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 * *
“미쳤다……!”
신재욱이 헤벌쭉 웃었다.
경기가 진행 중일 때는 웬만하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만, 지금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메시지들 때문이었다.
“정말 미쳤다고……!”
그동안 능력치를 높이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던가!
새벽에 일어나서 산을 탔고, 점심부터 밤늦게까지 훈련을 했다. 훈련엔 성장기에 하기 좋은 맨몸운동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불어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축구 관련 분석과 공부를 해왔다.
그뿐인가? 4교시까지 들어야 하는 수업 시간엔 공부도 제법 열심히 했다.
단숨에 7개의 능력치가 오르는 것을 보니 그동안의 시간이 여러 장면이 되어 신재욱의 머릿속을 스쳤다.
“진짜 열심히 살았지.”
분명 힘든 시간이었다.
매일 거의 같은 훈련을 긴 시간 동안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훈련의 강도도 높았다. 가끔 즐겁기도 했지만, 힘들 때가 훨씬 많은 나날이었다.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리라.
신재욱은 그걸 해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해나갈 생각이었다.
“60대였던 능력치들도 올랐고, 50대였던 탈압박은 능력치가 2개나 올랐어.”
능력치가 올랐다는 사실은 신재욱에게 큰 힘이 됐다.
심리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 축구 실력에도 직접적인 힘이 됐다.
그때였다.
이택현이 다가왔다.
“신재욱! 내 패스 어땠어? 좋았지? 엄청 좋았지?”
“쩔었어.”
“역시! 흐흐! 천재는 천재의 패스를 알아본다니까? 네가 딱 패스를 준 순간에 눈치채버렸지. 아, 얘가 원터치로 공을 달라는 거구나! 이후엔 침투할 생각이구나! 딱 알아채고 바로 실행했지 뭐야? 어땠어? 내 플레이 괜찮았지? 그리고 네가 슈팅을 하는 순간에도 나는 상대 수비수를 하나라도 끌어내기 위해서 반대쪽으로 달렸…….”
신재욱은 말이 많은 이택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평소였다면 조용히 좀 하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피식 웃어버리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이택현은 인정받을 만한 플레이를 펼쳤으니까.
“그래, 네 플레이 최고였어.”
“그치? 맞지? 흐흐! 딱 기다려. 오늘 이런 거 300번은 더 할 수 있으니까!”
“기대할게.”
“오케이! 기대해도 좋아. 그리고 재욱아, 확실히 프로선수들이랑 경기하니까 배우는 게 많은 것 같지 않아?”
“많을 수밖에 없지.”
“처음엔 뭐가 다를까 했었는데, 막상 붙어보니까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겠더라고. 그래서 사실 체력적으로 좀 힘들긴 한데, 더 죽어라 뛰어볼 생각이야. 이런 기회는 흔치 않잖아?”
이택현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 훤히 보일 정도였다. 더불어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의지까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신재욱은 씨익 웃었다.
바라던 바였으니까.
“좋은 생각이야. 안 그래도 나도 그러려고 했거든.”
* * *
후반전에 들어서서도.
축구천재 FC는 최선을 다했다.
다만, 후반전의 인천은 전반전보다 더 강했다.
체력 때문이었다.
프로는 실력도 압도적이었지만, 체력으로도 축구천재 FC를 압도했다.
―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움직임이 전반전보다 느려졌네요.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 아직은 체력적으로 완성되긴 힘든 나이죠. 그리고 상대가 강할수록 체력은 더 빨리 떨어지게 됩니다.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처음으로 프로팀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더 힘들 겁니다.
― 맞습니다. 또, 피지컬이 강한 상대와 붙어도 체력이 쭉쭉 떨어지니까요.
경기는 급격히 기울었다.
인천은 2골이나 허용한 것을 만회하려는 듯, 무자비하게 축구천재 FC의 수비진을 흔들었다.
― 최경훈 선수가 수비에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볼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과연 인천의 주전 스트라이커다운 실력이네요.
― 우리 축구천재 FC의 수비수들은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최경훈은 K리그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거든요. 뚫리더라도, 흔들리더라도, 당당하게 맞붙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설들은 안타깝다는 듯 어린 선수들을 바라봤다. 이들이 힘을 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바람과 현실은 달랐다.
― 들어갔습니다……! 인천의 골입니다! 이민구가 오늘 첫 골을 터트렸습니다!
― 방금은 인천의 최경훈 선수가 우리 수비수들의 시선을 끈 뒤, 뒤에서 파고드는 이민구에게 너무 좋은 패스를 내줬네요. 클래스가 있는 플레이입니다……!
축구천재 FC는 흔들리는 걸 넘어서 골을 내줬다.
4 대 2.
5 대 2.
어느새 스코어는 6 대 2까지 벌어졌다.
“아직은 여기까지구나.”
신재욱이 씁쓸하게 웃었다.
흔들리는 동료 수비수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마음 같아선 직접 내려가서 돕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체력 때문이었다.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워낙 타고난 체력이 좋지 않은 몸이었다.
괜히 수비에 참여한다고 내려갔다간, 좋은 공격 기회를 얻었을 때 체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신재욱이었고 포지션에 맞는 역할이 있었다.
다만.
“이대로는 아쉽지.”
신재욱은 이렇게 끝낼 생각이 없었다.
“하나는 더 해야지.”
