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 * *
자신에게만 보이는 반투명한 메시지들.
쉽진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신재욱은 이런 이상한 현상에 적응했다.
어떤 상황에서 메시지가 뜨는지도 대충이지만 파악했다.
‘보통 훈련을 할 때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을 때, 메시지들이 뜨곤 하지.’
그런데.
“이게 갑자기 왜 뜬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었다.
아직 경기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메시지가 떠올랐다.
게다가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던, 능력치 관련 메시지도 아니었다.
[특성이 생성됩니다!]
[‘초급 볼 컨트롤’을 습득합니다!]
무려 특성이 생성되었다는 메시지였다.
“초급 볼 컨트롤이라고?”
신재욱의 눈이 커졌다.
가뜩이나 특성의 효과가 뛰어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초급 볼 컨트롤’은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확인해보자.”
신재욱의 눈앞에 새로 얻은 특성의 정보가 떠올랐다.
[초급 볼 컨트롤]
[등급] D
[효과] 공을 다루는 게 편해집니다.
* * *
신재욱의 눈이 빛났다.
입꼬리도 높게 치솟았다.
“미쳤네!”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안 그래도 볼 컨트롤 부분에서 답답했는데, 너무 잘됐어.”
신재욱의 지금 몸은 축구 재능이 없다.
놀라울 정도로 재능이 없다.
당연하게도 볼 컨트롤도 생각처럼 안 됐다. 연습으로 바꿀 수준이 아니었다.
오로지 관련 능력치를 높이는 것만으로 개선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인데, 볼 컨트롤 관련 특성을 얻게 됐다.
신재욱으로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 경기 준비하세요!”
주심의 말에 선수들이 움직였다.
선수들 모두 각자의 위치를 향해 움직이며 심호흡을 했다.
애써 긴장감을 떨쳐보려 했지만, 워낙 어린 선수들이었기에 얼굴에 긴장감이 드러났다.
반면, 신재욱은 달랐다.
여유가 흐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덤덤했다.
‘다들 긴장했구나. 하긴 결승전인 데다가 프로팀 스카우터들도 보러왔으니 얼마나 떨리겠어. 근데 언제 시작하는 거야?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지금, 신재욱은 그저 경기가 빨리 시작되기만을 바랐다.
‘결승전이니까 능력치도 잘 오르겠지? 이럴 때가 기회야. 꿀을 빨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빨아야 해. 그리고 새로 얻은 특성의 효과도 느껴봐야지.’
얼른 능력치를 올리고 싶었고, 새로운 특성을 맛보고 싶었으니까.
그때였다.
마침 주심이 경기 시작을 알렸다.
삐이이익!
신재욱은 상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오늘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 팀은 도정중학교였다.
앞서 만났던 배천중학교나 기현중학교만큼이나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학교였다.
비록 특별히 튀는 선수는 없지만, 워낙 조직력과 선수들의 실력이 탄탄한 팀.
그런 도정중학교의 실력은 결승전이 시작된 지금도 잘 드러나고 있었다.
― 도정중학교 선수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좋네요! 괜히 결승전에 올라온 팀이 아니라는 듯, 유기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급하지 않네요. 도정중학교가 측면과 중앙으로 공을 돌리며 대한중학교 선수들의 압박을 효과적으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한중학교의 압박이 잘 통했는데, 오늘은 잘 통하지 않네요?
― 그만큼 도정중학교가 대한중학교를 잘 연구해온 거겠죠.
대한중학교 선수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패스플레이와 끊임없이 빈 공간을 찾는 부지런한 오프더볼 움직임.
도정중학교는 확실히 단단했다.
중학교 수준에선 부서지지 않는 강철처럼 보일 정도.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도정중학교의 단단함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 오오! 신재욱이 공을 끊어냈습니다! 아! 도정중학교의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는데, 신재욱이 좋은 예측 수비로 흐름을 끊어냈습니다!
― 신재욱 선수의 이런 플레이는 볼 때마다 신기하네요! 활동량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면서도 어느 순간 상대의 패스를 컷팅해내는 플레이를 매우 잘하죠!
