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 * *
대회가 끝난 이후.
신재욱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가서 4교시까지 수업을 듣고, 이후엔 훈련에 참여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런 와중에 메이저 방송사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 ‘축구천재 FC’에 메일도 보냈다.
모든 게 순조로운 것 같았지만, 불만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축구천재 FC에 들어갈 인원을 뽑는 테스트가 한 달 뒤에나 펼쳐진다는 것.
신재욱에겐 쓸데없이 느린 일 처리로 느껴졌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일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신재욱이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새로 전학 온 친구니까, 모두 잘 대해줘. 특히 신재욱!”
교탁 앞에 선 선생님의 부름.
신재욱은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로 대답했다.
“…예, 선생님.”
“택현이도 축구를 하는 친구니까 네가 잘 챙겨줘. 축구도 되게 잘한다더라.”
“…….”
“반응이 왜 그래?”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옆에 서 있는 전학생이.
배천중학교의 에이스이자, 동네 골목에서 만났던 양아치 이택현이라는 사실은.
황당한 것을 넘어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의 말에 신재욱은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재욱이 옆에 자리도 비었네? 택현아, 저기로 가서 앉아. 재욱이가 앞으로 널 많이 도와줄 거야.”
수업이 끝난 직후.
쉬는 시간이 된 지금, 신재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택현을 바라봤다.
“네가 여기 왜 왔냐?”
그런데, 이택현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왜 오긴, 너랑 같이 축구 하려고 왔지.”
“나랑 축구를 하려고 전학까지 왔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말 되지. 내가 여기 왔잖아.”
“들리던 소문으로는 대회 끝나고 바로 프로구단에 입단한다던데?”
“아! 그거? 안 가기로 했어.”
“…왜?”
“너도 스카우터들의 제안을 다 거절했다며.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거 아니야? 예를 들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던가.”
“……그래서 나랑 축구를 왜 같이하려는 건데?”
“네가 제일 잘하니까. 네 옆에 붙어있으면 나도 같이 잘해질 것 같아서.”
“하…… 벌써 피곤하다.”
“너무 피곤해하지 마. 그리고 나 진짜 이제 애들 안 괴롭혀.”
“그냥 원래 다니던 학교로 가면 안 되냐?”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리고 내가 여기로 전학 오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아?”
이택현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반면.
“미치겠네.”
신재욱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귀찮은 일이 생겨버렸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졌다.
* * *
“배천중학교에서 전학 온 1학년 이택현입니다!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대한중학교 축구부에 이택현이 들어왔다.
신재욱이 그랬던 것처럼 선수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택현에 대한 소문이 워낙 안 좋았으니까.
그러나.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이택현의 모습에 선수단의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소문이 과장됐었나? 훈련되게 열심히 하는데?”
“그러게. 성격도 꽤 싹싹한 것 같고.”
“소문만 들었을 때는 무시무시한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이래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 건가?”
“그리고 실력도 미쳤어. 이택현 쟤, 천재야. 대회 때도 실력 장난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같이 훈련하니까 확실히 느껴지네.”
“1학년인데 배천중 에이스였잖아. 그거면 말 다 했지 뭐.”
반면, 신재욱의 얼굴엔 여전히 귀찮음이 가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재욱아 방금 보여준 퍼스트 터치, 그거 어떻게 한 거야? 그리고 조금 전에 몸 돌릴 때 뒤꿈치로 공 컨트롤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야?”
틈만 나면 이택현이 옆에 딱 달라붙어서 질문을 쏟아냈으니까.
물론 신재욱은 귀찮은 행동을 받아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야.”
“엉? 재욱아 왜?”
“훈련할 때 말 걸지 마.”
“말을 걸지 말라고? 왜? 집중 안 돼서? 그럼 궁금한 것들 훈련 다 끝나고 물어봐도 돼?”
“하…….”
신재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택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적이었다.
삐이이익!
코치가 호루라기를 불며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이택현은 여전히 신재욱을 졸졸 따라다녔다.
그 모습을 본 코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재욱이랑 택현이 벌써 친해진 거야? 야, 너희 천재끼리만 어울리고 그런 거 아니지?”
“전혀 아닙니다.”
신재욱은 강하게 부정했다.
이택현 같은 양아치랑은 친해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젠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코치는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긴, 괜히 부끄러우니까 그러는 거지? 그래 너희 둘, 오늘 연습경기 때 같은 팀에 넣어줄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허!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리고 어차피 너희 둘은 호흡을 많이 맞춰볼수록 팀에 도움이 되니까 앞으로도 같은 팀으로 많이 넣을 거야.”
신재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는 귀찮게 굴지 못하게끔 연습경기 때 혼내줄 생각이었는데, 같은 팀이 되어버렸다.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됐다.
대한중학교 선수들은 평소처럼 두 개의 팀으로 나뉜 채,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냥 내 할 일만 하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재욱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택현과 같은 팀이 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
때문에, 신재욱은 이택현과 호흡을 맞추는 데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필요할 때면 원터치 패스를 주고받았고, 킬패스도 찔러넣어 줬다.
‘제법이네.’
신재욱의 눈이 빛났다.
대회에서 만났을 때도 알아봤지만, 이택현의 재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프로선수가 될 수 있을 걸로 보였고.
만약 노력까지 한다면 그 위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재능이었다.
그런데 이때.
“응?”
신재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습경기가 시작된 이후로 10분 정도가 흘렀고, 그동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패스가 좋아집니다!]
