환생 전에도 누구보다도 골을 잘 넣었기 때문에 득점왕을 여러 번 차지했었고, 몸값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스트라이커에겐 골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 있다.
최전방에서 공을 잡았을 때 수비수에게 뺏기지 않고 버텨주는 것과.
연계 능력으로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환생 전의 신재욱은 이 모든 걸 잘했기 때문에 최고라고 불렸고, 발롱도르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환생 후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서 이겨내기엔 너무 덩치가 작았고, 패스 능력이 별로여서 연계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인천의 선수 2명을 앞에 둔 상황에서.
신재욱은 쉬운 길을 택했다.
‘내가 못하면 잘하는 사람한테 맡기면 되지.’
방금 말한 모든 것들을 잘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그 동료에게 맡기면 된다.
퍼엉!
신재욱은 낮고 강한 패스를 뿌렸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강하게 뿌리지 않으면 중간에 끊길 위험이 있었다.
공은 최전방에 있는 이택현에게로 향했다.
‘이택현이라면 할 수 있어.’
신재욱의 눈엔 보였다.
크게 밀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택현의 눈빛이.
게다가.
‘보니까 체력도 남겨놓은 거 같고.’
최소 두 번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스프린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도 남겨놓은 것으로 보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재욱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같이 훈련한 게 몇 번인데.’
꾸준히 함께 훈련하고 있었으니까.
역시나 체력이 남은 이택현은 최전방에서 공을 받자마자 민첩한 움직임을 보였다.
휘익!
이택현은 상체 페인팅을 준 뒤에 몸을 돌렸다.
이 움직임으로 붙으려는 인천의 수비수 조운태를 벗겨냈다. 중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드리블이었다. 평소의 조운태라면 이렇게까지 쉽게 당하지는 않았겠지만, 체력적으로 지쳐있었기에 반응이 느렸다. 더구나 신재욱의 패스 타이밍이 너무 좋기도 했고.
“헉!”
조운태가 놀라서 다시 붙으려고 했지만 늦었다. 이택현은 이미 슈팅을 때리고 있었다.
‘재욱이가 그랬지. 슈팅은 가능한 빠른 타이밍에 때리라고.’
퍼어엉!
골대의 오른쪽 상단을 노린 슈팅. 이택현이 꾸준히 연습해온 슈팅이었다.
또한, 신재욱에게 많은 잔소리를 들으며 연습한 슈팅이기도 했다.
철렁!
공은 그대로 인천의 골망을 흔들었다.
그 순간.
“이요오옷! 됐다아아! 이히이이잇!”
이택현이 경기장 위에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인천의 김경식 골키퍼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쪽팔리게…….”
부끄러웠다. 중학생에게 3골이나 허용했다는 게.
이처럼 얼굴이 붉어진 선수는 김경식만이 아니었다. 인천의 수비수들과 미드필더, 공격수 모두의 얼굴이 전부 붉어져 있었다.
“하…… 이러면 이겨도 진 것 같은 느낌일 텐데…….”
“…우리가 3골이나 먹힌다고? 어이가 없네.”
“쟤네 공격이 은근히 까다롭단 말이야? 근데 그래도 막았어야 했어.”
“아…… 이거 방송 나가면 다른 팀 애들이 놀리겠네.”
이처럼 인천의 선수들이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이요오옷!”
골을 기록한 이택현은 굉장히 기뻐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은 미친 사람처럼 보이긴 했다.
“되게 좋아하네.”
신재욱은 괴성을 지르고 있는 이택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우 14살의 나이에 프로팀을 상대로 골을 넣었으니 기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때였다.
“응? 어? 왜?”
이택현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신재욱에게.
“재욱아!”
“왜? 왜 와? 그냥 거기서 기뻐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게 다 네 덕인데?!”
“왜 내 덕이야? 아니야, 네 골이잖아. 그냥 거기 있어.”
