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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재욱이 메이저 방송사에서 방영 중인 ‘축구천재 FC’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을 때.
구영철 감독은 평소보다 훨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불타듯 쏟아지는 국내 프로팀들의 전화 때문이었다.
“예? 으하핫! 그럴 리가요! 우리 재욱이가 워낙 어른스러워서 고민이 깊어진 모양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에이~! 서운하다니요오오! 서울 측이랑 우리 대한중학교와의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지는 우리 선수들도 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역사가 증명해주지 않습니까? 그동안 대한중학교에서 서울로 얼마나 많이 갔습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압니다, 알지요. 저도 우리 재욱이가 당연히 프로팀과 빨리 계약하길 바라고 있지요. 하하! 당연히 인천 쪽이랑 계약하는 것도 좋죠. 다만, 결정은 선수가 하는 거니까…….”
“울산이랑요? 아, 너무 좋지요! 울산이 얼마나 강팀인데요. 아, 예! 알겠습니다. 제가 선수들한테 잘 전달할게요. 예? 재욱이요? 아…… 알겠습니다. 잘 얘기해볼게요.”
툭!
전화를 끊은 지금, 구영철 감독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재욱이 녀석의 인기는 식지를 않네. 다들 아주 그냥 데려가고 싶어서 난리구만, 난리야.”
신재욱을 향한 국내 프로팀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대한중학교의 감독직을 오랫동안 맡아왔던 구영철 감독이지만, 프로팀들의 관심이 이 정도로 큰 건 처음이었다.
“재욱이가 대단한 재능이긴 하지. 그 녀석 축구 하는 걸 보면 겨우 중학교 1학년에 다니는 녀석이라고 누가 믿겠어? 게다가 행실도 바르고, 듣자 하니 영어도 잘한다지?”
구영철 감독은 씨익 웃었다.
신재욱을 생각할 때면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쁜 자식. 근데 왜 계약을 안 하는 거야?”
그는 좋은 기회를 받지 않고, 계속 미루기만 하는 신재욱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구영철 감독은 신재욱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마음에 드는 팀, 있긴 있어요.”
“그러지 말고…… 어? 있다고?”
구영철 감독의 눈이 커졌다.
그동안 하는 행동을 보아 전혀 관심도 없는 줄 알았더니, 마음에 드는 팀이 있긴 하다는 말에 놀라버린 것이다.
“왜 놀라세요?”
“놀랍지, 안 놀랍겠냐? 너, 그동안 국내 프로팀의 제안을 전부 거절했었잖아.”
“예, 저는 서울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오! 서울? 서울 괜찮지! 좋은 팀이야. 돈이 많아서 시스템도 잘 되어있고, 어린 친구들에게 기회도 잘 주는 편이지.”
“그렇군요.”
“으허헛! 이제야 프로팀들 측에 할 말이 좀 있겠네! 재욱아, 그럼 서울이랑 계약 진행할 거지? 언제쯤 할 생각이야? 방학 직전쯤?”
구영철 감독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재욱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대답은 감독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아뇨, 아직 생각 없어요.”
“뭐어어?! 너 지금 뭔 소리야? 서울이 제일 좋다며?”
“서울이 제일 마음에 들긴 하지만, 바로 계약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에요. 감독님, 전 급하게 가고 싶지 않아요.”
“아니, 재욱아? 빨라서 나쁠 게 없다니까? 네 나이 때 일찍부터 프로팀이랑 계약하면 유스팀에서 관리받으면서 훈련할 수 있어서 더 좋다고!”
구영철 감독은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신재욱은 처음과 같이 침착했다.
“감독님, 절 위해서 해주시는 말씀인 거 잘 알아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방금 말했던 것처럼 급하게 가고 싶지 않아요. 몇 년 뒤에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대한중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어휴! 이 고집 좀 봐라. 재욱아, 전혀 안 충분해! 프로팀에 비하면 부족하다고오오!”
