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 * *
신재욱은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택현이 쫄았다는 사실을.
사실 모르는 게 이상했다.
떨리는 동공, 후들거리는 다리, 말을 더듬으며 뒷걸음질 치는 것까지.
전형적인 겁먹은 사람의 행동이었으니까.
“너, 너가……! 여기 왜……?”
사실 이택현의 행동은 당연했다.
얼마 전 골목에서 삥을 뜯다가 신재욱에게 걸려서 끔찍할 정도로 두들겨 맞았으니까.
“이택현이라고 했지? 야, 공을 주려는데 왜 자꾸 뒤로 가? 일로 와.”
“오, 오지 마!”
두 남자의 행동은 상반됐다.
신재욱은 다가갔고, 이택현은 몸을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배천중학교 선수들과 대한중학교 선수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야? 이택현이 왜 저러지?”
“보이는 것만으로는 신재욱한테 겁먹은 것 같은데?”
“둘이 아는 사이인가? 이택현 반응이 좀 이상하지?”
“이택현 성격에 저럴 리가 없는데? 뭔 일이야?”
그리고 지금.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재욱이 이택현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이어서 잔뜩 웅크린 이택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날 기억하나 보네? 그럼 다신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했던 말도 기억하냐?”
“으… 네가 여기 왜 있어……!”
이택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신재욱은 씨익 웃었다.
“나도 선수거든, 신기하게 우리가 첫 경기에서 만나게 됐네? 되게 반갑지? 조금 이따가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신재욱은 몸을 돌렸다.
동시에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 경기, 쉽게 풀어갈 수 있겠어.”
* * *
이택현과의 대화를 마친 이후.
신재욱은 대한중학교 동료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동네에서 유명한 싸움꾼이자 축구천재인 이택현을 겁에 질리게 한 것은 그만큼 큰일이었으니까.
“재욱아! 방금 어떻게 된 거야?”
“이택현이랑 아는 사이였어? 처음 본 사이가 아닌 것 같던데? 게다가 방금 이택현 겁먹은 것 맞지?”
“저기 배천중 애들 기가 완전히 죽었는데? 흐흐! 재욱아, 너 혹시 싸움 엄청 잘하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고야 저 이택현이 겁먹을 리가 없잖아?”
선배들, 그리고 동기들의 질문.
그 질문들을 받은 신재욱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된 건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공 주러 갔던 거예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전부 의도된 행동이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상대의 기를 꺾는다면, 그 경기는 굉장히 편해지거든.’
신재욱은 상대의 기를 꺾을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걸 한 것뿐이었다.
실제로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그 효과가 드러났다.
삐이익!
대한중학교와 배천중학교의 경기가 시작됐다.
전국대회라는 규모답게 이 경기는 실시간 방송으로도 송출됐다.
― 배천중학교가 천천히 공을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경기에 대한 관계자분들과 타 팀 선수들의 관심이 대단하다던데요?
― 실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두 팀이 만났기 때문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죠. 특히 배천중학교의 1학년 이택현 선수를 향한 관심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택현 선수는 10년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재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 천재죠.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배천중학교의 에이스이고, 이미 국내 유명 구단과 계약했을 정도니까요. 추가적인 정보로는 이택현 선수는 이번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국내 유명 구단으로 입단한다고 합니다.
― 14살의 나이에 국내 유명 구단의 스카우트를 받을 정도라니! 이택현 선수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지는데요?
― 오늘도 보시다시피 배천중학교의 전술을 보면 공격형 미드필더인 이택현 선수가 활약하기 좋은 4―2―3―1입니다. 그리고…….
해설들이 이택현에게 기대감을 드러내는 상황.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택현은 화려한 볼 컨트롤을 보여주며 대한중학교의 압박을 손쉽게 벗어났다.
― 오오! 이택현의 탈압박이 매우 좋네요! 과연 천재라고 불리는 선수다운 플레이입니다!
