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 * *
툭!
신재욱이 공을 받았다.
늘 그랬듯 가만히 서서 공을 받지 않았다.
공이 오기 전, 고개를 빠르게 돌려서 주변을 확인했고 공이 왔을 땐 움직이면서 받았다. 툭! 투욱! 두 번의 터치로 상대 선수 한 명을 제쳐냈다.
‘공이 발에 잘 붙네.’
그런 날이 있다.
공을 컨트롤할 때의 느낌이 유난히 좋고, 실제로 실력 발휘도 잘될 때.
신재욱은 그런 날이면 공이 발에 잘 붙는다고 말하곤 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 신재욱 선수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데요? 배천중학교의 선수들을 너무나도 쉽게 상대하고 있어요. 압박에도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공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 이러면 동료들은 편하게 공격을 할 수가 있죠. 신재욱이 계속해서 한 명에서 두 명의 선수를 끌어내 주니까요.
신재욱은 공을 컨트롤하며 동료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시야를 확인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압박이 들어왔다.
‘압박이 세네.’
전진하려 할 때면 최소 2명이 덤벼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재욱은 공을 지켜냈다. 자세를 낮추고 상대가 양쪽에 달라붙지 못하게끔, 상대 선수 2명을 한쪽으로 몰았다.
그리고 지금.
터엉!
신재욱의 발이 공을 차 냈다.
2명이 빠지며 생긴 틈을 향해 넣은 패스. 단숨에 상대의 수비를 뚫어내는, 흔히 킬패스라고도 불리는 패스였다.
공이 잔디 위에 미끄러지듯 쏘아졌고.
그 공을 이택현이 받아냈다. 오른발 안쪽으로 공을 안정적으로 잡아두는 퍼스트 터치. 이어서 왼발로 반대편 골포스트 쪽으로 감아 차는 슈팅을 때려냈다.
‘터치 좋고, 슈팅도 깔끔해.’
그 장면을 지켜본 신재욱은 확신했다.
저건 골이라고.
― 고오오오오오오올! 이택현의 골입니다! 오늘 벌써 두 번째 골을 기록하는 이택현 선수!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슈팅 능력이 빛나는 골이었네요~!
― 그전에 신재욱 선수가 보여줬던 플레이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첫 번째 골이 나왔던 것처럼 이택현 선수에게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줬습니다. 이 선수, 실력이 정말 엄청나네요.
이택현의 두 번째 골이 터지며, 스코어는 동점이 됐다.
배천중학교 선수들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골을 허용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당해버렸으니까.
게다가 이제 막 팀을 꾸린 축구천재 FC와는 달리, 오랜 전통이 있는 배천중학교였으니까.
‘젠장! 방송에 나가는데 쪽팔리게 똑같이 뚫려버렸네…….’
‘자꾸 돌아 들어가는 이택현을 놓치네…… 하! 이게 다 신재욱 때문이야. 쟤, 왜 저렇게 어그로를 잘 끌어? 또 공은 왜 저렇게 안 뺏겨?’
‘하…… 신재욱하고 이택현만 아니었어도 쉽게 이기는 건데…….’
‘이제 막 팀을 만든 녀석들한테 고전한다고? 말도 안 되잖아 이건! 그리고 신재욱은 저번 대회 때 잘하는 거 알았지만, 택현이 저 녀석도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당연하게도 심리적으로 더 압박을 받는 팀도 배천중학교였다.
반면,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여유를 찾았다.
‘꽤 할만하잖아? 이거 잘하면 이길 수도 있겠는데?’
‘신재욱이랑 이택현이 너무 잘해주네. 쟤들이랑 같은 팀으로 뛰면 상대가 배천중학교여도 지지는 않을 것 같아.’
‘쟤네 당황한 것 같은데? 이러면 우리가 좋지.’
‘천천히 해도 되겠다. 어차피 급한 건 쟤네들이야.’
그리고.
두 번째 도움을 기록한 신재욱은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이번엔 능력치가 오르진 않았지만, 당장 오르지 않았을 뿐.
많은 메시지의 양을 보면 곧 오를 것처럼 보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길 잘했어.’
* * *
배천중학교의 공격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축구천재 FC의 수비진을 휘청이게 할 정도로.
그러나 전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 좋은 수비입니다! 축구천재 FC의 강찬우 선수와 최진태 선수가 드디어 호흡이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선수 모두 중학교 수준에서는 최고의 수비수들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호흡만 맞게 된다면 배천중학교를 상대로도 철벽과도 같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장이 풀린 축구천재 FC가 배천중학교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시작했다는 것과.
― 강찬우! 대각선으로 공을 길게 뿌려줍니다! 대단한 킥력이네요!
더불어 역습까지 시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 강찬우가 뿌려준 공을 장현이 받습니다! 장현은 굉장히 빠른 스피드를 가진 선수죠! 지금 같은 타이밍엔 이 선수가 크랙으로서의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축구천재 FC의 장현은 중학교 2학년이지만, 3학년들을 상대로도 높은 드리블 성공률을 자랑하는 윙어다.
빠른 스피드와 화려한 발재간은 그가 천재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 장현이 돌파해냅니다! 이 선수가 개인 능력으로 배천중학교의 측면을 허물어버리네요! 장현, 크로스 타이밍이죠!
크로스를 올리기 좋은 타이밍이 나왔다. 그러나 장현은 크로스를 올리지 않았다.
― 장현 선수가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파고듭니다! 장현 선수, 침착합니다!
한 번 더 치고 들어가며 배천중학교 수비수들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펼쳤다.
