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 * *
‘쉽지는 않았어.’
신재욱은 진민호와의 일대일 대결을 떠올렸다.
한국에서 국가대표로 뛰었던 선수답게 실력이 좋았다. 기본기도 좋은 편이었고, 기술도 뛰어났다.
그러나 유럽 1부 리그 선수들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졌다. 현역에서 은퇴해서인지 판단력도 날카롭지 못했다.
그래서 이길 수 있었다.
‘예전에 수비 연습을 많이 해둔 게 이렇게도 도움이 되네.’
현재 신재욱의 몸 상태는 환생한 직후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환생한 직후와 비교하면 좋아졌다는 거지,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부족해.’
냉정하게 말해서 과거의 신재욱이었다면 손쉽게 이겼을 상대가 진민호였다.
신재욱의 눈엔 진민호의 빈틈이 너무 많이 보였다.
하지만 그 빈틈 중 노릴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지금의 신체 능력이 좋지 못했으니까.
결국, 타이밍을 노린 태클을 선택했고 성공했다.
‘되게 집중했네.’
얼마나 집중했던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나저나 촬영을 되게 길게 하네?’
촬영은 길게 이어졌다.
각종 훈련, 감독과의 면담, 미니게임 등, 각종 스케줄을 전부 소화한 뒤에야 끝이 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음 촬영 때 있을 시합에서 꼭 이기자. 다들 수고했어!”
진민호의 말을 끝으로 제작진들과 선수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다만, 집으로 가지 않고 촬영장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재욱아, 정말 늦게 가도 상관없어?”
“예. 좀 늦게 가도 될 것 같아요. 감독님은요?”
“나야 상관없지. 막말로 내일 들어가도 돼. 아! 그리고 교통은 걱정하지 마. 내가 차로 집까지 태워다줄게.”
“그래도 될까요?”
“그러엄~! 부담 갖지 마.”
“감사합니다.”
대답을 한 신재욱이 씨익 웃었다.
‘이게 웬 떡이야.’
촬영이 끝나기 전, 신재욱은 진민호에게 제안을 받았다.
촬영이 끝나면 같이 훈련을 더 하고 가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마치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몬스터가 계속 덤벼주는 느낌이었다.
당연하게도 신재욱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택현이도 재욱이랑 같이 있다가 갈 거지?”
“예. 저는 신재욱이랑 라이벌이어서 항상 같이 훈련해야 돼요.”
“하하! 그래, 너도 굉장히 잘하더라. 촬영 내내 여러 번 놀랐어.”
“흐흐! 정말요?”
“정말이야. 계속 열심히 하면 아주 좋은 프로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우오오오오! 열심히 해서 꼭 프로선수 될 거예요! 진민호 감독님, 저랑도 일대일 훈련해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늘 그랬듯 이택현 역시 함께하기로 했다.
* * *
“다녀왔습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온 신재욱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두 분 모두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지만, 신재욱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기다렸다는 것을.
“촬영 잘했니? 어땠어?”
“아들! 밥은? 배고프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질문을 쏟아내셨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질문을 받아서 정신은 없지만, 기분은 좋았다.
“저 어디 안 도망가니까, 하나씩 물어봐 주세요.”
“난 질문 끝. 얼굴 보니까 잘하고 온 모양이네.”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소파에 앉으셨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신재욱에게로 고정돼있었다.
“밥 먹어야지?”
“예 어머니. 밥 먹고 왔는데도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또 배고파요.”
“운동선수가 배고프면 안 되지. 기다려봐. 엄마가 금방 밥 차려줄게.”
“오! 그럼 전 얼른 씻고 올게요!”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 신재욱은 거울을 봤다.
배가 볼록 나와 있었다.
진민호 감독이 사준 고기를 실컷 먹고 왔기 때문에 나온 배였다.
‘배 터지겠네.’
너무 배가 부른 상태였다.
원래라면 밥을 먹지 않았겠지만,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코를 간질이는 갈비찜 냄새를 맡았으니까.
‘힘들게 장 봐와서 만드셨을 텐데 어떻게 안 먹겠어?’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갈비찜은 배가 부르더라도 먹고 싶었으니까.
“재욱아, 맛이 어떠니? 엄마가 배랑 양파도 다 직접 갈아서 양념한 건데.”
