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 * *
신재욱의 시선이 3명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앞서 걸어오는 2군 선수들보다도 더욱 진한 여유가 느껴지는 남자들.
‘저 사람들, 맞네.’
최경훈, 김규민, 마석희.
인천의 1군 선수이자, 붙박이 주전급인 그들의 얼굴은 익숙했다.
‘영상으로 본 얼굴들이야.’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며 미리 분석해왔으니까.
‘최경훈은 공격수, 김규민은 윙어, 마석희는 수비형 미드필더.’
신재욱은 3명의 주전 선수들을 더욱 집중해서 바라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당연하게도 덩치가 가장 큰 최경훈이었다.
‘최경훈, 키는 187cm. 빠르거나 발밑이 좋진 않지만, 힘이 좋아서 최전방에서 버텨주는 게 좋은 선수지. 좋은 피지컬만큼이나 헤딩도 좋은 편이고. 중학생 수비수들에겐 사실상 재앙이라고 봐도 될 정도야.’
다음으로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김규민.
‘김규민… 170cm의 단신이지만, 발이 빠르고 기술이 좋은 선수야. 무게중심도 낮아서 작은 덩치에 비해서 몸싸움도 강한 편이고…… 까다로운 선수야.’
마지막으로 마석희까지.
‘183cm로 최경훈만큼 크지는 않지만, 근육질의 몸으로 피지컬이 상당히 좋아 보였어. 파이터 스타일의 수비형 미드필더답게 대인마크 능력도 좋고.’
신재욱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3명 중 까다롭지 않은 선수가 없었다.
아마도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큰 충격을 받을 게 분명해 보였다.
‘애들이 프로의 벽을 느끼겠네.’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천재라고 불리던 애들이라서 더 충격이 클 텐데.’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축구천재 FC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신재욱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았다.
‘충격받고 좌절하면 거기까지인 거고, 반대로 이겨내면 성장하는 거고. 난 내 할 일이나 신경 쓰자.’
남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의 몸 상태도 좋지 못했으니까. 솔직히 지금의 상태론 인천의 1군은커녕, 2군 선수들보다도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신재욱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맴돌았다.
당연했다.
성장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될 것 같았으니까.
‘오늘은 능력치만 올리고 가도 대성공이지.’
* * *
축구천재 FC는 메이저 방송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일까?
해설들의 수준도 나쁘지 않았다.
메이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예능감과 해설 실력을 골고루 갖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축구천재 FC와 인천의 경기 해설을 준비하는 이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아…… 이거 어쩌죠?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
“어려울 수밖에 없죠. 우리는 축구천재 FC 측으로 편파적인 해설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인데, 오늘은 칭찬할 게 거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털릴 테니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제작진들이 무슨 생각으로 애들을 프로랑 붙일 생각을 했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근데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그냥 해설이나 해야지.”
“해설도 흥이 나야 잘되는데, 오늘 같은 경기는…….”
“억지로라도 텐션을 끌어올려야죠.”
“…그래야겠죠.”
축구천재 FC의 경기를 해설하기 위해 모인 해설들이기에, 당연히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편파를 하기도 힘들 정도로 양 팀의 전력 차가 컸다.
프로랑 중학생들의 경기에서 어떻게 중학생들을 띄우며 즐겁게 해설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해설들은 경력이 긴 사람들답게, 카메라가 돌아가자마자 목소리 톤을 높였다.
― 축구천재 FC의 기세가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이젠 중학교 팀들은 웬만하면 전부 다 이기고 있습니다! 최근에 압도적인 모습을 너무 자주 보여줬던 걸까요? 제작진들이 다음 상대를 무시무시한 팀으로 잡아버렸습니다.
― 하하! 축구천재 FC에겐 큰 시련이 될 수 있는 경기죠. 시청자 여러분들! 지금 이곳이 어딜까요? 바로! 국내 프로팀 ‘인천’의 홈구장입니다! 예, 맞습니다! 오늘 우리 축구천재 FC 선수들은 프로선수들을 상대하게 됐습니다! 놀랍죠? 저희도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많이 놀랐었습니다!
― 오늘은 우리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이 승리보다는 배운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디 프로로 뛰고 있는 형들과 경기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양 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양 팀의 덩치 차이가 크네요~!
―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모두 성인인 인천의 선수들과는 달리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전부 중학생이니까요.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는 시간.
신재욱은 오늘 맞붙을 인천의 선수들을 바라봤다.
‘우습다는 표정이네.’
저들의 분위기는 가벼웠다.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선수는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엽다는 행동까지 하고 있었다.
“반가워! 너희 천재라며? 우리는 축구가 일이라서 방송은 안 보게 되지만, 그래도 친구들한테 들으니까 너희 인기 되게 많다더라? 오늘 형들한테 많이 배워들 가.”
“야, 윤재야! 얘네 긴장한 것 좀 봐. 너무 귀엽지 않냐? 큭큭! 얘들아, 쫄지 마! 형이 별로 세게 안 할게.”
“재밌게 하자고, 재밌게! 오! 너는 덩치가 왜 이렇게 좋니? 네가 에이스야? 중학생치고 되게 큰데? 잘하면 형이 밀릴 수도 있겠어?”
“하하하하! 야! 네가 밀리는 게 말이 되냐? 겉으로 덩치 좋아 보이는 애들도 다 애기들이야. 괜히 너무 세게 했다가 다치게 하지 말자고.”
“당연하지. 방송 나간다는데 욕먹을 일 있어?”
상황을 지켜보던 신재욱이 검지로 눈썹을 긁적였다.
‘뭐, 프로니까 중학생 선수들이 선수로 보이긴 하겠냐만.’
이어서 크게 심호흡을 하며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기분이 좋진 않네?’
