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 * *
진민호 감독.
전 국가대표이자, 프로선수로 활약했었고.
지금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축구천재 FC의 감독직까지 맡은 남자였다.
그리고.
신재욱에게 그의 첫인상은 좋지 못했다.
첫 촬영부터 지각, 장난스럽게 넘어가려는 뻔뻔한 태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조금씩 알게 될수록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눈치도 없고, 뻔뻔하고, 승부욕이 다소 강하긴 했지만.
훈련 때 최선을 다해서 축구천재 FC 선수들을 가르쳤고.
끝나고 남은 신재욱과 이택현에겐 맛있는 밥까지 사줬다. 더불어 각자의 집까지 자차로 태워다주기까지 했다.
단점도 있지만, 축구에는 진심이고 대화가 통하는 남자.
그게 바로 축구천재 FC의 진민호 감독이었다.
그래서 신재욱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그를 찾아갔다.
“뭐?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고 싶다고?”
진민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고.
신재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갑자기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다라…… 재욱이 네 실력이면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잘할 것 같긴 한데, 음… 자신 있어?”
“그럼요.”
“이유 좀 물어봐도 될까?”
진민호 감독이 이유를 물은 지금.
신재욱과 감독의 주변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신재욱은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었다. 조금도 티를 내고 있진 않았지만.
“공격형 미드필더가 더 자신 있는 포지션이라서요.”
“정말? 근데 왜 지금까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거야? 듣자 하니 대회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며?”
“팀에 필요한 역할이었으니까요.”
“음…….”
진민호 감독은 잠시 고민했다.
갑작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신재욱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는 걸 본 적도 없고.
하지만 신재욱의 실력을 의심하진 않았다.
지난번 촬영 때, 일대일 대결에서 실력을 확인했고.
촬영이 끝난 이후에 따로 한 훈련에서는 여러 번 경악했었으니까.
‘괜찮겠지 뭐.’
결국, 진민호는 신재욱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시키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신재욱은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몸을 풀기 시작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공격적인 감은 한 번 떨어지면 다시 끌어올리기가 힘들어.’
가장 좋은 건 공격수로 뛰며 감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았다.
아직 신재욱의 몸은 공격수로 뛰기에 부족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공격수로서 필요한 능력들이 부족했으니까.
그나마 경험으로 비빌 수 있는 포지션이 공격형 미드필더였기에, 감독에게 제안했던 것이었다.
‘곧 경기 시작하겠네.’
공을 컨트롤하는 신재욱의 표정은 밝았다.
‘오랜만에 뒤 신경 안 쓰고 공격적으로 해보겠네.’
수비보단 공격하는 걸 더 좋아했고, 오늘 제대로 공격을 해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천재라는 아이들이랑 호흡을 맞추는 거니까, 능력치도 더 잘 오르겠지.’
이택현과 처음 훈련을 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축구천재 FC 팀원들과의 경기에서도 성장 속도가 빠를 것 같다는 기대감도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 * *
환생 전.
신재욱은 스트라이커로 뛸 때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하지만 팀이 필요로 할 때면 얼마든지 다른 포지션에서도 뛸 준비가 되어있던 선수였다.
자연스레 중앙 미드필더, 윙어,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등, 여러 포지션을 소화해냈고 전부 잘 소화해냈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였음에도, 팀의 상황에 따라서 여러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고.
신재욱은 지금도 다른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 축구천재 FC와 배천중학교의 초반 기세 싸움이 치열한데요? 양 팀이 서로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 초반부터 오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신재욱 선수의 움직임이 눈에 띄네요. 이 선수, 전방에서 공을 연결해주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 맞습니다. 신재욱 선수는 압박을 받아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동료에게 공을 연결해주네요. 그만큼 본인의 실력에 자신감이 있다는 거겠죠?
― 기본기가 아주 잘 다져진 선수입니다. 이 선수가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팀의 핵심 선수라던데, 과연 대단한 재능을 지녔네요. 축구천재 FC에 아주 걸맞은 선수입니다!
게다가 축구천재 FC의 다른 선수들도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수들답게, 준수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 다른 선수들의 칭찬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최진태 선수도 수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이택현 선수도 최전방에서 좋은 볼 키핑 능력을 보여주며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 놀라운데요? 아무리 천재라는 선수들을 모아놨다고는 해도, 호흡을 맞출 시간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도 배천중학교라는 강팀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 그만큼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뛰어나다는 뜻이겠죠.
해설들의 말처럼 놀라운 경기 양상이었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들을 모아놓아도 호흡이 안 맞으면 패배할 수 있는 게 축구였다.
실제로 지금 축구천재 FC 선수들의 호흡은 잘 맞는 편이 아니었다.
패스 미스도 종종 발생했고, 사인이 안 맞는 장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중학교 최상위권 팀인 배천중학교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엔 신재욱이 있었다.
― 신재욱이 공을 잡습니다! 배천중학교 선수들이 빠르게 둘러싸네요! 오늘 배천중학교의 선수들이 신재욱을 굉장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휘익!
신재욱은 다리를 빠르게 휘둘렀다. 조금만 더 공을 끈다면 3명의 선수에게 압박을 받게 될 상황이었다. 짧은 패스로 풀어가야 했다.
툭!
최전방에 있던 이택현에게 공의 밑부분을 찍어 차서 넘겼다. 이택현은 센스가 좋은 선수답게 날아오는 공을 이마로 떨어뜨려 놨다. 떨어진 공은 다시 신재욱이 받아냈다.