한 골을 더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 경기 재개됩니다! 축구천재 FC 선수들,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네요!
― 아…… 선수들이 쉽게 전진하지 못하네요. 너무 많은 골을 허용했기 때문일까요? 선수들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 이럴 때일수록 더 과감하게 전진 패스를 뿌릴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한 팀의 에이스인 신재욱 선수에게까지 만이라도 공을 연결해줘야 합니다!
공이 오질 않았으니까.
‘직접 뺏어야겠네.’
신재욱은 상대의 공을 뺏는 것에 자신감이 있는 편이었다. 실제로 환생 전에도 세계적인 선수들의 공을 수없이 많이 뺏어냈고, 환생 후에도 여러 번 상대의 공을 뺏어내고 있지 않았던가.
지금까진 전진압박을 자제했었다.
체력 때문이었다.
상대의 공을 뺏기 위해서 덤벼들다 보면 당연히 체력이 빨리 떨어지게 되고, 신재욱은 그런 상황을 경계했었다.
그러나 이젠 자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쯤 되면 체력에 신경 쓸 때는 아니지.’
이미 스코어는 2 대 6으로 벌어져 버렸고, 동료들은 전부 지쳐있었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공이 오질 않는 상황이니까.
― 신재욱이 전방압박을 하네요! 가진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모든 걸 쏟아낼 생각인 것 같습니다!
―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선수거든요. 상대가 누가 됐든 이기려고 하는 선수가 신재욱입니다. 지금도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재욱은 공을 잡은 선수를 압박했다. 다만 혼자만의 힘으론 부족했다. 상대가 아마추어면 모를까, 프로선수들이었으니까.
동료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택현!”
“오케이! 알아들었어!”
신재욱의 외침에 이택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평소 매일같이 호흡을 맞춰온 사이였기에, 이택현은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 이택현이 신재욱을 도와 인천의 미드필더 배윤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배윤재가 패스할 공간을 막고 있죠! 이러면 배윤재는 개인 기량으로 탈압박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게 바로 신재욱이 바라는 것일 거고요!
해설들의 말 그대로였다.
강한 압박을 받은 배윤재는 동료를 찾았지만, 패스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이택현이 영리하게 공간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칫! 어린 녀석들이 제법이네.’
배윤재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두 명의 소년의 플레이가 좋긴 했지만, 자신은 프로였다.
그는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벽은 매우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패스 안 해도 돼. 그냥 얠 상대해줄게.’
배윤재는 가까운 곳에서 압박을 넣는 신재욱을 힐끗 바라봤다.
‘놀라울 정도로 잘하긴 해.’
대단한 소년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를 상대로 위축되지 않았고, 정말로 이기려고 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더군다나 실력도 뛰어났다.
‘운동능력이 좋아 보이진 않지만, 신기하게 공을 꽤 잘 다룬단 말이야? 그리고 판단력이 너무 좋아. 판단력만큼은 베테랑 선수라고 해도 믿겠어.’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비록 선제골을 허용할 때, 신재욱의 태클에 공을 뺏겼었지만.
그건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배윤재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신재욱의 압박 따위는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것도 별로 어렵지 않게.
‘더 커서 와라. 꼬맹아.’
하지만 그 확신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툭!
“어…?”
배윤재가 멍하니 공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이 어느새 신재욱의 소유가 되어 있었다.
“뭐, 뭐야?”
분명 실수는 없었다.
현란한 상체 페인팅을 썼고, 엇박자 타이밍에 돌파를 시도했다.
1군 선수들에게도 통했었던 기술이었다. 겨우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어린애한테 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공을 뺏겨버렸다.
중학교 1학년의 어린애에게.
그것도 너무 쉽게.
― 신재욱이 공을 뺏어냈습니다! 이제 공은 축구천재 FC의 소유가 됩니다! 좋은 역습 기회를 만들어낸 축구천재 FC! 과연 이 기회를 살려낼 수 있을까요?
해설이 기대감을 드러냈다.
더불어 경기장에 있던 축구천재 FC의 선수들도 간절함이 담긴 눈으로 신재욱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들 모두 승패는 사실상 갈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신재욱이 팀의 자존심만큼은 살려주길 바라고 있었다.
‘재욱아, 제발 골 넣어줘……!’
‘넌 할 수 있어! 우리의 에이스잖아?’
‘보여줘, 제발! 신재욱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이처럼 모두의 기대를 받는 상황에서.
신재욱이 전진했다.
공을 앞으로 툭툭― 치며 나아갔다. 빠르진 않지만, 언제든지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드리블이었다.
인천의 선수 2명이 다가왔다.
한 명은 인천에서 1군으로 뛰는 수비형 미드필더 마석희.
다른 한 명은 2군이지만 대인마크 능력이 좋은 중앙수비수 강재운.
둘 중 쉬운 상대는 없다.
만약 저 둘이 매우 좋은 호흡을 보이며 동시에 덤빈다면 뚫는 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아주 좋은 컨디션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신재욱은 매우 낮은 능력치를 지닌 몸을 지녔으니까.
게다가 지쳐있으니까.
‘쉽진 않을 거야. 근데 또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나마 다행인 건 저들도 지쳐있다는 것.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후반전에는 힘들기 마련이었고, 실제로 저들의 내뱉는 숨은 거칠었고 유니폼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들을 뚫고 들어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그냥 쉽게 가자.’
신재욱은 쉬운 길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