― 이택현이 공을 몰고 전진합니다! 스피드가 붙은 상황이라……어…?
해설자가 말을 멈췄다.
좋은 움직임을 가져가던 이택현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 이택현 선수가…… 동료에게 공을 넘기네요…! 방금 같은 경우엔 동료에게 패스하기보단 직접 해결을 했어도 될 것 같았는데요?
― 경기 전,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치라는 지시라도 받은 걸까요? 아니면 설마 앞을 가로막았던 대한중학교의 신재욱 선수를 뚫어내는 게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해설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재욱에게로 시선을 줬다.
방금 이택현의 앞을 가로막았던 선수였으니까.
그러나 해설들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이들이 본 신재욱의 모습은 특별할 게 없었다.
마른 몸에 작은 키를 지닌, 전형적인 중학교 1학년 선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들의 생각이 바뀌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이택현 선수가 공을 뺏깁니다! 신재욱 선수가 컷팅해냅니다!
― 신재욱 선수, 1학년 선수답지 않은 노련한 수비를 보여주네요! 반면에 이택현 선수는 유독 신재욱 선수에게만 약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분명 배천중학교의 전력은 강했다.
강팀으로 유명한 대한중학교가 경기력에서 밀릴 정도로.
다만, 배천중학교 공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택현이 중요한 순간마다 막혔다.
그것도 무명의 선수인 대한중학교의 신재욱에게.
“아이 씨! 왜 이래!”
이택현이 짜증을 냈다.
또다시 신재욱에게 공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학교 레벨에선 공을 절대 뺏기지 않는다고 확신하던 그였다.
실제로 배천중학교의 선배들도 훈련 때 그의 공을 뺏지 못했고, 오늘 붙는 대한중학교 선수들 역시 이택현의 공을 뺏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저 새끼한테만 뺏기는 거냐고!”
신재욱에겐 자꾸만 막혔다.
“특별히 빠른 것도 아닌데!”
움직임이 민첩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이택현의 기준에서 신재욱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그럼에도 뚫지 못했다.
같은 시간.
공을 뺏어낸 신재욱은 씨익 웃었다.
“쟤, 완전히 말렸네.”
심리전이 제대로 먹혔다는 사실에 즐거웠다.
에이스가 흔들렸기 때문일까?
전반전 20분이 지난 지금, 경기의 흐름은 대한중학교 쪽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배천중학교는 이제 대한중학교를 상대로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다.
― 대한중학교의 주장 추범진 선수가 공을 몰고 전진합니다! 대한중학교가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기 시작하는데요?
― 아무래도 팀의 에이스인 이택현 선수가 부진하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신재욱 선수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아! 말을 하는 도중에 추범진 선수가 좋은 드리블을 보여줍니다!
― 추범진 선수는 수비형 미드필더답지 않게 볼 컨트롤과 패스 능력이 매우 좋은 선수죠! 추범진, 사이드로 공을 길게 뿌립니다!
대한중학교의 주장 추범진, 그의 패스 실력은 훌륭했다.
훈련 때마다 팀에서 가장 높은 패스성공률을 보여주던 선수 중 하나였고.
그 실력은 대회가 펼쳐지는 지금도 발휘됐다.
쉬이익!
추범진은 중앙선을 조금 넘은 위치에서 측면으로 뛰는 윙어를 향해 정확한 롱패스를 뿌려냈다.
― 측면에서 대한중학교의 윙어 소중섭 선수가 공을 받습니다. 이 선수는 2학년임에도 주전으로 뛸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선수죠!
소중섭은 발이 빠르고 드리블이 좋은 선수였고, 그의 실력은 배천중학교를 상대로도 빛이 났다.
― 소중섭이 배천중학교의 측면을 뚫어냅니다! 배천중학교의 풀백 김한성이 너무 쉽게 뚫려버렸는데요?
― 김한성은 빠른 스피드를 지닌 선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선수죠. 아! 소중섭이 계속 파고듭니다!
