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 * *
배천중학교.
같은 동네에 위치한 대한중학교와 함께 전국적으로 유명한 학교였다.
전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닌 학교로도 유명했지만.
이 배천중학교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꾸준히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해내는 학교라는 것.
그리고.
2008년이 된 올해 역시도 스타플레이어가 될 자질이 있는 선수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어우, 졸려.”
노란 머리를 한 소년이 중얼거렸다.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는 그의 앞엔 배천중학교 축구부 감독이 전술에 대해서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선수들 모두 감독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노란 머리는 지루함을 느꼈다.
“오늘이 대회인데, 지금 얘기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그냥 실력대로 가죠.”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뱉은 노란 머리의 말.
그 말을 들은 배천중학교의 감독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야! 이택현 인마! 네 선배들도 다 가만히 있는 거 안 보여? 조용히 좀 해!”
축구부의 왕과도 같은 감독의 말.
선수라면 기가 죽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노란 머리는 조금도 기죽지 않은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쓸데없이 걱정이 많으시니까 그러죠.”
더 놀라운 건 감독도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대화를 이어갔다.
“쓸데없긴 왜 쓸데없어? 택현아, 이번 상대가 누군지 알아?”
“상대가 누군데요?”
“뭐?! 오늘 대회에 나가는 놈이 상대도 몰라? 대한중학교잖아!”
“대진 오늘 나왔잖아요? 아직 모를 수도 있죠.”
노란 머리를 한 이택현의 대답에 배천중학교의 감독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택현아……! 축구선수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게으르면 높은 곳에 올라갈 수가 없어. 내가 몇 번을 말했냐?”
“예외도 있다는 걸 제가 보여드리려고요. 근데 상대가 누구라고요?”
“이 녀석이 금붕어를 먹었나, 대한중학교라고!”
“오~! 제법 센 데랑 붙네요? 오케이, 거기랑 붙어서 보여주면 되죠? 몇 골이나 넣을까요? 3골? 아니다, 그래도 대한중이 전국에서 노는 학교니까 3골은 좀 빡셀 수도 있겠다. 2골 정도면 어때요? 내가 대한중학교한테 2골 넣으면 앞으로 잔소리 안 하시는 걸로, 오케이?”
“이…… 미친놈! 그래! 네가 대한중학교한테 2골 넣으면 내가 앞으로 잔소리 안 한다!”
“접수했습니다! 두말하기 없어요.”
이택현이 씨익 웃었다.
축구부 생활이 더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머릿속엔 대한중학교를 상대로 2골을 넣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조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택현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 있던 배천중학교의 선수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택현이라면 대한중학교를 상대로 충분히 2골 넣을 수 있지.’
‘쟤는 싸가지는 없지만 천재야. 대한중학교 애들도 잘하는 걸로 유명하지만, 이택현은 못 막을걸?’
‘재수 없지만, 수준이 다른 녀석이지.’
‘대한중학교도 대단하지만, 하필이면 이택현이 있는 우리를 만나게 됐네.’
이택현은 중학교 1학년임에도 천재적인 축구 실력으로 이미 프로팀과 이야기가 오가고 선수였으니까.
축구 잘한다는 배천중학교의 2학년과 3학년 선배들도 이택현을 막지 못했으니까.
* * *
대한중학교 축구부 선수들의 얼굴엔 진한 긴장감이 흘렀다.
상대가 배천중학교로 결정된 이후로 생긴 반응이었다.
“아오! 재수 없게 첫 경기부터 배천중을 만나냐?”
“배천중학교가 우리 첫 상대라니…….”
“아…… 대진운 최악이다.”
“어떻게 이렇게 운이 안 좋지?”
이처럼 대한중학교 선수들 역시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배천중학교를 상대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배천중학교의 에이스 때문이었다.
“이택현만 없었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천중의 다른 애들은 다 해볼 만하지. 근데 이택현은 1학년답지 않게 이미 괴물이라고 소문난 놈이라서…….”
“이택현 쟤, 싸움도 잘해서 선배들도 못 건드린다잖아.”
“학교 전체 싸움짱이고, 배천중 축구부에서도 왕처럼 행동한다던데? 선배고 뭐고 없대.”
“겉모습은 그냥 양아치 같은데, 저런 놈이 천재라니…… 세상 참 불공평해.”
“더 놀라운 건 뭔지 알아? 이택현 걔, 시력도 안 좋대.”
“뭐? 말도 안 돼! 눈이 안 좋은데, 어떻게 축구를 잘해?”
“그만큼 공을 다루는 실력이랑 감각이 뛰어난 거지.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확실한 정보야. 내 친구가 배천중학교에 있어서 들었는데, 정말로 안경 써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쁘대.”
이택현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워낙 대단하다는 소문이 무성했기에, 대한중학교 선수들은 이택현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신재욱 역시 이택현에게 관심을 보였다.
다만 이택현이 배천중학교의 에이스거나 싸움짱이어서가 아니었다.
‘저 양아치가 축구선수였구나.’
녀석이 지난번 골목에서 대한중학교의 학생을 때리고, 돈을 뺏던 무리의 리더였기에 갖는 관심이었다.
‘배천중의 에이스라고? 인성은 없는 게 축구 실력은 있나 보네.’