― 시야가 굉장히 넓고, 상대의 심리를 읽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입니다.
신재욱은 도정중학교가 좋은 흐름을 타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끊어냈다.
쉽지는 않았다.
몸이 둔하고, 생각한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해냈다는 게 중요했다.
툭! 툭!
신재욱은 동료와 공을 한 차례 주고받았다.
이 플레이로 상대의 압박이 헐거워졌다. 더구나 전방에 펼쳐진 공간이 제법 넓었다. 그렇다면 속도를 낼 타이밍이었다.
투욱!
신재욱이 조금 길게 공을 치고 달렸다.
동시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 확실히 달라!’
공을 발로 컨트롤했을 때 느껴진 감각.
그 감각이 달라졌다. 일평생 축구를 해온 신재욱이었기에,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엄청 바뀐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히 좋아졌어.’
신재욱은 알고 있었다.
이 변화가 새로 얻은 ‘초급 볼 컨트롤(D)’특성의 효과라는 것을.
하지만 좋아하는 것도 잠시, 신재욱은 다시 집중했다.
상대 선수들이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신재욱은 바디페인팅을 준 뒤, 급격히 방향을 바꿨다.
덤벼들던 상대 선수들이 잠시 멈칫했다. 게다가 작은 틈도 생겼다. 신재욱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 신재욱이 두 명 사이를 파고듭니다! 빈틈을 정확히 파고드는 날카로운 드리블입니다!
이번엔 상대 수비수들이 신재욱에게 달려들었다.
괜찮은 판단이었지만, 신재욱이 봤을 때 저들의 수비는 허점투성이였다.
실제로 지금 도정중학교의 수비수들은 신재욱에게 시선이 쏠리며, 뒤로 돌아 들어가는 대한중학교의 공격수도 놓치고 있었다.
그리고.
신재욱은 동료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터엉―
뒷공간으로 밀어 넣는 패스.
난이도가 쉬운 패스는 아니었다.
각을 볼 줄 알아야만 성공시킬 수 있는 패스였으니까.
하지만 신재욱은 패스 각을 볼 줄 알았다.
그것도 아주 잘.
물론 패스 능력치가 매우 낮은 몸이기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지금처럼 패스를 줄 곳과의 거리도 최대한 좁혀야만 했다.
― 좋은 패스입니다! 신재욱의 패스가 뒷공간을 파고드는 김준혁에게 정확히 연결됩니다!
― 김준혁! 슈티이잉! 고오오오오올! 김준혁이 정확히 구석을 노린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합니다!
― 이야~! 대한중학교, 강하네요 정말!
* * *
선제골을 터트린 이후.
신재욱은 평소처럼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경기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조율했다.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허리와도 같은 역할이었다.
― 신재욱이 압박을 이겨내며 동료에게 공을 연결했습니다.
― 정말 든든하네요! 신재욱 선수가 공을 잡으면 뺏길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지 않습니까?
― 전혀 뺏길 것 같지 않죠. 실제로 신재욱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공을 뺏긴 적이 거의 없었죠.
신재욱을 중심으로 한 대한중학교는 급하지 않게 도정중학교를 상대했고.
― 소중섭의 슈팅이 살짝 벗어났습니다! 돌파에 이어서 직접 슈팅까지 가져간 플레이였는데, 상당히 위협적이었습니다.
― 대한중학교의 분위기가 좋은데요? 반면에 도정중학교는 앞선 경기들에서 보여줬던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기는 서서히 기울었다.
― 신재욱 선수, 얄미울 정도로 잘하네요! 심지어 노련하기까지 합니다! 방금도 카드를 받지 않을 정도의 반칙으로 상대의 좋았던 기회를 끊어내지 않았습니까? 이건 경험이 많은 프로선수들이나 보여주는 건데, 이제 겨우 14살인 신재욱 선수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 하하! 대한중학교를 상대했던 팀의 감독님들은 우스갯소리로 신재욱 선수가 나이를 속였다는 말까지 하고 있답니다. 그만큼 신재욱 선수가 노련하다는 말이죠.