환생 전, 영국에 이민을 간 이후로 많은 무시를 받아왔었다.
인종차별과 텃세 등으로 패스를 못 받고, 무시를 당하고, 마늘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럴 때마다 신재욱은 싸웠다.
항상 실력으로 싸웠고, 전부 깨부숴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럴 생각이었다.
‘후회하게 해드릴게.’
* * *
― 11 대 11로 펼쳐지는 오늘의 경기는 평소와 같은 룰로 진행되게 됩니다! 프로 경기의 룰과 같다고 보시면 되겠는데요.
― 그렇습니다. 자! 경기 시작됐습니다! 양 팀의 전력을 볼까요? 우선 인천은 축구천재 FC를 상대로 대부분 2군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내세웠네요. 1군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최경훈 선수, 김규민 선수, 마석희 선수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2군 선수들 위주로 이뤄져 있다고 해서 절대 무시할 수 없죠!
― 당연합니다. 프로가 되는 선수들은 전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거든요! 2군 선수들 역시 굉장한 실력자들이고, 우리 축구천재 FC 선수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
경기가 시작됐다.
2군 선수들의 움직임은 가벼웠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는 않지만, 여유를 보이며 공을 주고받았다.
반면,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강하게 인천의 선수들을 압박하며 기세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 오오! 축구천재 FC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압박을 하는데요?
― 지금까진 좋은 전략인 것 같습니다. 프로선수들에게 여유를 갖게 하면 더 힘들어질 수 있거든요! 차라리 지금처럼 정신없게 몰아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인천의 선수들은 조금이지만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축구천재 FC를 보며 귀엽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오우……! 너희 되게 적극적이다!”
“압박이 거센데? 잘하네! 괜히 축구천재들이 아니구만?”
“이열~! 장난 아닌데?”
분명 프로와 아마추어의 수준 차이는 크다.
다만, 프로팀 선수들이 방심한다면?
아마추어팀이 전국의 중학생 중 가장 잘하는 11명이라면?
만약…… 아마추어팀에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남자가 환생해서 뛰고 있다면?
이변은 일어날 수 있다.
지금도 그랬다.
― 오오옷! 신재욱이 공을 뺏어냅니다! 좋은 태클이었죠!
― 굉장히 정교한 스탠딩 태클과 슬라이딩 태클을 구사하는 신재욱이거든요? 오늘 이 선수의 실력이 프로선수에게도 통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유 있게 공을 컨트롤하던 인천의 중앙 미드필더 배윤재에게.
신재욱은 망설임 없이 슬라이딩 태클을 넣었다.
태클은 성공이었다.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신재욱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공을 뺏어냈고, 몸을 일으켜서 직접 공을 몰고 전진했다. 그러자 인천의 선수들의 표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 뭐야?!”
“쟤, 뭔데?”
“무슨 중학생 태클이……!”
“야! 배윤재! 너 지금 뭐 해?”
하지만 프로의 자존심이었을까?
전진하는 신재욱을 보고서도 인천의 선수들은 여전히 여유를 보였다.
“내가 막을게!”
인천의 2군 중앙수비수 강재운이 호언장담하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눈앞의 귀여운 소년을 가볍게 발라줄 생각이었다.
‘배윤재한테 태클을 성공시킨 건 조금 놀랍긴 했는데…공을 뺏었으면 바로 동료한테 넘겼어야지, 감히 드리블을 쳐? 형한테 혼 좀 나보자 깜찍한 녀석아.’
강재운은 비록 2군에 있지만, 일대일 수비 실력만큼은 1군 선수들에 비해서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 수비수였다.
때문에, 중학생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들어와 보렴.”
씨익 웃으며 성큼성큼 전진하는 강재운의 움직임.
신재욱으로선 아주 고맙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뚫어달라고 애를 쓰네.’
저렇게 대놓고 빈틈을 보이는 수비에겐 전혀 위축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과감하게 뚫어버리는 게 좋다.
물론 월드클래스 수비수들은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는 수비를 하기도 하지만.
신재욱의 눈에 보인 강재운의 행동은 미끼가 아니었다. 진짜 방심하고 있었다. 만약, 아주 만약에 저 행동이 신재욱을 끌어들이려는 미끼일지라도.
‘해볼 테면 해봐.’
신재욱은 뚫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 강재운 선수가 신재욱 선수를 막아섭니다! 빠르게 공을 뺏어내려는 것 같은데요? 과연 여기서 신재욱이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강재운이 발을 뻗었다.
그 순간.
툭!
신재욱이 대각선 옆으로 공을 쳤다. 동시에 온 힘을 다해서 바닥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엇?!”
강재운이 당황해서 팔을 쭉 뻗었다. 신재욱의 옷을 잡으려는 움직임. 상대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신재욱은 그것마저도 당하지 않았다.
자세를 낮게 유지하며 튀어 나갔기에, 강재운의 팔은 애꿎은 허공을 휘저었다.
“야…! 빨리 막아!”
“뭐야, 이거?”
“야아아!”
깜짝 놀란 인천 선수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진 지금.
‘별거 없네.’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파고든 신재욱이 골대 안을 향해 강력한 슈팅을 때려냈다.
퍼엉!
임팩트를 중시하면서도 파워에 신경을 쓴 슈팅이었다.
지닌 슈팅 능력치가 워낙 좋지 못하니, 이렇게 때리지 않으면 골키퍼에게 막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때린 슈팅이었고, 인천의 골키퍼가 몸을 날렸다.
하지만 아무리 프로선수라고 해도 페널티박스 안쪽이라는 가까운 거리에서 때린 슈팅을 막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몸을 날린 인천의 골키퍼 김경식은 골대 안으로 파고드는 공을 건드리지 못했고.
철렁!
한국의 1부 리그 프로팀 ‘인천’의 골망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