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 * *
스포츠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실력 차이는 크다.
당연히 프로가 더 잘한다.
물론 복싱처럼 예외인 스포츠도 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실력 차이가 매우 큰 스포츠다.
날고 긴다는 아마추어 선수들 11명을 모아놓아도 어지간해선 프로팀을 이길 순 없다.
잘 싸울 수는 있어도 웬만하면 못 이긴다.
그게 바로 축구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다.
그래서일까?
오늘 축구천재 FC를 상대하게 된 국내 1부 리그에 속한 팀 ‘인천’의 감독 유혁수는 여유가 넘쳤다.
“김 코치, 슬슬 우리 애들도 몸 좀 풀어야겠지?”
“예, 감독님. 부상 방지를 위해서 혹시 모르니까 스트레칭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거 참…… 중학교 다니는 애기들 상대로 몸을 풀라고 하기도 뭐하네. 그치?”
“으하핫! 그렇긴 하죠. 근데 참 그쪽 제작진들도 잔인하네요. 무슨 애들이랑 프로팀이랑 붙인다고…… 괜히 자라나는 새싹들 자신감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할 텐데 말이죠.”
“방송국 사람들이 그런 거에 관심이나 있겠어? 그냥 어그로 끌려서 시청률이나 잘 나오면 그만인 사람들인데. 우린 그냥 장단 맞춰주면 되는 거야. 적당히 매너 좋게 수준 차이 보여주면서, 팀 홍보나 하면 그걸로 된 거지.”
유혁수 감독의 말에 김 코치라고 불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틀린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더 나아가 1군 선수들을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감독님 그런데…….”
“왜?”
“1군 선수들을 내보낼 필요가 있을까요? 시즌 중인데, 그냥 2군 선수들로만 내보내도 되지 않을까요?”
“김 코치 말도 맞아. 근데 보여주기식으로 내보내긴 해야 돼. 아예 2군으로만 내보내면 사람들이 욕할 거거든.”
“욕을 해요? 왜요? 애들 무시한다고 그러는 건가요?”
“그치. 김 코치는 몰랐구나? TV 보는 시청자들이 얼마나 극성인데~! 자기들이 응원하는 축구천재 FC가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곧바로 방송국 게시판에 들어가서 욕 엄청 할걸? 진짜야. 진짜 그래. 드라마 쪽에선 특히나 더 흔한 일이야. 그쪽은 스토리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게시판 테러 들어가잖아. 하하! 무서운 세상이야.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우리 구단한테도 좋지 않으니까, 아예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좋겠지.”
“…그러네요.”
“그래, 그러니까 우린 그냥 1군 선수 3명 정도만 내보내고, 나머지는 다 2군으로 구성해. 2군 애들도 방송 좀 나가고 하면 자신감도 더 올라오겠지. 그리고 후반전 20분쯤에 1군 선수 몇 명 더 넣어주면서 보여주기식으로 하면 돼.”
“2군 위주로 내보낸다고 해서 혹시나 지지는 않겠죠……?”
그때였다.
유혁수 감독의 표정이 변했다.
장난기가 흐르던 얼굴은 더 이상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차가운 눈빛으로 코치를 노려봤다.
“김 코치, 농담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2군은 프로 아니야? 걔들이 중학교 다니는 아마추어들한테 지겠어? 거참, 웬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받아주지, 개소리를 하면 어떻게 받아주겠나? 김 코치도 선출 아니야? 프로 출신이잖아? 근데 왜 그래?”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요.”
“그래, 김 코치가 평소에 우리 선수들을 많이 생각하는 건 알지만, 걱정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사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지.”
“명심하겠습니다.”
“됐어. 곧 축구천재인지 뭔지 걔네들 온다니까, 우리 선수들 얼른 몸 풀라고 해.”
“예!”
저 멀리 뛰어가는 코치를 바라보며, 인천의 유혁수 감독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의 얼굴엔 걱정이라는 감정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좀 살살하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나? 너무 압도하면 괜히 구단 이미지 나빠질 텐데.”
* * *
국내 프로 1부 리그에 속한 팀인 인천과의 경기.
그 경기에 나서기 위해서 축구천재 FC 팀은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이지만, 여러 대의 카메라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좌석에 앉은 선수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들 떨리냐?”
진민호 감독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어린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질문이었다. 다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선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떨리죠. 이 경기는 말이 안 돼요. 어떻게 프로선수들이랑 붙을 수가 있어요?”
“걱정돼요. 지금까지 대부분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번에 크게 지면 사람들은 진 것만 기억할 거 같아요.”
“상대의 수준이 갑자기 너무 높아졌어요. 그리고 상대는 어른이고, 프로인데 우리보다 손발도 더 많이 맞춰봤잖아요. 이걸 어떻게 이겨요?”
“맞아요. 이번 경기에서 이기는 건 무리예요.”
아직 어린 나이지만, 축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들답게 제법 논리적인 말들로 현 상황을 평가했다.
그런 선수들을 보며, 진민호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말들 다 맞아. 근데 이것만큼은 너희도 인정할걸? 이번 경기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비관적인 말을 내뱉던 선수들이 조용해졌다.
감독의 말에 느낀 바가 있던 것이다.
그때, 이택현이 입을 열었다.