“엄청 맛있어요! 고기가 부드럽고, 양념도 밥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죠?”
신재욱은 진심이었다.
어머니께서 해주신 갈비찜은 정말 맛있었다.
어지간한 식당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덕분에 배부른 상태였음에도, 신재욱은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어머니는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환하게 웃으시며 정말 맛있냐는 질문을 반복하셨다.
지금도 그러셨다.
“진짜야? 그렇게 맛있어?”
“예. 놀라울 정도로 맛있어요.”
“어머, 얘가 날이 갈수록 립서비스가 좋아지네? 엄마 기분 좋으라고 괜히 하는 말 아니지?”
“진심이에요. 지금까지 먹어봤던 갈비찜 중…… 정말 맛있어요.”
“응? 방금 무슨 말 하려던 거 아니니? 엄마가 한 갈비찜이 제일 맛있다고?”
“아… 아뇨. 다른 말이었어요. 물론 갈비찜은 너무너무 맛있어요.”
신재욱은 황급히 말을 돌렸다. 차마 거짓말을 할 순 없었으니까.
‘죄송해요. 최고의 갈비찜은 따로 있어서요.’
그에게 최고의 갈비찜은…… 돌아가신 친어머니께서 해주셨던 갈비찜이었으니까.
* * *
축구천재 FC의 첫 번째 방영분이 방영됐다.
시청률은 대박이었다.
9%.
웬만큼 잘나간다는 드라마보다도 높은 시청률이었다.
게다가 그런 드라마들도 첫 방영분의 시청률은 평균적으로 높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였다.
당연하게도 시청자들의 관심도 대단했다.
특히 국내 축구팬들의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축구천재 FC 대박인데? 첫 방 시청률 9% 나왔대.
└시청률 나올 만하던데?ㅋㅋㅋ 재밌더라.
└ㅋㅋㅋㅋ재밌긴 했어. 말만 천재가 아니라, 진짜 재능있는 애들을 데려온 게 마음에 들었어. 특히 이택현의 몸놀림이 장난 아니던데?
└난 신재욱이 기대되더라. 진성 축덕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최근에 했던 중학교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팀이 대한중학교거든? 근데 그 학교의 에이스가 신재욱이야.
└아 진짜? 우승팀의 에이스면 확실히 잘하겠네. 포지션은 뭔데?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중앙 미드필더처럼 뛰기도 해. 또 어떨 땐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뛰기도 하고. 아, 그리고 더 대박인 건 신재욱 1학년임ㅋ
└1학년인데 중학교 우승팀의 에이스라고? 걔 맞지? 허옇고 좀 마른 애. 겉으론 전혀 에이스처럼 안 보이던데? 비리비리해 보이고…….
└기술이 좋겠지. 그리고 중학생이잖아. 피지컬 영향을 덜 받는 나이야.
└나는 짧은 스포츠 머리한 애가 인상 깊었어. 말하는 건 순둥순둥한데, 피지컬은 성인이라고 해도 믿겠더라.
└난 걔는 별로.
시청자들과 축구팬들은 2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축구천재 FC 2화가 방영되었을 때, 1화보다 훨씬 더 뜨거운 반응이 일어났다.
당연한 일이었다.
축구천재 FC의 감독이자, 전 국가대표 선수인 진민호.
그를 상대로 고작 중학교 1학년생인 이택현이 좋은 실력을 보여줬고.
마찬가지로 중학교 1학년생인 신재욱이 진민호를 이겨버리는 장면이 방영됐으니까.
└ㄷㄷㄷㄷㄷ뭐냐? 신재욱 쟤 뭐야?;;;;;; 미친 거 아니야???
└진짜 미쳤는데……? 진민호는 국대 출신이고, 꽤 잘했던 선순데…? 심지어 은퇴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2년인가, 3년인가? 하여튼 그 정도밖에 안 됐을걸?
└은퇴한 지 몇 년 안 된 국가대표 출신 선수를 중학교 1학년 선수가 이긴다고……?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말이 안 되니까 축구천재 FC겠지.
└신재욱 ㅈㄴ침착하네. 타이밍 딱 맞춰서 공 빼내는 거 봤음? 저런 애가 잘 성장해서 국대에 들어와야 하는데.