전반전이 끝나갈 때까지 추가 골은 터지지 않았다.
도정중학교는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움직였지만, 확실한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반대로 대한중학교 선수들은 경기를 안정적으로 풀어나가고 있었다.
굳이 골 욕심을 내지 않았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신재욱도 무리하지 않았다.
사실 무리할 체력도 없었다.
‘이 대회의 일정은 미쳤어.’
이번 대회에서 주전으로 뛰어온 그였다.
워낙 타이트한 일정이라 체력을 회복할 시간도 부족했다.
심지어 경기에 나설 때마다 활동량도 많았다.
때문에, 신재욱은 떨어진 체력을 관리해가며 꾸역꾸역 결승전까지 치르는 중이었다.
‘이런 식이니까 부상이 많이 나오지.’
이번 대회에선 부상자가 많이 나왔다.
갑자기 햄스트링이 올라오거나 탈진하는 선수가 많았다.
보통 피로가 높을 때 생기는 일이었다.
신재욱의 팀인 대한중학교에서도 부상자가 4명이나 나왔다.
다행히 상태가 심하진 않았지만, 4명이라는 부상자가 나온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리고 부상을 입지 않은 선수들도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대한중학교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지키는 운영을 하는 것도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 전반전이 종료됩니다! 첫 번째 골이 나온 이후, 조금은 소강상태에 가까웠죠?
― 맞습니다. 도정중학교가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대한중학교 선수들의 집중력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만, 후반전은 경기 양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어떤 이유 때문이죠?
― 양 팀 모두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마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셨을 텐데, 전반전부터 양 팀 선수들의 활동량과 민첩성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지난 4강전이나 8강전에 보여준 경기와 비교해서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죠.
전반전이 끝난 지금.
양 팀 선수들 모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90분을 뛴 선수들처럼 드러누워 체력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후반전에 들어와서도 양 팀 선수들은 여전히 지친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회 내내 누적된 피로도가 잠깐 쉬었다고 좋아질 수는 없었으니까.
― 아…… 선수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줬으면 좋겠네요……!
― 선수들이 사실상 정신력으로 뛰고 있는 후반전입니다!
모두가 힘든 상황.
선수들의 피로는 점점 더 심해졌고, 집중력도 크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선 보통 특별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이대로 경기가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경기장 위엔 이변을 만드는 것에 익숙한 선수 하나가 있었다.
― 신재욱이 속도를 높입니다! 기습적인 드리블 돌파입니다!
신재욱이었다.
― 템포를 낮춘 상태에서 갑자기 템포를 올리며 돌파에 성공해낸 신재욱입니다! 계속 전진하는데요?
중원에서 공을 돌리던 신재욱이 갑자기 속도를 올리며 전진했다.
그 움직임에서 상대 선수 하나를 제쳤다.
그 순간 급격히 공간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상대 선수들이 공간을 좁히며 압박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재욱은 그것보다 먼저 움직였다.
덤벼드는 상대 선수들의 틈.
가장 약한 부분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 우오오오! 신재욱이 두 명의 압박을 뚫어냈습니다! 딱 한 곳, 빈틈이 있었는데 그곳을 파고드네요! 판단력이 기가 막힙니다!
단단해 보이던 공간을 뚫고 나오자, 상대의 허술한 부분이 드러났다.
페널티박스 안쪽.
골키퍼가 지키고 있던 그 공간 안에 신재욱이 들어왔다.
‘안 나오네?’
신재욱은 고개를 든 채 공을 컨트롤했다.
눈으로는 골키퍼의 움직임을 주시했고, 발로는 공을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
후웅!
다리를 짧고 빠르게 휘둘렀다.
슈팅은 아니었다.
공에 발이 닿는 순간, 발에 급격히 힘을 뺐다.
공을 앞으로 살짝 밀어내는 정도의 터치였다.
그 순간 상대 골키퍼가 몸을 날렸다.
슈팅이라고 생각하며 움직인 것이다.
“슈팅 아니었어.”
그 말과 함께.
신재욱은 골키퍼가 몸을 날린 곳의 반대 방향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