신재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택현은 이미 눈이 뒤집혀있었다. 너무 기쁠 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택현이 신재욱보다 훨씬 더 빠르니까.
‘어디 마취총이라도 없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재욱은 달려드는 이택현을 받아들였다.
* * *
“야…… 택현아.”
“왜?”
“우리 이기고 있는 거 아닌데?”
“알아. 근데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하고 있잖아? 상대는 프로라고!”
“어… 잘한 거 맞지. 그런데 목마까지 태우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그런가?”
“어, 이거 오바야. 내려놔.”
“그… 럴까?”
바닥에 내려온 신재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달려든 이택현에 의해서 목마를 탔다.
‘환생 전에도 목마는 타본 기억이 없던 것 같은데……여기서 이렇게 타네.’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기고 있으면 모를까, 지고 있었다.
그것도 3 대 6으로.
다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목마가 아닌, 눈앞의 메시지들 때문이었다.
[민첩이 1 올랐습니다!]
[패스가 1 올랐습니다!]
[탈압박이 1 올랐습니다!]
[드리블이 1 올랐습니다!]
[개인기가 1 올랐습니다!]
“우와…… 이거 진짜 꿀인데?”
신재욱이 입을 떡 벌렸다.
성장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물론 프로팀을 상대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인 건 맞지만. 그래도 이건 기대치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보상이었다.
“져도 괜찮으니까 프로팀이랑 자주 붙었으면 좋겠네.”
욕심이 생겼다.
지금 뜬 메시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로팀과의 경기는 엄청난 도움이 되니까.
지는 걸 너무나도 싫어하지만, 이 정도 보상이라면 충분히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재욱은 알 수 있었다.
오늘 이후로 프로팀과의 경기는 쉽게 잡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방송국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기는 걸 보여주고 싶을 테니까. 괜히 돈까지 써서 지는 걸 찍고 싶진 않겠지.”
신재욱은 동료들을 바라봤다.
이택현과 골키퍼를 제외하면 전부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평소보다 훨씬 더 지친 모습이었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자.’
이후, 경기가 재개됐다.
완전히 방전되어버린 축구천재 FC는 버티는 것에 급급했다. 언제든 골을 허용할 것처럼 위태로웠다.
게다가 인천은 1군 선수들 2명을 추가로 교체 투입했다.
축구천재 FC에겐 끔찍한 일이었지만, 다행히 남은 시간이 적었다.
― 경기 종료됩니다!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이 바닥에 드러눕네요! 많이 지쳐 보입니다.
― 최종 스코어는 6 대 3입니다!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단합니다! 상대는 프로팀이었거든요!
― 그렇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선수들이 1부 리그 팀인 인천을 상대로 이렇게나 잘 싸운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죠! 아마 이번 경기가 방영된다면 축구팬 여러분이 받는 충격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우리 선수들이 한 골을 만들기도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죠.
해설들의 말처럼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전부 경기장 위에 드러누웠다. 그만큼 모든 걸 쏟아부었고, 체력이 전혀 남지 않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으…… 죽겠다, 죽겠어…….”
“나도 다 쥐어 짜냈어…….”
“우와…… 너무 힘들어……!”
“프로랑 하니까 체력소모가 엄청 크네…….”
다만,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패배한 팀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밝았다.
선수들 스스로도 강한 상대를 만나 잘 싸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가서 엄마, 아빠한테 자랑해야지. 프로선수들이랑 경기해서 3 대 6으로 졌다고.”
“이 정도면 진짜 졌잘싸 했다.”
“아까 내 드리블 봤어? 흐흐! 한 번이긴 한데, 프로선수를 뚫었다고.”
“크크! 난 프로의 돌파를 3번이나 막았어!”
졌지만 자신감을 얻은 선수들.
결과적으로 축구천재 FC 선수들에겐 큰 도움이 된 경기였다.
* * *
국내 1부 리그에 속한 프로팀 ‘인천’과 축구천재 FC의 경기.