└지렸다 진짜ㅋㅋㅋㅋ 신재욱 같은 재능이면 유럽에서 뛸 수도 있지 않을까?
└위에 미쳤냐? 유럽에는 저런 애들이 몇 트럭은 있을걸? 그리고 남미엔 더 많을 거고.
└와나!!!!! 3화 기대하게 만드네ㅋㅋㅋㅋㅋㅋ 아오! 시험 기간인데, 이걸 어떻게 안 봐? 무조건 봐야지.
그리고.
2화가 방영될 때쯤.
“촬영 시작합니다!”
신재욱은 3화와 4화에 방영될 촬영분을 찍기 위해 촬영장에 와있었다.
‘다들 긴장을 조금 한 것 같네.’
축구천재 FC의 선수들은 일찍부터 촬영장에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선수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드러났다.
오늘 축구천재 FC의 첫 경기가 펼쳐지게 된다는 게 긴장의 이유였다.
축구천재 FC의 멤버들은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정도로 강심장인 선수들이었지만, 방송에 나가는 경기는 또 다른 부담이었다.
게다가 만나게 될 상대가 강팀이라는 것이 선수들에게 더욱 큰 부담을 줬다.
‘배천중학교… 잘하는 팀이지.’
신재욱은 배천중학교를 알고 있었다.
몇 달 전에 우승했던, 전국대회에서 만난 팀이었으니까.
당시 대한중학교를 꽤 고전하게 만들었던 학교이자, 이택현이 에이스로 있던 학교였으니까.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택현은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네?’
배천중학교 선수들은 계속해서 이택현을 향해 힐끗힐끗 시선을 주고 있었는데.
당사자인 이택현은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택현은 오히려 카메라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처럼 공을 튕기는 트래핑을 하며 몸을 풀고 있지만, 평소답지 않게 실수가 자주 나오고 있었다.
신재욱은 그런 이택현에게 다가갔다.
“이택현.”
“어? 왜?”
“오늘 붙을 상대가 네가 다니던 학교인데, 별 느낌 없어?”
“별로. 지금은 그냥 이겨야 하는 상대잖아.”
“오.”
신재욱이 작게 감탄했다.
이택현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못 했으니까.
반면, 이택현은 그런 신재욱의 반응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놀라고 그래?”
“안 어울리는 말을 하니까.”
“뭐가 안 어울려? 나 원래 쿨한 놈이야.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한다고.”
“……그래.”
“반응이 좀 밋밋한데? 재욱아, 너 지금 내 말 안 믿고 있지?”
“믿어.”
“거짓말하네! 전혀 안 믿는 표정인데?”
“내 표정이 뭐가 어때서?”
“계속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있잖아!”
“나 원래 웃는 상이야.”
“허! 웃는 상은 개뿔!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근데 재욱아, 넌 긴장 안 돼? 너도 이렇게 카메라 많은 곳에서 뛰는 건 처음이잖아.”
“똑같지 뭐. 그냥 평소처럼 하면 돼.”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TV에 나가잖아, TV에! 우리 경기를 부모님, 친척, 친구들이 다 볼 거라고!”
“그게 뭐? 어차피 나중에 프로선수로 뛸 거 아니야?”
“맞지. 근데 그건… 왜?”
“그때도 이렇게 떨 거야? 더 많은 사람이 볼 거고, 엄청난 숫자의 관중들이 환호와 야유를 보낼 텐데?”
“떠, 떨긴 누가 떨었다고 그래? 그냥 네가 떨까 봐 걱정해준 걸 가지고……!”
이택현이 황당하다는 듯 짜증을 냈다.
이어서 공을 튕기는 트래핑을 시작했다. 트래핑은 조금 전보다 안정되어 보였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긴장이 조금 풀린 것 같네.’
이택현은 축구천재 FC 내에서 가장 호흡이 잘 맞는 동료였다.
그런 동료가 긴장해서 실력 발휘를 못 한다?
신재욱은 그런 상황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택현에게 접근했고, 대화를 나누며 긴장을 풀어준 것이다.
‘이제 나도 몸 좀 제대로 풀어볼까?’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이제 자신도 몸을 달굴 때라고 생각하며, 신재욱은 공을 주워들었다.
하지만 이내 공을 다시 내려놨다.
더 먼저 할 일이 생각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