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 * *
신재욱이 마이클 신으로 살던 시절.
즉, 세계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
그는 많은 팬을 보유했었다.
현역선수 중에서 그보다 팬이 많은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많은 선수 중 하나였지만.
반대로 그를 싫어하는 안티팬들의 수도 매우 많았다.
다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팬이 많은 선수가 안티팬도 많은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신재욱의 경우엔 그 정도가 심했다.
안티팬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렇게 된 것엔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하나였다.
“마이클 신? 걔는 매너 없는 선수들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게 문제야.”
“마이클 신은 더러운 플레이에 당하면 절대 못 참더라. 가끔은 너무 심하게 보복을 해서 무서울 정도야.”
“건드리면 안 되는 선수 1위에 또 마이클 신이 선정됐다고? 그럴만하지.”
지저분한 반칙을 하는 선수가 있다면, 더 심한 반칙으로 되돌려 준다는 것.
누군가에겐 시원한 참교육으로 보였지만, 결국엔 보복성 플레이였기에 많은 수의 안티팬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보복성 플레이가 대한중학교의 운동장에서 펼쳐졌다.
뻐억!
휘둘러진 신재욱의 팔꿈치가 고인섭의 허벅지를 가격했다.
허벅지에서 가장 약한, 맞자마자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부위를 노린 타격이었다.
“으아아악!”
진한 고통이 담긴 비명과 함께 경기가 중단됐다.
신재욱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인섭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인섭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유… 되게 아파 보이네. 그러게 왜 더러운 태클을 해서 사람 성질을 긁냐.’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러운 태클을 했다지만, 그래 봤자 상대는 15살짜리 꼬맹이였다.
너무 과민반응을 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신재욱은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으윽!”
사과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부여잡고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아픈 척 연기하는 것.
신재욱이 굉장히 자신감을 가지는 분야였다.
그러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고인섭이 불같이 화를 냈다.
“야 이 새끼야! 아픈 건 난데 왜 네가 엄살이야?”
고인섭은 억울했다.
자신의 태클이 지저분했다는 건 알지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분명 약했다.
신재욱이 저렇게 아파하는 것은 100% 연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진짜 아픈 건 자신이었다.
뭐에 맞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벅지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고 있지 않은가.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코치와 선수들이 고인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야! 인섭아! 뭐 하냐? 왜 태클을 한 네가 엄살을 부리고 있어? 그리고 위험한 백태클을 했으면 바로 사과를 해야지, 뭘 잘했다고 재욱이한테 화를 내는 거야?”
“인섭아, 추한 모습 그만 보이고 얼른 일어나서 재욱이한테 사과해. 선배가 돼서 쪽팔리게 뭐 하는 짓이야?”
“고인섭 쟤는 그렇게 안 봤는데, 왜 저러냐? 화를 내야 할 건 신재욱인데, 지가 화를 내고 있네!”
고인섭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이렇게 만든 후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녀석은 뭐가 그렇게 아픈지, 아직도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신재욱……!”
그때였다.
콰악!
“커헙?!”
고인섭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대한중학교의 코치에게 멱살을 잡힌 그는 겁에 질린 얼굴로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감독만큼은 아니었지만, 대한중학교의 코치는 축구부 선수들 사이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남자였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는 나한테 할 게 아니라, 재욱이한테 해야 하지 않겠냐?”
“아…… 맞습니다! 재욱아… 미안하다. 내가 먼저 백태클을 해놓고 오히려 화를 내서 미안해…….”
다급하게 사과를 하는 고인섭의 모습에.
신재욱은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얼굴을 한 채, 엄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
“저는 괜찮아요. 축구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 * *
신재욱은 애써 고통을 참는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코치가 깜짝 놀라며 말렸다.
“재욱아, 많이 아파 보이는데 괜찮아? 억지로 일어날 필요는 없어.”
주변을 둘러싼 대한중학교 선수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재욱아, 코치님이 억지로 일어날 필요 없다잖아. 좀 더 쉬지 그래?”
“백태클 당하면 일어나기도 힘들 텐데… 그냥 조금 더 누워있지?”
“괜히 선배들 있다고 무리해서 일어나는 거 아니야? 혹시나 그런 거면 그럴 필요 없어.”
전부 신재욱을 걱정했다.
그리고.
신재욱은 그들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다행히 아픈 것도 나아지고 있고요.”
물론 코치는 계속해서 휴식을 취할 것을 권했지만, 신재욱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쉬긴 뭘 쉬어요. 아프지도 않은데.’
결국, 경기는 신재욱을 포함한 채 재개됐다.
코치에게 강하게 경고를 받은 고인섭도 다시 경기에 투입됐다.
삐이이익!
경기가 재개됐다.
그와 동시에 신재욱이 움직임을 멈췄다.
축구를 할 때면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그였지만, 지금은 집중력이 깨져버렸다.
“어…?”
갑자기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특성이 생성됩니다!]
[‘그라운드의 파이터’를 습득합니다!]
특성이 생성됐다는 내용을 담은 메시지.
게다가 그 이름은 ‘그라운드의 파이터’였다.
“이건 또 뭐야?”
신재욱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향해서.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라운드의 파이터]
[등급] D
[효과] 상대 선수를 가격했을 때, 더욱 큰 고통을 주게 됩니다.
새로 얻은 특성의 정보가 적힌 메시지.
그걸 본 신재욱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라운드의 파이터라고? 상대 선수한테 더 큰 고통을…… 아니, 이런 게 왜 나와……? 내가 무슨 깡패도 아니고…….”