소중섭은 크로스를 뿌렸다.
정확도 높은 크로스는 아니었다.
중학생 선수다운 그저 그런 수준의 크로스.
그럼에도 배천중학교의 페널티박스 안은 혼잡해졌다.
“막아!”
“걷어내!”
“집중해!”
배천중학교의 수비수들은 소리를 질러대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반면, 대한중학교의 선수들은 분위기를 가져온 상황이었기에 침착할 수 있었다.
특히 대한중학교의 주전 공격수 김준혁은 더욱 침착하게 몸을 띄웠다.
― 김준혁의 헤더! 아! 이게 골키퍼 정면으로 가네요! 대한중학교는 아주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 비록 골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좋은 공격이었죠? 반면에 배천중학교 선수들은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좋은 선방을 보여준 배천중학교의 골키퍼가 빠르게 공을 던졌다.
대한중학교 선수들이 전진해있는 지금이 좋은 역습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강민욱 골키퍼의 판단이 매우 좋네요! 배천중학교의 역습입니다!
배천중학교는 전방을 향해 빠르게 공을 연결했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어떻게든 팀의 에이스 이택현에게 공을 연결할 것.
비록 오늘은 신재욱에게 몇 번이나 막히고 있지만, 그래도 이택현은 팀의 에이스였다.
배천중학교의 선수들은 이택현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택현은 천재야. 대한중학교의 1학년한테 몇 번 막혔지만, 다음엔 분명 뚫어낼 게 분명해.’
‘신재욱이라고 했나? 저 녀석이 제법 잘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이택현을 막을 순 없을걸?’
‘이택현에게 공을 연결하면 분명 골을 넣어줄 거야.’
배천중학교 선수들의 집중력이 살아났다.
빠르게 역습을 진행하는 상황에서도 높은 패스 정확도를 보였다.
이택현에게 공이 연결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신재욱이 움직였다.
계속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택현의 발밑으로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했다.
신재욱이 한 태클의 퀄리티는 매우 높았다.
중학교 리그에서 뛰어난 드리블 실력으로 유명한 이택현이지만, 꼼짝없이 당해버렸다.
― 이번에도 신재욱입니다! 신재욱 선수, 태클 실력이 정말 대단한데요?
― 이게 중학 리그에서 볼 수 있는 태클인가요? 와…… 방금 보여준 슬라이딩 태클은 유럽에서나 볼 법한 태클 아닌가요? 한눈에 보기에도 수준이 매우 높아 보였습니다!
“아오, 씨!”
이택현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곧 흥분한 상태로 거친 욕설까지 뱉어냈다.
동시에.
“넌 뒤졌어!”
신재욱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느린 속도로 전진 드리블을 하는 신재욱과는 달리, 뒤를 쫓는 이택현의 스피드는 빨랐다.
― 어어? 이택현 선수! 빠릅니다! 자신이 뺏긴 공을 다시 가져오겠다는 걸까요? 폭발적인 속도로 신재욱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반면에 신재욱의 드리블 스피드는 상당히 느린 편이네요!
두 선수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태클을 시도해도 될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뒤졌다고 했지?”
이택현이 몸을 날렸다.
발부터 쭉 뻗는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한 것이다.
정확히 발목을 노린, 신재욱을 다치게 할 목적이 다분한 행동.
워낙 기습적인 태클이었기에, 당하는 선수로서는 피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신재욱은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차고 뛰었다.
그 움직임으로 아슬아슬하게 이택현의 태클을 피해냈다.
“뭐야?!”
이택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바닥에 누운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재욱을 올려다봤다.
반면, 신재욱의 입꼬리는 높이 치솟았다.
아주 진한 미소였다.
“뻔해.”
“어떻게 알았냐……?”
“내가 너 같은 양아치들을 잘 알거든.”
그 말과 동시에.
점프를 했던 신재욱이 추락했다.
이택현의 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