장현은 그러고 난 뒤에야 다리를 휘둘렀다.
퍼엉!
대각선 뒤쪽으로 보내는 컷백 패스였다. 장현은 패스 정확도가 높은 선수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아주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서 보내는 패스는 날카로운 선수였다.
― 컷백! 좋은 패스입니다!
공이 잔디 위로 빠르게 쏘아졌다. 상대 수비수가 반응하기 힘들게끔 강하게 차낸 패스였고, 근처에 있던 신재욱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집중하자.’
굴러오는 공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다리를 휘둘렀다. 강하게 차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러면 공이 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정확하게 맞추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상단 구석으로!’
오른발 슈팅이었다.
굴러오는 공에 맞추는 것에 집중한 슈팅. 어렵지 않은 마무리였다. 게다가 이곳은 페널티박스 안쪽.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신재욱에겐 집 안방과도 같이 편안한 곳이었다.
퍼엉!
정교하게 때리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슈팅은 늘 그랬듯 생각만큼 날카롭게 쏘아지진 않았다.
일류 골키퍼였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슈팅.
하지만 중학생 골키퍼가 막는 것은 무리였다.
― 골입니다! 신재욱의 골입니다! 오늘 2개의 도움만 기록했던 신재욱이 드디어 골을 기록하네요! 침착한 마무리가 돋보였습니다!
― 장현 선수의 컷백 패스도 칭찬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굉장히 날카로웠습니다.
“장현 형, 패스 좋았어요.”
신재욱은 도움을 준 장현을 칭찬한 뒤, 허공을 바라봤다.
반가운 메시지들이 생성되고 있었다.
[슈팅이 좋아집니다!]
[슈팅이 좋아집니다!]
…….
…….
[슈팅이 1 올랐습니다!]
정말 대회보다 성장이 더 빠른 것 같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재욱은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성장이 빠른 곳에선 공격포인트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서 이득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축구천재 FC가 첫 승리를 가져오게 될까요? 지금까진 강팀인 배천중학교를 상대로 3 대 2로 우위를 점할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천중학교는 더욱 조급해졌다.
팀플레이 위주로 풀어나가던 선수들이 이제는 개인 능력과 롱패스에 의존하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골을 넣겠다는 마음을 갖다 보니 생긴 변화였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배천중학교에겐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이 배천중학교 선수들보다 개인 능력이 더 뛰어났으니까.
― 들어갔습니다! 이택현입니다! 이택현의 해트트릭입니다! 장현 선수의 크로스를 강력한 헤딩 슈팅으로 연결했습니다! 오늘 장현 선수의 컨디션도 상당히 좋아 보이네요!
― 방금은 배천중학교의 공격이 너무 안일했죠! 급했어요. 축구천재 FC 역습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어야 합니다! 이로써 스코어는 4 대 2가 됩니다!
― 배천중학교가 후반전에 들어서서 많이 흔들리네요! 반대로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점점 더 손발이 잘 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감을 잡았고, 배천중학교는 점점 더 흔들렸다.
그 결과.
― 경기 종료됩니다! 축구천재 FC가 배천중학교를 상대로 첫 승을 가져갑니다!
― 놀랍습니다!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이 정말 놀라운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끼리 손발이 잘 맞는 팀을 상대로 이기는 건 정말 어려운 건데 말이죠!
축구천재 FC가 배천중학교를 무너뜨렸다.
* * *
첫 경기에서 승리하고, 며칠 뒤.
축구천재 FC 3화가 방영됐다.
전국대회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두는 강팀 배천중학교를 상대하기 위해, 진민호 감독의 진두지휘 아래서 열심히 손발을 맞춰보는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모습이 방영됐다.
└신재욱은 특별히 빠르거나, 화려하진 않은데, 뭔가 개잘하지 않음?
└저게 진짜 잘하는 거야.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잖아. 어린데 거의 축구 도사야.
└신재욱이 진짜 잘하는 것 같긴 한데, 피지컬이 아쉬운 듯.
└그래도 무게중심은 낮아서 잘 버티잖아. 그리고 이제 겨우 중1이야.
신재욱 쟤, 지보다 형들이랑 경쟁하는 거라고.
└근데 2화까지는 신재욱이랑 이택현만 보였는데, 3화 보니까 다른 애들도 다 잘하네.
└그러니까 천재축구 FC에 뽑혔겠지.
└천재축구 FC 아님ㅋ 축구천재 FC임ㅋ
└별것도 아닌 걸 따지고 있네. 너 친구 없지?
이어서 4화에선 축구천재 FC가 배천중학교를 상대로 고전하는 전반전의 상황이 방영됐다.
조직력에서 밀리며 골을 내주고, 당황하는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며 방송은 끝이 났다.
└엥? 너무 털리는데?
└패스 미스 실화냐? 조직력 망했네ㅋㅋㅋㅋㅋ
└축구천재들이라더니, 걍 오합지졸인데? 중학교 팀 하나 못 이겨서 나중에 프로들이랑은 어떻게 붙겠다는 거야? 기가 차네ㅋ
└프로들이랑 붙는대? 에이, 설마…….
└실화야. 나중에 국내 프로팀이랑 붙고, 해외 유명 클럽 유스팀이랑도 붙는다더라.
└ㅋㅋㅋㅋㅋ프로가 ㅈ밥으로 보이나ㅋㅋㅋ 이딴 경기력으로 무슨ㅋㅋㅋㅋㅋ
└걍 고딩팀 하나 데려와도 못 이길 것 같은데?
그리고 며칠 뒤.
경기가 끝날 때까지의 일들을 담은 5화가 방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