이 경기가 TV에 방영되자, 엄청난 반응이 왔다.
우선 시청률부터가 대단했다.
「축구천재 FC, 프로팀 인천과의 경기 치르며 시청률 11% 돌파!」
무려 11%!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치고는 굉장한 시청률이었다.
게다가 TV에 방영된 회차에는 신재욱이 ‘인천’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한 장면까지만 편집되어 나갔기에, 시청자 게시판도 뜨겁게 불탔다.
└신재욱 재능 의심한 놈들 다 대가리 박아라. 얜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없는 천재야.
└좀…… 많이 충격인데?;;;;; 중1이 프로팀을 상대로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야?
└상대가 2군이잖아. 설레발들 그만 좀 쳐라.
└위에 축알못은 닥치지 그래? 2군이어도 프로야. 맨날 프리미어리그만 보니까 국내 1부 리그가 우습지?ㅋ 얘네 다 전국에서 최고라고 불리던 애들만 모인 거라고. 아마추어랑은 비교도 안 되는 사람들이야.
└근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을 상대로 14살인 신재욱이 어떻게 골을 넣은 건데?ㄷㄷ 이게 말이 돼?
└그러니까 천재라는 거지! 신재욱의 재능은 역대급이야! 얜 저기서 저러고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유럽에 나가서 조기교육 받아야 해.
└불러주는 데가 있어야 가지ㅋㅋㅋㅋ
└신재욱 쟨 내가 장담하는데 100% 유럽 간다.
└네가 뭔데 장담을 해?
└나? 10년 차 축구팬. 근데 넌 뭔데 시비야?
└네가 개소리하니까 그러지ㅋ 2군들 상대로 겨우 한 골 넣었다고 유럽 가는 게 말이 되냐?ㅋ
└진짜 축구 볼 줄 모르네ㅋㅋㅋㅋ 단순히 골을 넣은 것만 보지 말고, 신재욱의 움직임을 좀 봐봐. 쟨 피지컬이랑 신체 능력이 부족할 뿐이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는 완벽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번 화는 경기를 조금밖에 안 보여주고 끝났지만, 다음 화부터 한 번 봐봐. 신재욱 움직임은 진짜 뭔가 달라.
└ㅇㅈ. 축구 볼 줄 아는 사람한테는 신재욱 움직임이 클래스가 다르다는 게 보일걸? 몸이 뻣뻣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긴 하지만, 움직임만큼은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야.
이들 모두 신재욱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신재욱의 움직임은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안겨줬다.
어린 선수끼리 맞붙은 경기에서는 수준이 낮으니까 돋보였다고 생각했다면, 이젠 아니었다.
프로를 상대로도 공을 뺏고 골을 넣으며 실력을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겼드아아아아!”
“대박! 고등학생 형들한테 이길 줄이야!”
“확실히 프로팀이랑 경기하고 나니까 자신감이 더 생긴 느낌이야!”
“예전엔 고등학생 형들이랑 하면 쫄려서 몸이 굳었었는데, 이번 경기에선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어!”
축구천재 FC는 고등학교 팀을 상대로 승리했다.
치열한 경기였지만, 프로팀과의 경기를 치르며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장한 축구천재 FC는 위기를 넘기며 끝내 승리를 가져왔다.
“이걸 이겨?”
신재욱은 동료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린 친구들의 재능이 대단했다. 상대인 고등학교 팀도 꽤 강했지만, 축구천재 FC의 기세를 꺾진 못했다.
“이번 경기도 괜찮았어. 능력치는 안 올랐지만…….”
상대가 고등학생으로 이뤄진 팀이었기 때문일까?
프로팀과의 경기 때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많은 메시지가 생성됐다.
경기가 끝난 지금도 신재욱의 눈앞엔 메시지 몇 개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는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한 경기에서 오르기엔 현재 신재욱의 능력치는 대부분 60이 넘는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어?”
더 반가운 내용을 담은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