신재욱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이가 없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양아치를 전국대회에서 만나다니.
그것도 상대 팀의 에이스라니.
“세상 참 좁아.”
그렇게 중얼거린 신재욱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대회가 시작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승부욕이 끓어올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삥이나 뜯는 양아치한테 질 순 없지.”
신재욱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었기에, 이택현이라는 양아치가 에이스로 뛰는 팀을 상대로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그리고.
“제대로 혼내줘야겠어.”
그렇게 할 자신감도 있었다.
‘이제 곧 시작하겠군.’
신재욱의 눈이 빛났다.
경기장에 입장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직 경기가 펼쳐질 시간은 아니었다.
운동장 안에서 몸을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늘 하던 대로 몸부터 풀자.”
대한중학교의 코치, 그의 말에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배천중학교의 선수들도 운동장에 모여 몸을 풀었다.
반 코트씩 나눠서 펼치는 몸풀기 운동.
확실하게 공간을 나눠 훈련하기에, 어지간해선 두 팀이 충돌할 일은 없었다.
한쪽이 일부러 충돌하고자 한다면 모를까.
쉬이이이익!
공이 강하게 날아왔다.
대한중학교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공간으로.
게다가.
공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대한중학교의 선수 한 명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터엉!
“악! 뭐야?”
갑작스레 날아온 공, 그리고 이어진 비명에 대한중학교 선수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 순간, 배천중학교 측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내가 눈이 별로 안 좋아서, 몇 학년인지는 모르겠지만 공 좀 보내줄래?”
대한중학교 선수들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그리고 그 즉시 대한중학교 선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목소리의 주인이 배천중학교의 1학년 이택현이었으니까.
“쟤 지금 일부러 맞춘 거 맞지?”
“거리가 좀 멀긴 한데…… 이택현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저 자식은 평소에 공으로 골대 맞추면서 논다는 놈이니까.”
“근데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대한중학교 선수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을 때.
이택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야! 거기! 내 말 안 들려? 쫑알대지 말고 공이나 빨리 달라고!”
그 말에 대한중학교 선수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택현의 행동이 시합 전, 자신들의 기를 누르려는 작전이라는 것을.
때문에, 공을 곱게 주긴 싫었다.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배천중학교를 넘어 그 주변 동네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난 싸움 실력을 지닌 이택현을 향한 두려움.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제가 갖다줄게요.”
신재욱이 움직였다.
스윽!
공을 팔꿈치에 낀 그는 배천중학교 선수들이 모인 곳을 향해 걸었다.
* * *
공을 든 신재욱이 홀로 움직였다.
배천중학교의 공간을 향해서.
다만, 그냥 가진 않았다.
신재욱은 상대의 도발을 듣고 순순히 공을 줄 성격이 아니었다.
“야! 노란 머리! 지금 공 가지고 가니까 빨리 튀어와서 받아.”
그 순간, 양측 진영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이택현의 악명을 잘 알고 있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하지만 더 많이 놀란 건 배천중학교의 선수들이었다.
“쟤 뭐야? 덩치도 작고 어려 보이는데? 1학년 아니야?”
“본 적도 없는 놈인 걸 보니 아마 1학년이 맞을 거야.”
“저놈 아직 이택현에 대한 소문도 못 들은 건가? 1학년이라고 해도 대한중학교면 같은 동네라서 충분히 들어봤을 텐데?”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배천중학교의 선수들은 신재욱을 비웃었다.
동시에 걱정했다.
이택현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에휴! 저 녀석 괜히 나서 가지고… 이제 동네에서 고개 들고 못 다니겠네.”
“아마 하루에 만 원씩 뺏길걸?”
“헐…… 만 원씩이나? 근데 만약에 돈이 없으면?”
“없는 만큼 두들겨 맞겠지. 쟤, 아마 오래 못 버티고 전학 갈 거야.”
“……택현이가 무섭긴 하네. 내가 선배라서 다행이야. 그래도 선배를 먼저 건드리진 않으니까.”
“대신 이택현한테 먼저 시비를 걸면 그땐 선배고 뭐고 없지.”
운동장에 있던 모두가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 두 명만 빼고.
“너 뭐냐? 뭔 깡으로 깝치냐? 뒤에 있는 니 선배들이 도와줄 것 같아서 까부는 거야? 야야, 착각하지 마. 네 선배라는 새끼들 다 쫄았어.”
비웃음을 띤 얼굴로 한 이택현의 말.
그 말을 들은 신재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 주려고 왔는데 선배가 왜 필요해? 근데 너, 나 기억 안 나냐?”
“이 븅신이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딱 봐도 찐따 같은 게… 야! 어디 얼굴이나 한번 보자.”
이택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거슬리게 말대꾸를 하는 녀석을 자세히 보기 위한 행동이었다.
시력이 좋지 않은 그였기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상대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두 남자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의 거리가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어……?”
이택현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신재욱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행동에 이택현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으힉!”
지금 이 순간 이택현은 기억해냈다.
얼마 전, 골목에서 겪었던 일을.
그 당시 살면서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꼈고, 처음으로 아무리 덤벼도 이길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택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용해 애써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신재욱은 입꼬리를 올린 채, 이택현을 향해 다가갔다.
“어? 왜 쫄고 그래? 븅신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