[개인기가 좋아집니다!]
[민첩이 좋아집니다!]
“뭐야? 메시지가 왜 이렇게 잘 떠?”
평소보다 메시지가 더 잘 뜨고 있다는 것.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능력치가 높아질수록 메시지가 생성되는 횟수는 줄어왔었으니까.
줄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늘어나니 이상함을 느꼈던 것이었다.
‘설마…!’
신재욱의 시선이 이택현에게로 향했다.
‘쟤 때문인가?’
바뀐 것이라곤 이택현이 축구부에 합류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의심이었다.
‘조금 더 확인해보자.’
아직은 그저 의심 단계였다.
신재욱은 확신을 얻기 위해서 이택현과 호흡을 맞추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반전이 빠르게 흘러갔다.
삐익!
전반전이 끝나고 주어진 쉬는 시간.
B팀에 속했던 선수들이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오! 코치님, 이거 밸런스 너무 안 맞는데요? 저희가 상대가 안 되잖아요.”
“신재욱이랑 이택현, 쟤네 오늘 호흡 처음 맞춰본 거 맞아요? 말이 안 되는데……?”
“코치님! 신재욱이랑 이택현 붙여놓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너무 빡세요 진짜로.”
“신재욱을 막으려고 하면 이택현한테 뚫리고! 이택현을 막으려고 하면 신재욱한테 뚫리고! 아오! 답이 안 나오네!”
코치가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A팀과 B팀의 전력에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 에이스 재욱이랑 배천중학교의 에이스였던 이택현을 붙여놓았다는 것만으로 이 정도 차이가 날 줄은 몰랐는데…… 둘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잖아?’
신재욱과 이택현이 한 팀으로 있는 A팀은.
대한중학교의 주전급 선수들이 모인 B팀을 완전히 압도했다.
겨우 전반전이 끝난 상황에서 양 팀의 스코어가 5 대 0까지 벌어졌을 정도로.
* * *
같은 시각.
신재욱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맞잖아?’
어느 정도의 확신이 생겼다.
이택현과의 호흡을 맞출 때, 더 많은 성장이 이뤄진다는 확신이.
‘이택현과 호흡을 맞출 때 메시지가 자주 나오고 있어.’
전반전이 진행되는 내내 확인해본 결과, 이택현과 호흡을 맞출 때마다 메시지가 잘 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 신재욱의 눈앞엔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들까지 떠 있었다.
[패스가 1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올랐습니다!]
이 순간, 이택현을 보던 신재욱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럽게 변했다.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복덩이였나?”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엥? 뭔 소리야? 복덩이? 내가 복덩이라고? 근데 재욱아 너 날 보는 눈빛이 너무 느끼한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거야? 그런 거야? 그럼 이제 나한테 축구도 알려줄 거야?”
“……넌 말이 왜 이렇게 많냐?”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지. 나도 원래 이렇게 말이 많지는 않아.”
“됐고, 이제 후반전 시작되니까 집중이나 해.”
“오? 확실히 말투가 부드러워졌는데? 원래는 내가 말 걸 때마다 때릴 것처럼 살벌하게 쳐다보더니, 이젠 그래도 사람 보듯이 봐주네!”
“집중하자고.”
“오케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뻔뻔한 놈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신재욱은 자신의 포지션으로 걸어 들어갔다.
후반전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진짜 잘하네.’
후반전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신재욱은 작게 감탄했다.
그가 찔러주는 패스를 이택현은 별다른 실수 없이 골로 연결하고 있었다.
좋은 패스를 실수 없이 잘 받아서 골을 넣는 것은.
실력이 좋아야 하고, 집중력도 높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또한, 강심장이기도 해야 한다.
이걸 한 경기에서 꾸준히 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프로선수들마저도 항상 해내지는 못한다.
그런데.
고작 14살의 이택현이 그걸 해내고 있었다.
이택현은 전반전과 후반전이 진행되는 중인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재능을 지닌 것 같은데?’
신재욱의 눈이 빛났다.
아주 재밌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눈빛이었다.
* * *
한 달이 흘렀다.
신재욱에겐 환생한 이후로 가장 즐거웠던 한 달이었다.
“엄청 성장했구만.”
이택현의 등장으로 인해서 능력치의 성장이 큰 폭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름] 신재욱
[나이] 14(만 12세)
[키] 164cm
[체력] 58 [슈팅] 56 [패스] 60 [속도] 60
[민첩] 57 [대인방어] 51 [태클] 51 [몸싸움] 50
[탈압박] 49 [드리블] 56 [개인기] 55 [헤딩] 58
[특성] 뛰어난 집중력(D), 그라운드의 파이터(D), 골잡이의 본능(C), 낮은 무게중심(D), 초급 볼 컨트롤(D)
상태창을 확인한 지금, 신재욱이 씨익 웃었다.
처음 환생을 했을 때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50을 넘지 못했었는데, 이젠 거의 모든 능력치가 60을 바라보고 있다.
엄청난 성장이었다.
체감도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환생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답답함이 많이 줄었다.
게다가 키도 1cm 커서 164cm가 됐다.
축구에서 키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은 것보단 큰 게 유리했다.
기분 좋은 변화였다.
“축구 할 맛 나네.”
그리고.
신재욱을 기쁘게 만들 일은 또 있었다.
“오! 됐다!”
구식 폴더폰.
그곳에 날아온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신재욱의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축구천재 FC의 멤버로 1차 합격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