― 우오오오! 신재욱과 이택현의 호흡이 엄청납니다! 현재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답네요! 짧은 패스 몇 번으로 배천중학교 선수들의 압박을 벗어났습니다! 신재욱, 전진합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신재욱이었기에, 압박을 벗어난 현재 위치는 배천중학교의 페널티박스 바로 앞쪽이었다. 골대와의 거리가 가까운 상황. 직접 슈팅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
배천중학교의 수비수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대회 때, 신재욱에게 당한 기억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막아!”
“신재욱은 어떻게든 막아야 해!”
“그냥 태클로 끊어!”
수비수들이 움직였다.
신재욱의 플레이를 방해하기 위해서.
그러나 신재욱의 발은 이미 공을 찍어 찼다.
환생 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원하는 곳에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떨어뜨리기 위해 수없이 많이 연습했던 패스.
지금 이 순간, 연습의 결과가 나왔다.
투웅!
골키퍼와 2m 정도 떨어진 위치.
그곳에 공이 떨어졌다.
그리고.
중학생 중 최고의 공격수인 이택현이 튕기는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퍼어엉!
살짝 뜬 공을 정확한 발리슛으로 때려내기란 어렵지만.
이택현은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선수답게, 그걸 해냈다.
― 고오오오오오올! 들어갔습니다! 신재욱과 이택현의 멋진 합작품이 나옵니다!
― 이 두 선수, 수준이 너무 높은데요? 배천중학교 선수들이 절대로 못하는 선수들이 아닌데, 이 선수들을 단 두 명이 완벽하게 뚫어내고 골까지 만들어내네요! 정말 경이로운 플레이입니다!
― 축구천재 FC! 첫 출발이 아주 좋습니다!
골을 넣은 이택현은 아무런 세레머니도 하지 않았다.
소속팀에 대한 예의였다.
조용히 고개를 숙인 뒤, 신재욱에게 달려와 엄지 하나를 올려줄 뿐이었다.
“재욱아, 패스 너무 좋았어.”
“오늘 좋은 패스 몇 번 더 갈 거야. 그리고 소속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거, 보기 좋네.”
“……당연한 걸 가지고.”
“당연한 것도 못 하는 사람이 더 많더라.”
“……네가 칭찬해주니까 되게 민망하네. 해트트릭할 수 있게 꿀 패스나 넣어줘.”
“이미 말했잖아. 좋은 패스 몇 번 더 갈 거라고.”
“……알겠어.”
이택현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자리로 돌아갔고.
그 모습을 보던 신재욱은 피식 웃으며 허공을 바라봤다.
허공엔 도움을 기록한 것에 대한 보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패스가 좋아집니다!]
[패스가 좋아집니다!]
…….
…….
패스가 좋아졌다는 메시지가 여러 개 떠올랐고.
이어서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까지 떠올랐다.
[패스가 1 올랐습니다!]
신재욱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
기다렸던 메시지였다.
최근 들어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를 자주 보는 편이지만.
능력치의 수치가 60인 능력들은 오르지 않고 있었다.
해당 능력이 좋아졌다는 메시지만 뜰 뿐, 능력치 자체는 요지부동이었는데.
‘60이 된 능력치들은 오를 생각을 안 하더니, 이제 오르네.’
드디어 올라서 61이 됐다.
‘50대랑 60대의 능력치 오르는 속도가 너무 차이가 커…… 이래서 언제 80대를 찍고 90대를 만들지…? 아니야, 이런 생각하지 말자. 무조건 만들어낸다.’
신재욱은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떻게든 능력치를 올려서 환생 전의 실력을 되찾고, 더 나아가 환생 전의 실력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 * *
첫 골이 나온 이후.
자존심을 구긴 배천중학교는 공격적인 운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공격은 날카로웠고, 이에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흔들렸다. 제아무리 천재들을 모아놨다고는 한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배천중학교의 공격을 막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 배천중학교가 측면을 이용한 공격을 잘 활용하고 있네요! 조직력에서는 확실히 축구천재 FC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아……! 축구천재 FC의 수비수들은 집중해야 합니다!
― 이렇게 수비가 허물어지면…… 아! 배천중학교의 고동찬이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냅니다!
― 방금 수비는 조금 아쉬운데요? 고동찬 선수가 너무 편하게 슈팅할 수 있게 놔뒀어요.
동점 골은 이른 시간에 나왔다.
게다가 축구천재 FC는 또다시 조직력에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역전 골까지 허용했다.
― 아…… 들어갔습니다…! 배천중학교…… 강하네요! 대회에서도 매번 좋은 성적을 내는 강팀다운 경기력입니다. 반면에 축구천재 FC는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네요.
― 특히 수비조직력이 아쉽습니다. 분명히 아쉬운 점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방송을 보시는 시청자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아직 호흡을 거의 맞춰보지 못한 상태라는 겁니다. 점점 더 나아질 테니, 비난보단 응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호흡이 맞을 수는 없는 거죠. 그리고 점점 경기가 진행될수록 호흡이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거고요.
축구천재 FC는 흔들렸다.
마음처럼 팀플레이가 되지 않는 것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때였다.
“얘들아! 집중해! 잘하고 있으니까, 위축되지 말고 자신감 있게 해!”
진민호 감독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선수들의 자신감을 북돋웠다. 효과도 있었다.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고, 배천중학교의 조직적인 압박을 이겨내며 조금씩 전진했다.
그리고 지금.
“재욱아!”
팀 동료 중 하나가 신재욱에게 공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