“감독님 말이 맞아. 우리는 이 경기를 통해서 많은 걸 배울 거야. 그리고 잘들 생각해봐. 이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프로선수들이랑 붙어보겠어?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물론 프로선수들은 우리보다 조직력이 좋고, 기술도 좋을 거야. 피지컬도 훨씬 강할 거고.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 상대가 누구든! 승부는 50 대 50이지! 공은 둥글고, 우린 충분히 강하거든.”
팀에서 가장 어린 이택현의 당돌한 말.
그 말에 버스 안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비관적이던 선수들의 흐리멍덩한 눈빛도 사라졌다.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눈빛은 이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모든 것을 지켜보던 신재욱은 피식 웃어버렸다.
동시에 옆에 앉아있던 이택현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억! 왜 그래?”
“야, 내가 했던 말이잖아.”
사실이었다.
방금 이택현이 한 말은 얼마 전에 신재욱이 했던 말과 똑같았다.
다만, 신재욱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다. 그냥 재밌고 황당할 뿐이지 이택현을 망신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쫌 멋있더라고. 그래서 가져다가 썼어.”
“어 그래…… 당당해서 좋네.”
“다음에도 멋진 말 부탁해. 좀 써먹게.”
“…그래.”
“근데 재욱아.”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질문하기 좀 그렇지만…… 진짜 할만하다고 생각해?”
이택현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괜히 주변에 들리게 말해서 애써 좋게 만든 분위기에 초를 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이 신재욱에겐 재밌게 느껴졌다.
“이길 자신 있어서 말한 거 아니었어?”
“…눈치도 빠른 애가 왜 이래? 분위기 살리려고 했던 거잖아…!”
“하하!”
신재욱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왜 또? 왜 웃는데? 아이 진짜! 왜 웃냐니까? 하! 거참, 이상하게 기분 나쁘네?”
“큭큭!”
“야 신재욱! 왜 웃냐고오오오!”
* * *
버스 안, 선수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제작진 측은 진민호 감독에게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감독님, 솔직히 말해주실 수 있어요? 이번 경기…… 승산이 있나요?”
“예? 승산이요? 없죠.”
“아……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실 정도로 승산이 없나요?”
“하하! 프로를 어떻게 이겨요. 아까 제가 아이들한테 말했듯이 이번 경기는 배우러 가는 거지, 이기러 가는 게 아니에요. 제작진 측에서는 다 알고 있지 않았나요? 스케줄도 다 직접 짜신 거잖아요?”
“저흰 그래도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을 줄 알았죠. 또 인천 쪽에서 2군 선수들 위주로 출전시킨다고도 했고요.”
“에이, 그래도 못 이겨요. 2군이어도 프로는 프로예요. 수준이 달라요.”
“……그렇군요.”
제작진들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스케줄을 짤 때만 해도 그래도 조금이나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린 선수들이라고는 하나, 천재들을 모아놓은 ‘축구천재 FC’니까 혹시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만약 이긴다면 시청률은 대박이기에,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승산이 없단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K리그에서 100경기를 넘게 뛴 진민호 감독의 이야기였다.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큰일인데요? 진민호 감독님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수준 차이가 크다는 건데…… 이번 경기 진행했다가 괜히 위에 불려가는 거 아닌가 싶어요.”
“어쩔 수 없잖아. 이미 다 잡혔는걸. 당일에 취소할 순 없는 거고, 그냥 강행해야지.”
“하…… 걱정이네요. 그냥 우리 애들이 한 골이라도 넣어줬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편집으로 어떻게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에휴……! 그러게나 말이다.”
이처럼 제작진들은 ‘축구천재 FC’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했다.
분위기도 처졌다.
다행히 버스 안에 있던 선수들은 잠에 깊이 빠져들었기에, 이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곤.
‘분위기하고는.’
신재욱은 자고 있지 않았다.
잠은 어젯밤에 충분히 잤고, 더 자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그럴 시간에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인천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상대를 만나기 전에 필수로 분석을 하는 것. 신재욱의 습관이었다.
‘응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저게 뭐 하는 거야?’
신재욱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처진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와 붙어보기도 전에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제작진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들이 자고 있어서 다행이지…… 쯧!”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재욱은 다시 핸드폰의 화면을 바라봤다.
그곳엔 여전히 인천 선수들의 경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붙을 사람들은 2군이고, 여기 나오는 선수들은 1군이긴 하지만…… 그래도 뭐, 전술은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인천의 홈구장에 도착할 때까지, 영상은 끊기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축구천재 FC의 어린 선수들은 구장의 규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여기가 인천의 홈구장이구나! 엄청 큰데?”
“그러니까, 되게 좋다! 아~! 나도 얼른 프로선수가 돼서 이런 데서 뛰고 싶다……!”
“TV에서 봤을 때랑은 차원이 다르네! 우리가 오늘 이런 곳에서 축구 하는 거야?”
“미쳤다! 진짜 미쳤다아!”
이곳저곳 보이는 시설들은 어린 선수들의 눈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다만, 신재욱은 인천의 홈구장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만큼은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구나.’
저 멀리서 놀러 나온 것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선수들.
오늘 상대해야 할 인천의 2군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신재욱의 시선은 그들보다 더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3명의 선수에게로 향했다.
‘1군 선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