“왜 부족해요? 여긴 최고의 감독인 구영철 감독님이 계신데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너……!”
그 순간 신재욱의 눈엔 보였다.
구영철 감독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이어서 답답했던 표정이 감동받은 표정으로 변하는 것을.
“그러니 제게 프로팀과의 계약을 재촉하지 말아 주세요. 전 아직 대한중학교에서 감독님께 더 배우고 싶어요.”
“……프로팀이랑 계약해서 유스팀에 들어가도 학교에 나와서 훈련할 수 있는데도? 그래도 나한테만 배우고 싶다고?”
“예.”
“……알겠다. 당분간은 프로팀 측에서 연락이 오면 내가 알아서 잘 둘러대 보마.”
“감사합니다.”
구영철 감독의 방에서 나온 뒤.
신재욱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겨우 둘러댔네.”
감독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대한중학교에서 배울 건 없었다.
당연했다.
신재욱은 더 선진화된 훈련을 받던 사람이었고, 세계 최고라고 불리던 선수였으니까.
그럼에도 국내 프로팀과 계약하지 않고 대한중학교에 머무는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지금 국내 프로팀으로 들어가면 유럽으로 나갈 타이밍이 늦춰질 수밖에 없어.”
현재 신재욱은 ‘축구천재 FC’에 출연하고 있고,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출전한 목적은 유럽 진출이었다.
유럽의 프로팀들이 키우는 유망주들과의 경기에서 눈에 띄고, 그로 인해 영입 제안을 받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처럼 계획이 있지만, 국내 프로팀들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거나 싫다는 의견을 표현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는 야비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신재욱은 만약을 대비하고자 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유럽 진출이 생각보다 늦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성장을 위해 국내 프로팀에라도 들어가야 한다.
때문에, 국내 프로팀들과의 관계를 나쁘게 해둘 필요가 없다.
다만 오늘 같은 일이 생길 뿐.
“보험이랍시고 거절 안 했다가 더 귀찮아질 뻔했네.”
그래도 다행히 이야기를 잘했고, 구영철 감독도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기에 당분간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고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전부 축구에 대한 재능과 지능이 뛰어났다.
자연스레 선수들 간의 호흡도 굉장히 빨리 좋아졌다. 프로그램 초반엔 패배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중학교 팀에겐 어지간해선 지지 않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축구천재 FC, 또 승리! 강팀 기현중학교를 상대로 5 대 2 압승!」
그중에서도 매번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있었다.
「신재욱과 이택현, 배천중 콤비가 이번에도 날았다! 둘이서 5골 만들어내며 압도적인 실력 선보여!」
신재욱과 이택현이었다.
“골 감각이 더 좋아진 것 같네?”
“최강천재 신재욱이랑 거의 매일 특훈을 하는데, 좋아져야지.”
“…최강천재? 갑자기?”
“그냥 붙여봤는데, 어때?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상하니까 다시는 하지 마.”
“……좋으면서 괜히 저러네.”
평소처럼 티격대고 있지만, 신재욱은 속으로 많이 놀라고 있었다.
‘성장 속도가 엄청난데? 이택현 얘……진짜 천재야.’
이택현의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빨라지는 이택현의 발전 속도는 신재욱을 경악하게 만들 정도였다.
‘확실히 환경이 중요하긴 한가 봐.’
분명 신재욱의 기억 속엔 이택현이 한국의 국가대표로 뛰었다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프로선수로 뛰었을 수는 있어도, 국가대표까지는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택현이 보여주는 재능이라면 미래에 국가대표가 안 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이런 천재가 무명의 선수가 될 정도니.’
신재욱이 생각에 잠겨있자, 이택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를 왜 이렇게 뚫어지게 봐? 잘생겨서 그래? 에이, 재미없게 반응이 없네. 훼이! 훼이! 신재욱! 멍 그만 때리고 정신 좀 차려봐!”
“……건 아니야.”
“응? 뭐라고? 조금만 크게 말해봐.”
“잘생겨서 본 건 아니라고.”