그때였다.
“야! 신재욱! 뭐 해?!”
“재욱아! 자냐? 경기 시작했는데 왜 멈춰있어?”
선배들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신재욱은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또한, 집중력도 끌어올렸다.
‘경기 중인데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정신 차리자.’
다행히 메시지에 정신을 뺏겼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게다가 A팀과 B팀 모두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고, 천천히 공을 돌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주전 선수들과 비주전 선수들을 섞어서 팀을 만들어서 그런가? 다들 되게 조심스럽네.’
신재욱은 운동장을 천천히 뛰어다니며 주시했다.
A팀 동료들과 상대인 B팀 선수들의 움직임을.
‘이것도 오랜만이네.’
신재욱이 옅게 웃었다.
신인이었을 때가 떠오르며 감회가 새로웠다.
‘그땐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필사적으로 분석했었지.’
최근 몇 년간은 직접 분석을 하지 않았었다.
전문분석팀이 넘겨준 자료를 숙지하기만 하면 됐었으니까.
하지만 신인 때는 얘기가 달랐다.
그땐 주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같은 팀 선수들을 분석했었다.
또, 좋은 경기력을 펼치기 위해서 상대 팀 선수들을 분석했었다.
그리고 지금.
신재욱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같은 팀과 상대 팀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최선을 다해서 분석하고 있었다.
‘추억보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은근히 재밌네.’
신재욱은 분석하는 걸 이어갔다.
다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어.’
분석은 끝났다.
오랜만에 하는 것이긴 했지만, 과거에 워낙 많이 했었던 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움직여보자.’
신재욱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적극적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상대 팀의 패스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타닷!
활발하게 움직이던 신재욱이 상대 선수에게 달라붙었다.
그런데 그가 찍은 선수는 공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공을 이제 막 받으려고 하는 선수였다.
‘공을 받기 직전엔 방심하기 마련이지.’
신재욱은 많은 경험으로 인해 알고 있었다.
패스를 받기 직전에 방심하는 선수가 많다는 사실을.
물론 리그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런 경우는 현저히 적어지지만.
중학교 수준에서는 아주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신재욱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B팀의 1학년 공격수 우석호는 방심하고 있었다.
뒤에서 신재욱이 접근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패스받고 나서 대응하지 뭐.’
우석호는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1학년이어서 주전 경쟁에서 밀릴 뿐, 실력으로는 선배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공 받자마자 탈압박해서 근처에 있는 동료한테 패스해야지.’
머릿속으로 계산까지 전부 끝낸 지금.
우석호는 빠르게 굴러오는 공을 받기 위해 발을 뻗었다.
하지만 그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헙!”
발밑으로 들어오는 태클 때문이었다.
촤악!
바닥에 낮게 깔아서 들어오는 슬라이딩 태클.
환생 전, 신재욱을 중앙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게 해줬던 기술 중 하나였다.
우당탕!
우석호는 바닥을 뒹굴었고.
신재욱은 뺏어낸 공을 컨트롤하며 몸을 일으켰다.
태클 한 번으로 단숨에 공을 뺏어낸 상황.
여기서 신재욱은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모두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협적인 선수가 아니었던 신재욱의 태클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압박도 오지 않고 있었고 공간도 많았다.
‘조금 더 만들어볼까?’
전진하기엔 최적의 상황이었다.
드리블에 자신이 없으면 모를까, 신재욱은 유럽에서도 자신감 있게 수비수를 제치던 선수였다.
투욱! 툭!
신재욱은 최대한 짧게 공을 치며 드리블했다.
빠른 속도보단 전진하는 것에 의미를 둔 드리블이었다. 최대한 정교하게 드리블하며, 언제든 상대의 움직임에 대응할 준비를 마쳤다.
“내가 막을게!”
그 순간 3학년 미드필더 한 명이 신재욱에게 덤벼들었다.
신재욱을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덤벼드는 모습.
그 모습에 신재욱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방심까지 해주고.’
같은 실력이라면 신중할수록 상대하기 어렵고, 급할수록 쉬웠다.
심지어 신재욱과 B팀의 선수들은 실력도 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툭!
신재욱은 공을 컨트롤하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별다른 페인팅을 쓰진 않았다.
무식하게 덤벼드는 상대로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허억?! 쟤 진짜 뭐야?!”
“우오오? 이게 뭔 일이야? 쟤 신재욱 맞아?”
“드리블이 미쳤는데? 저게 어떻게 1학년의 움직임이야?”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경악성들.
순식간에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상황.
부담감이 생기기 좋은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재욱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저 옅은 미소를 띤 채로 전진했다.
‘수만 명 앞에서도 축구 했는데, 이 정도야 뭐.’
흔들림 없는 드리블.
환생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투박한 드리블이었지만.
대한중학교 선수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때였다.
툭! 투욱!
드리블을 하던 신재욱이 갑자기 속도를 높였다.
이에 B팀의 수비수 모두가 당황했다.
그 순간 B팀의 골문을 지키고 있던 대한중학교의 주전 골키퍼 정승현이 고함을 질렀다.
“뭐 해?! 더 못 들어오게 끊어!”
외침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B팀의 중앙수비수 두 명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너무나도 당황해서 나온 수비의 개념조차 버린 행동이었다.
그리고.
투웅!
신재욱은 수비수들의 실수를 놓치는 선수가 아니었다.