솔직한 말이었다.
이택현은 14살치곤 좋은 체격을 지녔고, 선이 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자답게 생겼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잘생겼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허? 어이가 없네! 내가 학교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몰라? 나 일주일 전에도 다른 반 여자애한테 고백받았던 거, 너도 알잖아?”
“모르겠는데?”
“우와? 다 봤으면서 모르는 척한다고? 왜 이러지 정말? 재욱아, 내가 너만큼은 아니어도 인기 많은 거 다 알잖아!”
“원래 축구 잘하면 인기 있어.”
“어? 지금 그 말은 나 축구 잘한다는 거지?”
축구 잘하면 인기 있다는 말.
그 말을 듣자마자 이택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면, 신재욱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이렇게 좋아해?”
“흐흐! 그러게나 말이야. 이상하게 너한테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다니까? 게다가 최강천재한테 축구를 잘한다는 말을 들은 거잖아?”
“그거 하지 말라니까?”
“어떤 거? 최강천재?”
“…그래.”
“오케이! 안 할게. 대신 다음엔 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재욱이 너한테 딱 어울리는 별명으로 짜올게.”
“안 해도 된…… 에휴! 그래, 그래라.”
이택현은 어차피 할 거라는 걸 알기에, 신재욱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 맞다. 재욱아!”
“작게 좀 불러. 왜?”
“나 저번에 프리킥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었잖아? 좀 봐주라.”
“그래, 그거 하고 탈압박 훈련이나 더 하자.”
“좋지! 아, 그리고 곧 프로팀이랑 붇는 건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다니?”
신재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택현을 바라봤다.
축구천재 FC는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며 순항 중이었고, 이택현의 말처럼 곧 국내 프로팀과의 경기도 잡혀있었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어떻게 생각한다는 말인가.
반면에 이택현은 그런 신재욱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재욱아 너 진짜 로봇 아니냐? 넌 떨리지도 않아? 고등학생 형들이랑 붙어도 빡센데, 이번엔 프로선수들이랑 붙는 거잖아. 난 벌써 떨려서 미치겠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네?”
“붙으면 붙는 거지.”
“질 확률이 높잖아. 아니지,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아무것도 못 하고 탈탈 털릴 가능성이 높잖아.”
“원래 축구는 질 수도 있는 거야. 축구가 아니더라도 승부는 항상 50 대 50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해.”
“……50 대 50이라고? 넌 그럼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지.”
신재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상대는 프로고, 그의 동료들은 중학생들이었지만.
진심으로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공은 둥글잖아.’
상대가 어떻든 이길 수 있다는 마인드.
신재욱은 늘 그렇게 살아왔고, 그 덕분에 이길 수 없다고 평가받던 경기에서 이겼던 적도 많았다.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다.
이기기 힘든 전력 차이지만, 그래도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신재욱의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이택현은 그런 신재욱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허…! 넌 진짜 대박이다……! 마인드가 보통 사람이랑 아예 다르네.”
“너도 바꾸도록 노력해봐. 그러면 손해는 안 볼 거야.”
“알겠어. 나도 오늘부터 바뀌도록 노력해볼게! 상대가 프로건 뭐건 충분히 이길 수도 있다는 마인드! 진짜 개간지나네! 아! 안 되겠다! 재욱아, 오늘부터 평소보다 30분씩만 더 남아서 훈련하고 갈까?”
“여기서 훈련을 더 한다고? 지금도 많이 하고 있잖아.”
“너가 저번에 그랬잖아. 훈련은 배신을 안 한다고.”
“그건 맞지.”
“그러니까 평소보다 30분만 더 늘려서 훈련하자. 응? 더 하자~!”
“그래, 하자.”
“나이쓰으! 프로 잡으러 가보자!”
“……그래.”
신재욱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택현의 높은 텐션은 도무지 적응되질 않았다.
그리고 2주 뒤.
축구천재 FC 선수들은 프로선수들과의 경기를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